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묻고 마음이 답하다
서은희 지음 / 이비락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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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몸과 마음을 분리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머리로는 생각하고, 가슴으로는 감정을 느끼고, 몸으로는 그저 일상을 수행할 뿐이라고.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몸이 보내는 신호들이 물리적 반응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다. 근육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마음이 그 언어를 번역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운동이라는 행위는 표면적으로는 건강을 위한 선택처럼 보인다. 체중을 줄이고, 근육을 키우고, 체력을 기르는 것.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바벨을 들어 올리는 순간, 플랭크 자세를 유지하는 시간, 런닝머신 위에서 숨을 고르는 찰나. 이 모든 순간들이 몸과 마음 사이의 은밀한 대화로 가득하다. 이번에 읽은 서은희님의 <몸이 묻고 마음이 답하다>를 읽으면서 운동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 본다. 신성한 접근 방법으로 생각하는 운동에 대해서 저자의 경험을 공유해 본다. ^.^

처음에는 몸이 저항한다.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에 경직되고, 무거운 중량에 떨리고, 반복되는 동작에 지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몸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깊게 스쿼트를 할 수 있게 되고, 한 개 더 푸시업을 해낼 수 있게 된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몸이 우리에게 묻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사회가 제시하는 몸에 대한 기준은 잔혹할 정도로 명확하다. 어디는 들어가야 하고, 어디는 나와야 하고, 어떤 선은 살아있어야 하고, 어떤 부분은 매끄러워야 한다. 우리는 이런 외부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재단하며 살아왔다. 거울을 볼 때마다 부족한 것들만 보이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각도를 고민하고, 옷을 고를 때마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생각한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서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허벅지가 굵다고 생각했던 다리가 사실은 강인한 힘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뒤로 젖혀지지 않는 어깨가 실은 일상의 모든 짐을 견뎌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배에 쌓인 살들도 내 몸을 보호하는 따뜻한 담요였다는 걸 이해하게 된다.

운동하는 시간 동안 우리는 몸의 진짜 모습과 마주한다. 사회적 기준이 아닌, 자신만의 기준으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졌는지,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지, 나 자신과 얼마나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 이런 내적 기준들이 하나씩 자리 잡으면서 외적 자신감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운동을 하다 보면 몸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 이 무게가 적당한가?", "이 자세가 올바른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쉬어야 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이런 질문들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그저 정해진 루틴을 따라가고, 트레이너가 시키는 대로 하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하기 바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언어를 해석하는 능력이 생긴다. 왼쪽 무릎의 미묘한 불편함을 감지하고, 어깨의 긴장을 풀어주고, 호흡의 리듬을 조절하는 법을 배운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몸과 친해진다. 마치 오랜 친구와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소통하게 된다. 몸이 던지는 질문에 귀 기울이는 것은 단순히 운동 효과를 높이는 것을 넘어선다.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자신의 감각과 직감을 믿게 만든다.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머리로만 판단하지 않고 몸의 반응도 살피게 된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어깨가 올라가는 것을 느끼고, 기쁠 때 가슴이 열리는 것을 감지한다.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몸이 질문을 던지면 마음이 답한다. 때로는 용기를 내서 "한 번 더 해보자"고 대답하고, 때로는 지혜롭게 "오늘은 여기서 멈추자"고 말한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 포기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순간에 더 도전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이 나를 동기부여 시키고 무엇이 나를 좌절시키는지 알게된다. 운동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외부의 소음이 차단되고, 타인의 시선이 사라지고, 오직 나와 내 몸만 남는다. 이 고요한 공간에서 마음은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꺼낸다. 억눌렀던 감정들, 미루어왔던 생각들, 외면해왔던 꿈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날은 운동하면서 눈물이 나기도 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마음 깊은 곳에 쌓였던 것들이 몸의 움직임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운동 후에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머릿속이 맑아지면서 평소에 해결되지 않던 문제들의 실마리가 보인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마음도 함께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삶에서 잠시 멈춰 서서 지금 이 순간을 느끼는 것. 운동이 주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충만함'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나 변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는 경험이다. 데드리프트를 할 때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연결된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는 순간, 요가 자세를 취할 때 호흡과 움직임이 하나가 되는 찰나, 달리기를 할 때 바람과 함께 흘러가는 시간. 이런 순간들은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이 끼어들 틈이 없다. 오직 현재만이 존재하는 순수한 시공간이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일상에서도 충만함을 느끼는 능력이 생긴다. 커피를 마실 때 향과 온도를 더 섬세하게 느끼고, 걸을 때 발과 땅의 접촉을 의식하고, 대화할 때 상대방의 표정과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된다. 운동을 통해 깨어난 감각들이 삶 전체를 더욱 생생하게 만드는 것이다. 운동은 몸과 마음이 만나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분리되어 있던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소외되어 있던 감각들을 되살리고, 잊고 있던 자신의 진짜 모습과 재회하게 하는 시간. 몸이 묻고 마음이 답하는 이 대화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온전한 자신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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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 - 바스티유의 포성에서 나폴레옹까지 북캠퍼스 지식 포디움 시리즈 5
한스울리히 타머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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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스울리히 타머의 <프랑스 혁명>을 읽으며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요새가 무너지던 그날은 단순히 한 건물이 파괴된 날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세적 질서가 종언을 고하고 근대적 시민사회가 탄생하는 분수령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한 국가의 정치 체제 변화를 넘어서 인류 역사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사상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자유와 평등을 향한 인간의 열망에 영감을 주는 원형이 되고 있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앙시앵 레짐(구체제) 하에서 깊은 모순에 빠져 있었다. 절대왕정의 화려한 외양 뒤에는 재정 파탄과 사회적 불평등이 자리 잡고 있었고, 계몽사상의 확산으로 인해 기존 권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적 위기 속에서 혁명은 필연적으로 발생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이상을 새롭게 정의했다.

프랑스 혁명의 발생 배경을 살펴보면, 이것이 결코 우발적 사건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는 다층적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이 동반하지 못하면서 일자리 부족 현상이 심화되었고, 연이은 흉작으로 인한 곡물가 상승은 도시 민중의 생계를 위협했다. 특히 파리 시민들에게 빵은 생존의 문제였다. 임금은 정체되어 있는 반면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서민층의 삶은 더욱 궁핍해졌다. 이러한 경제적 어려움은 사회 구조의 모순과 결합하면서 폭발력을 갖게 되었다. 신분제 사회에서 특권을 누리는 성직자와 귀족들은 세금 부담에서 면제되는 반면, 실질적으로 국가 경제를 떠받치는 제3신분은 과중한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이러한 불공정한 구조는 경제적 합리성과도 배치되었고, 새롭게 부상하는 부르주아 계층의 정치적 참여 욕구와도 충돌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몽사상의 확산이었다.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등의 사상가들이 제시한 자연권, 사회계약론, 권력분립 등의 개념은 기존 절대왕정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의문시했다. 이러한 사상적 토대 위에서 민중은 자신들의 권리를 각성하게 되었고, 정치적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따라서 프랑스 혁명은 단순히 경제적 불만의 폭발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적 의식에 기반한 체계적인 사회 변혁 운동이었다.

혁명의 진행 과정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긴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789년 국민의회 구성과 테니스 코트 서약은 국민주권 원리의 선언이었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근대적 인권 개념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시기에 확립된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 질서의 설계도였다. 그러나 혁명의 실제 전개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입헌군주제를 통한 점진적 개혁을 추구했던 초기 혁명가들의 기대와 달리, 혁명은 점차 급진화되었다. 바렌 사건으로 왕실과 혁명 세력 간의 화해 가능성이 소멸되었고, 이후 공화정 수립과 함께 정치적 갈등은 더욱 첨예해졌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혁명 과정에서 나타난 다양한 정치 세력 간의 경쟁과 갈등이다. 지롱드파와 산악파의 대립, 자코뱅파와 상퀼로트의 연대와 갈등은 혁명이 단일한 의지로 진행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각 세력은 나름의 혁명 이념과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이들 간의 경쟁은 혁명을 더욱 역동적이면서도 복잡하게 만들었다. 로베스피에르로 대표되는 공안위원회 시기의 공포정치는 혁명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혁명을 방어한다는 명분 하에 자행된 대규모 처형과 억압은 혁명의 본래 이상과 모순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시기는 사회적 평등을 실현하려는 가장 급진적인 시도이기도 했다. 이러한 양면성은 민주주의와 자유가 얼마나 섬세한 균형 위에서 성립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프랑스 혁명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이것이 정치 혁명인 동시에 '매체 혁명'이었다는 점이다. 혁명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은 혁신적이었다. 검열이 완화되면서 신문과 팸플릿이 급속히 증가했고, 이를 통해 정치 담론이 대중화되었다. 마라의 『인민의 친구』, 에베르의 『뒤셴 신부』 등은 단순한 뉴스 전달을 넘어서 정치적 여론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언론의 발달은 정치 참여의 민주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왕실과 귀족층에 국한되었던 정치가 이제 일반 시민들의 일상적 관심사가 되었다. 카페와 클럽에서의 토론, 거리에서의 연설, 인쇄물을 통한 의견 교환은 새로운 정치 문화를 창조했다. 이는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과 여론의 중요성을 예고하는 역사적 선례였다. 혁명 과정에서 창조된 새로운 상징과 의례도 주목할 만하다. 삼색기, 마르세예즈, 혁명력 등은 단순한 상징을 넘어서 새로운 정치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였다. 이러한 문화적 혁신은 혁명의 이념을 대중에게 전파하고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은 완전한 성공작이 아니었다. 자유와 평등의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여러 한계를 드러냈다. 여성의 정치 참여는 여전히 제한적이었고, 노예제 폐지 문제에서도 일관성을 보이지 못했다. 또한 종교적 관용을 주창하면서도 가톨릭 교회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는 모순을 보였다. 무엇보다 혁명이 추구했던 민주주의적 이상은 나폴레옹의 쿠데타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으며, 위기 상황에서 권위주의적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폴레옹 체제는 혁명의 일부 성과를 계승하면서도 민주적 참여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혁명이 남긴 유산은 결코 소멸하지 않았다. 혁명이 확립한 국민주권, 법 앞의 평등, 개인의 자유 등의 원칙은 이후 전 세계 민주화 운동의 이념적 기반이 되었다. 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 운동, 20세기의 탈식민지화 과정, 그리고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민주주의 확산 과정에서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은 미완성된 기획이다. 그것이 추구했던 자유, 평등, 박애의 이상은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달성해야 할 목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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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 거대한 변곡점, 마지막 부의 기회를 잡아라
박석중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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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세계 질서 재편은 정권 교체를 넘어선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동시에 한국은 내부적으로 가계부채 급증, 내수 침체, 기업 경쟁력 약화라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내외적 도전은 위기이자 동시에 마지막 기회의 창을 열어주고 있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패권국의 변화는 항상 주변국들에게 근본적인 선택을 강요해왔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패권 이동, 20세기 중반 브레튼우즈 체제의 확립, 1980년대 플라자 합의, 그리고 2000년대 중국의 세계 경제 편입까지, 대략 30년을 주기로 반복되어온 이러한 구조적 변화 앞에서 각국은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이제 2025년을 기점으로 시작되는 제4의 체제 전환기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30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과거의 성공 방식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한 변화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할 것인가. 지금은 공포에 사로잡힐 시간이 아니라 냉철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순간이다. 이번에 박석중님의 <한군의 미래>를 읽으며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트럼프의 슬로건이 많은 미국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상대적 쇠락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지표들을 종합해보면 미국은 패권국의 구조적 쇠락 주기에 접어들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첫째, 경제적 측면에서 부채 주도 성장의 한계가 명확해지고 있다. 연방정부 부채는 GDP의 120%를 넘어서며 역사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이자 지급 비용만으로도 국방비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둘째, 사회적 측면에서 빈부격차 확대로 인한 계층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상위 1%가 전체 부의 30% 이상을 독점하는 극단적 불평등은 사회 통합을 위협하고 있다. 셋째, 정치적 측면에서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국정 운영의 효율성이 크게 저하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은 미국으로 하여금 해외 개입을 줄이고 내부 재건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글로벌 질서와 동맹 체계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략적 변화는 한국에게 다층적인 도전을 제기한다. 안보 측면에서는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력이 가중될 것이다. 경제 측면에서는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수출 의존형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 특히 반도체, 자동차, 철강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들이 미국의 견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의 선택 압박이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이 여전히 최대 교역국이지만, 안보적으로는 미국과의 동맹이 핵심이다. 이러한 딜레마 속에서 한국은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면서도 실용적 접근을 통해 국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1970년 이후 50여 년간 한국을 이끌어온 성장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다. 수출 증가 → 투자 확대 → 고용 창출 → 내수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2012년을 기점으로 파열되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시행되면서 한국 기업들의 대중국 해외직접투자가 본격화됐고, 이는 국내 투자와 고용의 감소로 이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면서 국내에는 투자처가 부족해졌고, 이는 부동산으로의 자금 집중을 가속화했다. 동시에 저금리 정책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가계부채가 급격히 증가했다.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0%를 넘어서며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 위기는 가계부채 문제다. 부동산 가격 상승에 힘입어 확대된 가계부채는 이제 상환 능력의 한계를 넘나들고 있다. 특히 금리 인상기에 들어서면서 이자 부담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는 소비 위축으로 직결되고 있다. 두 번째 위기는 내수 침체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이 맞물리면서 내수시장의 성장 동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젊은 층의 소비는 부채 상환과 주거비 부담으로 제약을 받고 있으며, 고령층의 소비는 미래 불안으로 인해 위축되고 있다. 세 번째 위기는 기업 경쟁력 약화다. 중국의 기술 추격과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우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은 샌드위치 상황에 놓여 있다. 더욱이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전환이라는 이중 과제 앞에서 많은 기업들이 방향성을 잃고 있다. 현재 한국이 직면한 상황은 1990년대 일본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부동산 버블 붕괴, 금융기관의 부실, 기업 경쟁력 저하, 내수 침체 등 모든 면에서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일본은 이러한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침체에 빠졌다. 하지만 한국에게는 아직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높은 교육 수준과 기술 혁신 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문화 콘텐츠를 통한 소프트파워도 크게 성장했다. 무엇보다 위기 의식이 일본보다 훨씬 높아 변화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한국 가계의 자산 구성을 보면 부동산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선진국 평균인 30-40%를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러한 부동산 편중 현상은 과거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자산 증대 효과를 가져왔지만, 이제는 오히려 위험 요인이 되고 있다. 앞으로는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 국내에서 해외로의 자산 배분 변화가 필수적이다. 특히 글로벌 분산투자를 통해 환율 리스크를 헤지하고, 성장하는 해외 시장의 수익을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AI와 같은 신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 리터러시 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단순한 예적금에서 벗어나 주식, 채권,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장기적 관점에서의 자산 관리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사업 포트폴리오의 리밸런싱이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 매몰되어 '모든 것을 다 하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비핵심 사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선제적 구조조정이다. 일본처럼 기업 부실이 심화된 후 강제적 구조조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력이 있을 때 미리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AI,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 혁신과 함께, 지속가능경영을 통한 정부의 역할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과거처럼 모든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분야에 선택적으로 집중해야 한다. 특히 AI,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등 신산업 육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규제 개혁을 통해 기업들의 혁신 활동을 뒷받침해야 한다. 상법 개정을 통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금융규제 선진화 등이 시급한 과제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재정 정책 측면에서도 단순한 확대보다는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무분별한 재정 확대보다는, 생산성 향상과 성장 잠재력 확충에 도움이 되는 분야에 전략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대규모 기술혁신은 10-12년 주기로 반복되어왔다. 1986년 미국 저축대출조합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2019년 팬데믹까지, 각각의 위기 이후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기술혁신 물결이 일어났다. 이러한 패턴을 보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AI 혁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디지털 전환 가속화, 각국 정부의 대규모 부양책, 그리고 기술 기업들의 공격적 투자가 맞물리면서 AI 메가사이클이 본격화되고 있다. 초기 AI 기술은 구독형 서비스나 기업용 도구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광고, 전자상거래, 엔터테인먼트 등 일상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력, 통신, 보안, 반도체 등 주변 산업의 수요도 폭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 기술 자체를 개발하는 기업보다, 그 기술을 활용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스마트폰 혁명 때를 돌아보면, 최종 승자는 스마트폰을 만든 회사가 아니라 그것을 플랫폼으로 활용한 기업들이었다. AI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이 이미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이 한국에게 기회가 전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만의 차별화된 AI 전략, 즉 '소버린 AI' 구축이 중요하다. 소버린 AI란 자국의 언어, 문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의미한다. 한국어 처리 능력, K-콘텐츠 데이터, 제조업 노하우 등을 결합하면 충분히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특히 제조업과 AI의 융합 분야에서는 한국이 상당한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조선 등 전통 강점 분야에 AI 기술을 접목하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다.


한국 투자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글로벌 분산투자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충분한 수익률을 확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환율과 정치적 리스크에도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주 중심 지수인 나스닥과 항셍 테크 지수를 코어 포트폴리오로 구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장기 보유 전략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개별 기업보다는 테마형 ETF를 통해 분산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동시에 신흥국 시장에 대한 투자도 고려해야 한다. 인도, 동남아시아, 남미 등은 여전히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선진국 시장과의 상관관계도 상대적으로 낮아 분산투자 효과가 크다. AI 관련 투자의 경우 인프라, 애플리케이션, 밸류체인별로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 인프라 단계에서는 반도체, 클라우드, 통신 등에 주목하고, 애플리케이션 단계에서는 구체적인 서비스와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들에 집중해야 한다. 전통 산업의 경우 디지털 전환과 ESG 대응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해야 한다. 단순히 규모가 큰 기업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을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동산 투자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거주용 부동산은 필수적이지만, 투자용 부동산은 유동성과 수익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특히 상업용 부동산은 원격근무 확산으로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어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가 재편되고,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표면화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새로운 기회의 창이기도 하다. 과거 30년의 성공 방식에 안주한다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 모델을 구축한다면, 향후 30년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가계, 기업, 정부 모든 주체가 각각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가계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기업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며, 정부는 미래 지향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지금부터 3년 안에 확실한 방향성을 잡지 못한다면, 기회의 창은 영영 닫힐 수도 있다. 이제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아니라 전략적 사고와 실행력을 발휘할 때다. 대전환의 시대,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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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쉬운 과학 수업 : 기후물리학 노벨상 수상자들의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과학 18
정완상 지음 / 성림원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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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구 온난화로 이상 기후 변화가 일상시되고 있는 현대에서 어떻게 보면, 기후물리학은 학문적 호기심을 넘어서 인류 생존의 핵심 열쇠가 되었다. 이 분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자연 관찰에서 출발하여, 현대의 정교한 컴퓨터 모델링과 노벨상 수상 연구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발전을 거듭해왔다. 기후를 물리학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지구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벌어지는 에너지의 흐름, 물질의 순환, 그리고 이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수학적 언어로 해독하는 작업이다. 이번에 읽은 기후 물리학은 역사적으로 기후 관련 현상을 우리 인류가 어떻게 이해하였는지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있다. 여러 사진과 도표가 있어 이해하기 쉽다. ^.^


기후물리학의 발전사를 살펴보면, 인류가 어떻게 자연 현상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하여 예측 가능한 과학적 체계를 구축해왔는지 알 수 있다. 인류가 자신이 살고 있는 행성을 이해하고 그 미래를 예측하려는 치열한 노력의 역사이기도 하다. 기상학의 역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이 세계 최초의 기상학 저술이라는 점은 놀랍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미 우주의 구형을 주장했고, 물·불·흙·공기라는 사원소 이론을 통해 자연 현상을 설명하려 했다. 비록 현대적 관점에서는 많은 한계가 있지만, 자연 현상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설명하려는 그의 시도는 기후물리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질학적 상상력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과학의 기본 틀을 놀랍도록 예견했다. 그들은 지구가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직감했고, 이러한 변화의 원리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는 후에 지질학과 기후학이 하나의 통합된 지구시스템 과학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되었다.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은 기후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대륙의 이동이 기후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판게아라는 초대륙의 존재와 그 분열 과정은 지구 기후사를 이해하는 핵심 단서가 되었다. 대륙의 배치가 해류와 대기 순환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이것이 장기간에 걸친 기후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는 인식은 현대 기후물리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빙하기 이론의 발전 역시 마찬가지다. 루이 아가시가 제시한 빙하기 개념은 지구의 기후가 극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기후를 고정불변의 것으로 보던 기존 관점을 뒤바꾸는 혁명적 발견이었다. 빙하기 연구는 장기간에 걸친 기후 변화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을 제공했다.


기후물리학의 발전에서 대기권의 발견과 그 구조 이해는 결정적이었다. 열기구를 타고 대기 상층을 탐험했던 초기 연구자들의 용기 있는 시도는 성층권, 오존층, 열권 등 대기의 층상 구조를 밝혀냈다. 이러한 발견은 지구 대기가 공기 덩어리가 아니라 각각 다른 물리적 특성을 가진 복잡한 시스템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토리첼리와 파스칼의 대기압 연구는 대기를 물리학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공기에 무게가 있다는 발견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이는 대기를 하나의 물리적 시스템으로 인식하게 해주었고, 기압과 기온, 습도 등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탐구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하워드가 구름에 이름을 붙인 것은 기상학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업적이다. 적란운, 층적운, 권운 등으로 구름을 분류한 것은 단순히 명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대기 중의 물리 과정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구름의 형성과 발달, 소멸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강수 예측과 더 나아가 기후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보퍼트의 바람 분류 역시 마찬가지다. 바람의 강도를 체계적으로 분류한 것은 대기 운동을 정량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관측과 분류 작업들이 축적되면서, 기상 현상을 경험적 지식이 아닌 과학적 법칙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온실효과의 과학적 이해는 유니스 푸트의 숨겨진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그녀의 연구는 당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산화탄소가 열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증명한 최초의 시도였다. 이후 틴들이 정밀한 장비로 각종 기체의 적외선 흡수율을 측정한 것은 온실효과를 정량적으로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틴들의 실험 결과는 매우 명확했다. 대기의 주성분인 질소와 산소는 적외선을 거의 흡수하지 못하는 반면, 이산화탄소와 수증기, 메탄은 상당한 양의 적외선을 흡수했다. 이 발견은 대기 중 미량 성분이 지구의 열 평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훗날 인간 활동으로 인한 온실가스 증가가 기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적 기초가 되었다. 아레니우스의 온실효과 계산은 기후물리학사에서 기념비적 업적이다. 그는 수학적 모델을 사용해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가 지구 기온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계산했다. 비록 당시의 계산은 현재 표준에서 보면 단순했지만, 기후 변화를 예측 가능한 물리 현상으로 접근한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아레니우스의 연구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산업 활동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증가가 지구 온난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예측했다. 19세기 말에 이미 인간 활동이 지구 기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과학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는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를 100년 이상 앞서 예견한 놀라운 통찰이었다.


마나베 슈쿠로의 기후모델은 현대 기후물리학의 출발점이다. 그의 모델이 혁신적이었던 이유는 복잡한 기후 시스템을 단순화하면서도 핵심적인 물리법칙은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습도를 일정하게 가정하는 등의 단순화를 통해 계산의 복잡성을 줄이면서도, 수증기의 증발과 응축, 대류와 복사, 기압과 온도의 상호작용을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했다. 이는 기후과학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물리적 시스템으로 보고, 이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마나베의 모델은 지구를 수식으로 설명한 최초의 시도였으며, 이후 모든 기후모델의 원형이 되었다. 마나베의 업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후를 예측 가능한 과학으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 이전까지 기후는 관측하고 기록하는 대상이었지만, 마나베 이후 기후는 예측하고 전망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는 과학적 방법론의 관점에서 볼 때 엄청난 진전이었다. 관측과 기록에서 예측과 검증으로 나아간 것이다. 마나베의 모델이 수십 년이 지나 현대 기후 정책의 근거가 되었다는 사실은 과학의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과학적 예측이 정책 결정과 시민 행동의 기초가 된 것이다. 이는 기후물리학이 단순한 학문적 탐구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실용적 도구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클라우스 하셀만의 연구는 기후물리학에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도입했다. 그는 날씨와 기후의 관계를 확률론적으로 접근했다. 빠르게 변하는 무작위적인 날씨가 누적되어 느리게 변하는 기후를 만들어낸다는 그의 통찰은 혁명적이었다. 이는 기후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로운 수학적 도구를 제공했다. 하셀만의 접근법은 기후 시스템의 본질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기후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복잡하고 비선형적이며,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하셀만은 이러한 복잡성을 확률과 통계의 언어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하셀만의 가장 큰 업적은 불확실성을 과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기후 예측에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이 따른다. 하지만 하셀만은 이 불확실성 안에서도 질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확률론적 접근을 통해 불확실성을 정량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미 있는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과학방법론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진전이었다. 완전한 확실성을 추구하던 고전적 과학에서,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현대적 과학으로의 전환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하셀만의 연구는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잘 알 수는 있다"는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과학 철학을 제시했다.


기후물리학의 역사는 인간의 지적 호기심과 생존 본능이 만나 빚어낸 장대한 서사시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들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현재 전 지구적 협력을 요구하는 기후 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과학이 어떻게 인류 문명의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 동력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아레니우스의 온실효과 계산, 마나베의 기후모델, 하셀만의 확률적 기후모형으로 이어지는 발전 과정은 과학적 방법론의 진화를 보여준다. 관찰에서 실험으로, 실험에서 모델링으로, 결정론적 접근에서 확률론적 접근으로 발전해온 과정은 과학 자체의 성숙을 의미한다. 기후물리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이다. 과학은 답을 제시했고, 이제 인류는 그 답을 바탕으로 행동해야 할 때이다. 기후물리학의 여정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그 다음 장은 우리 모두가 함께 써나가야 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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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코인은 처음이지? - 암호화폐가 처음인 당신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김재광 지음 / 북카라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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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비트코인은 투기 상품을 넘어 전통적인 금융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번에 읽은 김재광님의 <어서 와, 코인은 처음이지?>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일반인들이 암호화폐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암호화폐를 투자 대상만이 아닌 '미래 금융의 변화'로 바라보는 관점에 있다. 저자는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적 개념들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며, 암호화폐의 본질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화폐는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물물교환에서 시작해 금속 화폐, 종이 화폐를 거쳐 이제는 디지털 화폐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암호화폐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제시한 비트코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중앙집권적 통제에서 벗어나 개인 간 직접 거래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비전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화폐와 금융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을 바꾸는 시도였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이 희소성과 내구성으로 가치를 인정받듯, 비트코인 역시 총량 제한과 암호학적 보안을 통해 신뢰를 구축한다. 하지만 금과 달리 비트코인은 물리적 제약 없이 전 세계 어디든 즉시 전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진보된 가치 저장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암호화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블록체인은 중앙 기관 없이도 거래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다. 이는 마치 투명한 장부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검증하고 기록하는 것과 같다. 전통적인 금융 거래에서는 은행이나 정부와 같은 중앙 기관이 거래를 중재하고 보증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에서는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분산된 방식으로 거래를 검증한다. 이는 단일 실패점이 없는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어내며, 동시에 거래 투명성을 극대화한다. 채굴이라는 개념도 흥미롭다.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어 새로운 블록을 생성하고 보상을 받는 과정은 마치 디지털 세계의 금광에서 금을 캐는 것과 유사하다. 이 과정을 통해 네트워크의 보안이 강화되고, 동시에 새로운 코인이 발행된다.

비트코인의 성공 이후 수많은 암호화폐들이 등장했다. 이들을 통칭해 '알트코인'이라고 부르는데, 각각은 고유한 목적과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더리움은 스마트 계약 기능을 통해 블록체인을 단순한 화폐 시스템을 넘어 컴퓨터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이는 마치 인터넷이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발전한 것과 유사하다. 스마트 계약은 특히 주목할 만한 혁신이다. 계약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실행되는 이 시스템은 중간 기관의 개입 없이도 복잡한 거래를 처리할 수 있게 한다. 자동판매기가 동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음료수를 제공하는 것처럼, 스마트 계약은 디지털 세계에서 다양한 조건부 거래를 자동화한다. NFT(Non-Fungible Token)와 DeFi(Decentralized Finance)의 등장은 블록체인 기술의 응용 범위가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보여준다. NFT는 디지털 자산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며, DeFi는 전통적인 금융 서비스를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제공한다. 이는 은행 없는 금융, 중개자 없는 거래의 가능성을 현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 세계가 장미빛 미래만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극심한 가격 변동성, 규제 불확실성, 보안 위험 등 다양한 리스크가 존재한다. 특히 밈코인과 같이 투기적 성격이 강한 암호화폐들은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안길 수 있다. 밈코인의 경우 커뮤니티의 열정과 소셜미디어의 바이럴 효과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펀더멘털보다는 감정과 유행에 좌우되는 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도지코인이 일론 머스크의 트윗 하나로 급등락하는 모습은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준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치를 유지하도록 설계된다. 달러나 유로 같은 법정화폐와 연동되어 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이들 코인은 암호화폐의 결제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을 높인다. 하지만 발행 기관의 신뢰성과 담보 자산의 투명성이라는 새로운 리스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암호화폐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거래소 선택부터 신중해야 한다. 국내 거래소와 해외 거래소 각각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보안 수준과 거래 가능한 코인의 종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코인의 안전한 보관도 중요한 이슈다. 거래소에 맡겨두는 것과 개인 지갑에 보관하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고, 핫 월렛과 콜드 월렛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큰 금액의 코인을 장기 보관할 예정이라면 콜드 월렛 사용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투자 전략에서는 분산투자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비트코인, 이더리움과 같은 주요 코인과 유망한 알트코인을 적절히 배분하고, 전체 자산 중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투자해야 한다.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에 휩쓸려 무리한 투자를 하는 것은 금물이다. 차트 분석 능력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한다. 봉차트, 이동평균선, RSI 등 기본적인 기술적 분석 도구를 이해하고, 손절과 익절의 타이밍을 미리 설정해 두는 것이 좋다. 감정적 판단보다는 사전에 세운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암호화폐의 미래를 전망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기관 투자자들의 참여 확대다. 비트코인 ETF의 승인, 테슬라나 마이크로스트래티지 같은 대기업들의 비트코인 매입은 암호화폐가 주류 금융 자산으로 편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각국 중앙은행들이 추진하고 있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로, 기존 암호화폐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지만 디지털 화폐 생태계 전체의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Web3와 메타버스의 발전도 암호화폐의 활용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가상 세계에서의 경제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디지털 자산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NFT를 통한 디지털 소유권 확립, DeFi를 통한 금융 서비스 혁신 등이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하고 있다.

<어서 와, 코인은 처음이지?>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아는 만큼 보이고, 준비한 만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과 동시에 상당한 위험을 품고 있다. 이 새로운 금융 패러다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현명하게 접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투기나 일확천금의 수단으로 암호화폐에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대신 미래 금융 시스템의 변화를 이해하고,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충분한 학습과 신중한 준비를 통해 이 변화의 물결에 현명하게 올라탈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변화를 외면하기보다는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준비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복잡해 보이기만 했던 암호화폐의 세계가 조금씩 명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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