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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SKETCH - 관찰하는 삶, 그려내는 인생, 그리고 느끼는 보물
쿠리타 유이 지음, 김재훈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6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었을 뿐인데,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걸려 있던 매듭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무명의 유학생이었던 저자가 세계적인 스토리보드 아티스트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책을 읽으며 나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한때 나는 밖에 나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무서웠다. 사람들 앞에서 서투른 선을 드러내는 일도,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다가 오해를 사는 일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예쁜 사진을 찾아 그것을 따라 그리는 쪽을 택했다. 문제는 그럴수록 그림이 점점 재미없어졌다는 것이다. 완성도는 나쁘지 않았을지 몰라도, 그 안에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누군가의 카메라가 이미 한 번 포착한 순간을, 나는 그저 한 번 더 베껴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저자가 짚어낸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사진이나 다른 사람의 그림은 결국 타인의 시선으로 잘라낸 장면이다. 그것을 참고하는 일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즐거움이나 감동을 전하고 싶다면 먼저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서툴러도 좋고 단 한 줄의 선이어도 좋으니, 내가 느낀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 당연한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그동안 잘 그리는 것에만 매달려 있었지, 무언가를 느끼는 일에는 게을렀던 것이다.밖에서 사람을 스케치한다는 것은 나에게도 여전히 낯설고 겁나는 일이다. 누군가를 오래도록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린다면, 그것은 무례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나라도 낯선 사람이 나를 그렇게 관찰한다면 불편할 것이다. 그런데 글쓴이가 전한 조언은 그 두려움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해주었다. 카페 스케치란 그 사람 자체를 초상화처럼 담아내는 작업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듯 눈에 들어온 인상, 그 찰나의 아이디어를 선으로 옮기는 일에 가깝다는 것이다. 오래 응시하며 압박감을 주어서는 안 되고, 잠깐 스친 인상만을 그림으로 남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는 그릴 대상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설명을 듣고 나니,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스케치 자체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관찰하고 소비하는 시선이 아니라, 스쳐 가는 순간에 감사하며 그것을 기록하는 시선. 그 차이를 알고 나니, 밖으로 나가 그려보고 싶다는 용기가 조금씩 생겨났다.책이 좋은 이유는 손기술을 가르치는 지침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인물을 어떻게 그리는지, 구도를 어떻게 잡는지를 알려주는 대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의 순간들을 마주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던 저자가, 결국 자신을 살린 것은 더 좋은 아이디어와 자신만의 시선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는 과정도 인상 깊었다. 기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보다, 스스로에게 즐기는 것을 허락하라는 조언은 그림뿐 아니라 다른 어떤 창작 활동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데에만 집중해왔다. 데생이 부족하면 데생을, 채색이 부족하면 채색을 더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작 내가 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는지는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나는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그림을 시작했다.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어떤 장면과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느새 그 목적은 사라지고, 잘 그려야 한다는 압박만 남아 있었다.책을 읽고 난 뒤, 나는 노트와 연필을 챙겨 밖으로 나가보고 싶어졌다. 완성된 그림 한 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나가는 풍경이나 사람들에게서 스쳐 지나가는 인상을 붙잡아 보는 것. 그 인상이 서툰 한 줄의 선으로 남는다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스케치를 잘하는 것보다 먼저 삶을 잘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카페에서,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모든 순간이 사실은 사랑스러운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그릴 자격은 잘 그리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느끼려는 사람 모두에게 있다는 것. 이 깨달음은 그림을 그리는 일을 넘어, 하루하루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