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쌤의 루틴 잉글리시 - 하루 10분, 90일 영어 습관 프로젝트
캘리쌤 지음 / 북플레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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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 졸업 후 처음 외국계 기업과 회의했을 때의 일이다. 면접에서는 그럭저럭 영어로 답변했고, 토익 점수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첫 화상회의에서 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미국 본사 동료가 "How was your weekend?"라고 물었을 때, 나는 "Good"이라는 단어 하나만 겨우 내뱉었다. 머릿속에는 분명 주말에 했던 일들이 가득했다. 친구를 만났고, 영화를 봤고, 새로운 카페도 갔다. 그런데 그 풍성한 경험들이 영어라는 관문을 통과하는 순간 모두 증발해버렸다. 이것이 바로 많은 학습자들이 겪는 '영어 공백'이다. 우리는 수천 개의 단어를 외웠고, 문법책을 여러 권 독파했으며, 듣기 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실제 상황에서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배운 영어와 실제로 사용되는 영어 사이에 깊은 골이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번에 읽고 학습한 <캘리쌤의 루틴 잉글리시>는 10년간 다양한 학습자 들을 만나며 발견한 공통점, 즉 '아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다. 책이 제안하는 방법론 은 영어를 공부의 대상이 아닌, 일상의 일부로 만들자는 것이다.


영어 학습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시작이 아니라 지속이다.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이번엔 정말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해야지"라고 다짐하며 두꺼운 교재를 구입한 경험이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3일을 넘기지 못하고 좌절한다. 왜 그럴까? 목표가 너무 거창하거나, 학습량이 현실적이지 않거나, 무엇보다 '재미'와 '실용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책의 핵심 전략은 '루틴화'에 있다. 하루 10분, 90일간의 여정.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치밀한 설계가 숨어 있다. 45가지 일상 상황을 선정하고, 각각을 2일에 걸쳐 학습하도록 구성했다. 첫날은 읽고 듣고 이해하는 '입력의 날', 둘째 날은 말하고 쓰며 체화하는'출력의 날'이다. 이 반복 구조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시키는 인지과학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상황의 선택이다. '아침 루틴', ‘카페에서의 주문', 병원 방문', '야구 경기 관람'처럼 우리가 실제로 마주칠 법한 장면들이다. 추상적인 주제나 비현실적인 대화가 아니라, 오늘 당장 쓸 수 있는 언어들이다. 이는 학습 동기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다. 배운 표현을 실제로 사용할 기회가 보이면, 우리는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다.


한국 영어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맥락의 부재'다. 우리는 "How are You?"에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답하도록 배웠다. 하지만 실제 원어민은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Pretty good!","Not bad", "Living the dream" 같은 다양한 반응들이 존재하고, 상황과 관계에 따라 뉘앙스도 달라진다. 저자는 이런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 책에는 원어민들이 일상에서 자주 쓰는 구동사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흥미로운 건 문화적 맥락까지 함께 제공한다는 점이다. 야구 경기 전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tailgating' 문화, 약국에서 'over-the-counter'와 'prescription'의 차이, 카페에서 디저트를 따뜻하게 데워달라'고 요청하는 습관 등. 이런 세부사항들이 쌓이면, 우리는 단순히 언어만 배우는 게 아니라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까지 이해하게 된다. 언어 습득은 다층적인 과정이다. 보기만 해서도, 듣기만 해서도, 말하기만 해서도 완성되지 않는다.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라는 네 가지 영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진짜 언어 능력이 형성된다. 저자는 '통합적 접 근'을 한다. 각 유닛은 QR 코드로 제공되는 캘리쌤의 육성 낭독으로 시작한다. 먼저 듣고, 그 다음 텍스트를 읽으며 확인한다. 이어서 핵심 표현들을 따로 정리하고, 문화적 배경을 이해한 뒤, 실제 대화 패턴을 연습한다. 마지막으로 배운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써보는 영작 훈련까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뇌는 같은 정보를 여러 경로로 처리하게 된다. 청각, 시각, 운동 감각(말하기와 쓰기)이 모두 동원되면서 기억의 강도가 극대화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다중 부호화 효과'다. 하나의 정보를 여러 방식으로 접할수록 장기 기억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AI 활용 가이드는 현대적인 학습 도구를 효과적으로 접목한 사례다. 혼자 공부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피드백의 부재'인데, Al를 통해 발음 교정, 문법 확인, 표현 다양화 등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학원이나 과외 없이도 자기주도적 학습을 가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조력자인 것 같다.


저자가 강조하는 메시지가 있다. "영어를 공부하거나 억지로 암기하지 마세요. 대신 경험하고 체화하세요." 우리는 오랫동안 영어를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왔다. 시험을 위해, 승진을 위해, 스펙을 위해 영어를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영어는 늘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이었다. 모국어를 배울때 우리는 매일 듣고, 말하고, 실수하고, 고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책이 제안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하루 10분, 부담 없는 분량으로 매일 영어를 접한다. 배달 음식을 시키는 상황, 재택근무를 하는 장면, 카페에서 주문하는 순간들. 이 모든 것이 '나의 경험'과 연결될 때, 영어는 더 이상 낯선 언어가 아니다. 내 삶을 표현하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된다. 90일이라는 기간도 절묘하다. 습관 형성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행동이 자동화되려면 평균 66일이 필요하다고 한다. 90일이면 영어 학습이 '해야 하는 일'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일'로 전환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영어와의 관계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영어 학습이 결국 '관계 맺기'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언어와의 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세상과의 관계. 우리가 영어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영어와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어를 두려움의 대상, 평가의 도구로만 바라보다 보니 진짜 소통의 즐거움을 놓쳤다. 책은 그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하루 10분씩, 90일간. 거창한 목표 대신 작은 실천들을 쌓아가며, 우리는 조 금씩 영어와 친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영어가 더 이상 넘어야 할 산이 아니라, 함께 걷고 싶은 친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새해가 다가온다. 또다시 영어 공부 계획을 세우려 한다. 책은 가장 현실적이 고 따뜻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 같다. 완벽함 대신 꾸준함을, 암기 대신 경험을,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선택하는 여정. 그 90일의 끝에서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운 나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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