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자본도 중요하지만, 결국 반도체는 사람이 만든다. 반도체 산업은 극도로 복잡한 지식집약 산업으로, 공정 엔지니어 한 명을 양성하는 데 최소 5년 이상이 걸린다.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미국, 유럽, 일본 모두 대규모 반도체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한국의 인재 전략은 양적 확대와 질적 고도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우선 반도체 관련 학과의 정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현재 연간 배출되는 반도체 전공 인력으로는 산업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대학원 정원도 확대하여 석•박사급 고급 인력을 더 많이 양성해야 한다. 동시에 교육 내용도 혁신되어야 한다. 이론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실제 공정 장비를 다루는 실습 교육을 강화하고, 산학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이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의 팹(fab) 시설을 교육 목적으로 개방하거나, 가상 팹 (virtual fab)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구축하여 학생들이 실전 감각을 익힐 수 있게 해야 한다. 또한 글로벌 인재 유치도 필 수다. 인도, 대만, 중국, 유럽 등지의 우수한 반도체 인력을 한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비자 제도, 주거•교육 지원, 연구 환 경 개선이 필요하다. 이스라엘이나 싱가포르처럼 작은 나라도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여 기술 강국이 된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 인재 파이프라인 구축은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는 아무리 자본 과 기술이 있어도 제조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기업의 전유물이 아니다. 미국의 CHIPS Act는 520억 달러 규모의 보조금으로 자국 제조 역량을 복원하고 있으며, 일본은 TSMC와 협력하여 쿠마모토에 첨단 팹을 유치했다. 유럽연합은 반도체법을 통해 2030년까지 글로벌 점유율을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도 국가 차원의 종합 전략이 필요하다. K-반도체 벨트는 용인과 평택을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 클러스터로,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장비•소재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 태계를 의미한다. 이 클러스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소재•부품·장비(소부장)의 국산 화율을 높여야 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 사태에서 확인했듯이, 핵심 소재와 장비를 해외에 의존하면 언제든 공급망이 끊길 수 있다.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EUV 노광 장비 같은 핵심 품목의 국산화를 위해 장기 연구개발 지원과 초기 시장 창출이 필요하다. 둘째,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들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 팹 하 나를 짓는 데 수십조 원이 들어간다. 이러한 대규모 투자를 지속하려면 법인세 감면, R&D 세액공제 확대, 환경 규제 합리화 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셋째, 전력과 용수 공급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가동되며 막대 한 전력과 초순수를 소비한다. 탄소중립 시대에 재생에너지 전력 공급 체계를 구축하고, 용수 재활용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도 공급망 안정성의 일부다. 넷째, 국제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야 한다. 미국, 일본, 대만, 유럽과의 반도체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도, 중국 시장과의 관계를 전략적으로 관리하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기술 동맹과 시장 접근 사이에서 한국은 유연하고 현명한 외교를 펼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