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AI 시대를 산다면 - 2500년을 초월하는 논어 속 빛나는 가르침
김준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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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류는 지금 역사적인 문명의 전환점에 서 있다. 2500년 전 공자가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듯이, 우리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물결 속에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근본적인 질문은 같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기술 문명이 급변하는 시대마다 인간은 스스로를 재정의해왔다. 철기의 등장으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을 때 공자는 그 변화 속에서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찾고자 했다. 오늘날 인공지능의 발전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의사결정을 보조하며, 심지어 창작 영역에서도 활약하면서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공자는 인간다움을'인(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피어나는 사랑과 도리를 의미한다. AI 시대에 이 '인'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진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공감과 배려, 관계 맺음의 능력이야 말로 우리를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윤리적 판단의 책임은 더욱 중요해진다. 공자는 "의로움을 보고도 행동하지 않음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이는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다.자율주행차의 트롤리 딜레마, AI 무기 개발, 개인정보 활용의 경계 등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적 문제들은 누군가의 용기 있는 결단을 필요로 한다. 기술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알면서도 침묵하는 것은 공자가 꾸짖은 '용기 없음'과 다르지 않다. 우리 사회는 솔직한 사람에게 관대하지 않다. 소속된 집단과 다른 의견을 표하면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특히 지식인과 과학자들은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AI 개발자와 연구자들은 더욱 엄격한 윤리적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또한 공자가 강조한 '정명(正名)'—이름을 바로잡는 일—도 AI 시대에 중요하다. 박정희 정권이 독재 체제를 구축하면서 '유신(維新)'이라는 미명을 붙인 것처럼, 오늘날에도 AI 기술의 부작용이나 위험성을 '혁신'이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기술의 본질과 영향력을 명확히 인식하고 올바르게 이름 붙이는 일이 필요하다.

오늘날 인간은 다른 인간 뿐만 아니라 기술, 기계, 정책과 같은 비인간적 요소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이제 우리 신체의 일부처럼 되어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공자는 현대 과학기술을 알지 못했지만, 그가 강조한 '예(禮)'의 개념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제공한다. '예'는 상호 존중과 조화로운 관계 맺음의 원리다. 인간이 AI와 관계를 맺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AI가 인간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되, 인간이 AI에 종속되거나 AI가 인간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적절한 경계를 설정해야 한다. AI 비서와 대화할 때도, 자율주행차를 이용할 때도,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때도 우리는 그 관계의 주도권을 잃지 말아야 한다. 공자가 말한 '예'의 원리는 인간과 AI 사이의 건강한 관계 설정에 중요한 지침이 될 수 있다.

AI 시대에 '배움'의 개념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단순 암기나 지식 축적의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정보를 분석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며, 새로운 관점에서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특히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정확하고 적합한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질문이 있어야 좋은 답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공자가 강조한 '학이사(學而思)'와 '사이학(思而學)'의 태도와 연결된다. 배움과 사고는 분리될 수 없다. 지식을 얻는 동시에 그것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생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공자는 또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메타인지 능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이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진정한 앎으로 나아갈 수 있다. AI 시대에 이러한 메타인지는 더욱 중요하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가 제공하는 정보가 항상 정확하지 않을 수 있으며, 우리는 그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평가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맹목적으로 AI의 판단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AI와 인간의 균형점 찾기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중(中)'을 찾는 일이 더욱 중요해진다. '중'이란 극단 사이의 중간점이 아니라,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의미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AI의 판단은 흔들리거나 오염되지 않을 것이므로, '중을 잡는' 일을 AI에 맡기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최적의 지점'은 성과나 이익만의 최대화되는 지점이 아니다. 설령 물질적인 손해를 볼지라도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AI를 통해 '중'을 모색하려면, 초기 단계부터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를 AI에 학습시켜야 한다. AI가 스스로 그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최적의 지점이라고 판단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초지능이 출현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인간을 위한 '중'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2500년 전 공자가 던진 질문—"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는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를 던져준다. 오히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일수록 이 질문은 더욱 중요해진다. 공자가 AI 시대를 살았다면, 그는 기술의 발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 기술이 '인(仁)'의 실현에 기여하는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지를 끊임없이 물었을 것이다.우리도 AI 기술을 발전시키되, 그것이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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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 - 우리 안의 트라우마 마주하기, 치유하기
김선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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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여러 현대전쟁을 겪으면서 트라우마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현대 정신의학의 발전과 함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라는 진단명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는 개인이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장기적인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설명한다. PTSD는 전투, 폭력,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나타나는 증상으로, 기억의 플래시백, 악몽, 불안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겪은 현대인은 트라우마가 반드시 장기적인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사회적으로도 널리 퍼진 인식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폭력적이고 치명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 중 다수가 PTSD 증상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많은 사람들은 트라우마성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감소하거나, 처음에는 약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다가 나중에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많은 스트레스에 대해서 해소하지 못하고 트라우마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번에 이러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심리학을 자세히 설명해 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김선현님의 <트라우마>였다. 트라우마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트라우마는 개인이나 집단이 경험한 심리적 외상으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증상과 감정적 고통이다. 이러한 외상 사건은 전쟁, 자연재해, 성폭력, 가정폭력 등 여러 형태로 나타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트라우마의 정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해왔으며, 특히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그 개념이 구체화되었다. 초기에는 여성의 심리 장애인 히스테리아에 대한 연구가 있었고, 이후 전투신경증과 가정폭력 연구가 이어졌다. 이러한 연구들은 트라우마가 개인만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트라우마의 치유는 피해자의 안전이 확보된 후, 기억하고 애도하며 일상으로의 복귀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생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래시백 현상은 트라우마의 임상적 특징 중 하나로, 특정 자극이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불러일으킬 때 발생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현재의 자신이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러한 인식은 피해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트라우마는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과 맞물려 있다. 많은 한국인은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가 부족하다고 느끼며, 이는 정서적 고립을 초래한다. 이러한 고립은 개인의 정신적 취약성을 증가시키고, 트라우마 치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청소년들은 성적, 진학, 친구 관계에서의 스트레스와 가정 내 문제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걸쳐 관계의 중요성을 재조명하고, 서로를 지지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접근 방식은 다양하다. 심리치료, 상담, 그리고 사회적 지지망의 구축이 그 예다. 특히, 상처를 입은 치유자라는 개념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즉, 자신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고 이를 극복한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치유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지지를 제공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치유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치유의 과정을 거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의 트라우마 치유는 역사적 맥락에서도 중요하다. 국가폭력과 같은 사건들은 개인의 트라우마를 넘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없다면, 사회는 지속적인 불신과 갈등을 겪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치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정의와 회복의 과정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교육과 인식이 필요하며,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트라우마는 개인의 심리적 고통을 넘어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치유 과정은 안전한 환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통해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과거의 아픔을 인정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평화와 정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개인만의 치유를 넘어, 사회 전체의 건강과 복지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트라우마 치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작년 불법 계엄으로 우리 사회는 또 한번의 커다란 국가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치료하기 위한 과정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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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대화감수성 수업
신동일 지음 / CRETA(크레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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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요즈음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감수성이란 무엇인가? 언어감수성은 언어를 정확하게 사용하는 능력을 넘어, 상대방의 감정과 상황을 고려하여 말을 주고받는 능력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감정을 이해하며, 언어를 통해 진정한 소통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능력이다. 언어 감수성이 현대 사회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는 개인화와 디지털 소통이 주를 이루는 시대에 단절과 불통을 넘어 진정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언어 감수성이라는 개념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언어 감수성은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데 필수적일 것이다. 일상 언어에서도 상대방의 기분과 상황을 고려한 말 한마디가 관계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궁극적으로는 행복한 삶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들은 그 안에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언어는쓰이는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작은 언어적 차이가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번에 관련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신동일님의 <모두를 위한 감수성 수업>이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출근길 익숙한 바리스타와의 짧은 인사부터, 회의실에서 동료들과 나누는 토론,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시간의 일상 대화까지.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러한 대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는가? 대화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표현이자 관계 형성의 핵심 통로이다. 대화의 본질은 상호작용과 의미 협상에 있다. 우리가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그루트를 사랑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그루트는"나는 그루트야"라는 단 한 문장만 반복하지만, 그 안에서 풍부한 감정과 의도를 전달한다. 그루트의 언어는 문법적으로 빈약할지 모르나, 대화적 관점에서는 충만하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화에 참여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며, 의미를 만들어낸다. 인간다운 대화에는 멈춤과 망설임, 반복과 겹침이 자연스럽게 포함된다. 완벽하게 구조화된 문장이나 논리적 일관성보다는, 서로를 향한 관심과 배려가 대화를 이끈다. 빅터의 사례처럼, 대화를 잘한다는 것은 언어적 유창함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말차례를 적절히 교환하며, 비언어적 신호를 활용하는 능력에 더 가깝다.

현대 사회에서 대화는 점차 '맥도날드화'되고 있다. 효율성과 계량화를 중시하는 사회적 압력이 자연스러운 대화의 본질을 왜곡한다. 언어교육 현장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문법과 어휘를 중심으로 한 표준화된 교육과정, 정답을 찾아내는 형태의 평가는 대화의 즉흥성과 창의성을 억압한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나 영어 학습 앱들은 효율성과 편의성을 내세우지만, 진정한 대화 능력 함양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학습자는 고객처럼 취급되며,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으로 학습이 끝난다고 오해한다. 자기주도적 학습의 미명 하에, 대화의 사회적 측면은 무시된다.특히 어린이 언어교육에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아이들이 자연스러운 대화를 배울 기회를 잃고, 참조물 중심의 인위적인 의사소통만 경험한다면, 이는 그들의 언어 발달 뿐만 아니라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대화는 인간 성장의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참조물에 기반한 의사소통은 보이스피싱과 같은 사기 수법에 쉽게 노출될 위험이 있다. 범죄자들은 피해자가 참조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하여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를 가한다. 이처럼 참조물 기반 의사소통에만 의존할 경우, 우리는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능력을 상실할 수 있다.대화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대화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낯설거나 부담스러운 참조물 때문일 수 있다. 따라서 안전하고 즉흥적인 비참조적 의사소통 경험이 중요하다. 이러한 경험은 대화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형성하고, 더 복잡한 대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준다.

기존의 언어 습득 모델은 '입력-저장-출력'의 선형적 과정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대화의 복잡성과 다차원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트랜스링구얼 접근법은 대화를 머릿속에 저장된 지식만으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아닌, 다양한 공간적, 맥락적 자원을 활용하는 창의적 행위로 바라본다. 대화는 아상블라주나브리콜라주와 같은 예술 작업에 비유될 수 있다. 다양한 요소들을 수집하고 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화는 단순한 재현이 아닌 수행적 행위이다. 대화는 무언가를 위해 실행될 때만 말차례가 바뀌고, 화제가 발전하며, 상호 이해가 깊어진다.

​대화보다, 다중언어 자원을 활용한 열린 대화가 더 풍요롭고 인간적일 수 있다. 서로에게 관대하고 협력적인 태도만 있다면, 언어적 한계를 넘어 의미 있는 소통이 가능하다. 이러한 트랜스링구얼 대화는 현대 사회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반영하며, 보다 포용적인 소통 문화를 만들어낸다.AI와 대화의 미래: 기술과 인간성의 균형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대화형 AI가 일상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AI는 자연스러운 대화의 협력자가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AI 대화는 주로 키워드(참조물)에 의존하는 목적지향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반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비참조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우며, 정서적 교감만으로도 시작되고 유지될 수 있다. AI와의 상호작용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기술의 편의성과 인간 대화의 본질적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AI가 제공하는 효율성과 정확성을 활용하되, 인간 대화의 즉흥성, 창의성, 정서적 교류를 잃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대화 감수성은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윤리적 태도의 기반이 되며, 다양성과 차이가 공존하는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역량이다. 맥도날드화된 효율성과 인위적 표준화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로 참여할 수 있는 대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대화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표현이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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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다정하게, 세상에는 단호하게
이정숙 지음 / 해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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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 오늘도. 내일도 너에게 좀 더 다정한 하루를 선물하자.“ 힐링을 주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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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다정하게, 세상에는 단호하게
이정숙 지음 / 해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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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 아침, 거울 앞에서 멈춰 섰다. 평소라면 눈가의 주름이나 목의 처짐을 발견하고 한숨부터 내쉬었을 테지만, 오늘은 달랐다. 물끄러미 나를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이 얼굴로 몇 년을 살아왔지? 이 몸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뎌왔을까?’…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자신을 맞추느라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너무 엄격하다. 특히 여성에게 이런 압력은 더욱 가혹하다. 젊음을 유지하라는 미의식, 완벽한 엄마이자 직장인이 되라는 역할 기대, 늘 친절하고 상냥해야 한다는 감정 노동까지. 이 모든 기대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오늘은 이런 자기 검열의 사슬을 잠시 풀어보기로 했다.

    거울 속 내 모습에게 말했다. "너 참 잘 해왔어. 그동안 수고 많았어."타인과의 비교, 그 헛된 경주지하철에서 마주친 광고판의 20대 모델들, SNS에 가득한 완벽한 일상들, 동창회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성공 스토리. 이런 순간마다 자신을 비교의 저울 위에 올려놓곤 했다. 나보다 더 날씬한, 더 부유한, 더 성공한, 더 행복해 보이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는 습관은 얼마나 많은 기쁨을 앗아갔을까. 저자의 경우, 특히 직장에서 이런 비교가 더욱 심했다. 아나운서로 일하며 매일 카메라 앞에 서야 했기에, 새로 들어온 젊은 후배들과 자연스럽게 비교되었다. 그들의 매끈한 피부와 트렌디한 패션 감각을 보며 초조해졌고, 그 결과 옷장은 나이보다 어려 보이려는 필사적인 시도로 구매한 옷들로 채워졌다. 입어보지도 않고 태그만 달랑 붙은 채로 방치된 옷들이 불안과 허영심의 증거처럼 쌓여갔다. 하지만 저자는 점점 깨닫게 된다. 타인과의 비교는 절대 끝이 없는 게임이라는 것을. 언제나 나보다 어떤 면에서 더 나은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반대로 나보다 열등한 처지에 있는 이들도 있다. 이런 비교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인생에는 '만약에'라는 가정이 수없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내가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좀 더 용기를 냈더라면,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후회의 목록은 끝이 없다. 900억이 넘는 가치로 뛰어오른 땅을 놓친 이야기처럼, 우리는 종종 인생의 '놓친 기회'를 붙잡고 괴로워하곤 한다. 그 땅을 팔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부자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고… 미련은 과거에 묶여 있는 동안, 현재의 행복과 미래의 가능성을 놓치게 만든다. 오늘의 나는 과거의 선택들이 만들어낸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그 모든 결정들, 심지어 실수까지도 지금의 나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는 일은, 나에게 다정해지는 첫걸음이다.

    우리 사회는 외로움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친다. 특히 여성에게 혼자 있는 삶은 종종 '미완성'이나 '실패'로 취급된다. 하지만 함께함과 홀로 있음은 각각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있다. 함께하는 삶은 따뜻한 체온과 공유된 웃음, 서로에게 기대는 안정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유의 제약과 끊임없는 배려, 돌봄 노동을 요구한다. 반면 홀로 있는 시간은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오롯이 자신의 욕구에 집중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완벽한 동반자를 찾는 데 집착하기보다, 때로는 혼자인 시간을 충만하게 누리는 법을 배우는 것. 산책길에 느끼는 바람의 감촉, 미술관에서 그림과 나누는 조용한 대화,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온전히 작품에 빠져드는 순간. 이런 경험들은 '같이'가 아닌 '혼자'이기에 더욱 특별할 수 있다. 외로움을 부정하거나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용기. 그것이야말로 자신을 향한 최고의 다정함이 아닐까.

    우리는 종종 자기 자신을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어낸다. 특히 다른 이들을 챙기고 돌보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에게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아이들의 도시락을 정성껏 꾸미면서도 자신의 끼니는 대충 해결하고, 가족을 위해 좋은 옷을 사주면서도 자신의 낡은 옷은 그대로 입는다.자기 자신에게 작은 배려를 베푸는 일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타인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길 수 있다.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지 않고 식탁에 앉아 음식을 음미하며 먹는 시간.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편안한 잠옷 한 벌. 오래된 티셔츠와 함께 버리는 '언젠가 입겠지'라는 미련. 이런 소소한 자기 배려가 나를 건강하게 지켜준다. 나를 귀한 손님처럼 대접하는 습관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오랜 시간 자신을 뒷전으로 미뤄온 이들에게는 특히 낯설고 어색한 연습일 것이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오늘 점심, 혼자라도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하는 것. 오래된 속옷 한 벌을 버리고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 이런 작은 실천이 쌓여 자신을 향한 다정함의 습관이 된다.

    우리는 시간의 부족을 핑계로 소중한 추억을 만들 기회를 놓치곤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언젠가'라는 모호한 미래로 미루는 동안, 그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는다.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후회처럼, 우리는 종종 사랑하는 이들이 떠난 후에야 함께했던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샤를 오귀스탱생트뵈브의 말처럼, 추억은 싱싱할 때 심어두어야 뿌리내린다.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기쁨, 지금 나눌 수 있는 따뜻한 대화, 함께 걸을 수 있는 가까운 산책로.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모여 삶의 풍요로운 추억이 된다. 나 자신과의 추억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에게 선물하는 여행,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 자신의 성장을 축하하는 순간들. 이런 추억들은 앞으로의 삶을 지탱하는 내면의 힘이 된다.

    오늘처럼, 조금씩 나에게 다정한 하루를 보내다 보면 언젠가는 편견의 사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밤, 나는 나 자신에게 속삭인다."수고했어, 오늘도. 내일도 너에게 좀 더 다정한 하루를 선물하자.“ 힐링을 주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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