스핀트로닉스 응용편 - 반도체를 넘어, 전자의 스핀으로 여는 차세대 정보기술
스즈키 요시시게 외 지음, 일본자기학회 엮음, 원운재 외 옮김 / 광문각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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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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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나 클로드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에 스며든 요즘, 우리는 습관처럼 "이 모델이 얼마나 똑똑한가"를 이야기한다. 파라미터 수, 추론 속도, 응답의 자연스러움. 그런데 정작 이 모든 지능이 돌아가는 물리적 기반, 즉 그것을 계산하고 저장하는 반도체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자동차를 몰면서 엔진 내부의 폭발 과정을 궁금해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에 <스핀트로닉스 ―응용편>을 접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그 "엔진 내부"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 학문이 물리학, 반도체공학, 자기공학, 전자공학, 양자정보학 등 여러 분야가 겹치는 지점에서 성장해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껏 전자공학이라 부르며 발전시켜온 모든 기술은 사실 전자의 '전하'라는 한 가지 성질에만 주목한 결과였다. 전하가 얼마나 흐르는지, 얼마나 빠르게 스위칭되는지가 반도체 산업 전체를 이끌어온 질문이었던 셈이다. 스핀트로닉스는 여기에 아주 단순하지만 근본적인 질문 하나를 더한다. 전자에게는 전하 말고도 '스핀'이라는 또 하나의 물리량이 있는데, 왜 우리는 그것을 정보처리에 적극적으로 쓰지 않았을까? 이 질문 자체는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스핀은 이미 20세기 초부터 알려진 개념이다. 그런데도 이 익숙한 성질을 낯설게 다시 바라보는 순간, 완전히 다른 기술의 지평이 열린다. 목차에서 다루는 거대자기저항(GMR), 터널자기저항(TMR), 스핀토크 자화반전 같은 소자들은 모두 이 하나의 질문에서 갈라져 나온 답들이다.

일반인의 눈으로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요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AI 반도체' 담론이었다. 생성형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엔비디아의 GPU, HBM 메모리, 그리고 이를 둘러싼 파운드리 경쟁이 연일 화제가 된다. 그런데 이 흐름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AI 산업이 마주한 진짜 병목은 연산 속도보다 오히려 '메모리와 연산 사이의 데이터 이동'에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하게 된다. 거대한 모델을 학습시키고 추론할 때 소모되는 전력의 상당 부분이, 계산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를 메모리에서 꺼내고 다시 저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스핀트로닉스가 흥미로워진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의 상당 부분은 전공자가 아닌 나로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이크로마그네틱스, 자벽과 카이랄리티, 베리 위상 같은 용어들은 한 문장을 읽는 데도 여러 번 멈춰서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이해되지 않음'이 오히려 흥미를 자극했다. 모르는 용어 하나하나가 "이 안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원리가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특히 2장에서 다루는 진공증착, 스퍼터링, 포토리소그래피, 전자빔 리소그래피 같은 제조 공정을 읽으며 느낀 것은, 우리가 마주하는 매끈한 기술 뒤에는 상상 이상으로 정교하고 지루한 실험의 반복이 있다는 점이었다. 스마트폰 안의 자기센서 하나, 하드디스크의 헤드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쌓여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술에 대한 태도가 조금은 겸손해진다. 우리는 완성된 결과물만 보고 감탄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노미터 단위의 오차와 씨름하는 연구자들의 시간이 있다.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좋은 과학책은 모든 것을 이해시켜주는 책이 아니라 이전에 당연하게 여기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책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쓸 때, 그 안의 메모리 어딘가에서 전자의 스핀이 어떤 방향으로 정렬되어 정보를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됐다. AI가 그려주는 그림, 대신 써주는 문장 뒤에는 결국 전기가 흐르고, 전자가 움직이고, 그 전자의 스핀이 자기장 속에서 방향을 바꾸는 물리적 사건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는 어쩌면 '보이는 것'의 시대다. 우리는 화면에 나타나는 결과물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그 결과물을 가능하게 하는 반도체와 소자의 세계, 그리고 그 소자를 더 빠르고 더 적은 전력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실험실에서 진행되고 있을 스핀트로닉스 연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의 영역에 남아 있다. 전공자가 아니어도, 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 한 번쯤 눈을 돌려보는 경험은 앞으로 다가올 기술의 지형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어렵지만, 그래서 미래를 미리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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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필사책 - 흔들리는 삶의 지침이 되어 줄 다산의 문장들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 유노북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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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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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의 마지막 밤은 언제나 조금 쓸쓸하다. 명절 내내 북적이던 집안이 하나둘 비워지고, 설거지를 마친 그릇들이 마르는 소리만 남는 시간. 내일이면 다시 평일의 얼굴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기에, 이 밤은 유독 마음이 헐거워진다. 그런 밤에 다산 정약용의 문장들을 필사하며 읽었다. 처음에는 그저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습관적인 행동이었는데, 한 구절 한 구절을 손으로 옮겨 적다 보니 뜻밖에도 오늘 내가 앓고 있던 것들의 이름을 하나씩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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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마음에 걸린 것은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뜻 속에서 자라나지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만둔다"는 구절이었다. 명절이란 게 원래 그런 시간 아닌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사이에서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이 문득 솟아오르고, 굳이 꺼내지 않아도 좋았을 비교와 서운함이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자라난다. 나 역시 이번 연휴에 몇 번이나 그런 말들을 삼켰다가, 혹은 삼키지 못하고 뱉었다가 후회했다. 다산은 그 마음의 싹을 두고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만둔다"고 했다. 필요와 불필요를 가르는 그 짧은 순간의 판단력이야말로 어른이 되어가는 일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남이 알지 못하게 하고 싶은 것이라면 그 역시 그만둔다"는 대목에서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숨기고 싶은 마음이란 대개 떳떳하지 못한 마음이니까. 누군가 보고 있지 않다고 안심하며 슬쩍 넘어가려 했던 나의 옹졸한 순간들이 문장 위에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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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머문 구절은 분노에 관한 것이었다. "겉으로 드러내기는 쉬워도 제어하기는 어려운 것이 분노"라는 말, 그리고 "분노와 원한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풀리지 않는 법"이라는 문장. 명절 연휴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사소한 일에 발끈했다. 누군가의 말투, 누군가의 무심함, 정리되지 않은 집안일들.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분노할 만큼 큰일이 아니었다. 다만 내 안에 쌓여 있던 피로와 조바심이 작은 불씨를 만나 확 타올랐을 뿐이다. 다산의 시대에도, 지금 이 시대에도 인간의 감정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다만 다산은 그 감정을 그저 참는 것이 아니라 "제어"하라고 했다. 참는 것과 다스리는 것은 다르다. 참는 것은 언젠가 터지지만, 다스리는 것은 그 뿌리를 이해하고 흘려보내는 일이다. 오늘 밤 나는 참았던 감정들의 뿌리를 한 번쯤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위로가 된 것은 습관과 태도에 관한 문장들이었다. "사람의 겉모습은 매일의 습관으로 변하고, 그 사람이 이루는 삶의 결은 그 모습에서 비롯된다"는 말과 "땅의 기운이 어떠니, 올해 운수가 어떠니 하며 삶이 정해져 있다고 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거짓이다"라는 단호한 문장. 명절이면 어른들은 으레 신년 운세니, 올해는 어떻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나 역시 그런 이야기에 은근히 마음을 기대곤 했다. 좋은 말이 나오면 안심하고, 나쁜 말이 나오면 괜히 위축되곤 했으니까. 그런데 다산은 이백여 년 전에 이미 그런 운명론을 "거짓"이라 잘라 말했다. 삶을 만드는 것은 별자리도 사주도 아니라 오늘 하루 반복한 작은 습관이라는 것. 이 말은 묘하게 안도감을 준다. 내 삶이 어떤 정해진 그릇에 담겨 있는 게 아니라, 매일의 선택들로 계속해서 빚어지고 있는 것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다는 뜻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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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에 관한 구절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가문이 몰락한 상황에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책을 읽는 것밖에 없다"는 문장. 다산은 유배지에서, 벼슬도 가족도 없는 남쪽 끝에서 이 말을 썼다고 한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끈이 결국 읽고 쓰는 일이었다는 사실은, 지금의 나에게도 어떤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나는 다산만큼 큰 것을 잃어본 적은 없지만, 크고 작은 상실 앞에서 무엇을 붙잡아야 할지 몰라 방황했던 밤들이 있었다. 그런 밤에는 텔레비전을 켜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대신, 책을 펼치고 한 줄이라도 읽고 쓰는 편이 결국 나를 덜 흔들리게 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읽기는 다산에게 삶의 길을 찾는 일이었다고 하는데, 나에게도 그런 의미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18년의 유배 생활 동안 정약용은 벼슬도, 가족도, 앞날에 대한 확신도 없이 오직 읽고 쓰는 일로 자신을 지탱했다고 한다. 회갑을 맞아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문을 쓰고, 그것을 십오 년에 걸쳐 고쳐 썼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반성을 한 번의 감정으로 소비하지 않고 평생의 수행으로 삼았다는 것.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을 매일 다시 세우는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 밤 나 역시 명절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감정들, 삼켰던 말들과 뱉었던 말들, 잠깐의 분노와 오래 남은 서운함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그것을 자책으로 끝내지 않고, 다산처럼 내일 다시 고쳐 써 볼 여지로 남겨두고 싶다.


연휴가 끝나고 다시 평범한 하루들이 시작된다. 특별할 것 없는 그 하루하루가 사실은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유일한 재료라는 것을, 다산의 문장들이 다시 한번 일러주었다. 운명이 아니라 습관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그침과 다스림이 삶의 결을 만든다는 것. 그 단순한 진리 앞에서, 나는 오늘 밤의 헐거워진 마음을 조금은 단단히 여며본다. 내일부터는, 필요 없는 마음은 그만두고, 분노는 참는 대신 다스리고, 흔들리는 날에는 다시 책을 펼치는 사람이 되어보려 한다. 그것이 이 특별할 것 없는 명절의 마지막 밤이 내게 남긴 작은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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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인문학 수업 - 역사, 문화, 경제, 인구, 산업이 교차하는 도시 이야기
도시연구소 지음 / 믹스커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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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도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도시의 성장을 눈에 보이는 것들로 판단해 왔다. 높은 아파트 단지, 새로 뚫린 도로, 반짝이는 복합쇼핑몰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도시의 운명을 가르는 것이 건물의 새것과 낡음이 아니라 인구와 일자리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양질의 일자리가 사람을 부르고, 모여든 인구가 상권과 인프라를 키우며, 잘 갖춰진 인프라가 다시 새로운 일자리와 자본을 끌어당긴다. '도시의 선순환 구조'라고 부르는 이 톱니바퀴는 한 번 돌기 시작하면 도시를 성장시키고, 어느 한 곳에서 끊어지면 도시를 서서히 늙게 한다. 이 원리를 알고 나니 우리나라 도시들의 부침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보였다. 도시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이고, 그 생명의 맥박은 사람과 돈이 어디로 흐르는가에 달려 있다는 저자의 관점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사례는 화성과 수원이다. 화성시의 지역내총생산은 2023년 기준 약 95조 원으로, 서울 강남구를 제치고 전국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흔히 경제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강남을 지방의 기초자치단체가 넘어섰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배경에는 대규모 산업 일자리가 있다. 수원 역시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일자리를 품으면서 인구 약 120만 명, 광역시인 울산보다 큰 도시로 성장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여전히 기초자치단체이지만 실질적인 체급은 이미 광역시를 넘어선 것이다. 반대로 일자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부천을 통해 '일자리 없는 베드타운'의 한계를 짚는다. 사람은 살지만 그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일터가 도시 안에 없다면, 그 도시는 서울의 그림자에 머물게 된다. 전주의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옥의 곡선과 깊은 음식 맛, 고즈넉한 품격을 지닌 전주는 분명 매력적인 도시다. 하지만 낭만과 감성만으로는 도시를 온전히 성장시킬 수 없다는 저자의 지적처럼, 관광업만으로는 반도체 같은 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 아름다움과 성장은 별개의 문제라는 냉정한 현실을 이 책은 보여 준다. 인구수보다 중요한 것이 '젊음의 밀도'라 한다. 도시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은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생산가능인구, 그중에서도 20대 후반에서 40대의 젊은 층이라고 한다. 이들이 유입되지 않는 도시는 멈춰 선 낡은 시계와 같다. 인구가 늘고 있다는 숫자에 안심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세대가 얼마나 들어오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저출생과 지방 소멸이 화두가 된 지금, 우리 사회가 도시를 바라볼 때 꼭 필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관점으로 내가 오래 살아온 부천을 다시 보게 되었다. 부천은 일자리가 부족한 베드타운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비관하기엔 이르다고 말한다. 서울의 양천구, 강서구, 구로구와 맞닿아 있다는 물리적 거리는 다른 어떤 신도시도 흉내 낼 수 없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출퇴근길의 1분 1초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그 길을 오가는 생활인으로서 체감해 온 사실이 도시 분석의 언어로 정리된 셈이다. 도시의 미래는 이처럼 약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만이 가진 강점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도 함께 배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도시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자리와 자본이 몰리는 도시는 집값과 생활비가 오르고, 그 반대편의 도시는 활력을 잃고 조용히 늙어 간다. 수도권과 지방, 성장하는 도시와 쇠퇴하는 도시 사이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책에 담긴 창원, 구미, 거제 같은 제조업 도시들이 쇠퇴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모습은 그래서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광주가 AI 중심 도시라는 비전과 광주형 일자리로 성장의 엔진을 다시 돌리려 애쓰고, 부산이 낡은 제조업이 떠난 자리를 바다와 관광, 문화로 채워 가는 모습에서 나는 도시의 회복력을 보았다. 부산은 이대로 주저앉을 만큼 연약한 도시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처럼, 도시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스스로를 바꿀 때 살아남는다.  

우리가 어디에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저자가 5년간 전국 100여 곳을 직접 걸으며 새벽 시장의 활기와 불 꺼진 공단의 적막을 몸으로 느꼈기에, 그 분석에는 통계가 담지 못하는 온도가 있다. 나 역시 이 책을 덮고 난 뒤 익숙한 동네의 골목과 출퇴근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 가게는 왜 문을 닫았는지, 저 공장 터에는 왜 새 건물이 들어서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 것이다. 도시는 한번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다. 일자리가 생기고, 사람이 모이고, 자본이 흐르는 선순환을 어떻게 만들고 이어 가느냐에 따라 도시의 운명은 달라진다. 그 선순환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그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우리가 있다. 도시를 읽는 눈을 갖게 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발 딛고 사는 삶의 터전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 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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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첫 번째 액션 1~2 세트 - 전2권 ㅣ 나의 첫 번째 액션
주성철 외 지음, 한국영화감독조합 외 기획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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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들이 처음부터 특별했으리라고 가정한다. 마치 타고난 재능과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한 채 세상에 나타난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의 첫 번째 액션>을 펼쳤을 때 나를 사로잡은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지금은 거장의 반열에 있는 31명의 영화감들, <기생충>의 봉준호부터 〈왕과 사는 남자〉의 장항준까지, 한때는 "교통비가 없어 언덕을 걸어서 넘고""만 원짜리 생활비를 어머니에게 청하며"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이 주는 위로가 있었다. 이 책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패와 낙오 속에서 어떻게 버티는지에 관한 진솔한 기록이었고, 내가 그 속에서 찾은 것은 예상과 달리 공식 없는 다양성이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첫 번째 액션'은 결코 극적인 순간이 아니었다. 강윤성 감득이 46살에 마침내 기획되는 〈범죄도시〉를 위해 이들 밤을 새운 것, 민규동 감이 촬영 2주 만에 피로로 쓰러져 입원한 것, 우민호 감득이 10년 간 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하지 못하며 자괴감에 빠진 것, 이 모든 것은 절박함으로 뭉쳐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이들이 데뷔에 이르기까지 겪은 반복적인 거절과 좌절이었다. 강윤성 감득은 <범죄도시>를 쓰기 위해 3년 을 썼다. 우민호 감독은 대본을 수없이 퇴짜" 맞았고, 영화를 만들 수 없던 10년을 보냈다. 그들에게 데뷔'는 한 순간의 영광이 아니라 매번 내려오는 칼 같은 현실 속에서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한 누적이었다. 그렇다면 그들 을 계속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것은 감득들을 지탱한 것이 거대한 신념이나 확실한 미래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해영 감득이 아버지로부터 돈이나 벌어, 네가 무슨 글 쓰는 재능이 있냐"는 말을 들으며 괴로워했을 때, 그를 불 잡은 것은 단 한 줄의 다짐이었다: "내 재능에 내가 열광하자." 거대하지도, 그럴듯하지도 않은 말이었지만, 그 말이 그를 견디게 했다. 윤제균 감은 100명이 넘는 스태프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그들을 이름으로 부르며 도 움을 청한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관리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진실되게 대할 때 사람들이 도와준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윤가은 감득을 완전히 바꿔놓은 것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 한 편이었다." 세상 모든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영화감득을 꿈꾸던" 그가 이 영화를 만나고 나서야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한 편의 영화가 던진 질문이 그의 인생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이런 것들은 모두 그날 그날을 버티게 하는 작고 구체적인 것들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감들이 자신의 불안감을 숨기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임순례 감득은 작품이 성공하는 기쁨보다는 작품을 만들고 있지 않을 때의 초조와 불안을 다스릴 수 있어야" 영화감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것은 성공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에 관한 솔직한 고백이었다. 장항준 감득은 자신이 예능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받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묵직해야 한다, 진중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완전히 '극복'한 것이 아니라, 그 의심과 함께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이들은 불안을 제거하거나 극복하지 않았다. 대신 불안과 행복을 동시에 안고 계속 나아갔다. 이것이 바로 책이 말하는 무언가 가 되기 전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견디는 법"의 핵심이 아닐까. 책을 덮고 나서 오래 생각한 질문은 책의 마지막 문장에 담겨 있었다: 될지 안 될지 전혀 알 수 없는데도 계속할 수 있는가." 31명의 감이 몸으로 답한 이 질문에 대해, 데뷔란 한 순간의 영광이 아니라,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도 계속해야겠다"고?선택하는 것이라는 사실블 라이 생각하게 타. 밤득들이 이루고 싶던 꿈들이 현실이 된 것은 그들이 특별했거나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부족한 것 투성이었고, 자주 넘어졌으며, 때론 절망했지만, 포기하지 않기로 선택했던 사람들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주는 큰 위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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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 - 한글 580년, 팍스 코리아나로 가는 길
이현준 지음 / 해향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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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 한글을 읽고 쓴다. 메신저로 안부를 묻고, 지하철 안내문을 읽고, 간판과 메뉴판을 스치듯 본다. 그러면서도 이 글자가 어떤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드물다. 학창 시절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창제 원리를 배웠고 '한글은 과학적인 문자'라는 말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그것은 시험을 위해 외운 지식에 가까웠다. 너무 익숙한 것은 오히려 제대로 알기 어렵다는 역설이다. 올해 한글날은 특별하다. 훈민정음 반포 580년, 한글날을 제정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게다가 지금 세계는 K-팝을 듣고 K-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전에 없던 시대를 지나고 있다. 이런 시점에 <가나다라: 세상 모든 소리를 적는 문자>를 읽으며 한글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한류를 최근의 현상으로만 여기기 쉽지만, 이 책은 그 시선을 넓혀 준다. 846년 바그다드의 관료 이븐 쿠르다지바는 <도로와 왕국 총람>에 신라를 사람들이 찾아와 정착할 만큼 풍요로운 나라로 기록했다. 천이백 년 전에도 한반도는 멀리 있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곳이었던 셈이다. 오늘날의 관심이 우연한 유행이 아니라 오랜 교류의 역사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류를 오래 지속되는 흐름으로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노래와 드라마는 관심의 문을 열어 주지만, 그 문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길은 결국 언어와 문자다. 실제로 한국어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이 학습되는 언어가 되었고, 세종학당도 2007년 3개국 13곳에서 시작해 89개국 273곳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한때 우리가 영어를 배우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면, 이제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말과 글을 배우고 있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한글이 있다.


책에서 오래 생각이 머문 대목은 '이름'이었다. 세종이 붙인 이름은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니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글자보다 소리를 앞세운 이 이름에는, 훈민정음이 단순히 우리말을 적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 내는 소리를 정확히 표현하려는 체계였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해례본」이 말하듯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 닭 울음소리와 개 짖는 소리까지 적을 수 있다는 자부심이 그것을 뒷받침한다. 이 체계의 원리는 지금 보아도 놀랍다. 자음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기본자를 만들고, 소리가 세어짐에 따라 획을 더해 확장한다. 소리의 성질과 글자의 모양이 대응하는 문자는 세계 문자사에서도 드물다. 페니키아 문자가 그리스 문자와 라틴 문자로 이어지듯 대부분의 문자가 오랜 세월 사람들의 교류 속에서 조금씩 변해 온 산물이라면, 훈민정음은 한 사람의 깊은 고민 끝에 원리부터 설계된 문자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막연히 '한글은 훌륭하다'고 말하던 나는, 무엇이 어떻게 훌륭한지를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데 책은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세종이 만든 것은 스물여덟 자였는데, 왜 우리가 쓰는 것은 스물네 자일까. 사라진 것은 아래아(ㆍ), 반치음(ㅿ), 여린히읗(ㆆ), 옛이응(ㆁ)이다. 우리말에서 쓰이지 않게 된 소리에 맞춰 글자도 함께 정리되었고, 그 과정에서 저자의 표현대로 '훈민정음의 절반만 쓰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 언어는 살아 있는 것이어서 쓰이지 않는 소리가 사라지고 글자가 정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실용을 위해 글자를 줄인 선택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저자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분명히 곱씹을 만하다. 우리말에서는 쓰지 않게 되었을지라도, 그 글자들이 담고 있던 소리를 적는 원리까지 잊어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오늘날 한글로 외국어를 적을 때 b와 v, f와 p, l과 r 같은 소리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사라진 글자와 창제 원리를 다시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제안은 충분히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 옛 글자를 복원하자는 주장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잃어버린 것의 의미를 묻는 일 자체가 값지다고 느꼈다.


책을 덮고 나니 늘 쓰던 글자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한글이 위대하다는 말은 자랑으로 그칠 때 힘이 없다. 어떤 원리로 설계되었고, 무엇을 잃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때 비로소 그 위대함은 실체를 갖는다. 남의 글자를 빌리지 않고 온전히 우리 글자로 우리말을 적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나 행운은 누리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지키고 가꾸는 책임으로 이어진다. 세계가 한국어에 관심을 보이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관심을 뿌듯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준비하는 것이다. 한글이 지닌 소리 표현의 가능성을 정확히 알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좋은 학습 환경을 마련하며,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과 글을 소중히 쓰는 일이다. 해외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한국어가 제2외국어가 되지 않도록 지켜 주자는 저자의 당부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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