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전 부사장이 말하는 K-반도체 초격차전략 - 기술이 국가 안보를 좌우하는 시대, K-반도체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병철 지음 / 더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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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는 이제 외교이며, 안보이고, 국가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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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전 부사장이 말하는 K-반도체 초격차전략 - 기술이 국가 안보를 좌우하는 시대, K-반도체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병철 지음 / 더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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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1세기 산업 지형도는 더 이상 개별 기업의 기술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술 패권 다툼은 반도체를 중심축으로 회전하며, 이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이끌었던 고위 임원의 발언처럼, 오늘날 반도체 경쟁은 기업간 경쟁을 넘어 국가 총력전의 양상을 띠고 있다. AI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연산 능력과 메모리 성능에 대한 수요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자동차가 '바퀴 달린 컴퓨터'로 진화하면서 반도체는 더 이상 IT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K-반도체 초격차 전략은 단순한 산 업정책을 넘어 국가 생존 전략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DNA는 메모리에 새겨져 있다. 1980년대 ' 반도체 보국 '의 기치 아래 시작된 메모리 사업은 DRAM과 NAND 플래시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구축하며 한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AI 시대는 전혀 다른 게임의 규칙을 요구한다. 많은 데이터를 저장하는 것을 넘어, 얼마나 빠르게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느냐가 승부처 가 되었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가 아무리 강력해도 메모리와의 데이터 교환 속도가 느리면 병목현상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AI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부상한 이유다. HBM은 여러 메모리 칩을 수직으로 적층하여GPU와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교환하는 기술이다. 문제는 이 기술의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미세한 실리콘 관통 전극(TSV)을 수만 개 뚫어야 하고, 각 층 간의 정렬 오차는 나노미터 수준으로 제어되어야 한다. 발열 관리도 극도로 까다롭다. 메모리 초격차 전략의 핵심은 HBM 전용 생산라인을 대폭 확충하고, TSV 공정의 수율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현재 SK하이닉스가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삼성전자 역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추격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능력 확대만으로는 부족하다. AI 가속기 설계사, GPU 제조사와의 긴밀한 협업 생태계를 구축하여 차세대 AI 칩의 요구사항을 미리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메모리 사양을 최적화하는 '공동 설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나아가 AI 전용 메모리 반도체 개발도 필요하다. 빠른 메모리를 넘어, AI 연산에 특화된 처리 기능을 내장한 '컴퓨팅 메모리'나 '뉴 로모픽 메모리' 같은 차세대 제품군으로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메모리 왕국의 재건축은 과거의 영광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새로운 전장에서 메모리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작업이다.


파운드리 시장은 TSMC라는 거인이 지배하고 있다. 애플, AMD, 엔비디아 등 세계적 팹리스 기업들이 TSMC에 의존하는 구조 속에서 삼성전자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역사는 기술 전환기마다 판도가 바뀌어 왔음을 보여 준다. 현재 우리는 바로 그런 전환기에 서 있다. Gate-AII-Around(GAA) 기술은 기존 FinFET구조의 한계를 극복하는 차 세대 트랜지스터 구조다. 삼성전자는 GAA 기술에서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파운드리 경쟁력을 역전시킬 수 있는 결정적 기회다. 문제는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고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파운드리 2위 탈환 전략의 첫 번째 축은 초미세 공정의 조기 안정화다. 3나노, 2나노 공정을 빠르게 양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수율이다. 수율이 낮으면 아무리 앞선 공정이라도 고객은 주문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 공정 시뮬레이션, AI 기반 불량 예측, 실시간 공정 모니터링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한다. 두 번째 축은 대규모 고객 포트폴리오 확보다. 소수 대형 고객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AI 칩 스타트업, 자동차 반도체 기업,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등과 장기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는 맞춤형 칩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소량 다품종 생산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생산 체계가 필수다. 세 번째 축은 시스템 반도체 설계 지원 역량 강화다. 파운드리 기업은 단순 제조사가 아니라 설계 파 트너가 되어야 한다. 고객이 칩을 설계할 때부터 함께 참여하여 제조 가능성을 검토하고, 성능 최적화를 지원하는 '디자인 서비스' 조직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이는 TSMC가 강점을 보이는 영역이기도 하다.

반도체 산업의 무게중심이 전공정에서 후공정으로 이동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성능 향상의 돌파구는 패키징 기술에서 찾아지고 있다. 첨단 패키징은 여러 개의 칩을 3차원으로 쌓거나 나란히 배치하여 마치 하나의 집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TSMC의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 인텔의 Foveros같은 기술이 대 표적이다. 한국의 패키징 기술력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이는 메모리 중심 산업구조에서 패키징이 단순 조립 공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AI 칩 시대에 패키징은 핵심 기술이다. HBM을 GPU와 통합하는 과정, 여러 칩렛(chiplet)을 하나로 연결하는 과정 모두 고도의 패키징 기술을 요구한다. 첨단 패키징 전략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HBM 전용 패키징 라인을 신설하고 미세 범프(bump) 형성 기술의 정밀도 를 극대화해야 한다. 둘째, 칩렛 기반 설계를 지원할 수 있는 인터커넥트 기술과 열관리 솔루션을 개발해야 한다. 셋째, 패키징 전문 인력을 대규모로 양성하고, 장비•소재 기업과의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패키징이 시스 템 통합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CPU, GPU, 메모리, AI 가속기를 하나의 패키지 안에 통합하는 '헤테로지니어스 인티그레 이션(heterogeneous integration)' 기술은 차세대 컴퓨팅의 표준이 될 것이다. 한국이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연결하는 가치사슬의 핵심 고리를 장악할 수 있다.


기술과 자본도 중요하지만, 결국 반도체는 사람이 만든다. 반도체 산업은 극도로 복잡한 지식집약 산업으로, 공정 엔지니어 한 명을 양성하는 데 최소 5년 이상이 걸린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국, 유럽, 일본 모두 대규모 반도체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한국의 인재 전략은 양적 확대와 질적 고도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우선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현재 연간 배출되는 반도체 전공 인력으로는 산업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대학원 정원도 확대하여 석•박사급 고급 인력을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 동시에 교육 내용도 혁신되어야 한다. 이론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실제 공정 장비를 다루는 실습 교육을 강화하고,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의 팹(fab) 시설을 교육 목적으로 개방하거나, 가상 팹 (virtual fab)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구축하여 학생들이 실전 감각을 익힐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글로벌 인재 유치도 필 수다. 인도, 대만, 중국, 유럽 등지의 우수한 반도체 인력을 한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비자 제도, 주거•교육 지원, 연구 환 경 개선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처럼 작은 나라도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여 기술 강국이 된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인재 파이프라인 구축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아무리 자본 과 기술이 있어도 제조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의 CHIPS Act는 52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으로 자국 제조 역량을 복원하고 있으며, 일본은 TSMC와 협력하여 쿠마모토에 첨단 팹을 유치했다. 유럽연합은 반도체법을 통해 2030년까지 글로벌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도 국가 차원의 종합 전략이 필요하다. K-반도체 벨트는 용인과 평택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 클러스터로,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장비•소재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 태계를 의미한다. 이 클러스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국산 화율을 높여야 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에서 확인했듯이, 핵심 소재와 장비를 해외에 의존하면 언제든 공급망이 끊길 수 있다.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EUV 노광 장비 같은 핵심 품목의 국산화를 위해 장기 연구개발 지원과 초기 시장 창출이 필요하다. 둘째,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팹 하 나를 짓는 데 수십조 원이 들어간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려면 법인세 감면, R&D 세액공제 확대, 환경 규제 합리화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전력과 용수 공급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가동되며 막대 한 전력과 초순수를 소비한다. 탄소중립 시대에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 체계를 구축하고, 용수 재활용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도 공급망 안정성의 일부다. 넷째,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 일본, 대만, 유럽과의 반도체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도, 중국 시장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기술 동맹과 시장 접근 사이에서 한국은 유연하고 현명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


K-반도체 초격차 전략은 화려한 슬로건이 아니다. 그것은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이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메모리에서의 압도적 우위, 파운드리에서의 기술 역전, 패키징 혁신, 인재 양성, 그리고 국가 공급망의 완성. 이 다섯 가지 퍼즐이 모두 맞춰질 때, 한국은 부품 공급자를 넘어 글로벌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역사는 기술 전환기마다 새로운 강자를 만들어냈다. 1980년대 메모리 시장에서 일본을 추월한 한국처럼, Al 시대의 반도체 전쟁에서도 우리는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의 과감한 투자, 정부의 전략적 지원, 학계의 인재 양성, 그리고 국민적 공감대가 하나로 모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반도체는 이제 외교이며, 안보이고, 국가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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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힘은 말보다 강하다 - 마음을 여는 힘, 경청
김지현 지음 / 더로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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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말하기를 듣기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아마도 학창 시절, 발표를 잘하는 학생이 주목받던 때 부터였을지 모른다. 아니면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곧 역량으로 평가받는 순간부터였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유창한 화술을 가진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해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김지현님의 책이 제시하는 핵심은 역설적이다. 관계의 주도권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듣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 이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갈망한다. SNS에 일상을 올리고, 댓글을 기다리며, 좋아요 숫자에 일희일비하는 이유도 결국 ' 누군 가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주길 '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듣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내 이야기를 준비한다. 상대방이 문장을 마치기도 전에 "나도 그런 적 있어"라며 화제를 가로채고, 충고라는 이름으로 내 경험을 강요한다. 우리는 듣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다음에 할 말을 리허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의 교차에 불과하다.


경청의 첫 단계는 멈춤이다. 이 멈춤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안다. 스마트폰 알림을 무시하고, 손에 쥔 일을 내려놓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할 일 목록을 잠시 지우는 일. 현대인에게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늘 바쁘다. 아니, 바쁘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화 중에도 다른 것을 한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시계를 보고, 다 음 일정을 떠올린다. 물리적으로는 상대방 앞에 앉아 있지만, 정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이런 상태에서 진정한 듣 기가 일어날 리 없다. 멈춤은 행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소음을 끄는 일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항상 잡음이 있다. 어제의 후회, 내일의 걱정, 타인에 대한 판단, 자신에 대한 평가. 이 모든 것이 상대방의 목소리를 가로막는다. 진정한 멈춤은 이 내적 독백을 중단하고, 오롯이 상대방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하는가. 아마도 침묵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대화의 공백을 참지 못하고 무언가로 채우려 한다. 침묵이 불편함이나 무능함의 표시라 고 여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침묵이야말로 가장 웅변적인 경청의 형태다. 상대방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감정을 정리할 여유를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멈춤의 힘이다.

집중은 귀를 기울이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내 존재 전체를 상대방에게 향하게 하는 일이다. 눈빛으로, 자세로, 호흡으로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따로 있는 경험을 한다. 가족과 저녁을 먹으면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풍경, 회의실에 모였지만 각자의 생각에 잠긴 사람들. 현대 사회는 '함께 있음'과 '함께함'의 간극을 점점 벌려놓고 있다. 진정한 집중은 상대방에게 엄청난 선물이다. 온 세상이 각자 의 이야기로 시끄러운 가운데, 누군가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해준다는 것. 이것은 ”당신은 중요한 사람입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을 때 비로소 마음을 연다. 집중은 말의 내용뿐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까지 포착한다. 목소리의 떨림, 잠깐의 망설임, 피해가는 시선. 이런 비언어적 신호들이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경청의 대가들은 이런 미묘한 신호를 읽어낸다. 상대방이 표현하지 못한 감정, 숨기고 싶어 하는 두려움, 드러내기 민망한 바람까지도 알아차린다.


공감은 감정적 동조가 아니다. 상대방과 똑같이 느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 그의 눈으로 보려는 시도다. 내 기준과 경험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의 맥락에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흔히 공감을 "나도 그랬어"라는 동질감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내가 너의 상황은 아니지만, 네 마음은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각자의 경험은 고유하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해석한다. 내 경험을 투사하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자기중심성이다. 공감의 언어는 조심스럽다. "힘들었겠다", 속상했을 것 같아", "그럴 수 있겠 다"처럼 추측의 형태를 띤다. 단정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수정할 기회를 준다. 이것은 겸손의 표현이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는 인정, 그럼에도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공감은 해결책을 제 시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실수한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즉시 해결 모드로 전환한다. 그럼 이렇 게 해봐", "내 생각엔 이게 문제야", 왜 진작 이렇게 안 했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감정이 타당하다는 확인,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 이해받았다는 안도감을 원한다.

확인은 경청의 과정에서 가장 실용적인 단계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점검하고, 오해의 여지를 줄이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다시 들을 기회를 준다. "그러니까 당신이 말하는 건 이런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여러 층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나는 당신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둘째, 당신의 말은 정확히 이해할 가치가 있다. 셋째, 나는 오해하고 싶지 않다. 넷째, 당신의 의견을 존중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이해했다고 성급하게 판단한다. 하지만 같은 단 어도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힘들다'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피곤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절망을 의미할 수 있다. 확인 없이는 이런 뉘앙스의 차이를 놓치기 쉽다. 확인은 또한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재고할 기회를 준다. 자신이 한 말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다시 들으면,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아, 내가 그렇게 말했구나", "사실 내가 정말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라는 깨달음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대화는 깊어지고 이해는 정교해진다.


경정의 마지막 단계는 응답이다. 하지만 이 응답은 조언이나 판단이 아니다. 듣고 이해했다는 신호, 함께하겠다는 약속, 존중한다는 표현이다. 가장 위험한 응답은 "내가 보기엔", "넌 왜 맨날", "그게 문제야"로 시작하는 말들이다. 이런 응답은 경청의 과정을 무효화한다. 상대방은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아니라, 평가받았다고 느낀다.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를 입는다. 좋은 응답은 상대방에게 공을 돌려준다. "더 말해줄 수 있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까?" 이런 질문은 대화의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유지시킨다. 이것은 곧 존중의 표현이다. 때로는 응답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응답이다. 침묵으로 함께 있어주는 것, 손을 잡아주는 것,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경청이 언어적 응답으로 완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청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힘이다. 역사를 바꾼 리더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말하기 전에 먼저 들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의 의견을 경청했고, 링컨이 반대파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였으며, 마더테레사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온 마음으로 들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성원의 말을 경청하는 리더 아래에서 팀은 성장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다. 경청은 곧 권한 부여다. 가정 에서도 경청은 핵심이다. 부모가 자녀의 말을 진정으로 들어줄 때, 아이는 자존감을 키운다. 부부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관계는 깊어진다. 경청은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경청의 힘은 관계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세계를 더 풍부하게 경험한다. 내 관점만이 유일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은 지혜로 가는 길이다.


경청은 기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다. 세상을 대하는 자세, 타인을 마주하는 방식, 존재하는 방법이다. 경청하는 사람은 세상에 귀 기울인다. 새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 자연의 언어를 듣는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리듬을 찾아낸다. 침묵 속에 숨은 의미를 알아차린다. 경청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귀 기울인다. 내면의 목소리, 몸의 신호, 감정의 흐름. 자신을 제대로 듣는 사람만이 타인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 자기 경청은 타인 경청의 전제 조건이다. 경청하는 삶은 느린 삶이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여유를 가진다. 효율성보다 의미를, 속도보다 깊이를 추구한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속도 경쟁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다. 경청은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높이는 일이다.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고, 열려있되 무분별하지 않으며, 수용적이되 주체성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경청의 균형이다.


우리는 말의 시대에 산다. 하루 종일 말이 쏟아진다. 뉴스, 광고, SNS, 대화. 그러나 정작 진정한 소통은 줄어들고 있다. 말은 많아졌지만 이해는 부족하다. 표현은 자유로워졌지만 공감은 희소해졌다. 이런 시대에 경청은 혁명적이다. 말의 홍수 속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것, 자기 주장을 잠시 내려놓고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효율성을 포기하고 존재에 집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주류에 대한 도전이다. 경청은 또한 희망이다. 분열된 사회, 고립된 개인, 단절된 관계 속에서 경청은 다리를 놓는다.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고, 이해의 가능성을 열며, 공존의 토대를 마련한다. 오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면, 그 사람의 하루는 달라질 것이다. 판단없이 수용한다면, 그 사람은 용기를 얻을 것이다. 온전히 현존 한다면, 그 사람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고, 존중의 표현이며, 인간성의 회복이다. 말보다 강한 힘, 그것은 바로 듣는 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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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식 AI 사용법 - 나는 홈스, AI는 왓슨
우병현 지음 / 휴먼큐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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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특별한 시대를 살고 있다. 2022년 말, 챗GPT의 등장은 인류가 지식과 문제를 다루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이었다. 과거 인터넷 시대가 '어디에 있는가(Know-Where)'의 문제였다면, AI 시대는 '왜 그런가(Know-Why)'를 끊임없이 탐구하는 시대다. 이 변화의 핵심은 기술 자체보다 우리가 그 기술을 어떻게 대하고 활용하느냐에 있다. 많은 직 장인들이 AI를 처음 접하며 실망을 경험한다. 화려한 데모 영상과 달리 자신이 입력한 프롬프트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 물을 내놓는다. 문제는 AI가 아니라 우리의 접근 방식에 있다. AI를 도구로만 보는 순간, 우리는 그것의 진정한 잠재력을 활용할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홈스-왓슨 모델 '을 제시한다. AI를 명령을 수행하는 기계가 아니라, 대화하고 협력하는 파트너로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다. 셜록 홈스와 왓슨 박사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왓슨은 홈 스의 조수만이 아니었다. 그는 홈스의 추리를 경청하고, 질문을 던지며, 때로는 홈스가 놓친 부분을 지적하는 지적 파트너였다. 홈스는 왓슨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논리의 허점을 발견하며, 더 나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AI와 맺어야 할 관계의 모델이다.

홈스의 천재성은 관찰력이나 지식의 양에만 있지 않았다. 그의 진정한 힘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능력, 그리고 가설을 설계하고 검증하는 체계적 사고방식에 있었다. "불가능한 것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남은 것이 아무리 믿기 어려워도 그것이 진실이다"라는 그의 명언은 추리 기법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철학이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먼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 막연히 "좋은 보고서를 써줘"라고 요청하는 것과, "이 시장 조사 데이터를 바탕으로 경영진이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핵심 인사이트 3가지를 도출하고, 각각에 대한 근거와 리스크를 제시해줘"라고 요청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은 핵심적이다. "왜 이 보고서가 필요한가?", "왜 기존 방식으 로는 부족한가?", "왜 이 데이터가 중요한가?"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과제의 본질에 다가간다. 그리고 이 본질을 AI 에게 명확히 전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AI는 진정한 파트너로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가설 설계 역시 중요하다. 홈스는 사건 현장에서 여러 가능성을 떠올리고, 각 가설을 뒷받침하거나 반박하는 증거를 찾아냈다. AI 활용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의 원인은 A일 수도, B일 수도, C일 수도 있다. 먼저 A 가설을 검증해보자"는 식의 접근은 AI가 더 구조화되고 실용적인 답변을 제공하도록 유도한다. AI는 우리의 가설을 검증하는 데이터를 찾아주고, 논리적 허점을 지적하며, 대안적 시나 리오를 제시할 수 있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그 생태계를 이해해야 한다. 모든 AI가 동일하지 않으며, 각각은 고유한 강점과 한계를 가진다. 텍스트 생성에 특화된 모델, 이미지 생성에 강점을 가진 모델, 코드 작성에 최적화된 모델이 각기 다르다. 마치 홈스가 사건에 따라 다른 전문가나 정보원을 활용했듯, 우리도 과제의 성격에 따라 적절한 AI 도구를 선택해야 한다. 저자가 강조 하는 개인맞춤형 AI 활용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구글의 노트북LM 같은 서비스는 사용자가 제공한 특정 자료를 기반으로 학습하여 맥락을 이해하는 AI를 만들어낸다. 이는 일반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것을 넘어, 우리 조직의 데이터, 우리 프로젝트의 맥락, 우리 산업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파트너를 갖는다는 의미다. 회사의 내부 문서를 학습한 AI는 신입사원 교육 튜터가 될 수 있고, 프로젝트 자료를 학습한 AI는 회의 준비를 돕는 조사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파트너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종 책임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는 점이다. 저자가 'AI 흔적 지우기'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왓슨이 쓴 사건 기록을 홈스가 검토 없이 발표하는 것과 같다. 중복된 내용을 제거 하고, 핵심 메시지가 명확히 전달되도록 다듬으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맥락을 입히는 작업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 는 초안을 제공하고, 아이디어를 촉발하며, 가능성을 확장하지만, 최종 판단과 책임은 우리가 져야 한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사고방식이다. 홈스•왓슨 모델은 AI와의 효과적인 협업을 위한 실천적 철학이다. 본질을 파고드는 질문, 가설을 설계하고 검증하는 체계적 사고, 파트너로 서 A를 활용하되 최종 책임은 인간이 지는 태도가 그 핵심이다. 클라우드가 '남의 시간'을 빌릴 수 있게 했다면, AI는 '남의 머리'까지 빌릴 수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빌린 머리를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 홈스가 런던 전역의 정보망을 활용하면서도 결국 진실을 밝혀낸 것은 그의 추리력이었듯, AI가 제공하는 무한한 정보와 능력을 진정한 가치로 전환하는 것은 우리의 질문하는 능력, 판단하는 능력, 책임지는 능력이다. Know-Why 시대는 끊임없이 '왜?'를 묻는 사람들의 시대다. AI는 그 질문에 답하는 가장 강력한 파트너지만, 여전히 주인공은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다. 책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결국 우리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다. AI를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곧 더 나은 질문을 던지 고, 더 깊이 사고하며, 더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야말로AI 시대가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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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하게 꺼지라고 외치면 돼 - 선을 지키는 사람들의 속 시원한 심리 전략
알바 카르달다 지음, 윤승진 옮김 / 더페이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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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한 여성이 떠오른다. 그녀는 명백히 피곤해 보였지만, 옆자리 승객의 무리한 부탁에 "괜찮습니다"라며 가방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거절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피로가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약속에 고개를 끄덕이고, 부당한 요구 앞에서 침묵으로 동의하며, 내 감정은 뒷전으로 밀어두는 삶. 스페인의 신경심리학자 알바 카르달다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무능력은 성격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우리에게 각인시킨 깊은 두려움의 산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 거절은 이기심으로, 경계 설정은 냉정함으로 치부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타인의 승인을 갈구하는 존재로 자라났고, SNS 시대는 이 갈망을 '좋아요'라는 정량적 지표로 더욱 강화시켰다. 문제는 이 패턴이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를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보낸 다. 이는 일종의 자기 배신이며, 반복될수록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경계 설정을 이기적 행위로 오해한다. 하지만 카르달다의 통찰은 이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경계는 타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그녀의 정의는 역설적이지만 진실이다. 명확한 경계가 없는 관계는 건강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차선 없는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과 같다. 충돌과 혼란만이 있을 뿐이다. 진정한 관계는 각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시작된다. 내가 어디까지 줄 수 있고, 무엇은 줄 수 없는지를 명확히 할 때, 상대방도 진정성 있는 교류가 가능해진 다. 반대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척하며 내면에 불만을 쌓아가는 관계는 언젠가 폭발하거나 소진될 수밖에 없다. 하버드 대학교의 행복 연구가 증명했듯이, 우리의 행복은 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관계의 질'이다. 수백 명의 피상적 지인보다 진정으로 나를 존중하고 내가 존중하는 몇 명의 사람이 더 가치 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오직 솔직함과 경계 위에서만 구축될 수 있다.

가장 해로운 관계 패턴 중 하나는 감정적 협박이다. 이것은 때로 노골적이지만, 더 자주 미묘하고 교묘하게 작동한다. "내가 너한테 이렇게 해줬는데..."라는 말 뒤에 숨겨진 기대, "너만 믿었는데 실망이야"라는 죄책감 유발,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안 하던데"라는 비교를 통한 압박. 이 모든 것이 감정적 협박의 변주곡이다. 더 문제적인 것은 우리 스스로도 모르게 이런 협박자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무의식중에 보답을 기대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 을 때 배신감을 느낀다. 이는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감정적 거래다. 건강한 관계는 조건 없는 존중과 명시적 동의 위에 세워져야 한다. 카르달다가 제안하는 해법은 자기 인식에서 시작된다. "왜 나는 이 사람에게 거절하지 못했을까? 그들이 화낼까봐?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봐?"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움직이는 두려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실제로 합리적인지, 아니면 과거의 학습된 패턴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은 기술이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과도하게 변명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는 능력. 카르달다가 제시하는 '안개구름 기술'이나 '튀는 레코드판 기술' 같은 전략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강력하다. 예를 들어, 부당한 비난에 직면했을 때 "당신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라고 인정하되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는 것. 반복되는 요구에 "이해하지만 제 답변은 같습니다"라며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이런 기술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균형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죄책감이 들 수 있다.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우리의 뇌는 익숙하지 않은 반응 패턴에 저항한다. 하지만 작은 상황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 로 확장하면, 카르달다가 말했듯 "생각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지혜의 발현이다.

시간의 유한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피상적 관계 유지에 쓰는 에너지를 줄이고, 깊이 있는 소수의 관계에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문화적 맥락도 무시할 수 없다.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은 개인주의 문화권보다 경계 설정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가 '나'보다 우선시되는 환경에서, 개인의 욕구를 주장하는 것은 때로 공동체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진다. 종교적 배경, 특히 죄의식을 강조하는 전통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문화적 짐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해방의 첫걸음이다.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이 실제 도덕적 잘못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면화된 사회적 기대에서 오는 것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경계 설정은 자기 사랑의 실천이다. 자신의 시간, 감정, 에너지가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호하기로 결심하는 것. 이것은 타인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진정성 있는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다. 카르달다가 강조하는 기본적 자기주장 권리들(자신의 의견을 가질 권리, 거절할 권리, 마음을 바꿀 권리, 존중받을 권리)은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사는 것들이다. 이 권리들을 되찾는 것은 개인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중하게 꺼지라고 외치면 돼"라는 도발적 제목 뒤에는 깊은 지혜가 숨어 있다. 그것은 타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균형의 기술이며, 관계 속에서 자율성을 잃지 않는 성숙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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