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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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정원이라는 단어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울타리 안에 심어진 꽃들과 나무들, 정갈하게 다듬어진 길과 분수대가 떠오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정원은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의 축소판이자 우리 내면의 풍경을 투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인 것 같다. 문학 속 정원들을 돌아보면, 그곳에는 언제나 인간의 가장 깊숙한 감정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에덴동산에서 시작된 인류 최초의 정원 이야기부터 김초엽의 미래적 온실에 이르기까지, 정원은 시대를 관통하며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들을 품어왔다. 안전하고 아름다운 공간에 대한 갈망, 상실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이 모두 그곳에 스며들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원의 치유적 힘이다. 전쟁에서 돌아온 상처받은 영혼들이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으며 서서히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들은 정원이 취미 공간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메리가 비밀의 정원에서 자신의 마음도 함께 가꾸어나간 것처럼, 정원은 우리의 내면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상처받은 정원과 상처받은 마음 사이의 유사성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방치된 정원에서 자라나는 잡초들과 가지치기되지 않아 엉킨 나뭇가지들은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을 닮았다. 그리고 그 정원을 천천히 다시 가꾸어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자신을 돌보고 회복시켜나가는 과정이다. 디킨스의 미스 해비의 정원처럼, 시간이 멈춘 공간은 언제나 불길하다. 썩어가는 웨딩케이크처럼 부패해가는 정원은 고착된 상처,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 치유되지 않는 마음일 것이다. 반면 계절에 따라 변화하고,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는 정원은 희망의 메타포가 된다. 우리는 정원을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을 믿게 된다.

정원은 또한 사랑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연인들이 만나는 장소로서의 정원은 로맨스의 전형적인 배경이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정원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며, 그 사람이 떠난 후에도 그 기억을 간직하는 성소가 된다.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의 정원에 대한 묘사들이다. 더 이상 붉은 장미가 피지 않고 검은 나무만 남은 정원, 하지만 여전히 그 사람의 웃음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들. 이런 이미지들은 슬픔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사랑했던 기억만큼은 영원히 보존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이 정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형상화된다. 가을 정원의 투명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곧 지나가버릴 것을 알기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다. 정원은 사랑의 덧없 음과 영원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모순적 공간이다.

하지만 정원이 언제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공간만은 아니다. 베르사유 정원처럼 정원은 때로 권력의 과시 수단이 되기도 하고, 통제와 지배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루이 14세가 직접 정원 산책 경로를 정하고 안내서까지 집필했다는 사실은 정원이 얼마나 정치적인 공간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원에는 윤리적 문제들도 내재되어 있다. 노예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정원, 이웃을 괴롭히기 위해 독성 식물을 기르는 정원,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안락한 정원들. 이런 정원들 앞에서 우리는 아름다움과 윤리성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아우슈비츠 사택의 정원은 가장 극단적인 예시다.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들으며 장미를 가꾸는 일의 끔 찍함. 이런 정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마도 우리에게는 아직 이런 정원을 설명할 적절한 언어가 없는 것 같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정원 역시 인간의 모든 면을 반영하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선함과 악함, 아름다움과 추함이 모두 그곳에 스며들 수 있다.

정원은 삶 자체의 은유다. 볼테르의 캉디드가 모든 고난을 겪고 난 후 "하지만 우리의 정원을 가꾸어야 합니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적극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상적인 세상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권력이나 돈으로 살 수도 없다. 다만 정원을 가꾸듯 하루하루 차근차근 만들어가야 한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오늘 심은 씨앗이 내일 꽃을 피울 것이라는 믿음, 지금의 노력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도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정원은 또한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정원의 시간은 느리고 점진적이다. 계절의 리듬을 따라 자라고 시들고 다시 자라나는 식물들을 보며, 우리는 자연의 시간과 동조하게 된다. 즉시적인 결과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정원은 기다림의 가치를, 과정의 중요성을 가르쳐준다.

길가메시부터 김초엽까지, 인류 문학사를 관통하는 정원의 이야기들을 되돌아보니 하나의 공통점이 보인다. 그것은 희망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모든 것이 파괴된 후에도, 여전히 씨앗을 심고 정원을 가꾸려는 의지. 이것이 바로 인간다움의 핵심이 아닐까. 정원은 우리에게 희망의 문법을 가르쳐준다. 작은 것에서 시작해서 천천히 키워나가는 법, 실패해도 다시 시도하는 법,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만들 어가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아름다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법. 세상이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미래가 어두워 보일 때, 우리에게는 여전히 정원이 있다. 작은 화분에서부터 시작해서 베란다 정원을, 옥상 정원을, 마을 정원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정원들이 모여서 언젠가는 지구 전체를 다시 에덴동산으로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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