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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에 텐트 치는 여자들 - 다정하고 담대한 모험가들, 베이스캠프에 모이다
WBC 지음 / 해냄 / 2025년 7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Follow Your Fear.' 우먼스베이스캠프(WBC)의 슬로건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두려움을 피하라고 배워왔다. 안전한 길, 검증된 길, 다수가 걸어온 길을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런데 이들은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두려움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그곳에서 진짜 모험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들판에 텐트 치는 여자들.. 하늬, 지영, 명해 세 사람이 바다에 목만 내놓고 나눴던 대화가 인상적이다. 각자의 삶에서 자신들을 머뭇거리게 했던 것들에 대해, 조바심과 두려움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을 때 얻은 유익들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오늘 모험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WBC의 여성들은 두려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러 간다.
사회가 원하는 길, 정해진 길을 가지 않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 물으며 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WBC 운영진들도 이 고민을 깊이 공유한다. 지치기도 하고,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편한 길을 놔두고 왜 흙길을 택하는지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다. 한 줄로 깔끔하게 표현할 수 없는 이력서, 짧게 끝낼 수 없는 자기소개. 이들의 고민은 비단 아웃도어 활동가들만의 것이 아니다. 기성의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바로 그 고민 때문에 이들은 서로를 더욱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험가 옆에 모험가'다.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길이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걸어갈 수 있다. 이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때로는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한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도 모자라 서로의 몸에 몸을 붙이고 펭귄처럼 옹기종기 모여 산 너머 풍경을 바라보던 경험에서 이들이 깨달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풍경이나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설산을 보고 싶은데 눈이 안 올 수도 있고, 별을 보러 가는데 바람이 폭풍같이 불 수도 있다. 하늘과 날씨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든 그 나름으로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조건,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순간들을 놓치게 된다. 유연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LA 백패킹 이전까지 한 운영진은 자신에 대한 자만에 가득 차 있었다고 고백한다. 특히 몸을 쓰는 일에 관해서는 괜찮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고, 운으로든 노력으로든 어려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연에서 역경을 제대로 맞닥뜨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역경과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특히 모험을 떠나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자신도 언제든 무리에서 가장 뒤처지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감각은 중요한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남들보다 먼저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인 세상에서,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것이 결국 나의 성공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개인의 성취보다는 공동체 전체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일임을 자연 속에서 체득한 것이다. 캠핑을 좋아하는 나의 경험과 WBC 저자들의 경험이 교차하면서 위안을 느낀다. ^.^
어둠이 내려앉은 산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진짜 고요를 들었다. 도시의 백색소음에 익숙해진 귀가 당황하듯 웅웅거렸지만, 점차 숲의 리듬에 맞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WBC의 세 여성이 LA 데스밸리에서 경험했던 그 전율을 나도 알 것 같았다. 혼자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풍경 앞에서, 나는 그들처럼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간절함을 느꼈다. 사실 나에게 캠핑은 오랫동안 '해야 할 일'의 목록에만 머물러 있었다. SNS에서 보는 완벽한 캠핑 사진들, 값비싼 장비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깨달았다. 모험은 완벽한 준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첫 번째 솔로 캠핑을 떠났던 그날, 나는 텐트 치는 법도 제대로 모른 채 산속으로 향했다. 서투른 손으로 펼친 텐트는 비뚤비뚤했고, 저녁 준비는 예상보다 두 배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 모든 서툴음 속에서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내 손으로 만든 작은 거처에서, 내가 준비한 간단한 식사로, 나는 스스로를 돌보고 있었다.
"Follow Your Fear." WBC의 슬로건이 내 마음에 깊이 박혔다. 나 역시 두려움을 피하려 애썼던 사람이었다.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것, 계획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밤을 보내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두려웠다. 하지만 산 위에서 맞은 첫 번째 일출은 그 두려움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새벽 다섯 시, 추위에 떨며 텐트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 장면을 보며 나는 울었다. 이 순간을 위해 어제의 모든 불편함과 두려움이 존재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따라가야 할 나침반이었다. 그날 이후 나의 캠핑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완벽한 장비보다는 호기심을, 안전한 캠핑장보다는 미지의 장소를 선택하게 되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비에 흠뻑 젖기도 하고, 길을 잃어 해가 진 후에야 캠프사이트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예측불가능한 순간들이 내게는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었다. WBC의 저자들이 말했듯, 모험은 꼭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낯선 땅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모험할 수 있다. 지금도 나는 종종 캠핑을 떠난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그때마다 조금씩 다른 나를 발견한다. 더 담대해진 나, 더 유연해진 나, 더 자유로워진 나를. 그리고 그런 나를 발견할 때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