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해내는 뇌 - 작심삼일의 쳇바퀴에서 당신을 구할 뇌 과학 솔루션
카이라 보비넷 지음, 유지연 옮김 / 갤리온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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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거창한 목표를 세운다. 운동을 시작하고, 금연을 하고, 새로운 기술을 배우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며칠 또는 몇 주 가 지나면 어김없이 원래의 생활로 돌아간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흔히 '의지력 부족'이나 '게으름' 탓으로 돌리곤 한다. 하지만 카이라 보비넷이 <끝까지 해내는 뇌>에서 제시하는 관점은 전혀 다르다. 문제는 우리의 성격이나 의지가 아니라, 뇌 구조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보비넷은 30여 년간의 행동 변화 연구를 통해 인간의 뇌에 숨어 있는 '동기 차단 스위치'를 발견했다. 바로 하베눌라(habenula)라 고 불리는 작은 뇌 영역이다. 이 5mm 크기의 영역은 우리가 장애물에 부딪히거나 실패를 경험할 때 자동으로 활성화되어 도파민 분비를 차단한다. 그 결과 우리는 순식간에 동기를 잃고 포기하게 된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진 생물학적 메커니즘이다. 흥미로운 관점이었다.^^

하베눌라는 원래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진화한 뇌 구조다. 원시 시대에는 위험한 상황에서 즉시 행동을 중단하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사냥에 실패했을 때나 포식자를 만났을 때 빠르게 동기를 차단하고 다른 행동을 취하는 것이 생존율을 높였 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하베놀라는 오히려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새로운 운동 루틴을 시작했는데 첫 주에 하루 빠뜨렸다고 해서 생명이 위험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베눌라는 이를 '실패'로 인식하고 즉시 브레이크를 건다. 우리가 "역시 난 안 돼"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하베눌라가 작동한 것이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현대의 성과 중심 문화가 하베눌라를 더욱 자주 활성화시킨다는 점이다. 완벽한 결과를 추구하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위험 신호를 받는다. 이것이 바로 전통적인 자기계발 방식이 실패하는 이유다.

보비넷이 제안하는 해결책은 '반복적 사고방식(Iterative Mindset)'이다. 이는 목표 달성보다는 지속적인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 법이다. 전통적인 방식이 "이번 달에 5kg을 빼겠다"와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한다면, 반복적 사고방식은 "매일 조금씩 더 건강한 선택을 하겠다"는 과정에 집중한다. 이런 접근법의 핵심은 실패를 재정의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실패는 목표 달성의 장애물이지만, 반복적 사고방식에서는 귀중한 피드백이다. 운동을 하루 건너뛰었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내 계획에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려 주는 정보"가 된다. 이렇게 인식이 바뀌면 하베놀라가 활성화될 이유가 사라진다. 반복적 사고방식은 제조업의 린(Lean) 방법론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의 애자일(Agile) 방식과 유사하다. 이들 방법론은 완벽한 제품을 한 번에 만들려 하지 않고, 작은 단위로 제작하고 피 드백을 받아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간다.

개인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완전히 바뀌려 하는 대신, 작은 실험을 반복하며 점진적으 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보비넷은 '루틴'과 '행동'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한다. 행동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회성 활동이지만, 루틴은 무의식적으로 수행되는 자동화된 패턴이다. 지속 가능한 변화를 원한다면 행동을 루틴으로 전환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운동하기로 결심했다면, 처음에는 알람을 맞추고, 운동복을 준비하고, 헬스장에 가는 모든 과정이 의식적인 '행동'이다. 이 단계에서는 동기와 의지력에 의존한다. 하지만 며칠, 몇 주가 지나면서 이 과정이 자동화되기 시작한다. 알람이 울리면 자연스럽게 운동복을 입고 헬스장으로 향하게 된다. 이때 운동은 '루틴'이 된 것이다. 루틴의 힘은 인지적 부담을 줄인다는 데 있다. 뇌는 자동화된 행동을 수행할 때 훨씬 적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따라서 루틴은 의지력이 약해지거나 동기가 떨어져도 지속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행동을 루틴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하베눌라가 활성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 변화는 두가지 경로로 일어난다. 첫 번째는 반복을 통한 점진적 변화다. 신경가소성 (neuroplasticity) 원리에 따라 특정 행동을 반복하면 관련 신경 회로가 강화된다. 이는 느리지만 안정적인 변화를 만든다. 두 번째는 강렬한 정서적 경험을 통한 급속한 변화다. 보비넷은 이를 SEE(Significant Emotional Event)라고 부른다. 트라우마나 깊은 감동과 같은 강렬한 경험은 뇌의 구조를 즉시 변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건강 검진에서 심각한 질병 진단을 받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생활 습 관을 완전히 바꾸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SEE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런 경험은 통제할 수 없고,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 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일상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첫 번째 경로, 즉 반복을 통한 점진적 변화가 더 현실적이고 안전하다. 보비넷은 반복적 사고방식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도구로 ITERATES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 이는 다음 여덟 가지 범주로 구성된다:

Inspiration(영감): Time(시간): Environment(환경): Reduce(줄이기):
Add(추가하기): Togetherness(함께하기): Expectations(기대치) : Swaps(교체하기)

이 프레임워크의 장점은 실패했을 때 포기하는 대신 다른 범주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 조정이 효과가 없다면 환경 변화를 시도하고, 그것도 안 되면 사회적 지원을 추가하는 식으로 계속 실험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끝까지 해내는 뇌'란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엄격히 실행하는 뇌가 아니다. 그것은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여기고, 작은 실험을 반복하며, 지속적으로 적응하고 개선해 나가는 뇌다. 이런 뇌를 기르는 것이 개인의 성장과 행복, 그리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열쇠가 될 것이다. 변화는 어렵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우리가 뇌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사용한다 면 누구나 '끝까지 해내는 뇌'를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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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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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정원이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울타리 안에 심어진 꽃들과 나무들, 정갈하게 다듬어진 길과 분수대가 떠오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원은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의 축소판이자 우리 내면의 풍경을 투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인 것 같다. 문학 속 정원들을 돌아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가장 깊숙한 감정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인류 최초의 정원 이야기부터 김초엽의 미래적 온실에 이르기까지, 정원은 시대를 관통하며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들을 품어왔다. 안전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갈망, 상실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 모두 그곳에 스며들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원의 치유적 힘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상처받은 영혼들이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으며 서서히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들은 정원이 취미 공간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메리가 비밀의 정원에서 자신의 마음도 함께 가꾸어나간 것처럼, 정원은 우리의 내면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상처받은 정원과 상처받은 마음 사이의 유사성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방치된 정원에서 자라나는 잡초들과 가지치기되지 않아 엉킨 나뭇가지들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을 닮았다. 그리고 그 정원을 천천히 다시 가꾸어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자신을 돌보고 회복시켜나가는 과정이다. 디킨스의 미스 해비의 정원처럼, 시간이 멈춘 공간은 언제나 불길하다. 썩어가는 웨딩케이크처럼 부패해가는 정원은 고착된 상처,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 치유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반면 계절에 따라 변화하고,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정원은 희망의 메타포가 된다. 우리는 정원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믿게 된다.

정원은 또한 사랑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연인들이 만나는 장소로서의 정원은 로맨스의 전형적인 배경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원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며, 그 사람이 떠난 후에도 그 기억을 간직하는 성소가 된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정원에 대한 묘사들이다. 더 이상 붉은 장미가 피지 않고 검은 나무만 남은 정원, 하지만 여전히 그 사람의 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들. 이런 이미지들은 슬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사랑했던 기억만큼은 영원히 보존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이 정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형상화된다. 가을 정원의 투명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곧 지나가버릴 것을 알기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다. 정원은 사랑의 덧없 음과 영원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모순적 공간이다.

하지만 정원이 언제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공간만은 아니다. 베르사유 정원처럼 정원은 때로 권력의 과시 수단이 되기도 하고, 통제와 지배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루이 14세가 직접 정원 산책 경로를 정하고 안내서까지 집필했다는 사실은 정원이 얼마나 정치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원에는 윤리적 문제들도 내재되어 있다. 노예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정원, 이웃을 괴롭히기 위해 독성 식물을 기르는 정원,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안락한 정원들. 이런 정원들 앞에서 우리는 아름다움과 윤리성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우슈비츠 사택의 정원은 가장 극단적인 예시다.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장미를 가꾸는 일의 끔 찍함. 이런 정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도 우리에게는 아직 이런 정원을 설명할 적절한 언어가 없는 것 같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원 역시 인간의 모든 면을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이 모두 그곳에 스며들 수 있다.

정원은 삶 자체의 은유다. 볼테르의 캉디드가 모든 고난을 겪고 난 후 "하지만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상적인 세상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권력이나 돈으로 살 수도 없다. 다만 정원을 가꾸듯 하루하루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한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오늘 심은 씨앗이 내일 꽃을 피울 것이라는 믿음, 지금의 노력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정원은 또한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정원의 시간은 느리고 점진적이다. 계절의 리듬을 따라 자라고 시들고 다시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며, 우리는 자연의 시간과 동조하게 된다. 즉시적인 결과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정원은 기다림의 가치를, 과정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길가메시부터 김초엽까지, 인류 문학사를 관통하는 정원의 이야기들을 되돌아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그것은 희망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파괴된 후에도, 여전히 씨앗을 심고 정원을 가꾸려는 의지. 이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핵심이 아닐까. 정원은 우리에게 희망의 문법을 가르쳐준다.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키워나가는 법,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법,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 어가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법. 세상이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미래가 어두워 보일 때, 우리에게는 여전히 정원이 있다. 작은 화분에서부터 시작해서 베란다 정원을, 옥상 정원을, 마을 정원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정원들이 모여서 언젠가는 지구 전체를 다시 에덴동산으로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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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절세 배당 은퇴 공식
김제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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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꿈꾸며 살아가지만, 정작 은퇴 후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냉혹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부부가 적정한 생활을 유지하려면 월 296만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 2.5% 예금이자를 가정할 때 약 15억원의 자산이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떨까?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겨우 월 66만원에 불과하고, 평균 퇴직금은 1억 2천만원 정도입니다. 이는 필요한 자산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게다가 창업은 실패 위험이 크고, 월세 수익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으며, 부동산 보유는 오히려 각종 세금과 건강보험료 부담만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바로 '절세 배당 투자'를 통한 제4의 연금 만들기입니다. 이번에 관련 정보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권으로 끝내는 절세 배당 은퇴 공식>

은퇴 후 소득에는 예상보다 많은 세금과 부담금이 따라옵니다. 연금 소득에는 3.3%의 소득세가 부과되고, 이자나 배당 소득에는 기본적으로 15.4%의 세율이 적용됩니다. 더 큰 문제는 연간 금융소득이 2천만원을 넘으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이 되어 개인 자산까지 합산되어 더 높은 세율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건강보험료 문제는 심각합니다. 공적연금이 연간 2천만원 이상이면 건보 피부양자 자격에서 탈락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본인뿐만 아니라 배우자까지 함께 탈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연 2천만원은 월 166만원 수준인데, 이 경우 소득의 8%를 보험료로 내야 하고 추가로 재산에 대한 보험료까지 부과됩니다. 재산세 과표가 9억 미만인 경우에도 합산 소득이 1천만원 이하여야 피부양자 자격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이 기준을 초과하면 이자 배당 소득에 적용되는 실질 세율이 이론상 최대 57.5%까지 치솟을 수 있습니다. 이는 정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절세 계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연금저축과 IRP를 합친 연금 계좌는 연간 9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고, 최대 1,800만원까지 납입이 가능합니다. 특히 연금 계좌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배당소득세가 면제된다는 점입니다. 일반 계좌에서 해외 지수 ETF에 투자하면 매매 차익도 배당소득으로 간주되어 15.4%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연금 계좌 안에서는 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ISA 계좌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절세 도구입니다. 비과세 한도를 초과한 금융소득에 대해서도 9.9%의 낮은 세율이 적용됩니다. 이는 일반 과세 대상인 15.4%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입니다.

배당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성과 지속성입니다. 높은 배당 수익률만 쫓다가는 오히려 원금 손실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은퇴자에게는 수익률보다 '복원력'이 더 중요합니다. 국내 주요 은행주들은 안정적인 배당 투자의 좋은 예시입니다. KB금융, 신한지주, 하나금융, 우리금융, JB금융 등 주요 은행들은 모두 분기마다 일정한 금액을 배당하는 '분기 균등 배당'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배당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장점이 있습니다. 2024년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로 은행주들의 주가가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3-6% 수준의 배당 수의률을 유지하고 있어 안정적인 배당 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배당 투자의 진정한 매력은 ETF를 활용해 매월, 심지어 격주 단위로도 수익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배당 지급일이 다른 ETF들을 조합하면 월 2회 이상의 배당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수의 횟수를 늘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소득 분산을 통해 건강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한 번에 큰 금액을 받는 것보다 여러 번에 나누어 받는 것이 과세 구간을 넘지 않는 데 유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배당 ETF뿐만 아니라 해외 배당 ETF도 적절히 조합하면 더욱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해외 ETF의 경우 환율 변동 리스크가 있으므로 환지 여부를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

높은 배당 수익률을 자랑하는 상품들에는 항상 함정이 있습니다. 커버드콜 ETF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부 해외 커버드콜ETF는 연간 배당률이 100%를 넘볼 정도로 높은 분배금을 지급하지만, 이는 대부분 원금을 훼손하면서 지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테슬라나 코인베이스 같은 변동성이 큰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커버드콜ETF는 더욱 위험합니다. 주가 변동이 심한 상황에서는 원금을 깎아서 배당을 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브라질 국채도 마찬가지입니다. 13% 정도의 높은 이자를 지급하지만 환율 리스크로 인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물론 브라질 정치경제 상황에 대한 부정적 뉴스나 헤알화 약세 뉴스가 나올 때 매수하는 전략적 접근은 가능하지만, 이는 상당한 전문성과 위험 감수 능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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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의 삶은 돈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경제적 안정없이는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절세 배당 투자 전략은 국민연금과 퇴직금만으로는 부족한 현실을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중요한 것은 너무 늦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은퇴까지 5년밖에 남지 않았더라도, 절세 계좌를 적극 활용하고 안정적인 배당 자산을 차근차근 쌓아간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높은 수익률에만 현혹되지 말고,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만드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은퇴 후의 삶은 마라톤과 같습니다. 단거리 경주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오래 갈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절세 배당 투자는 바로 그런 '지속 가능한 은퇴 설계'를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한다면, 국민연금에만 의존하지 않는 여유로운 은퇴 생활을 설계할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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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돈의 얼굴 - EBS 다큐프라임
EBS 돈의 얼굴 제작진.조현영 지음, 최상엽 감수 / 영진.com(영진닷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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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갑 속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들여다보자. 세종대왕의 초상화와 함께 새겨진 '한국은행권'이라는 글자, 그리고 '일만원'이라는 숫자. 이 종이 한 장이 실제로 일만원의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그 자체로 먹거나 쓸 수 있는 실용적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국가가 "이것은 일만원이다"라고 선언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 화폐 시스템의 핵심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돈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종이나 금속 조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경제 활동을 영위한다. 이번에 읽은 <돈의 얼굴>이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돈이란 과연 무엇이며, 그 뒤에 숨겨진 권력 구조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흥미로운 주제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미국 대통령의 한 마디가 세계 경제 질서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단한다." 이 선언과 함께 브레턴우즈 체제가 종료되고, 인류는 완전한 명목화폐 시대로 진입했다. 더 이상 달러는 금으로 바꿀 수 없는, 오직 미국 정부의 신용에만 의존하는 종이가 되었다. 이 변화의 의미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과거 금본위제 하에서는 화폐 발행량이 금 보유량에 의해 자연스럽게 제한되었다. 정부가 함부로 돈을 찍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명목화폐 체제에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화폐를 무제한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화폐 공급량을 제한하는 것은 오직 정치적 의지와 경제적 판단뿐이다.

레바논에서 벌어진 일들은 이런 신뢰 기반 화폐 시스템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제 위기가 심화되면서 은행들이 예금 인출을 제한하자, 평범한 시민들이 은행을 습격하거나 강도로 변모하는 극단적 상황이 벌어졌다. 한 여성은 자신의 예금을 찾기 위해 은행에 총을 들고 들어갔고, 또 다른 남성은 인질극을 벌였다. 이들은 원래 범죄자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돈을 되찾으려 했을 뿐이다. 이 극단적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돈이라는 것은 결국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허상이며, 그 합의가 깨지는 순간 종이는 다시 종이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레바논 시민들이 보여준 절망적 행동은 경제적 곤궁을 넘어서, 화폐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을 때 사회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한의 사례다.

중국의 교자부터 시작된 지폐의 역사를 보면, 화폐는 실물 가치를 가진 교환 수단에서 점차 신뢰에 기반한 추상적 개념으로 진화해왔다. 초기의 찻잎 화폐는 그 자체로 실용적 가치가 있었다. 마실 수도 있고, 약재로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는 점점 더 추상화되었고, 결국 오늘날의 명목화폐에 이르렀다. 이런 진화 과정을 보면, 화폐의 역사는 곧 신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물건 자체의 가치를 믿었고, 다음에는 그 물건을 보증하는 기관을 믿었으며, 마지막에는 숫자와 기호만 남았다. 그 숫자와 기호가 의미를 갖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자율, 혹은 금리는 돈을 빌리는 대가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의 가격이다. 오늘의 100만원과 1년 후의 100만원이 다른 이유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 돈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금리는 바로 이런 시간적 가치 차이를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이 개념을 이해하면, 왜 금리 변화가 사회 전체에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의 돈이 상대적으로 비싸져서 현재 소비보다는 저축을 선호하게 된다. 반대로 금리가 내리면 현재의 돈이 상대적으로 귀해져서 저축보다는 소비나 투자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금리는 사회 전체의 시간 선호도를 조작하는 강력한 도구인 셈이다.

일본이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시행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이 런 시간 조작의 극단적 사례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게 돈을 맡기면 오히려 수수료를 부과하는 이 정책은, 은행들로 하여금 돈을 쌓아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출하라는 강력한 신호였다. 그렇게 해서 사회 전체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일본 국민들은 투자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오히려 노후에 대한 불안이 심화되었다. 돈을 저축해도 이자가 거의 없으니 미래를 준비하기 어려워졌고, 그렇다고 위험한 투자를 할 용기도 없었다. 시간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작한 결과, 사람들의 시간 인식 자체가 왜곡된 것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전 세계는 또 다른 거대한 금리 실험을 시작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금리를 거의 0%까지 내린 것이다. 이는 경제 활동이 마비된 상황에서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이 정책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았다. 너무 많은 돈이 시장에 풀리면서 자산 가격이 급등했고, 뒤이어 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결국 각국은 다시 급격한 금리 인상에 나서야 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했던 사람들은 큰 이익을 봤지만, 현금만 들고 있던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손해를 봤다.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금리는 중립적인 경제 지표가 아니라, 부의 재분배를 결정하는 정치적 도구라는 것이다. 금리를 결정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사실상 사회 전체의 부를 어떻게 분배할지를 정하고 있는 셈이다.


인플레이션을 물가 상승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너무 피상적이다. 인플레이션의 진정한 의미는 화폐 가치의 하락, 즉 돈의 구매력 감소다. 같은 월급을 받아도 살 수 있는 것이 줄어든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임금이 삭감된 것과 같다. 하지만 명목상으로는 월급이 그대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런 변화를 즉각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더욱 교묘한 것은 인플레이션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빚을 진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유리하다. 왜냐하면 미래에 갚아야 할 돈의 실질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나 현금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들은 손해를 본다. 받을 돈이나 가진 돈의 구매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비대칭적 효과는 인플레이션이 사실상 부의 재분배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화폐를 많이 발행하면 그 비용은 기존 화폐 보유자들이 지게 된다. 새로 발행된 돈을 먼저 받는 사람들(주로 금융기관이나 정부와 가까운 기업들)은 아직 물가가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그 돈을 쓸 수 있지만, 나중에 그 돈을 받는 일반 소비자들은 이미 오른 물가를 감당해야 한다.

만약 화폐가 존재하지 않고 모든 거래가 물물교환으로만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이런 사회에서는 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 하지 않는다. 쌀 한 가마에 옷 두 벌을 바꾸던 관계가 갑자기 쌀 한 가마에 옷 세 벌로 바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건과 물건의 교환 비율은 그 물건들의 상대적 희소성에 따라 결정될 뿐이다. 하지만 화폐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모든 거래가 화폐를 매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화폐의 양이 변하면 모든 가격이 동시에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정부나 중앙은행이 의도적으로 화폐 공급량을 늘리면, 그 효과는 경제 전체에 파급된다. 이것이 바로 인플레이션의 본질이다. 달러가 세계 기축통화라는 것은 미국이 사실상 전 세계의 통화 정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하면 그 효과는 달러를 사용하는 모든 국가에 전파된다. 달러 공급량이 늘어나면 다른 나라들도 자국 통화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국 화폐 공급량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런 구조 하에서 인플레이션은 더 이상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축통화 발행국의 통화 정책이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을 주도하게 된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후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었다. 과거 금본위제 하에서는 금이라는 실물 자산이 통화 공급량을 자연스럽게 제한했지만, 명목화폐 체제에 서는 그런 제한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 빚은 더 이상 빌리는 사람과 빌려주는 사람 사이의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상품이 되어 시장에서 거래된다. 은행이 대출을 해주면, 그 대출 채권을 다른 금융기관에 판매할 수 있다. 구매한 기관은 다시 그것을 다른 곳에 팔 수 있다. 이렇게 빚은 끝없이 돌고 돈다. 이 과정에서 원래 돈을 빌린 사람은 여전히 이자를 내고 원금을 갚아야 하지만, 그 돈을 받는 사람은 계속 바뀐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여러 중간 단계의 금융기관들이 각자의 수익을 취한다는 점이다. 대출자가 내는 이자의 일부는 원래 대출을 해준 은행에, 일부는 그 채권을 매입한 투자은행에, 또 일부는 위험을 보장해주는 보험회사에 분배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이런 빛의 상품화가 어떤 위험을 내포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무분별하게 주택담보대출을 해준 후, 이를 복잡한 파생상품으로 포장해서 전 세계에 판매했다. "빚을 쪼개서 팔면 위험도 분산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위험이 분산된 것이 아니라 증폭되었다. 원래 하나의 부실 대출이었던 것이 수십, 수백 개의 파생상품으로 변신하면서 전 세계 금융기관의 자산에 스며들었다. 결국 미국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전 세계적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이는 빛이 개인 간 거래를 넘어서 글로 벌 시스템적 위험요소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개인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지불하는 이자는 돈을 빌리는 대가만이 아니다. 그 속에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우선 순수 한 시간 비용, 즉 오늘 돈을 내주고 미래에 받는 것에 대한 보상이 있다. 다음으로 신용 위험에 대한 프리미엄이 있다. 빌린 사람이 못 갚을 가능성에 대한 보험료인 셈이다. 또한 인플레이션 위험에 대한 보상도 포함된다. 미래에 받을 돈의 구매력이 현재보다 떨어질 가능성에 대한 보호 장치다. 마지막으로 금융기관의 운영비용과 이윤도 들어간다. 결국 개인이 지불하는 이자는 이 모든 요소들의 합계인 데, 각 요소의 비중은 경제 상황과 개인의 신용도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의 부채 결정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빛이라는 것이 결코 개인적 선택에만 그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그것은 부동산 가격 상승에 기여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집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사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된다. 결국 사회 전체가 부채에 의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런 구조에서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 집합적으로는 비합리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빚을 져서 자산을 사면, 자산 가격은 계속 올라가지만 실질적인 부는 증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채 부담만 늘어날 뿐이다. 이것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의 딜레마다.


나이지리아에서 벌어진 일들은 기존 화폐 시스템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통화 부족으로 인해 시민들이 현금을 구하기 위해 은행 앞에 장사진을 치는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를 대안으로 선택했다.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거래할 수 있는 이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절망적 상황에서 구원자처럼 여겨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비트코인이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가 "중앙기관없는 전자 화폐 시스템"을 제안했다. 기술적 혁신을 넘어서, 기존 화폐 권력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누리엘 루비니 같은 전통적 경제학자들은 암호화폐를 "사기"나 "버블로 규정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비트코인은 내 재적 가치가 없는 투기 수단에 불과하고, 극심한 가격 변동성과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 때문에 화폐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면 조셉 루빈 같은 블록체인 옹호자들은 이를 금융 시스템의 민주화로 본다. 중앙화된 권력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거래 시스템 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스마트 계약을 통해 복잡한 금융 서비스를 자동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도 금융 접근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암호화폐가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누가 화폐를 통제해야 하는가"이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정부와 중앙은행이 통화 정책을 결정하고, 상업은행들이 실제 통화 공급을 담당한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엘리트들이 사회 전체의 화폐 공급량을 좌우하게 된다. 블록 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는 이런 중앙집권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한다.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합의를 통해 화폐 공급량과 거래를 결정하는 분산형 시스템을 제안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새로운 시스템도 완벽하지는 않다. 컴퓨팅 파워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더 큰 영향력을 갖게 되고, 결국 새로운 형태의 권력 집중이 일어날 수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등장은 또 다른 복잡성을 더한다. 이는 암호화폐의 기술적 편의성을 받아들이면서도 기존 화폐 권력 구조를 유지하려는 시도다. 정부가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면, 모든 거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게 된다. 이는 탈세나 자금세탁 같은 불법 행위를 방지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개인의 경제 활동에 대한 프라이버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결국 미래의 화폐 시스템은 효율성과 프라이버시, 중앙집권과 분산, 안정성과 혁신성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적 가능성보다도 사회적 합의다. 어떤 시스템을 선택하든, 그것이 진정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돈의 얼굴>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돈은 교환 수단만이 아니라 권력 관계의 표현이며, 그 권력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그 속에 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면, 시스템의 변화를 오히려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도 담고 있다. 미래의 화폐 시스템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전통적인 명목화폐가 계속 지배적일 수도 있고, 암호화폐가 주류가 될 수도 있으며, 전혀 새로운 형태의 화폐가 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변화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적 혁신보다도 사회적 합의다. 어떤 화폐 시스템을 선택하든, 그것이 사회 전체 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돈의 진정한 얼굴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의 얼굴을 반영한다. 레바논의 절망적 상황도, 일본의 장기 침체도, 나이지리아의 디지털 화폐 실험도 모두 우리에게 교 훈을 준다. 돈에 끌려다니지 말고, 돈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시스템의 피해자가 되지 말고, 시스템의 변화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돈의 얼굴>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부자들이 아무도 하지 않을 때 행동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시스템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지키는 길이자, 동시에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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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학 교과서 한 번에 통과하기 1 - 내신부터 수능까지, 단숨에 돌파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반영 해냄 통합교과 시리즈
신영준 외 지음 / 해냄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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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과학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과학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과학적 사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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