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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인싸이츠 - 통찰력을 기르는, 사회과학 핵심 개념 70
최병찬 지음 / JH Press / 2026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의사소통', '취업', '시험'이라는 답을 떠올린다. 하지만 언어는 세계를 이해하는 프레임이자, 생각을 구조화하는 틀이며, 타인과 연결되는 매개체다. 그런데 우리의 영어 학습은 언제부터인가 문법 규칙을 암기하고, 단어를 외우며, 문제를 푸는 기계적 반복에 갇혀왔다. 마치 악보만 보며 음악의 감동을 이해하려는 것처럼, 우리는 언어의 껍데기만 붙잡고 그 안의 세계는 놓쳐왔다. 진정한 언어 능력은 그 문장이 담고 있는 세계관을 읽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 실력 ' 이 아니라 영어를 통한 ' 통찰력 ' 이다. 문법과 어휘는 그 통찰에 이르는 발판일 뿐, 목적지가 아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습자는 발판 위에서 평생을 맴돈다. 단어를 수천 개 외웠지만 정작 그 단어들이 구성하는 논리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문법을 완벽히 이해했지만 글쓴이의 의도와 시대적 맥락은 놓친다. 이것은 영어 학습의 실패가 아니라, 학습 설계의 근본적인 오류에서 비롯된 문제다.
사회과학적 개념과 영어 학습이 만날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 보면 이 둘은 별개의 영역처럼 보인다. 하나는 지식의 영역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의 영역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이분법이다. 언어는 지식을 담는 그릇이며, 지식은 언어를 통해 구조화된다. 둘은 분리될 수 없는 상호작용의 관계다. 진정한 학습은 선형적이지 않다. 그것은 나선의 궤적을 그리며 깊어지고, 확장되며, 통합된다. 개념을 암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개념이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고,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며, 왜 중요한지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책에서 소개하는 설명-사례-문제-해설-글쓰기로 이어지는 5단계 구조는 지식의 내면화를 위한 치밀한 설계다. 먼저 개념의 핵심을 명료하게 이해하고(설명),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구체적 사례를 통해 확인한다(사례). 이어서 학습자 스스로 그 개념을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 하고(문제), 자신의 사고 과정을 점검하며(해설), 마지막으로 배운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한다(글쓰기). 이 과정에서 학습자는 '앎'에서 '이해'로, '이해'에서 '적용'으로, 적용'에서 '창조'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Confirmation bias(확증 편향)를 배운다고 하자. 정의를 아는 것(앎)과, 미디어 소비와 정치적 양극화의 관계 속에서 확증편향의 메커니즘을 이해 하는 것(이해)은 다른 차원이다. 또한 자신의 정보 소비 패턴을 돌아보며 확증편향의 영향을 발견하는 것(적용)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비판적 사고의 전략을 스스로 구축하는 것(창조)은 또 다른 비약이다. 글쓰기 단계는 특히 중요하다. 배운 내용을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학습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이해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된다. 리처드 파인만이 말했듯, 무언가를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은 그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글쓰기는 이해의 시험대이자, 생각을 정교화하는 도구다. 더 나아가 이것은 자기소개서, 면접, 논술로 이어지는 실용적 역량의 토대가 된 다. 개념을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고,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해석하며,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을 때, 지식은 비로소 살아있는 힘이 된다.
SAT, TOEFL, TEPS 같은 공인 영어 시험은 많은 학습자에게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그러나 이 시험들을 '통과해야 할 장애물'로 보는 순간, 학습은 기계적 훈련으로 전락한다. 중요한 것은 시험 준비 과정을 진정한 역량 개발의 기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책의 지문들은 우수한 학습 자료다. 다양한 분야의 최신 논의를 반영하고, 복잡한 논리 구조를 담고 있다. 문제 는 우리가 이 지문들을 '문제를 풀기 위한 재료'로만 취급한다는 점이다. 만약 SAT 독해 지문을 통해 기후변화의 경제학을, TOEFL 리딩을 통해 인지심리학의 최신 연구를, TEPS 지문을 통해 정치철학의 핵심 논쟁을 배운다면 어떨까? 시험 준비는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고난도 문제는 변별력을 위한 함정이 아니라, 사고력의 한계를 확장 하는 도전이다. 복잡한 비교 분석 문제는 여러 관점을 동시에 고려하는 능력을 키우고, 함축적 의미를 파악하는 문제는 텍스트의 이면을 읽는 훈련이 되며, 필자의 태도를 추론하는 문제는 논증의 수사적 전략을 분석하는 기회가 된다. 이렇게 접근할 때, 시험 준비는 지적 성장과 분리되지 않는다. 점수는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부산물이 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위험 중 하나는 편협한 시각이다. 특정 분야의 지식만 깊고, 특정 이념만 신봉하며, 특정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는 것은 위험하다. 복잡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은 단일한 렌즈로는 파악될 수 없다. 경제 문제는 정치적 차원을 갖고, 정치적 결정은 심리적 요인에 영향받으며, 사회 현상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경제학, 정치학, 사회 학, 심리학, 철학, 미디어학, 언어학을 아우르는 다학제적 접근은 이러한 복잡성을 다루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예를 들어 '가짜 뉴스' 현상을 이해하려면, 미디어 경제학(클릭베이트의 경제적 동인), 인지심리학(확증편향과 가용성 휴리스틱), 정치학(정치적 양극화), 사회학(신뢰의 위기), 기술론(알고리즘과 필터버블)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어느 하나의 관점 만으로는 이 현상의 복잡성을 충분히 포착할 수 없다. 균형 잡힌 시각은 또한 비판적 사고의 토대다. 한 이론이나 관점에 과도하게 의존할 때, 우리는 맹점을 갖게 된다. 자유시장 경제학만 배운 사람은 시장실패를 간과하고, 구조주의에만 경도 된 사람은 개인의 행위성을 무시한다.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그들 간의 긴장과 대화를 이해할 때, 우리는 이념적 독단에 서 벗어나 현실의 복잡성에 더욱 충실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