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외 지음, 김희정 옮김 / 해나무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거대한 지구 시스템을 바라보던 관점이 조용히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감소, 오염 등 이 모든 것이 추상적인 수치와 그래프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들이 제시하는 '패치 (patch) 개념은 이 거대한 위기를 다시 보게 했다. 인류세는 지구 전체에만 작용하는 일원적 힘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패치'들의 연결고리라는 통찰이 나를 사로 잡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탈(feral) 개념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탈이란 "인간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설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비인간 존재의 상태"이다. 하노이의 현대식 하수도 시스템은 식민지배자들의 문명의 자랑 이어야 했다. 그러나 쥐들이 그 관을 타고 흘러나와 프랑스인들의 목욕당을 습격했다. 제국주의 인프라의 완벽함이라는 환상은 쥐의 단순한 적응력 앞에서 무너졌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인프라들, 도로, 발전소, 농업 시스템 이 동일한 방식으로 역풍을 맞고 있지는 않을까? 부레장의 사례가 이를 충명한다. 전.세계 식물원의 자랑이었던•이 수생식물은 의도와 다르게 강과 호수를 뒤덮으며 생태계를 교란했다. 인간이 통제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우리의 인프라 속에서 독립적으로 적응하고 진화하고 있었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방법론은 역설적이다. 거대한 인류세를 이해하려면 더 작은 것들을 더 자세히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데이터와 위성 이미지가 주는 유혹에 빠지면 현장의 생생한 관찰이 사라진다: 그 대신 특정 자역, 특정 시간의 패치'를 추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프랑스 해변의 노조 사건은 이러한 패치 분석의 가치를 명확히 보여준다. 녹조 자체는 자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1960년대 5mg/|에서 오늘날 33mg/로 급증한 질산염 수치는 놈 업 인프라의 이탈 효과를 드러낸다. 강우로 인한 유출, 강에서 바다로의 흐름, 특정 기후 조건 등이 모든 요소가 한 지점에서 만날 때 인간의 죽음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패치-행성 역학(patch-to-planet dynamics)이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인류세가 본질적으로 식민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다종 침입(multispecies invasion)은 15세가 말부터 시작된 유럽의 팽창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패치적 인식론(patchy epistemics)은 깊이 있다. 자연과학자, 인문학자, 토착 지식 체계, 예술가들의 관찰을 쌓기(ping)" 형식으로 모은다. 이는 단순한 학제 간 소통이 아니다. 각 지식 체계가 자신 의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표준을 인정하는 열린 분석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방식이 나를 감동시킨 이유는 그것이 겸손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데이터, 토착 공동체의 세대에 걸친 경험, 예술가의 감각적 표현-이들은 서로 환원될 수 없으면서도 모두 필요하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허물기(unbuilding)'는 절망적이지 않으면서도 절실하다. 인공 환경이 전체 탄소 배출의 40%를 차지한다. 그 위에 계산되지 않는 이탈 효과들이 쌓여 있다. 라카통과, 바살의 철학처럼, 우리는 짓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인류세는 인간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역설의 시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들의 담변은 명화하다: 관찰하고, 기술하고, 연대 하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패치에서 인간-비인간의 새로운 얽힘이 일어나고 있다. 모기, 방사능, 녹조, 황소개구리,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인프라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 복잡한 현실을 직시하고, 다양한 방 식으로 기술하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자, 역설적이게도 희망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어쨌든 미술관은 재밌다 - 세계 6개 미술관에서 처음 시작하는 그림 여행
박혜성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발을 디딘 지 오래되었지만, 그곳을 정말로 '본다'는 것은 최근의 일이다. 교과서에서 만났던 낯익은 얼굴들 앞에 서게 될 때마다 나는 새삼 깨닫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얼마나 진실인지를 알게되었다. 고등학교 미술 시간, 나는 피카소의 청색 시대를 무심코 넘겼었다. 슬픈 색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그 안에 담긴 화가의 절망과 연민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작품을 마주한다면, 나는 달라진 눈 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이 온통 우울해 보이는 그 시절, 피카소가 어떤 마음으로 색칠한 붓질 하나하나가 느껴질 것이다. 책에서 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을 비교하는 부분이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르누아르와 드가는 같은 시대를 살아갔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전혀 달랐다. 르누아르는 우아하고 화사한 색채로 부유한 이들의 여유로운 순간을 담았고, 드가는 그 이면의 현실을 냉철한 시선으로 포착했다. 두 화가의 작품을 나란히 놀 고 보면, 같은 시대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보인다. 이것이 바로 아는 것의 힘이다. 배경을 알면, 그림 속의 색은 더 이상 단순한 색채가 아니라 시간의 기록이 된다. 세관원 루소의 이야기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전문가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자신이 위대한 화가라고 믿으며 붓을 놓지 않았던 그 열정.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들은 모마를 비롯한 세계적인 미술관에 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미술관을 다니며 깨닫게 되는 것 중 하나는, 예술의 세계에는 시간이라는 위대한 심판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 시대에 주류가 아니었던 것들이 몇 십 년, 몇 백 년이 지나 새롭게 평가 받는다. 그것은 단순히 작품 때문만은 아니다. 그 작품을 만들어낸 화가의 흔들리지 않는 신념, 세상을 바꾸려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소를 보며 나는 내 안의 잠자고 있던 열정을 깨운다. 미술관에 가면 나는 최근에 자주 생각한다. 결국 미술관이란 거울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명화들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그림 자체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것이기도 하다. 캔버스 위의 누군가의 슬픔, 기쁨, 분노는 어떤 시대에든 누군가의 감정과 맞닿아 있다. 르누아르가 그려낸 봄날의 산책로에서 나는 나의 소망을 본다. 드가가 응시한 무용수의 피로한 표정에서 나는 내 삶의 무게를 본다. 터너가 기록한 전함의 노을은 영국의 영광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 모든 이가 경험하는 변화와 상실 앞에서의 아련함을 담고 있다.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터너의 《해체를 위해 예인된 전함 테메레르》가 영국의 20파운드 지폐 얼굴이 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한 나라가 자신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영국은 거대함과 권력을 상징하는 전함이 아니라, 그 전함이 역사 속에 사라져 가는 순간을 그린 그림을 선택 했다. 그 속에는 영광을 기억하면서도 변화를 받아들이는 지혜가 담겨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시간이 주는 성숙함까지 포함한다.  

오늘 미술관으로 향하려 한다. 더 이상 낯설고 경외로운 마음만 가지고가 아니라, 화가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화가들의 열정과 신념을 느끼기 위해. 교과서에서 만났던 그 작품들이 다시 나를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의 눈은 다르다. 단순한 색채와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이야기를 보는 눈으로. 미술관은 거울이자, 시간의 기록이며, 열정의 증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서 나는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처음에는 봄날 아지랑이처럼 희미하겠지만, 계속 바라보다 보면 나만의 눈에만 보이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만의 감성 미술관 투어가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미국 성장주 처음 투자 -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은
김운아 지음 / 경이로움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경제적 자유라는 말은 화려하게 들리지만, 풀어 보면 소박하다. 월급이 끊겨도 삶이 무너지지 않는 상태, 하기 싫은 일을 견디는 이유가 오직 생계만은 아닌 상태다. 책에서 직장의 은퇴를 인생의 은퇴가 아니라 투자라는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받아들이면, 월급이 끊겨도 재난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경제적 자유의 본질을 보았다. 자유는 큰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그 선택지를 어떻게 넓히느냐다. 월급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오랫동안 투자를 남의 이야기로 여겼다. 용어는 낯설고, 잃을까 봐 두려웠으며, 무엇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여러 사람이 미국 주식을 권했지만, '성장주'가 무엇인지, 어떤 기준으로 종목을 골라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 권유는 공허하게 들렸다. 그러던 중 <미국 성장주 처음 투자>를 만났다. 1,000만 원으로 시작해 40억 원의 자산을 일군 저자가 평범한 워킹맘이었다는 사실은, 이 길이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신호처럼 다가왔다.

책은 미국 시장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상식적으로 설명한다. 미국 주식은 상식에 기반해 기업을 골라도 될 만큼 투자 난도가 낮고, 장기적으로 우상향해 온 시장이라 약간의 인내만 있으면 자산이 불어난다는 것이다. 미국이 재채기를 하면 다른 나라는 감기 몸살에 걸린다는 비유도 인상적이었다. 이왕이면 재채기 쪽에 서 있는 편이 낫다는 말은 가볍지만 설득력이 있다. 물론 이것이 미국 시장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과거의 우상향이 앞으로도 이어진다는 확신은 누구도 줄 수 없다. 다만 90년이 넘도록 상승과 회복을 반복해 온 역사가 하나의 근거가 되어 준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성장주는 그 시장 안에서도 혁신이 일어나는 자리에 자산을 놓는 일이다. 저자는 성장주 투자가 단순히 수익률을 좇는 행위가 아니라 기술과 미래의 변화에 안테나를 세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투자가 돈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투자는 공부이고 관찰이며, 삶에 활력을 주는 취미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성장주 투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라기보다, 미래에 참여하는 방식에 가깝다.

책이 다른 투자서와 다른 점은 매수와 매도의 기술보다 투자자의 멘탈을 먼저 다룬다는 데 있다. 성장주는 상장 초기에 변동성이 크고, 경기 침체기에는 유독 큰 폭으로 하락한다. 계좌가 파랗게 물들 때 손실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투자자의 심리다. 그래서 저자는 하락장을 좋은 기업을 싸게 모을 기회로 바라보는 심리적 체력을 강조한다. 가장 마음에 남은 것은 '경험의 복리'라는 개념이다. 1,000만 원을 굴릴 때와 10억 원을 굴릴 때 필요한 정신력은 다르고, 시행착오는 사라지지 않고 경험이라는 자산으로 쌓여 큰 수익을 담을 그릇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다른 독자의 후기에서도 이 구절에 크게 공감하는 대목이 있었는데, 처음 굴리던 돈의 무게와 지금의 무게가 하늘과 땅 차이지만 부딪히며 경험이 쌓이면 천천히 적응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자산의 크기보다 그것을 견디는 사람의 크기가 먼저라는 뜻이다. 초보인 나에게는 이 말이 위로이자 경고로 들렸다. 실수는 피할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과정이라는 것, 그리고 처음부터 잘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시작을 막는다는 것을 배웠다.

초보자가 가장 자주 하는 고민은 "지금이 너무 비싼 건 아닐까"다. 책은 이 물음에 정면으로 답한다. 우리는 늘 고점에서 살 수밖에 없으며, 저점을 기다리다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고점에 사더라도 저점이 될 때까지 오래 보유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주식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아군은 시간이라는 것이 이를 요약한다. 다만 나는 이 조언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려 한다. 장기 투자는 여윳돈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한다. 몇 년 안에 써야 할 돈을 성장주에 넣고 시간을 믿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무모함이다. 또 성장주는 하락 폭이 클 수 있어, 비중이 지나치게 커지면 버티는 일 자체가 어려워진다. 시간이 아군이 되려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돈과 마음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크게 남은 것은 특정 종목이 아니라 태도였다. 투자 성공은 아이템이나 타이밍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는 말, 부자에게 무엇을 사야 하느냐고 묻기보다 실패했을 때 어떻게 극복했는지 물어야 한다는 말이 오래 머물렀다. 경제적 자유는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는 결과가 아니라, 지루하고 괴로운 손실의 구간을 지나며 좋은 자산을 꾸준히 모아 가는 과정의 끝에서 만나는 것이다. 물론 이 책 한 권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성과는 코로나19 이후의 상승장이라는 시기적 행운도 일부 작용했을 것이고, 같은 길을 걸어도 결과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정답이 아니라 출발선으로 삼으려 한다. 앞으로 켄 피셔 같은 저자의 책을 더 읽고, 여러 관점을 비교하며 나만의 원칙을 다듬어 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은폐된 전쟁 -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허상이 가린 두 개의 내전
박홍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0년 8월,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은 미국이 위챗을 금지하면 중국도 애플 제품을 금지할 수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은 미국 플랫폼에, 그것도 아이폰으로 쓴 것이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든은 틱톡의 강제 매각 법안에 서명했지만, 그의 선거 캠프는 여전히 틱톡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중국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비난하며 재집권한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판 '트럼프 성경'은 중국 항저우의 공장에서 인쇄되었다. 책은 이러한 모순에서 출발한다. 뉴스는 매일 미중이 반도체와 희토류, 관세와 타이완 해협을 두고 사활을 건 패권 전쟁을 벌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나라가 정말 서로를 무너뜨리려 한다면, 왜 이렇게 서로에게 깊이 얽혀 있을까. 그 속의 답은 국가 중심성이다. 국제 정치는 무정부 상태이고, 국가는 하나의 이해관계를 가진 단일한 행위자이며, 생존을 위해 힘을 겨룬다는 구조 현실주의의 전제다. 이 안경을 쓰면 미중 관계는 '패권국과 도전자의 대결'로만 보인다. 저자는 이 전제가 유용한 방법론적 가정을 넘어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국가가 단일체라는 담론의 최대 수혜자는 결국 국가 권력을 쥔 세력이기 때문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통치 권력'이다. 책의 핵심 주장이다. 미중 관계는 '두 개의 내전'을 동시에 치르는 상황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자본주의 국제 질서 속에서 벌어지는 미중 간의 논제로섬적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각국의 통치 권력이 내부의 대항 세력과 벌이는 정치적 내전이다. '패권 경쟁'이라는 설명은 바로 이 두 번째 전쟁을 가린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부터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까지 저자가 끌어오는 사례들은, 통치 권력에게 외적이 내적을 제압하는 명분으로 쓰여 왔음을 보여 준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 대목은 1995~96년 타이완 해협 위기 분석이었다. 클린턴이 리덩후이에게 비자를 내준 것은 톈안먼 이후 악화된 반중 여론과 압도적인 의회 결의(상원 97대 1, 하원 396대 0) 때문이었고, 중국의 미사일 훈련은 보수파와 군, 민족주의 여론 사이에서 입지가 불안했던 장쩌민이 유약해 보일 수 없었던 사정과 맞닿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이 같은 시기 미국에 타이완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일촉즉발의 위기였지만, 양쪽 모두 국내 정치의 무대를 위해 위기를 연출하고 관리한 셈이다. 미국의 군사 케인스주의 분석도 같은 맥락에 있다. 성능이 형편없어도 계속 만들어지는 줌월트 구축함이나 연안전투함은 군사적으로는 실패작일지 몰라도, 일자리와 지역 경기를 떠받치는 수단으로서는 목적을 다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경제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위협이 지속되는 상태다. 전쟁경제의 수혜 세력이 두려워한 것은 역설적으로 소련과의 평화였다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전쟁, 곧 국가 간 갈등을 설명하는 열쇠는 자본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국가들이 스스로 순응하게 만드는 '글로벌 리바이어던'으로 본다. 카터 정권은 소련 침공에 수출 통제로 맞서면서도 석유 시추 장비만은 목록에서 뺐고, 시진핑은 자유 무역과 다자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택한 것도, 경제 성장이 곧 통치 정당성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이 '달러 패권 체제 내의 지위 변화'였다는 지적을 따르면, 중국이 디커플링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도 분명해진다. 디커플링은 통치 정당성의 토대를 흔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커플링은 실제보다 담론으로 더 크게 존재한다. 미중 무역액은 디커플링 담론이 유행하던 2022년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수출 통제 신청의 승인 대 거부 비율은 약 10 대 1이었다. 엔비디아 칩은 선전 시장에서 우회로를 타고 거래된다. 오히려 '진짜 디커플링'은 미국 정부와 미국의 반도체 자본 사이에서 벌어질지 모른다는 저자의 농담 섞인 진단은 꽤 날카롭다. 트럼프 정권이 H20의 대중국 수출을 허가한 뒤 엔비디아 주가가 오른 사실이 그 사례다. 두 번째 전쟁, 곧 내전의 가장 선명한 얼굴은 트럼프다. 저자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신자유주의가 낳은 노동 계급의 빈곤 위에서 자란 현상으로 본다. 미국 대중의 가난이 중국과 그에 결탁한 내부 세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자신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중 기만'이다. 그러나 그는 대중, 자본, 안정적 대외 관계라는 세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삼중 딜레마'에 빠져 있다. 관세는 물가를 올려 지지층을 떠나게 하고, 자유 무역으로 돌아서면 지지자들이 배신감을 느낀다.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이 모순이 이미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미중 갈등은 모두 가짜라는 주장으로 읽지 않았다. 타이완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나 기술 통제는 분명 현실의 위험이다. 저자 스스로도 그것이 실재하는지에 대한 최종 판결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나는 통치 권력의 동기를 지나치게 일관된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아닌지, 국내 정치와 자본이라는 변수를 강조하다 안보 요인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남았다. 국가 중심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통치 권력'이라는 또 다른 단일 행위자를 세우는 것은 아닐까. 책은 한국에게도 실용적인 교훈을 준다. 중국의 요구를 읽을 때 '중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정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읽어야 한다는 제안, 그리고 미국의 요구를 읽을 때도 그 뒤에 있는 국내 정치와 자본의 계산을 읽어야 한다는 제안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준다. 뉴스 속 '패권 전쟁'이라는 장면 뒤에는, 두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다. 그 전쟁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공포를 소비하는 관객이 아니라, 상황을 판단하는 시민이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모두가 그렇게 흔들리며 살아갑니다
때지타로 지음 / 모티브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요즘 나는 자주 멈춰 서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남들은 저만치 앞서가는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인 듯한 조급함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불쑥 찾아온다. 이 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안도감이었다. 그리고 그 안도감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우리는 SNS 속에서 타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만 본다. 반면 내 삶에서는 피곤한 날, 실패한 순간,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까지 전부를 겪는다. 편집된 남의 하이라이트와 무편집인 내 일상을 나란히 놓고 저울질하니 늘 내가 모자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애초에 공정한 비교가 아니었던 셈이다. 책에서 말하듯,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잘난 사람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부정적 메타인지'에 익숙해진다. 나 역시 그랬다. 새로운 일을 앞두면 정답부터 찾았고, 완벽히 준비되기 전에는 시작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공식을 대입해 정답을 맞히던 습관이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삶의 진짜 재능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수많은 시도의 끝에서 우연히 발견된다. 시도하지 않으면 재능은 드러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모범생이 아니라 모방생이 되자'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한 번에 성공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볍게 따라 해 보고 안 맞으면 고치며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 이 태도는 게으름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에 가깝다. 실패해도 그것이 또 하나의 배움이 되어 다음 걸음으로 이어진다면, 실패는 오점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래서 나는 작은 시도부터 해 보려 한다. 미뤄 두었던 공부를 하루 삼십 분만 시작해 보고, 관심 가는 분야의 글을 하나 써 보는 것이다. 결과가 형편없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해낼 수 있다'는 긍정적 메타인지를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다. 내 가능성을 인정해야 비로소 첫발을 뗄 용기가 생긴다.

관계에 대한 관점도 바뀌었다. 나는 오랫동안 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려 애썼다. 준 만큼 받아야 한다는 계산,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을 때의 서운함이 나를 지치게 했다. 그런데 관계를 취미처럼 대하라는 말을 듣고 나니 한결 편해졌다. 게임이나 운동에 시간과 돈을 쓰면서도 그 과정 자체를 즐기듯, 내가 기꺼이 쓸 수 있는 시간과 마음만큼만 관계에 내어 주면 된다. 내가 정한 '손해의 마지노선'을 넘어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한다면 미련 없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차가운 단절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지혜다. 억지로 유지하는 관계는 피로만 깊게 만들지만, 기꺼이 투자하는 관계는 그 자체로 즐거움이 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나의 내실과 실력을 다지는 데 집중하면 된다.

책을 덮고 나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불안을 없애는 것이 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되기보다 불안한 순간에도 내 선택을 이어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편이 훨씬 현실적이다. 흔들리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 문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가 뿌리를 더 깊이 내리듯, 흔들림은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일 수 있다. 번아웃이 찾아올 만큼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세게 채찍질하는 일이 아니라 잠시 속도를 늦추는 용기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남의 시선과 비교에 소모하는 하루가 얼마나 아까운지도 분명해진다. 소중한 사람과 다투고 후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다정하게 채우는 편이 훨씬 남는 장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