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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미래 - AI라는 유혹적 글쓰기 도구의 등장, 그 이후
나오미 배런 지음, 배동근 옮김, 엄기호 해제 / 북트리거 / 2025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금융관련 기사를 챗GPT를 이용해서 실시간으로 제공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생성형 인공지능 AI가 신문시자와 문학의 역역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생성형 인공지능의 영향은 어떻게 될까? 이번에 이러한 생성형 인공지능 AI의 쓰기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에 관하여 상세 분석 이야기 해 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나오미 배런의 <쓰기의 미래>였다.
글쓰기는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언어를 통해 자신을 세계에 위치시키는 행위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에서부터 현대 디지털 시대의 블로그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는 인류의 역사를 꿰뚫는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문화적 실천이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일기를 쓰고, 회고록을 남기는 일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삶을 반추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며 시대를 증언하는 작업이다. 또한 글쓰기는 인간의 내면을 외화하는 창이며, 사유의 도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글을 쓸 때, 우리는 알고 있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쓰는 과정을 통해 생각을 정련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생각이 글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가 생각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생각하는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선언이며, 글쓰기는 곧 인간됨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AI는 이 과정을 데이터 처리 문제로 환원한다. 수많은 텍스트를 학습하여 가장 가능성 높은 단어를 확률적으로 배열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는 ‘나’의 존재나 삶의 맥락이 빠져 있다. AI의 글쓰기는 정교하고 유창할 수는 있지만, ‘자기 삶의 반영’이라는 인간 글쓰기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을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대에 다시 묻게 된다. 인간의 글쓰기란 도대체 무엇이었으며, 지금은 어떤 의미로 남아야 하는가?
생성형 AI는 그야말로 '쓰는 기계'다. GPT-4는 그 어떤 인간보다 더 빠르게, 논리적으로, 심지어 감성적으로 보이는 글을 생성할 수 있다. 언론사는 이미 AI에게 속보 작성의 상당 부분을 맡기고 있으며, 대학에서는 AI를 활용한 과제 제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심지어 논문을 AI가 스스로 작성하고, 인간은 최소한의 수정을 가해 출판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묻게 된다. 그렇다면 글쓰기 능력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더 이상 인간의 고유 능력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교육하고 평가해야 하는가? AI의 글쓰기 능력은 모방이나 서포트를 넘어 점점 창작의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인간 중심적 창작관을 흔든다. 예를 들어, 예술에서 ‘창작’은 인간의 고통, 역사, 감정의 표현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AI가 시를 짓고, 소설의 플롯을 구성하며, 심지어 감동적인 문장을 구성해낼 때, 우리는 창작과 모방의 경계를 다시 그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때 중요한 것은, AI가 창작의 외형을 흉내 내더라도 그 안에 ‘살아 있는 경험’이나 ‘역사적 맥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들어,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참전 군인이 전쟁에 대해 쓰는 글과, AI가 전쟁 관련 기록을 분석해 생성한 글은 문장 수준에서는 비슷할 수 있다. 그러나 두 글이 전달하는 감정의 무게, 기억의 진실성, 목소리의 윤리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따라서 인간의 글쓰기는 단지 언어적 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살아낸 자만이 쓸 수 있는 목소리의 문제이다.
AI가 글을 써주는 세상에서 인간은 더 이상 글쓰기 능력을 유지하려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계산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에서 암산을 하지 않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글쓰기와 문해력은 인간의 사고력, 비판적 판단력, 공감 능력과 직결되어 있다. 이 능력을 상실하면,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듣고,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표현하는 데 치명적인 약점을 안게 된다. 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은 AI 도구를 사용해 요약, 번역, 심지어 창작물까지 의존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으며, 점차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나아가 기업 채용에서조차 ‘쓰기 능력’을 중요하게 보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문해력의 쇠퇴는 단순히 교육적 위기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책임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근본 조건의 해체다. 나오미 배런은 이 지점을 강하게 경고한다. 글을 쓰지 않는 인간은 생각하지 않는 인간이 되며, 그것은 민주주의와 사회적 공존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이른바 ‘AI 도구를 통한 편리한 삶’은 실은 인간의 사고 근육을 서서히 마비시키는 독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묻게 된다. 편리함을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가? 글쓰기가 우리에게 주는 내면의 힘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AI가 쓴 글을 읽으며 감탄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누군가의 삶에서 비롯된 언어는 아니다.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정제해 글로 남기며, 공동체와 연결되고, 미래 세대에게 증언을 남긴다. 글쓰기는 인간의 사유를 형성하고, 세계에 대한 감각을 확장시키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그 자체다. AI는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 여정 자체를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저자는 이렇게 묻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것인가?” 그리고 나는 여기에 이렇게 답하고 싶다. 우리는 글을 써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AI와 함께 글을 쓴다고 해도, 그 중심에는 반드시 살아 있는 목소리, 인간의 감각, 존재의 진실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인간만이 쓸 수 있는 글이며, 앞으로도 우리가 쓰기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