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바꿀 새로운 양자 혁명
쥘리앙 보브로프 지음, 조선혜 옮김, 조명래 감수 / 북스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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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1세기 첨단 기술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는 바로 양자컴퓨팅이다. 그러나 이를 '혁명'이라고만 부르는 것은 과연 적절한 표현일까?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등장이 물리학계에 가져온 충격적 변화와 비교할 때,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변화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20세기 초의 양자역학 탄생은 말 그대로 과학적 대혁명이었다. 뉴턴역학이 지배하던 기존의 세계관을 완전히 뒤엎고, 원자와 입자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전혀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비트코인과 함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양자컴퓨터도 그 분야의 하나일 것이다. 이번에 이름은 익히 듣고 있으나 그 내용 측면에서 알지 못했던 양자 혁명에 대한 신가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세상을 뒤바꿀 새로운 양자 혁명>이었다. 기존과는 또다른 대 혁명을 예고하는 양자 혁명에 대해 읽어보았다.

현대의 양자혁명은 기존의 과학적 혁명과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핵심은 '노하우'의 측면에 있다. 과학자들이 개별 입자를 정밀하게 조작하고 제어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이전에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원하는 현상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내고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제2차 양자혁명'의 핵심이다. 제1차 양자혁명과 제2차 양자혁명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과학자들의 접근 방식에 있다. 과거에는 실험 장치가 자연 현상을 관찰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과학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현상을 측정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현재의 양자 기술 연구자들은 전혀 다른 접근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더 이상 기존 현상을 측정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신 실험실에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양자 현상들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 간섭 현상을 생성해 정밀한 가속도계를 개발하고, 얽힘 상태를 조작해 암호화 시스템을 구축하며, 중첩 상태를 활용해 컴퓨팅 시스템을 설계한다.

양자컴퓨터가 기존 컴퓨터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다. 기존 컴퓨터는 '비트'라는 단위를 사용해 정보를 0 또는 1의 명확한 상태로만 표현할 수 있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큐비트'를 사용하며, 이는 양자역학의 독특한 성질인 '중첩' 현상 덕분에 0과 1을 동시에 나타낼 수 있다. 중첩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회전하는 동전의 비유가 유용하다. 공중에서 회전하는 동전은 착지하기 전까지 앞면과 뒷면의 상태를 동시에 갖는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큐비트는 측정하기 전까지 여러 상태의 확률적 조합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양자컴퓨터는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계산할 수 있는 엄청난 병렬처리 능력을 갖게 된다.

​'얽힘'은 또 다른 핵심 개념이다. 두 개 이상의 큐비트가 얽힘 상태에 있으면, 이들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처럼 행동한다. 한 큐비트의 상태를 측정하는 순간, 다른 큐비트의 상태도 즉시 결정된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유령 같은 원격작용"이라고 불렀던 현상으로, 양자컴퓨터의 연산 속도를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이러한 양자역학적 특성들을 조합하면, 양자컴퓨터는 특정 문제들에 대해 기존 컴퓨터로는 불가능한 속도로 해답을 찾아낼 수 있다. 특히 암호 해독, 최적화 문제, 분자 시뮬레이션 등의 영역에서 그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양자컴퓨터의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실용화까지는 여전히 수많은 기술적 장벽이 존재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오류'다. 양자 상태는 극도로 민감해서 외부 환경의 미세한 변화에도 쉽게 붕괴된다. 게이트 오류, 위상 오류, 비트 오류 등 다양한 형태의 오류들이 양자 연산의 정확성을 위협한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실용적인 양자컴퓨터를 구현하려면 최소 100만 개의 큐비트가 필요하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개발된 가장 강력한 양자컴퓨터 프로토타입도 100개 내외의 큐비트만을 탑재하고 있다. 이는 목표치와 10,000배 이상의 격차를 의미한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접근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무차별 대입' 방식으로, 필요한 만큼의 큐비트를 단순히 늘리는 것이다. 구글이나 IBM 같은 대기업들이 이 전략을 추구하고 있으며, 마이크로프로세서 제조 기술을 활용해 대량의 양자 회로를 제작하려 한다. 두 번째는 '품질 개선' 방식이다. 큐비트 개수를 늘리는 대신 각 큐비트의 성능을 드라마틱하게 향상시켜 오류율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필요한 성능 향상 수준이 워낙 높아서(10,000배) 현실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 번째는 '혁신적 돌파구'를 기다리는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큐비트나 오류 수정 방법이 발견되어 기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가능성에 베팅하는 것이다. 위상 큐비트와 같은 이론적 개념들이 이런 돌파구의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제2차 양자혁명은 분명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20세기 초의 이론적 혁명과는 다른 성격의 기술적 혁명이다. 그 핵심은 양자 현상을 관찰하는 것에서 창조하고 조작하는 것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있다. 양자컴퓨터의 완전한 실용화까지는 아직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기술적 도전들을 고려할 때, 최소 10년 이상의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의 혁신과 응용이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과도한 기대와 성급한 판단을 피하면서도, 이 기술이 갖는 변혁적 잠재력을 간과하지 않는 것이다. 양자 혁명에 대해 조금은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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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똑똑한 부자는 뭐가 다른데? - 무작정 벌지 않고 전략적으로 부자 되는 법
스티브 애드콕 지음, 김광수 옮김 / 오픈도어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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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서완 리뷰입니다.

​현대인의 하루는 대부분 날카로운 알람 소리로 시작된다. 그 소리는 잠에서 깨우는 신호가 아니라, 누군가가 정해놓은 시간표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강제적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약 그 알람 없이도 자연스럽게 눈을 뜨고, 그날 하루를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계획할 수 있다면 어떨까? 이것이 바로 재정적 자립이 약속하는 궁극적인 자유의 모습이다. 이번에 제목부터 흥미로운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부자는 뭐가 다른데> 였다. 흥미로운 주제다.

먼저 애드콕이 제시하는 재산 형성의 6단계 과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설계도와 같다. 이 과정은 마치 건물을 짓는 것처럼 각 단계가 다음 단계의 기초가 되며, 어느 하나도 생략할 수 없는 필수적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단계인 '본업과 부업을 통한 수익 창출'은 모든 부의 축적이 결국 수입에서 시작된다는 근본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높은 급여 자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수입을 늘려나가려는 의지와 노력이다. 웹사이트 디자인이든 반려견 산책 서비스든, 작은 부업이라도 추가 수입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돈을 더 버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을 다각화하고, 한 가지 수입원에만 의존하는 위험을 줄이는 전략적 사고의 시작이다. 두 번째 단계인 '비상금 확보'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실제로는 재정적 안정성의 핵심이다. 3-6개월분의 생계비를 비상금으로 확보한다는 것은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보험과 같다.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의료비 지출, 집수리 등의 상황에서 부채를 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인 '가치상승 자산에 대한 투자'와 '자동화 시스템 구축'은 부의 축적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저축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인정하고, 주식, 부동산, 인덱스 펀드 등을 통해 돈이 돈을 벌게 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특히 자동화 시스템은 인간의 게으름이나 건망증, 감정적 판단을 배제하고 일관된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이는 마치 공장의 자동화 라인처럼 효율적이고 정확한 재산 축적을 보장한다. 다섯 번째 단계인 '사치성 소비 절제'는 아마도 가장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단계일 것이다. 수입이 늘어날 때마다 그에 맞춰 지출도 늘리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경향은 부의 축적에 있어 가장 큰 적이다. 이는 단순한 절약 정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통제력과 장기적 사고의 문제다. 현대 소비문화는 끊임없이 더 좋은 것, 더 비싼 것을 소유하도록 유혹한다. 소셜미디어는 다른 사람들의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며,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의 소비 패턴을 통제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지력의 문제를 넘어선 전략적 사고를 요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전한 금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드콕이 강조하는 것은 '균형'이다. 현재의 즐거움을 완전히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더 큰 자유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합리적으로 조절하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운동선수가 경기를 위해 식단을 관리하는 것과 같다. 목표가 분명할 때, 그 목표를 위한 절제는 고통이 아니라 투자가 된다.

애드콕은 여러가지 주제별로 부자들만의 특징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먼저 애드콕이 제시하는 '현명한 이기주의'의 개념은 전통적인 이기심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고다. 비행기에서 산소마스크를 자신이 먼저 착용해야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비유는 이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자신의 재정적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정으로 누구를 도울 수도 없고, 사회에 기여할 수도 없다. 이러한 관점은 개인의 성공과 사회적 책임을 대립적으로 보는 전통적 사고를 벗어난다. 오히려 개인의 재정적 안정이야말로 가족과 지역사회에 진정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전제조건임을 인식하게 한다. 경제적으로 독립된 개인이 많아질수록, 전체 사회의 안정성과 건강성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애드콕이 제시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인사이트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해다. 2000년 약 12만 달러였던 미국 주택 가격이 현재 38만 달러를 넘어선 현실은 부동산 시장의 변화뿐만 아니라, 화폐 가치 하락의 구체적 증거다. 이는 단순히 돈을 저축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평균 3.8%의 인플레이션율은 우리의 구매력을 지속적으로 갉아먹는다. 급여가 인플레이션율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겉보기에는 같은 급여를 받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급여가 삭감되는 것과 같다. 이는 왜 지속적인 수입 증가와 투자가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근본적 이유다. 'Pay Yourself First'라는 개념은 흥미롭다. 다른 모든 지출보다 자신의 미래를 우선시한다는 것은 현재의 자신과 미래의 자신 사이의 계약과 같다. 현재의 작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미래의 더 큰 자유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운동과 같다. 당장은 힘들고 불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재정적 자립을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소비 욕구를 조절하고, 투자를 우선시하는 것은 미래의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이외에도 많은 부자들만의 다른점을 잘 알 수 있었다. 스티브 애드콕이 제시하는 재정적 자립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이나 행운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계적인 계획과 꾸준한 실행, 그리고 장기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과정이다. 재정적 자립을 달성한 저자의 경험은 실제로 실현 가능한 목표임을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시작하는 용기와 지속하는 끈기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에 깨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삶에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삶으로의 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고, 시작해야만 한다. 미래의 자유로운 자신을 만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바로 애드콕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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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비문(廣開土太王碑文) 쟁점에 대한 완전 해석 - 광개토왕비와 장군총과 태왕릉을 파괴하려는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개정증보판
홍재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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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414년, 그 해 가을 국내성 동강에 하나의 비석이 세워졌다. 6미터가 넘는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에는 1,775자의 한자가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기리는 이 비석은 그 후 1,460여 년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이 돌의 존재를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청나라의 봉금제도. 200년간 만주 땅을 금단의 구역으로 만든 이 정책은 역설적으로 광개토왕비를 보존하는 역할을 했다. 인적이 끊긴 황무지 속에서 비석은 홀로 세월을 견뎠다. 그리고 1877년, 봉금이 해제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1,400년 넘게 침묵 속에 서 있던 돌이 마침내 입을 열었을 때, 그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의 첩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주는 씁쓸함이었다.

저자가 제기하는 비문변조설은 충격적이다. 일본이 자국에 유리하도록 비문을 의도적으로 변조했다는 주장. 특히 '래도해파(來渡海破)' 부분의 변조 가능성은 한일 고대사 인식의 근본을 뒤흔든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고대 동아시아사의 상당 부분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도 든다. 과연 이런 대담한 변조가 가능했을까? 탁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본을 훼손하지 않고도 그렇게 정교한 조작이 가능했던 것일까? 이 질문들 앞에서 나는 역사 연구의 어려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는 90세에 가까운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이 복잡한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의 열정과 의지에 경의를 표하지만, 동시에 이런 중대한 주장에는 더욱 신중하고 다각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비문의 문체에 대한 분석이었다. 414년 당시에는 고문과 금문이 혼용되던 시대였고, 따라서 비문도 이러한 복합 문체로 작성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현재의 언어 감각으로 1,600년 전의 글을 해석하려 할 때 얼마나 많은 오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어는 시대의 거울이다. 414년의 고구려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의도로 그 글자들을 새겼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시대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 현재 한문 해독 능력을 가진 학자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저자의 우려는 단순한 학문적 관심을 넘어선 문화적 위기감을 드러낸다.

고구려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고토'다. 지금은 중국 땅이 된 그 광활한 영역에서 한때 우리 조상들이 웅장한 문명을 꽃피웠다는 사실은 여전히 가슴을 뛰게 한다. 광개토왕과 장수왕 시대의 고구려가 보여준 위용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영광의 흔적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 책 말미에 소개된 중국의 고구려 유적 파괴 시도는 충격적이다. 광개토왕비각과 태왕릉을 관통하는 도로 건설 계획, 장군총 근처를 지나는 도로 설계. 이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 역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다. 현재 진행형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 소중한 유산들은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저자는 책 중간에 흥미로운 관찰을 제시한다. 단일민족은 신화라는 것, 하지만 여전히 단군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은 내부 결집을 위함일 것이라는 분석. 이는 예리한 통찰이다. 드넓은 대륙의 중국을 보면서 느끼는 우리의 복잡한 감정. 56개 소수민족을 거느린 채 한족 중심의 국가를 유지하는 중국의 정책을 바라보며, 우리는 우리만의 정체성에 대해 더욱 절실하게 생각하게 된다. 고구려라는 강력한 고대 국가의 존재는 그런 우리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다.

광개토왕비문을 둘러싼 한중일 3국의 서로 다른 해석은 역사 연구가 결코 순수한 학문적 영역에만 머물 수 없음을 보여준다. 각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비문을 해석하려 한다.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는 근거로, 한국은 고구려의 위대함을 증명하는 자료로.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해석이 가능할까? 저자의 해석 역시 완전히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90세에 가까운 저자가 이 방대한 연구를 완성한 것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시간과의 경주였을 것이다. 한문을 제대로 해독할 수 있는 세대가 사라져가는 현실 속에서, 자신이 가진 지식과 통찰을 후세에 남기려는 절박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중요한 연구가 한 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든다. 더 많은 학자들이, 더 체계적인 방법으로, 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런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아픈 부분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광개토왕비가 재발견되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이 일본의 첩자들이었다는 사실, 초기의 중요한 연구들이 모두 일본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북한의 평양 일대에 있는 고구려 유적들은 어떤 상황인가? 남한의 한강 유역 고구려 유적들은 개발 논리 앞에서 안전한가?

130년간 지속된 논쟁을 종결하겠다는 저자의 당당한 선언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진짜 종결은 더 많은 연구와 검증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이 그런 연구들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다. 한문 교육의 강화, 고고학 연구의 체계화, 국제적 공조를 통한 유적 보존, 그리고 균형 잡힌 역사 인식의 확산.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1,600년 전 국내성 동강에 세워진 그 돌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세월의 풍화를 견디며, 인간들의 해석과 논쟁을 지켜보며,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광개토태왕비문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그 여행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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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텐트 치는 여자들 - 다정하고 담대한 모험가들, 베이스캠프에 모이다
WBC 지음 / 해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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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의 저자들이 말했듯, 모험은 꼭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낯선 땅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모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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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텐트 치는 여자들 - 다정하고 담대한 모험가들, 베이스캠프에 모이다
WBC 지음 / 해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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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Follow Your Fear.' 우먼스베이스캠프(WBC)의 슬로건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두려움을 피하라고 배워왔다. 안전한 길, 검증된 길, 다수가 걸어온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들은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두려움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그곳에서 진짜 모험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들판에 텐트 치는 여자들.. 하늬, 지영, 명해 세 사람이 바다에 목만 내놓고 나눴던 대화가 인상적이다. 각자의 삶에서 자신들을 머뭇거리게 했던 것들에 대해, 조바심과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을 때 얻은 유익들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오늘 모험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WBC의 여성들은 두려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러 간다.

사회가 원하는 길, 정해진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 물으며 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WBC 운영진들도 이 고민을 깊이 공유한다. 지치기도 하고,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편한 길을 놔두고 왜 흙길을 택하는지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다. 한 줄로 깔끔하게 표현할 수 없는 이력서, 짧게 끝낼 수 없는 자기소개. 이들의 고민은 비단 아웃도어 활동가들만의 것이 아니다. 기성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 고민 때문에 이들은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험가 옆에 모험가'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길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걸어갈 수 있다.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때로는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한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도 모자라 서로의 몸에 몸을 붙이고 펭귄처럼 옹기종기 모여 산 너머 풍경을 바라보던 경험에서 이들이 깨달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풍경이나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설산을 보고 싶은데 눈이 안 올 수도 있고, 별을 보러 가는데 바람이 폭풍같이 불 수도 있다. 하늘과 날씨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든 그 나름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조건,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게 된다. 유연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LA 백패킹 이전까지 한 운영진은 자신에 대한 자만에 가득 차 있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몸을 쓰는 일에 관해서는 괜찮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 운으로든 노력으로든 어려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연에서 역경을 제대로 맞닥뜨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경과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특히 모험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자신도 언제든 무리에서 가장 뒤처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은 중요한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남들보다 먼저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 세상에서,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것이 결국 나의 성공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개인의 성취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임을 자연 속에서 체득한 것이다. 캠핑을 좋아하는 나의 경험과 WBC 저자들의 경험이 교차하면서 위안을 느낀다. ^.^

어둠이 내려앉은 산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고요를 들었다. 도시의 백색소음에 익숙해진 귀가 당황하듯 웅웅거렸지만, 점차 숲의 리듬에 맞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WBC의 세 여성이 LA 데스밸리에서 경험했던 그 전율을 나도 알 것 같았다. 혼자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풍경 앞에서, 나는 그들처럼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간절함을 느꼈다. 사실 나에게 캠핑은 오랫동안 '해야 할 일'의 목록에만 머물러 있었다. SNS에서 보는 완벽한 캠핑 사진들, 값비싼 장비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깨달았다. 모험은 완벽한 준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첫 번째 솔로 캠핑을 떠났던 그날, 나는 텐트 치는 법도 제대로 모른 채 산속으로 향했다. 서투른 손으로 펼친 텐트는 비뚤비뚤했고, 저녁 준비는 예상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모든 서툴음 속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 손으로 만든 작은 거처에서, 내가 준비한 간단한 식사로, 나는 스스로를 돌보고 있었다.

"Follow Your Fear." WBC의 슬로건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나 역시 두려움을 피하려 애썼던 사람이었다.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것,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밤을 보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두려웠다. 하지만 산 위에서 맞은 첫 번째 일출은 그 두려움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새벽 다섯 시, 추위에 떨며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 장면을 보며 나는 울었다. 이 순간을 위해 어제의 모든 불편함과 두려움이 존재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따라가야 할 나침반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캠핑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완벽한 장비보다는 호기심을, 안전한 캠핑장보다는 미지의 장소를 선택하게 되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비에 흠뻑 젖기도 하고, 길을 잃어 해가 진 후에야 캠프사이트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예측불가능한 순간들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WBC의 저자들이 말했듯, 모험은 꼭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낯선 땅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모험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종종 캠핑을 떠난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나를 발견한다. 더 담대해진 나, 더 유연해진 나, 더 자유로워진 나를. 그리고 그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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