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힘은 말보다 강하다 - 마음을 여는 힘, 경청
김지현 지음 / 더로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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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말하기를 듣기보다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아마도 학창 시절, 발표를 잘하는 학생이 주목받던 때 부터였을지 모른다. 아니면 직장에서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곧 역량으로 평가받는 순간부터였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유창한 화술을 가진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해왔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김지현님의 책이 제시하는 핵심은 역설적이다. 관계의 주도권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듣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 이는 인간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갈망한다. SNS에 일상을 올리고, 댓글을 기다리며, 좋아요 숫자에 일희일비하는 이유도 결국 ' 누군 가 나에게 관심을 기울여주길 '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듣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내 이야기를 준비한다. 상대방이 문장을 마치기도 전에 "나도 그런 적 있어"라며 화제를 가로채고, 충고라는 이름으로 내 경험을 강요한다. 우리는 듣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다음에 할 말을 리허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의 교차에 불과하다.


경청의 첫 단계는 멈춤이다. 이 멈춤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잘 안다. 스마트폰 알림을 무시하고, 손에 쥔 일을 내려놓고, 머릿속을 가득 채운 할 일 목록을 잠시 지우는 일. 현대인에게 이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늘 바쁘다. 아니, 바쁘다고 믿는다. 그래서 대화 중에도 다른 것을 한다. 메시지를 확인하고, 시계를 보고, 다 음 일정을 떠올린다. 물리적으로는 상대방 앞에 앉아 있지만, 정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이런 상태에서 진정한 듣 기가 일어날 리 없다. 멈춤은 행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소음을 끄는 일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항상 잡음이 있다. 어제의 후회, 내일의 걱정, 타인에 대한 판단, 자신에 대한 평가. 이 모든 것이 상대방의 목소리를 가로막는다. 진정한 멈춤은 이 내적 독백을 중단하고, 오롯이 상대방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멈추지 못하는가. 아마도 침묵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대화의 공백을 참지 못하고 무언가로 채우려 한다. 침묵이 불편함이나 무능함의 표시라 고 여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침묵이야말로 가장 웅변적인 경청의 형태다. 상대방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감정을 정리할 여유를 주는 것. 이것이 바로 멈춤의 힘이다.

집중은 귀를 기울이는 것 이상이다. 그것은 내 존재 전체를 상대방에게 향하게 하는 일이다. 눈빛으로, 자세로, 호흡으로 “나는 지금 당신과 함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물리적으로는 함께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따로 있는 경험을 한다. 가족과 저녁을 먹으면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풍경, 회의실에 모였지만 각자의 생각에 잠긴 사람들. 현대 사회는 '함께 있음'과 '함께함'의 간극을 점점 벌려놓고 있다. 진정한 집중은 상대방에게 엄청난 선물이다. 온 세상이 각자 의 이야기로 시끄러운 가운데, 누군가 나에게만 온전히 집중해준다는 것. 이것은 ”당신은 중요한 사람입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받을 때 비로소 마음을 연다. 집중은 말의 내용뿐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까지 포착한다. 목소리의 떨림, 잠깐의 망설임, 피해가는 시선. 이런 비언어적 신호들이 때로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경청의 대가들은 이런 미묘한 신호를 읽어낸다. 상대방이 표현하지 못한 감정, 숨기고 싶어 하는 두려움, 드러내기 민망한 바람까지도 알아차린다.


공감은 감정적 동조가 아니다. 상대방과 똑같이 느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세계로 들어가 그의 눈으로 보려는 시도다. 내 기준과 경험을 잠시 내려놓고, 그 사람의 맥락에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우리는 흔히 공감을 "나도 그랬어"라는 동질감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감은 "내가 너의 상황은 아니지만, 네 마음은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각자의 경험은 고유하다. 똑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해석한다. 내 경험을 투사하는 것은 공감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자기중심성이다. 공감의 언어는 조심스럽다. "힘들었겠다", 속상했을 것 같아", "그럴 수 있겠 다"처럼 추측의 형태를 띤다. 단정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수정할 기회를 준다. 이것은 겸손의 표현이다.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는 인정, 그럼에도 이해하려 노력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공감은 해결책을 제 시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실수한다. 누군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즉시 해결 모드로 전환한다. 그럼 이렇 게 해봐", "내 생각엔 이게 문제야", 왜 진작 이렇게 안 했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감정이 타당하다는 확인,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 이해받았다는 안도감을 원한다.

확인은 경청의 과정에서 가장 실용적인 단계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점검하고, 오해의 여지를 줄이며,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다시 들을 기회를 준다. "그러니까 당신이 말하는 건 이런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여러 층위의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 나는 당신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둘째, 당신의 말은 정확히 이해할 가치가 있다. 셋째, 나는 오해하고 싶지 않다. 넷째, 당신의 의견을 존중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이해했다고 성급하게 판단한다. 하지만 같은 단 어도 사람마다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힘들다'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피곤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절망을 의미할 수 있다. 확인 없이는 이런 뉘앙스의 차이를 놓치기 쉽다. 확인은 또한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재고할 기회를 준다. 자신이 한 말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다시 들으면, 새로운 관점에서 볼 수 있다. "아, 내가 그렇게 말했구나", "사실 내가 정말하고 싶었던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라는 깨달음이 생긴다. 이 과정에서 대화는 깊어지고 이해는 정교해진다.


경정의 마지막 단계는 응답이다. 하지만 이 응답은 조언이나 판단이 아니다. 듣고 이해했다는 신호, 함께하겠다는 약속, 존중한다는 표현이다. 가장 위험한 응답은 "내가 보기엔", "넌 왜 맨날", "그게 문제야"로 시작하는 말들이다. 이런 응답은 경청의 과정을 무효화한다. 상대방은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아니라, 평가받았다고 느낀다. 마음을 열었다가 상처를 입는다. 좋은 응답은 상대방에게 공을 돌려준다. "더 말해줄 수 있어?", "어떻게 하면 도움이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 까?" 이런 질문은 대화의 주도권을 상대방에게 유지시킨다. 이것은 곧 존중의 표현이다. 때로는 응답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응답이다. 침묵으로 함께 있어주는 것, 손을 잡아주는 것,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경청이 언어적 응답으로 완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경청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힘이다. 역사를 바꾼 리더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말하기 전에 먼저 들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의 의견을 경청했고, 링컨이 반대파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였으며, 마더테레사가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온 마음으로 들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성원의 말을 경청하는 리더 아래에서 팀은 성장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는다고 느낄 때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다. 경청은 곧 권한 부여다. 가정 에서도 경청은 핵심이다. 부모가 자녀의 말을 진정으로 들어줄 때, 아이는 자존감을 키운다. 부부가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관계는 깊어진다. 경청은 사랑의 가장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경청의 힘은 관계 개선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바꾼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세계를 더 풍부하게 경험한다. 내 관점만이 유일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것은 지혜로 가는 길이다.


경청은 기술이 아니라 삶의 태도다. 세상을 대하는 자세, 타인을 마주하는 방식, 존재하는 방법이다. 경청하는 사람은 세상에 귀 기울인다. 새소리, 빗소리, 바람 소리. 자연의 언어를 듣는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리듬을 찾아낸다. 침묵 속에 숨은 의미를 알아차린다. 경청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귀 기울인다. 내면의 목소리, 몸의 신호, 감정의 흐름. 자신을 제대로 듣는 사람만이 타인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 자기 경청은 타인 경청의 전제 조건이다. 경청하는 삶은 느린 삶이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며, 여유를 가진다. 효율성보다 의미를, 속도보다 깊이를 추구한다. 이것은 현대 사회의 속도 경쟁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다. 경청은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높이는 일이다. 겸손하되 비굴하지 않고, 열려있되 무분별하지 않으며, 수용적이되 주체성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경청의 균형이다.


우리는 말의 시대에 산다. 하루 종일 말이 쏟아진다. 뉴스, 광고, SNS, 대화. 그러나 정작 진정한 소통은 줄어들고 있다. 말은 많아졌지만 이해는 부족하다. 표현은 자유로워졌지만 공감은 희소해졌다. 이런 시대에 경청은 혁명적이다. 말의 홍수 속에서 침묵을 선택하는 것, 자기 주장을 잠시 내려놓고 타인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효율성을 포기하고 존재에 집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주류에 대한 도전이다. 경청은 또한 희망이다. 분열된 사회, 고립된 개인, 단절된 관계 속에서 경청은 다리를 놓는다.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고, 이해의 가능성을 열며, 공존의 토대를 마련한다. 오늘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면, 그 사람의 하루는 달라질 것이다. 판단없이 수용한다면, 그 사람은 용기를 얻을 것이다. 온전히 현존 한다면, 그 사람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사랑의 실천이고, 존중의 표현이며, 인간성의 회복이다. 말보다 강한 힘, 그것은 바로 듣는 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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