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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하게 꺼지라고 외치면 돼 - 선을 지키는 사람들의 속 시원한 심리 전략
알바 카르달다 지음, 윤승진 옮김 / 더페이지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한 여성이 떠오른다. 그녀는 명백히 피곤해 보였지만, 옆자리 승객의 무리한 부탁에 "괜찮습니다"라며 가방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거절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과 피로가 뒤섞여 있었다. 우리는 모두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약속에 고개를 끄덕이고, 부당한 요구 앞에서 침묵으로 동의하며, 내 감정은 뒷전으로 밀어두는 삶. 스페인의 신경심리학자 알바 카르달다가 지적했듯이, 이러한 무능력은 성격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가 우리에게 각인시킨 깊은 두려움의 산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 거절은 이기심으로, 경계 설정은 냉정함으로 치부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타인의 승인을 갈구하는 존재로 자라났고, SNS 시대는 이 갈망을 '좋아요'라는 정량적 지표로 더욱 강화시켰다. 문제는 이 패턴이 우리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누를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보낸 다. 이는 일종의 자기 배신이며, 반복될수록 우리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많은 사람들이 경계 설정을 이기적 행위로 오해한다. 하지만 카르달다의 통찰은 이 편견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경계는 타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라는 그녀의 정의는 역설적이지만 진실이다. 명확한 경계가 없는 관계는 건강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차선 없는 도로에서 운전하는 것과 같다. 충돌과 혼란만이 있을 뿐이다. 진정한 관계는 각자의 한계를 인정하고 존중할 때 시작된다. 내가 어디까지 줄 수 있고, 무엇은 줄 수 없는지를 명확히 할 때, 상대방도 진정성 있는 교류가 가능해진 다. 반대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척하며 내면에 불만을 쌓아가는 관계는 언젠가 폭발하거나 소진될 수밖에 없다. 하버드 대학교의 행복 연구가 증명했듯이, 우리의 행복은 관계의 질에 달려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의 양이 아니라 ‘관계의 질'이다. 수백 명의 피상적 지인보다 진정으로 나를 존중하고 내가 존중하는 몇 명의 사람이 더 가치 있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오직 솔직함과 경계 위에서만 구축될 수 있다.가장 해로운 관계 패턴 중 하나는 감정적 협박이다. 이것은 때로 노골적이지만, 더 자주 미묘하고 교묘하게 작동한다. "내가 너한테 이렇게 해줬는데..."라는 말 뒤에 숨겨진 기대, "너만 믿었는데 실망이야"라는 죄책감 유발,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안 하던데"라는 비교를 통한 압박. 이 모든 것이 감정적 협박의 변주곡이다. 더 문제적인 것은 우리 스스로도 모르게 이런 협박자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면서 무의식중에 보답을 기대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 을 때 배신감을 느낀다. 이는 진정한 관계가 아니라 일종의 감정적 거래다. 건강한 관계는 조건 없는 존중과 명시적 동의 위에 세워져야 한다. 카르달다가 제안하는 해법은 자기 인식에서 시작된다. "왜 나는 이 사람에게 거절하지 못했을까? 그들이 화낼까봐? 이기적이라고 생각할까봐?" 이런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움직이는 두려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실제로 합리적인지, 아니면 과거의 학습된 패턴인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아니요"라고 말하는 것은 기술이다. 공격적이지도 않고, 과도하게 변명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하는 능력. 카르달다가 제시하는 '안개구름 기술'이나 '튀는 레코드판 기술' 같은 전략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강력하다. 예를 들어, 부당한 비난에 직면했을 때 "당신이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라고 인정하되 자신의 입장을 바꾸지 않는 것. 반복되는 요구에 "이해하지만 제 답변은 같습니다"라며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이런 기술들은 상대방의 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경계를 지키는 균형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연습이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죄책감이 들 수 있다.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우리의 뇌는 익숙하지 않은 반응 패턴에 저항한다. 하지만 작은 상황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 로 확장하면, 카르달다가 말했듯 "생각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지혜의 발현이다.시간의 유한함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피상적 관계 유지에 쓰는 에너지를 줄이고, 깊이 있는 소수의 관계에 투자하게 된다. 하지만 문화적 맥락도 무시할 수 없다.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은 개인주의 문화권보다 경계 설정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가 '나'보다 우선시되는 환경에서, 개인의 욕구를 주장하는 것은 때로 공동체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진다. 종교적 배경, 특히 죄의식을 강조하는 전통도 영향을 미친다. 이런 문화적 짐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해방의 첫걸음이다. 우리가 느끼는 죄책감이 실제 도덕적 잘못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내면화된 사회적 기대에서 오는 것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경계 설정은 자기 사랑의 실천이다. 자신의 시간, 감정, 에너지가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보호하기로 결심하는 것. 이것은 타인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진정성 있는 관계로 나아가는 길이다. 카르달다가 강조하는 기본적 자기주장 권리들(자신의 의견을 가질 권리, 거절할 권리, 마음을 바꿀 권리, 존중받을 권리)은 당연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사는 것들이다. 이 권리들을 되찾는 것은 개인의 편안함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한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중하게 꺼지라고 외치면 돼"라는 도발적 제목 뒤에는 깊은 지혜가 숨어 있다. 그것은 타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균형의 기술이며, 관계 속에서 자율성을 잃지 않는 성숙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