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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정민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6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었을 뿐인데, 마음 한구석이 오래도록 술렁였다. 마치다 소노코라는 작가의 데뷔작을 소개하는 글이었지만, 그 안에는 소설의 줄거리보다 더 오래 남는 질문 하나. "어려움을 안고도 살아가기로 선택한, 혹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 살기 좋은 세상이란 대체 무엇일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완전하지 않다. 조부모 손에 자란 아이,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 자살로 연인을 잃은 여자, 여자로 변해가는 중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카페 주인, 원치 않은 임신을 안고 옛 동료를 찾아온 여자. 이들은 저마다 물속에서 숨을 참고 헤엄치듯 힘겹게 하루를 살아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힘겨움이 어른들만의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 역시 학교와 교실과 가정이라는 여러 공동체를 넘나들며 저마다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산다고 썼다. 순진해 보이지만 실은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먼저 공격하기도 하는 존재로 아이들을 그린 것이다.
살기 좋은 세상의 첫 번째 조건을 떠올렸다. 그것은 아이든 어른이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다. 지금 우리 주변의 많은 갈등은 실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누군가 나를 공격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방어벽을 치고, 그 방어벽이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굳이 날을 세우지 않아도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다면, 그래서 아이들이 교실에서, 어른들이 일터에서 조금 더 무장을 풀고 지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아질 것이다.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여성의 강함'에 대한 물음이었다. 책 속 여성들은 하나같이 약해 보인다. 남자를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부당한 대우에도 반박하지 못하거나, 누군가의 보호 아래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피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고 살아내는 힘이 서서히 드러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강함'이 얼마나 좁은 정의에 갇혀 있는지 깨달았다. 상황을 단번에 뒤집는 힘, 남에게 기대지 않는 독립, 이런 것들만이 강함이라고 믿어왔지만, 현실을 피하지 않고 매일을 버텨내는 끈질김 또한 분명한 강함이다. 살기 좋은 세상은 이처럼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강함까지도 존중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화려하게 극복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묵묵히 오늘을 견디는 사람에게도 마땅한 자리를 내어주는 세상 말이다.
세 번째로 마음에 남은 것은 관계의 힘이다. 사요와 후미와 타마키, 세 사람이 서로의 진심을 마주하며 부딪치는 과정들... 힘든 일이었지만 혼자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애써 혼자가 되어 살아온 이들조차 결국은 서로의 삶에 관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살기 좋은 세상의 또 다른 조건을 발견했다. 그것은 누구도 완전히 혼자 남겨지지 않는 세상이다. 물론 모든 관계가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책 속 인물들처럼 갈등하고 부딪치는 관계가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부딪침조차 곁에 누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면, 결국 중요한 것은 완벽한 화합이 아니라 곁에 있어주는 존재 그 자체가 아닐까.
내가 생각하는 살기 좋은 세상은 고통이 사라진 세상이 아니다. 그런 세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살기 좋은 세상이란, 저마다 다른 어둠과 사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들이 물속에서 허우적대며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해주는 세상이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은 괴롭고 힘겹지만, 그럼에도 발버둥 치며 숨을 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 발버둥을 곁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손을 내밀고,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사키코처럼, 여러 이야기 속에 조용히 등장해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게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그 사람이 물속에서 완전히 가라앉지 않도록, 옆에서 함께 숨을 쉬어주는 존재.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