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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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여섯 살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작가로 단언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 예언 뒤에 숨어있던 것은 세상을 향한 예리한 관찰력과 표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였을지도 모른다. 오랜 만에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다시 읽었다. 오웰이 제시한 글쓰기의 네 가지 동기를 보면서, 나는 그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첫 번째로 '똑똑해 보이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을 당당히 인정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숭고한 목적만을 이야기할 때, 그는 인간의 가장 솔직한 욕망부터 드러냈다. 이런 정직함이야 말로 그의 글이 가진 힘의 원천이 아닐까.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평생의 상처이자 동시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여덟 살 아이가 느꼈을 절망감을 상상해본다.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차가운 현실로 내던져진 충격. 그곳에서 그는 인간 사회의 모순과 위선을 일찍이 목격했다. '기독교인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성공하라'는 불가능한 명령. 이 모순된 요구 속에서 자란 아이는 평생 모순과 위선을 견딜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그의 모든 글쓰기는 이 어린 시절의 분노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고, 약자가 억압받는 것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성격. 그것이 그를 평생 투쟁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버마에서의 경험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특히 교수형 집행 장면에서 그가 느꼈을 복잡한 감정을 생각해 본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가 물웅덩이를 피해 걷는 모습에서 생의 본능을 발견한 순간, 그는 아마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깨달았을 것이다. '람! 람! 람!' 외치는 죄수의 절규. 그리고 '제발 어서 죽여버려'라고 생각하는 자신들의 모습. 이 순간 그는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인간의 이중성을 동시에 목격했다.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글쓰기를 택한 것은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런던 빈민가에서의 체험은 그에게 또 다른 눈을 열어주었다. 스파이크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을 향한 사회의 냉대와 멸시. ‘다 쓰레기니까'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 이런 경험들이 그를 진정한 인도주의자로 만들었다. 구질구질한 담배꽁초 네 개를 건네받는 장면에서, 나는 인간의 선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누려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이 아닐까. 오웰은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고, 그래서 그의 글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서점 일을 하면서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는 고백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책 때문에 책을 싫어하게 되다니. 하지만 이 경험도 그에게는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진정한 독서란 무엇인지, 책이 가져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요즘은 읽고 싶은데 빌려볼 수 없는 경우에만 책을 산다"는 말에서, 나는 그의 실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면을 본다.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항상 현실을 택했던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나 는 대목이다.

스페인 내전은 그에게 정치적 각성을 가져다준 결정적 사건이었다. 파시즘에 맞서 싸우러 갔지만, 정작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좌파 내부의 분열과 권력투쟁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순수한 목적이 어떻게 더러워지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저격수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 그는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많은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후에 <1984> 와 <동물농장> 이라는 불멸의 작품으로 태어났다. 2차 대전 중에 쓴 글들을 보면, 그의 인간에 대한 믿음과 절망이 교차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독일 조종사도 조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성찰, 원자탄이라는 새로운 공포 앞에서 느끼는 불안,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에 대한 의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국이라는 나라, 정의와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허상일지 모르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닌 허상"... 나는 그의 복잡하면서도 성숙한 현실 인식을 본다. 병원에서 57번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장면은 참으로 처절하다. '자연사'라는 이름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 그가 느꼈을 공포와 연민.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죽을 것이라는 예감한다. 하지만 그는 죽음 앞에서도 글을 썼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려 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자세가 아닐까. 47세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도 그가 남긴 것들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조지 오웰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글쓰기란 문자만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은 자신의 온 존재를 걸고 세상과 대화하는 일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가 제시한 글쓰기의 네 가지 동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각자가 글을 쓰는 이유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무엇 때문에 쓰는가? 똑똑해 보이고 싶어서인가, 아름다움을 추구해서인가, 진실을 보존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인가? 오웰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정직함의 힘이다. 자신의 약점과 모순을 인정하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가, 아니 진정한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오늘 이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싸워야 할 것들이 있다. 불의와 모순, 위선과 거짓말들이 말이다. 오웰처럼 목숨을 걸고 총을 들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펜을 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용기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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