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2025년 가을, 거리를 걸으며 마스크를 쓴 사람을 찾기란 이제 쉽지 않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마스크 없이 외출하는 것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점점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는 놀라울 만큼 빠르게 일상을 되찾았고, 그만큼 빠르게 그 시절을 잊어가고 있다. 하지만 망각이 항상 치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 망각은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마저 함께 지워버린다. 쾀멘의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는 팬데믹의 고통은 기억하면서도, 정작 그 고통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너무 쉽게 내려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그게 뭐가 중요해? 이미 지나간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팬데믹이 한창이던 시기에도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는 일에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당장 번지는 불을 끄기도 바쁜데, 불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따지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근시안적 사고다. 화재의 원인을 규명하지 않으면 같은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팬데믹의 기원을 밝히는 일은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이나 정치적 비난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 점에서 쾀멘이 던진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또 절박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로르샤흐 테스트에 대한 비유였다. “같은 증거를 보고도 어떤 사람은 박쥐를 보고, 어떤 사람은 실험실을 본다.” 코로나19 기원 논쟁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실험실 유출설은 처음부터 강력한 직관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한에 바이러스 연구소가 있었고, 그곳에서 최초의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인과관계를 상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중국 정부의 불투명한 태도와 정보 통제는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고의든 실수든 인간이 만든 재앙이라는 서사는 분노의 대상을 명확히 해준다는 점에서 감정적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반면 자연 기원설은 상대적으로 덜 드라마틱하다. 야생동물에서 자연스럽게 진화한 바이러스가 우연히 인간에게 넘어왔다는 설명은 덜 선명하고, 책임 소재도 모호하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다. 하지만 과학적 증거들은 지속적으로 이쪽을 가리켜왔다.
문제는 우리 시대가 증거보다 서사를 더 갈망한다는 점이다. SNS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정보 환경에서 복잡한 과학적 논증보다 명쾌한 음모론이 더 빨리, 더 넓게 퍼진다. 쾀멘이 이 책에서 끝까지 과학적 엄밀성을 유지하려 애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감정과 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과학의 영역을 지켜내지 않으면, 우리는 진실에서 더욱 멀어질 뿐이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저자는 본래 생물학자가 아니라 문학 전공자였다고 한다. 윌리엄 포크너를 연구하던 사람이 바이러스를 추적하는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중요한 시사점을 담고 있다. 복잡한 과학적 사실을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데이터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읽고, 해석하고, 전달할 수 있는 서사적 능력이 필요하다.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진정한 대중적 이해가 가능해진다.
과학자들은 어떤 것도 100퍼센트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은 이 점을 명확히 짚어낸다. 중국 당국의 비협조와 정보 은폐도 문제지만, 이는 과학의 본성이기도 하다. 과학은 언제나 잠정적이며, 현재의 증거로 최선의 판단을 내릴 뿐이다. 이러한 태도는 때로 답답하게 느껴진다. 대중은 명확한 답을 원한다. 흑이냐 백이냐, 실험실이냐 자연이냐. 하지만 현실은 거의 언제나 회색 지대에 있다. 쾀멘이 제시하는 것도 확정적 결론이 아니라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박쥐 등에서 재조합되어 만들어진 바이러스가 동물이나 냉동 체인을 통해 화난수산시장을 중심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확실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쾀멘의 태도가 빛을 발한다. 그는 상대주의나 회의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로르샤흐 테스트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 보일 수 있지만, 잉크 얼룩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증거는 존재한다. 그 증거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는 너무 자주 명쾌한 답을 요구하고, 그것을 제공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을 무능하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적 정직성의 표현이다. 확신이 없는데도 확신하는 척하는 것이 오히려 비과학적이다. 코로나19 기원 논쟁이 케네디 암살 사건처럼 영원히 논란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쾀멘의 지적은 씁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추적을 멈춰서는 안 된다. 완벽한 답을 얻을 수 없더라도,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좁혀가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다음 팬데믹을 대비하는 유일한 길이다.
팬데믹이 지나간 지금,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빨리 잊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기억하고 배울 것인가. 전자는 쉽고 편하다. 후자는 불편하고 때로 고통스럽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배우지 않는 자들에게만... 쾀멘의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결국 하나다. 과학적 사고와 품위 있는 판단을 지켜내는 것. 증거를 존중하고, 불확실성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것. 정치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우리 시대처럼 확증편향과 정보 과잉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다음 팬데믹이 왔을 때,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현명하게 대응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코로나19는 끝났지만, 코로나19가 남긴 질문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내서는 안 된다. 그 질문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이 우리가 팬데믹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쾀멘의 책은 그 씨름을 위한 훌륭한 가이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여정에 동참해야 한다.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과학자든 인문학자든, 우리 모두는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