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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이건 지금까지 읽어온 <오만과 편견>과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200년 전 영국의 어느 응접실 한구석에 앉아, 재치 넘치는 젊은 여성이 속삭이듯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경어체로 번역된 문장들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곧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러워졌다. 김선형님은 작가의 '톤 '을 살리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이전에 읽었던 번역본들이 격식을 차린 문어체로 품위를 유지했다면, 이번 번역은 생생하게 숨 쉬는 입말처럼 다가왔다. 특히 베넷 부인이 떠들어대는 장면이나 엘리자베스 가 기지 있게 받아치는 대화들은 마치 옆에서 실제로 대화를 엿듣는 것 같은 현장감을 선사했다. 번역이 서로 다른 언어를 옮기는 작업만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 체험 '을 전달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베넷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녀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총명하고 재치 있는 여성이라는 건 변함없었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취약함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무도회에서 다아시의 모욕적인 말을 우연히 듣게 되는 장면. "참아줄 만은 하군, 하지만 내 마음을 끌 만한 미모는 아니야." 이 한 마디가 엘리자베스의 자존심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을까. 그녀의 '편견'은 사실 상처받은 자존심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이 아니었을 까. 다아시를 향한 그녀의 냉소와 비판은 '저 오만한 사람은 나와 어울리지 않아'라고 먼저 선을 긋는 방어기제 처럼 읽혔다. 위컴의 거짓말을 그토록 쉽게 믿어버린 것도, 이미 마음속에 '다아시는 나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만 찾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확증 편향이라 부른다. 엘리자베스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받으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호의조차 '겉치레'나 '계산된 행동'으로 치부해버리는. 첫인상이 나쁘면 그 사람 이 보여주는 모든 좋은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진심을 알아차리기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도, 그녀 역시 자신의 판단력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잘 보는 편'이라는 자신감이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장막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아시는 어떤가. 그를 '츤데레의 원조'라고 부르는 건 재미있는 표현이지만, 그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한 것 같다. 그는 오만한 것이 아니라 오만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감정 표현에 서툴고, 사교계의 가벼운 대화에 익숙하지 않으며, 자신의 계급적 책임감에 과도하게 짓눌려 있는 사람. 그의 침묵은 경멸이 아니라 불편함이었고, 그의 무뚝뚝함은 냉정함이 아니라 소통의 서툴음이었다. 첫 청혼 장면을 읽으며 나는 웃음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다. 다아시는 진심으로 엘리자베스를 사랑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최악이었다. "당신 가족은 문제가 많고, 신분 차이도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게 청혼이라니. 그는 자신의 솔직함이 미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상대방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것이었다. 진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진심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한데, 다아시는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흥미로운 건 그가 엘리자베스의 거절 이후 진짜로 변했다는 점이다. 자기 변명을 늘어놓거나 분노하는 대신, 그는 자신을 돌아봤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달라졌다. 리디아 사건을 몰래 해결하면서도 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모습, 엘리자베스의 가족들에게 더 이상 거리를 두지 않는 모습.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오만함을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소설이 로맨스를 넘어서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사랑은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 만남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엔 서로를 완전히 오해하고, 그 오해를 바탕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점차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닫고, 서로를 다시 보는 법을 배우는 긴 여정이다. 사랑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수정되는 과정이라는 것. 상대를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보는 자신의 시선을 바꾸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번역본에 달린 주석들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감탄했다. 영국의 계급 제도, 당시 여성의 법적 지위, 무도회의 관습, 심 지어 당구대의 존재가 갖는 의미까지. 이런 세부 사항들이 쌓이면서 소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에서 한 시대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파노라마로 확장되었다. 여성에게 결혼이 '사랑'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다는 것을 알고 나면, 샬럿 루카스의 선택도, 베넷 부인의 집착도 다르게 읽힌다. 제인 오스틴은 분노하지 않는다. 대신 웃는다. 그녀의 풍자는 날카롭지만 결코 잔인하지 않다. 콜린스 목사의 우스꽝스러움, 레이디 캐서린의 거만함, 베넷 부인의 허영심. 이 모든 것을 그녀는 유머로 감싸면서도, 그 이면에 숨은 사회적 모순을 정확히 짚어낸다. 웃음 뒤에 통잘이 있고, 재치 뒤에 비판이 있다.
책을 덮으며 생각했다. 왜 이 소설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는가. 단순히 잘 쓰인 로맨스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 즉, 첫인상의 위험성, 계급과 편견, 진정한 성찰의 가치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쩌면 엘리자베스보다 더 성급하게 타인을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 줄의 글, 한 장의 사진으로 누군가의 전부를 안다고 착각한다. 이번 번역을 통해 <오만과 편견> 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제인 오스틴이라는 작가가 얼마나 현대적인 감수성을 가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스무 살의 그녀가 포착한 인간 심리의 미묘함, 사회 구조의 모순,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은 지금 읽어도 전혀 낡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더 절실하게 필요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 동안 여운이 남았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그들이 남긴 질문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