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켓의 과학적 원리와 구조 - 한 권으로 끝내는 항공우주과학
데이비드 베이커 지음, 엄성수 옮김 / 하이픈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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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는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새들의 자유로운 비행을 부러워하고, 밤하늘의 별들에게 소망을 빌며,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가늠했다. 그리고 마침내 20세기에 이르러, 인간은 지구라는 거대한 중력우물에서 벗어나 우주로 향하는 길을 열었다. 그 열쇠가 바로 로켓이었다. 데이비드 베이커의 <로켓의 과학적 원리와 구조>를 통해 접하게 되는 로켓의 세계는 인간의 끝없는 도전 정신과 과학적 사고의 승리를 보여주는 파노라마며, 동시에 우리나라가 걸어가야 할 미래의 길을 제시하는 나침반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책의 크기에 놀랐고, 그 내용의 명확함과 풍부한 자료와 사진들에 두번 놀라게 된다. 어린시절 물 로켓을 만들어 날리곤 했던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다.

로켓의 작동 원리는 놀랍도록 단순하다.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그 핵심이다. 연료를 연소시켜 고온고압의 가스를 분사하면, 그 반작용으로 로켓이 반대 방향으로 추진력을 얻는다. 이토록 기본적인 물리 법칙이 인류를 우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과학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원리는 단순해도 실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초속 11.2 킬로미터라는 엄청난 속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추진력과 정교한 제어 시스템, 극한의 환경을 견딜 수 있는 소재와 구조 가 필요했다. 로켓 과학은 이 모든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종합 예술이었다. 치올콥스키의 로켓 방정식은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고, 고다드의 액체 연료 로켓은 실용적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폰 브라운의 V-2는 비극적 맥락에서 탄생했지만, 현대 로켓 기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사는 종종 이런 아이러니를 품고 있다. 전쟁의 도구로 개발된 기술이 평화로운 탐험의 수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 경쟁은 20세기 후반 인류 문명의 가장 극적인 장면 중 하나였다. 1957년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가 지구 궤도를 돌기 시작했을 때,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미국은 서둘러 8K72 모델을 개발했지만 9회 발사 중 6회가 실패하며 굴욕을 맛보았다. 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였다. 미국은 아틀라스 로켓 시리즈를 통해 점진적으로 기술을 발전시켰고, 마침내 새턴 V라는 걸작을 탄생시켰다. 3500톤에 가까운 추력을 자랑하는 이 거대한 로켓은 1969년 아폴로 11호를 달에 안착시키는 쾌거를 이루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새턴V를 능가하는 로켓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시의 기술적 성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많은 폭발과 추락 사고가 있었지만,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실패할 때 마다 원인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찾아 다음 시도에 반영했다. 이런 반복적 개선 과정이야말로 과학 기술 발전의 핵심이다.

2021년 10월 21일,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누리호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비록 위성모사체를 목표 궤도에 정확히 안착시키지는 못했지만, 이는 한국 우주 기술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역사적 순간이었다. 12년간의 연구 개발 끝에 이룬 성과였고, 한국을 세계 7번째 독자 위성 발사 능력 보유국 대열에 올려놓는 성취였다. 누리호의 의미는 기술적 성공을 넘어, 한국이 우주 선진국으로 도약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위성 발사 서비스, 우주 탐사, 우주 자원 개발 등 미래 우주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선진국들은 이미 재사용 로켓 기술을 상용화하고 있고, 화성 탐사와 달 기지 건설을 현실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한국이 이런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21세기는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다. 과거 국가 주도의 우주 개발에서 민간 기업이 주도하는 상업적 우주 산업으로 패러다임 이 변화하고 있다. 스페이스X의 팰컨9과 스타심, 블루 오리진의 뉴 글렌, 버진 갤럭틱의 우주 관광 등은 이런 변화를 상징한다. 위성 인터넷, 지구 관측, 우주 제조업, 소행성 채굴 등 새로운 우주 사업 모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우주 경제 규모가 2040년 까지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반도체 시장보다 큰 규모다. 한국이 이런 거대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로켓 기술 뿐만 아니라 위성 제조, 우주 전자 부품, 우주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 다행히 한국은 이미 강력한 IT 기술과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어 우주 산업과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로켓은 인류의 꿈과 희망을 담은 상징이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도구다. 치올콥스키가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지만, 인류는 영원히 요람에 머물 수는 없다"고 말했듯이, 우주로의 진출은 인류 문명 발전의 필연적 단계다. 한국은 이제 그 여정의 출발선에 서 있다. 누리호의 성공은 우리가 우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진정한 성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 개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정신, 그리고 장기적 비전을 바탕으로 한 일관된 정책이 뒷받침될 때, 한국은 우주 경제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자세히 설명해 주는 로켓의 원리와 로켓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인간의 꿈은 언제나 현실을 뛰어넘었다. 오늘의 불가능이 내일의 당연함이 되는 것이 과학 기술의 힘이다. 한국의 우주 산업도 이런 믿음과 노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것이다. 하늘을 향한 인류의 꿈은 계속되고, 그 꿈의 실현을 위한 우리의 도전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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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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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들은 우리의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운다. 조지 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가 바로 그런 책이었다. 제목 자체가 주는 그 간절함, 마치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바다거북처럼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한숨 크게 쉬고 싶다는 그 절박함이 첫 페이지부터 나를 사로잡았다. 소설은 단순하다. 마흔다섯 살의 평범한 보험 세일즈맨이 아내 몰래 작은 돈을 가지고 떠나는 일탈의 여행.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깊은 한숨이 담겨 있다. 우리는 모두 조지 볼링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매몰되어 살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 '숨 쉬러 나가야' 한다는 막연한 갈망을 품고 있는 존재들 말이다.

오웰이 그려낸 불안의 풍경은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실직에 대한 공포, 전쟁에 대한 두려움, 정체성의 혼란... 이것들은 1930년대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이다. 특히 “우리를 끊임없이 이런저런 백치 같은 짓만 하도록 내모는 악마가 우리 안에 있다"는 가슴을 찌른다. 우리는 정말 원하는 일을 하며 살지 못한다. 아니,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현대인의 삶은 '무언가를 팔기 위한 끊임없고 광적인 발버둥'의 연속이다. 그리고 결국 우리가 파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다.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사무실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는 조지 볼링의 모습을 본다. 피곤해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고, 어딘가 체념한 듯한 표정들. 그들 모두가 숨을 쉬러 나가고 싶어한다.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들이었다. 냄새 하나, 소리 하나로 갑자기 과거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그 순간들. 오웰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기억의 힘을 보여준다. 하지 만 프루스트의 달콤한 마들렌과 달리, 볼링의 기억은 쓰라리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대한 그리움, 영원히 잃어버린 순수함에 대한 애도가 그 안에 담겨 있다. 어린 시절의 낚시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그 아름답던 연못은 주택단지가 되어 있고, 평화로웠던 시골 마을은 소음과 매연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개인의 상실이 아니라 문명 전체의 상실이다. "나만의 유년시절이 아니라, 내가 자랐고 이제는 마지막 단계에 와 있는 듯한 문명"에 대한 애도인 것이다. 낚시는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시간, 잃어버린 평화, 잃어버린 여유에 대한 은유다. 한적한 연못가 버드나무 아래 온종일 앉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이미 현대 세계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에게는 그런 시간도, 그런 공간도, 그런 마음의 여유도 없다. 낚시를 하며 보내는 시간은 생산적이지 않다.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도 않고, 성과를 측정할 수도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바로 이런 '무용한' 시간들이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간들 말이다.

오웰이 던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무엇이 진정한 삶이고 무엇이 죽음인가 하는 것이다. 심장이 뛰고 있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일까?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일 힘을 잃어버릴 때" 인간은 이미 죽은 것이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면 "정신적으로, 내면적으로 죽은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같은 말, 같은 생각만 되풀이하며 "짧은 한 노선을 계속 왔다 갔다"할 뿐이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가장 무서운 모습이다. 육체는 살아있지만 정신은 죽어있는 사람들. 호기심을 잃고, 꿈을 포기하고, 변화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그런 죽음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조금씩 무감각 해지고, 조금씩 체념하게 되고, 결국 유령 같은 존재가 되어간다. 1차 대전을 겪은 볼링의 경험담은 문명의 파괴에 대한 증언이다. 전쟁 이전의 세계와 전쟁 이후의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사회를 피라미드처럼 영원하고 의심할 나위 없는 무엇으로 여기는 건 불가능해졌다." 모든 것이 흔들렸고, 모든 가치가 무너졌다. 그리고 그 폐허 위에 세워진 새로운 세계는 불안과 공포로 가득하다. 히틀러의 등장, 파시즘의 위협, 공산주의의 확산... 이런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 앞에서 개 인은 무력하다. 하지만 오웰의 통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 무력한 개인들도 결국은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뒤뜰에서 오이를 기르고 카나리아를 기르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이런 인식은 <1984>나 <동물농장>의 전조를 보여준다.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움의 중요성이 아닐까. 비록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라 하더라도, 비록 다시 찾을 수 없는 장소라 하더라도, 그것을 그리워하는 마음 자체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마음속의 추억과 그리움은 "되풀이되고 되새김하여 영원한 상상 속 유토피아로 남아 가꾸어지고 가다듬어져"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된다. 이것은 도피가 아니라 저항이다. 메마른 현실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책을 덮고 나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나에게도 '낚시'가 있을까? 나만의 버드나무 그늘이 있을까?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지만 번번이 미뤄둔 일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들을 가로막는 우리 안의 악마"는 무엇일까? 현대인의 삶은 점점 더 빨라지고 복잡해진다. SNS와 스마트폰으로 인해 진정한 고독을 누릴 시간조차 사라졌다. 모든 것이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평가받는 세상에서 쓸모없는 시간들은 사치가 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시간들이야말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웰의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살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존재하고 있을 뿐인가? 당신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꿈이 남아있는가? 당신에게는 '숨 쉬러 나갈' 곳이 있는가? 소설을 읽으며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숨 쉬러 나가는' 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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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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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각해 보면 대학때는 참 사회 문제에 대해서 열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을 참 좋아했었다. 그 중에서도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몇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탄광이라는 나에게는 생소한 직업에 대한 르포... 그당시에는 충격이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있었다... 1936년, 서른셋의 청년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 탄광 지대로 향했을 때, 그는 자신의 중산층적 편견과 선입견을 짊어진 채 그곳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탄광 속 지옥 같은 현실 앞에서 그의 모든 관념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렇게 1킬로미터쯤 가다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진다." 오웰이 묘사한 탄광 속 풍경은 노동 환경의 열악함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비인간적 조건 속에서도 생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생존 자체가 얼마나 영웅적인 행위인지를 보여준다. 네 발로 기어가야 하는 좁은 갱도, 숨이 막히는 열기,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천장 아래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오웰의 진정한 발견은 탄광의 물리적 조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뿌리 깊게 박힌 계급 의식이었다. 중산층으로 태어나 교육받은 그는 노동자들과 진정한 연대를 꿈꾸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자신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인정해야 했다.

오웰이 지적한 '냄새'의 문제는 계급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강력한 차별의 도구다. 상류층이 하층민을 향해 느끼는 혐오감의 근저에는 바로 이 냄새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 기택에게서 맡는다고 말하는 '그 냄새'와 일치한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는 냄새, 반지하에서 풍기는 곰팡이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의 냄새'라고 불리는 그 모든 것들. 오웰이 1930년대에 지적한 이 문제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오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혐오감이 개인적 취향이나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학습되고 강화되는 것임을 간파했다. 중산층인 자신도 이러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솔직한 고백은 그의 작 품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오웰이 던진 가장 날카로운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계급 차별을 없애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중산층인 자신이 계급 차별 철페를 외치는 것은 쉽지만, 정작 자신의 관념과 취향, 심지어 몸동작까지도 계급 차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를 철저히 변화시켜야 하며, 결국엔 같은 사람인 줄 모를 정도로 달라져야 한다." .. 절망은 변화의 어려움에서,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동시에 오웰은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직접적인 설득이나 계몽보다는 이야기의 힘을 택했다. <카탈로니아 찬가>,<동물농장>, <1984>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오웰의 사회주의는 이상주의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당시 좌파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 부족과 이론적 독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특히 노동계급과 전혀 접촉해본 적 없는 상류층 사회주의자들이 보이는 위선과 무지에 대해서는 가차 없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 말이다!" 오웰이 제시하는 사회주의의 핵심은 복잡한 이론이나 교조적 신념이 아니라 바로 이 두 가지 가치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가치들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실적인 사회주의의 길을 모색하면서 오웰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의외로 실용적이다. 그는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분법적 구분 대신 '약탈자'와 '피약탈자'라는 보다 구체적인 구분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해 관계가 같은 사람들 간의 연대를 통해 점진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웰이 1930년대 영국에서 목격한 계급 갈등의 양상은 2025년 한국 사회에서도 놀랍도록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다. 명품, 아파트, 자동차, 교육, 문화소비를 통해 드러나는 계급 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줄 서기와 라인타기로 표현되는 권력에의 아부와 기회주의. 특히 주목할 점은 진정한 기득권층은 책임을 회피하면서, 상대적으로 하위 계층들끼리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구조다. 남성과 여성,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은 심화되는 반면, 정작 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진짜 기득권 층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오웰이 지적한 바로 그 문제다.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엉뚱한 대상을 향하도록 조작되고, 진정한 변화의 동력은 분산되고 소모된다. 결국 기존 질서는 더욱 공고해지고, 피착취자들은 서로 싸우며 지쳐간다.

책을 읽고 나면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한편으로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이 얼마나 뿌리 깊고 변화하기 어려운지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오웰이 90년 전에 지적한 문제들이 지금도 거의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과연 인간 사회에 진보라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발견한다. 오웰 자신이 보여준 것처럼, 기득권층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특권을 성찰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개인들의 노력이 모여 사회적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라는 오웰의 구호는 단순해 보이지만, 바로 그 단순함에서 힘을 얻는다. 복잡한 이론이나 교조적 신념보다는 이 기본적인 가치들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작은 연대와 작은 배려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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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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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여섯 살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작가로 단언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 예언 뒤에 숨어있던 것은 세상을 향한 예리한 관찰력과 표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였을지도 모른다. 오랜 만에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다시 읽었다. 오웰이 제시한 글쓰기의 네 가지 동기를 보면서, 나는 그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첫 번째로 '똑똑해 보이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을 당당히 인정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숭고한 목적만을 이야기할 때, 그는 인간의 가장 솔직한 욕망부터 드러냈다. 이런 정직함이야 말로 그의 글이 가진 힘의 원천이 아닐까.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평생의 상처이자 동시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여덟 살 아이가 느꼈을 절망감을 상상해본다.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차가운 현실로 내던져진 충격. 그곳에서 그는 인간 사회의 모순과 위선을 일찍이 목격했다. '기독교인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성공하라'는 불가능한 명령. 이 모순된 요구 속에서 자란 아이는 평생 모순과 위선을 견딜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그의 모든 글쓰기는 이 어린 시절의 분노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고, 약자가 억압받는 것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성격. 그것이 그를 평생 투쟁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버마에서의 경험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특히 교수형 집행 장면에서 그가 느꼈을 복잡한 감정을 생각해 본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가 물웅덩이를 피해 걷는 모습에서 생의 본능을 발견한 순간, 그는 아마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깨달았을 것이다. '람! 람! 람!' 외치는 죄수의 절규. 그리고 '제발 어서 죽여버려'라고 생각하는 자신들의 모습. 이 순간 그는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인간의 이중성을 동시에 목격했다.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글쓰기를 택한 것은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런던 빈민가에서의 체험은 그에게 또 다른 눈을 열어주었다. 스파이크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을 향한 사회의 냉대와 멸시. ‘다 쓰레기니까'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 이런 경험들이 그를 진정한 인도주의자로 만들었다. 구질구질한 담배꽁초 네 개를 건네받는 장면에서, 나는 인간의 선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누려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이 아닐까. 오웰은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고, 그래서 그의 글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서점 일을 하면서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는 고백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책 때문에 책을 싫어하게 되다니. 하지만 이 경험도 그에게는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진정한 독서란 무엇인지, 책이 가져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요즘은 읽고 싶은데 빌려볼 수 없는 경우에만 책을 산다"는 말에서, 나는 그의 실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면을 본다.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항상 현실을 택했던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나 는 대목이다.

스페인 내전은 그에게 정치적 각성을 가져다준 결정적 사건이었다. 파시즘에 맞서 싸우러 갔지만, 정작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좌파 내부의 분열과 권력투쟁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순수한 목적이 어떻게 더러워지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저격수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 그는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많은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후에 <1984> 와 <동물농장> 이라는 불멸의 작품으로 태어났다. 2차 대전 중에 쓴 글들을 보면, 그의 인간에 대한 믿음과 절망이 교차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독일 조종사도 조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성찰, 원자탄이라는 새로운 공포 앞에서 느끼는 불안,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에 대한 의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국이라는 나라, 정의와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허상일지 모르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닌 허상"... 나는 그의 복잡하면서도 성숙한 현실 인식을 본다. 병원에서 57번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장면은 참으로 처절하다. '자연사'라는 이름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 그가 느꼈을 공포와 연민.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죽을 것이라는 예감한다. 하지만 그는 죽음 앞에서도 글을 썼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려 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자세가 아닐까. 47세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도 그가 남긴 것들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조지 오웰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글쓰기란 문자만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은 자신의 온 존재를 걸고 세상과 대화하는 일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가 제시한 글쓰기의 네 가지 동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각자가 글을 쓰는 이유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무엇 때문에 쓰는가? 똑똑해 보이고 싶어서인가, 아름다움을 추구해서인가, 진실을 보존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인가? 오웰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정직함의 힘이다. 자신의 약점과 모순을 인정하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가, 아니 진정한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오늘 이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싸워야 할 것들이 있다. 불의와 모순, 위선과 거짓말들이 말이다. 오웰처럼 목숨을 걸고 총을 들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펜을 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용기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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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길을 묻다 -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마쓰시타 고노스케 지음, 김정환 옮김, 마쓰시타 정경숙 기획 / 지니의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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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리더십에 대한 담론은 넘쳐난다. 수많은 경영학 이론과 리더십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제시하는 리더십 철학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가 말하는 ‘리더의 길’은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에 기반한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고노스케의 리더십 철학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가 성공의 조건으로 뛰어난 두뇌나 근면함보다 '운과 애교'를 꼽았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성공 공식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운과 애교는 우연이나 타고난 매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가 이야기 하는 리더의 길은 무엇일까…

고노스케가 강조하는 첫 번째 덕목은 '순수한 마음'이다. 그는 "누가 하는 말이든 일단은 순수한 마음으로 들으며, 좋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실행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 리더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 - 자신의 기존 관념에 갇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거부하는 것 - 을 피하는 핵심적인 자세다. 순수한 마음이란 선입견과 편견을 내려놓고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것이다. 리더는 종종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해 판단하려 하지만, 진정한 통찰은 오히려 백지상태의 마음에서 나온다. 고노스케는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이는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학습조직'의 리더십과도 맞닿아 있다. 리더가 먼저 배우는 자세를 보일 때, 조직 전체가 학습하는 문화로 변화할 수 있다. 고노스케의 순수한 마음은 단순한 개인적 덕목을 넘어 조직 전체의 역동성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의 핵심 요소인 것이다.

고노스케는 양치기의 비유를 통해 리더십의 본질을 설명한다. 양치기가 성공하려면 양의 성질과 품성을 철저히 파악해야 하듯이, 리더는 인간의 본질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대 리더십 이론에서 말하는 '인간 중심 리더십'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고노스케의 인간 이해는 심리학적 접근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는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를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의 관계가 아닌, 상호 성장의 관계로 보는 관점이다. 진정한 리더는 부하를 통제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위계적 명령보다는 협력과 공유가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낸다. 고노스케가 제시한 인간 중심의 리더십은 오늘날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리더십 모델인 것이다.

고노스케는 "사장이라는 자리는 걱정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의 많은 리더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통찰이다. 리더의 역할을 권력이나 특권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걱정의 자리로 인식하는 것이다. 걱정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과 구성원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다. 밤잠을 설치며 조직의 미래를 고민하고, 구성원들의 성장을 염려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이러한 걱정은 결국 더 나은 의사결정과 혁신으로 이어진다. 현대 사회에서 리더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이익 창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 환경적 고려, 구성원의 복지 등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고노스케가 말하는 '걱정하는 리더'는 이러한 복합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리더십의 모델을 제시한다.

고노스케는 "무엇이든 열정이 기본"이라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절박감이 없으면 열정이나 사명감은 절대로 잉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 리더십에서 자주 언급되는 '비전'과 '미션'의 진정한 원천을 보여준다. 열정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나오는 변화 의지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열정이 생긴다. 이는 안주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혁신을 추진하는 동력이 된다. 현대 기업 환경에서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리더는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갖고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고노스케가 말하는 절박감에서 나오는 열정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리더십의 핵심 동력인 것이다.

고노스케의 리더십 철학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만사연수(萬事鍊修)' - 모든 일에서 배운다는 자세다. 그는 "교훈은 곳곳에 있다"며 심지어 청소를 통해서도 정치의 요점을 터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리더의 학습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이다. 일반적으로 리더의 학습이라고 하면 고급 경영 과정이나 전문 서적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고노스케는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도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청소부터 접객까지, 모든 업무에는 그 일의 본질과 원리가 담겨 있다. 리더가 이러한 일들을 직접 경험하고 그 의미를 성찰할 때, 진정한 리더십 역량이 개발된다. 이는 현대의 '현장 중심 리더십'과도 연결된다.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는 리더와 현장을 직접 경험하는 리더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고노스케의 만사연수 철학은 리더가 어떻게 현장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제시하는 리더의 길은 특정 시대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그의 철학은 기술이나 기법을 넘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리더십의 패러다임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위계적 명령 체계에서 수평적 협력 구조로, 통제 중심에서 임파워먼트 중심으로, 단기 성과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리더십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결국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다. 고노스케의 리더십 철학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선도하는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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