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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말 없는 마음 - 잃어버린 삶을 견디는 당신을 위한 가장 조용한 위로
정지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것들을 잃는다. 사랑했던 사람, 소중했던 관계, 익숙했던 일상, 그리고 어쩌면 한때의 나 자신까지도. 그 상실의 순간들 앞에서 우리는 말을 잃는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게가 가슴을 짓누르고,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감정들은 마음 한구석에 응어리로 남는다. 하지만 그 침묵이, 그 무거움이 결코 나약함의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상실의 크기는 곧 사랑의 깊이를 반영한다. 아프다는 것은 그만큼 소중했다는 뜻이고, 비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가득 채워져 있었다는 의미다. 누군가는 "시간이 약이야"라고 말하지만, 정작 상실을 겪은 사람은 안다. 시간은 아픔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조금씩 알려줄 뿐이라는 것을. 완전히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괜찮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될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완벽하게 회복될 필요가 없다. 다만 조금씩,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정지현님의 <남겨진 말 없는 마음>을 읽으며 위로를 받아본다.
어느 순간 우리는 자신이 어디에도 쓸모없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 맡았던 역할을 더 이상 하지 못하거나,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였던 내가 이제는 그렇지 않을 때. 그 공허함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쓸모가 사라진다는 것은 새로운 시작의 신호일 수 있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위해 정의되었던 나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순간. 타인의 필요가 아닌 나 자신의 본질로 빛날 수 있는 기회다. 우리는 어떤 자리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각자만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크게 빛나지 않아도 괜찮다. 작은 촛불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것도 충분히 아름답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살기보다, 나다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빛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종종 '사는 맛'과 '사는 힘'을 혼동한다. 맛있는 음식,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작은 성취들.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사는 맛을 준다. 일상을 잠시 멈추고 "아, 이래서 살아가는구나" 싶은 순간들. 그것은 삶에 향기를 더하는 양념과 같다. 하지만 사는 힘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하루를 시작하게 하는 것, 모든 것이 무의미해 보일 때도 한 걸음 내딛게 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작동하는 엔진. 때로는 그 엔진이 꺼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완전히 멈춘 것은 아니다. 아주 낮은 회전수로라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사는 맛을 잃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니다. 사는 힘은 여전히 당신 안에 있다. 지금은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언젠가 다시 당신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때까지, 그저 천천히 숨 쉬며 하루를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순간이 있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는데 나만 그 자리에 얼어붙은 것 같은 느낌. 다른 사람들은 웃고, 일하고, 살아가는데 나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할 뿐. 참여하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하는 자신이 낯설고 무력하다. 하지만 남겨진 삶은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느끼지 못할지라도, 당신의 하루는 여전히 흐르고 있다. 아침이 오고, 해가 지고, 계절이 바뀐다.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당신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느껴지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도 좋다. 그저 시간이 흐르도록 두는 것, 그 자체로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용기일 수 있다. 무너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충분히 강하다. 불쑥 밀려오는 무력감.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고이는 순간들. 우리는 그런 감정들을 빨리 털어내려고 한다. 강해지려고, 정상으로 돌아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그 감정들을 밀어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조용히 앉아 나를 다독이는 시간이다. "왜 이렇게 약할까"가 아니라 "많이 힘들었구나"라고 말해주는 것. 감정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그것이 존재할 권리를 인정해 주는 것. 슬픔을 느낄 자격, 화를 낼 권리, 무너질 순간들. 그 모든 것이 나의 것이다. 괜찮지 않은 상태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회복의 시작이다.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아도 괜찮다. 여전히 아픈 부분이 남아 있어도 괜찮다. 언젠가는 그 괜찮지 않음조차도 나를 이해하고 품는 방식이 될 것이다. 상처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날,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나 자신이 된다.
누군가를 위로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힘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너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아". 우리는 선의로 이런 말들을 건네지만, 때로 그 말들은 상처가 되어 돌아온다. 진정한 위로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 그 사람의 고통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많이 아프겠다"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것. 그것이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을 위로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타인의 위로만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것. "잘하고 있어", "충분히 노력했어", "오늘도 버텨줘서 고마워". 나의 아픔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다. 내가 나를 돌보는 법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회복될 수 있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살아 있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고, 하루가 지나간다. 때로는 그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만큼 무감각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 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구나." 이 깨달음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다.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 창밖의 햇살, 누군가의 미소. 그 순간, 우리는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 삶의 감각을 되찾는다. 회복은 극적인 변화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순간들의 축적이다. 오늘 조금 덜 아팠던 것, 어제보다 조금 더 웃을 수 있었던 것.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우리를 조금씩 살아 있게 한다. 상실은 끝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형태의 삶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라도, 새로운 나로 살아갈 수는 있다. 상처와 함께, 아픔과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용감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