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과잉 사회 - 성비 불균형이 불러온 폭력과 분노의 사회
마라 비슨달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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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라 비슨의 <남성 과잉 사회>를 읽었다. 현대 우리사회에서도 문제로 이야기 되고 있는 남녀 성비의 불균형...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읽어 보았다. 1억 6천만. 이 숫자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미국 전체 여성 인구와 맞먹는 수의 여성들이 아시아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주는 묘한 어감. 마치 어디선가 실종되었거나 증발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태어나지 못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태어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초음파 화면 속 작은 생명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순간 기대감이 실망으로, 실망이 결심으로 바뀌는 과정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결심이 모여 만들어낸 거대한 공백을 생각하면, 개인의 선택이 집단의 재앙이 되는 아이러니 앞에서 숨이 막힌다. 책의 구성이 참 재미있다. 각자의 시간에서 본 관점에 대한 분석이 흥미로웠다.

의사의 진료실에서.. "축하합니다, 건강한 아기예요." 의사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화면을 응시하는 부모의 표정에서 그는 무언가를 읽어낸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에 대한 당황, 그리고 이어지는 긴 침묵. 나는 한 산부인과 의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의학 기술의 발전이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도구가 되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 선택의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 덴마크의 두 의사가 혈우병 검사 결과를 알려주며 시작된 성별 감별이 전 세계적 현상이 된 지금, 우리는 과연 의학의 진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잃고 있는가. 매일 진료실에서 만나는 부모들의 눈빛. 때로는 간절함으로, 때로는 절망으로 가득 찬 그 시선들이 의사로서의 소명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욕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 성비 불균형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든 계산이 비틀린다. 결혼 시장에서 여성의 '희소성'이 높아지면 그들의 '가치'도 올라간다. 경제 원리로만 보면 여성들에게 유리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희소해진 여성들은 상품화되고,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의 대상이 된다. 베트남의 가난한 농촌 여성이 한국의 농촌 총각과 만나는 과정을 수요와 공급의 그래프로 그려보면서, 나는 경제학의 냉정함과 인간적 온정 사이의 간극을 느낀다. 천 개가 넘는 국제결혼 중개업체, 농촌 지역 결혼의 40%를 차지하는 국제결혼 비율. 이 숫자들 뒤에는 각자의 절실함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경제 발전이 가져온 역설. 더 잘살게 되었지만 전통적 가치관은 여전히 남아있고, 의료 기술의 발달로 선택권은 커졌지만 그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한다.

남성 과잉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관찰하며, 나는 호르몬이 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한다. 잉여 남성들로 가득한 사회가 더 폭력적이고 불안정해진다는 연구 결과들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는 현상이다.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높은 범죄율, 인도의 여성 안전 문제, 그리고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양상들. 개별적으로 보면 별개의 사회 문제처럼 보이지만, 성비 불균형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된다.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개인의 선택이 집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주목한다. 각 가정에서 내린 합리적 판단들이 모여서 사회 전체에는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 '합성의 오류'.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이 문제를 바라볼 때, 깊은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그 분노는 성차별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여성의 존재 자체가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다. 태어나지 못한 1억 6천만 명의 여성들.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변화,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꿈과 가능성. 모든 것이 초음파 화면의 한 순간 판단으로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개별 여성에 대한 폭력을 넘어서,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집단적 폭력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선택을 내리는 주체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어머니가, 할머니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아들을 낳으라고 압박한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구조.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의 내재화가 만들어낸 가장 잔혹한 현실이다.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이 현상을 관찰하면, 전통과 근대성의 충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천 년간 이어져온 남아 선호 사상이 21세기 의료 기술과 만나면서 일어난 변화는 그 어떤 사회 혁명보다도 급진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이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나타난다는 것이다. 힌두교 문화권인 인도에서부터 유교 문화권인 동아시아,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인 아제르바이잔까지. 종교와 문화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이것이 단순히 전통적 가치관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오히려 경제 발전과 의료 기술의 보급이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진보와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미래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성비 불균형은 앞으로 수십 년간 인류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태어난, 그리고 태어나지 못한 세대의 영향은 인구 피라미드의 변화를 통해 사회 전반에 파급될 것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 문제가 자기 강화적 순환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여성이 희소해질수록 그들의 '가치'는 높아지고, 이는 다시 남아에 대한 선호를 강화시킨다.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과 결합하면서 여성의 상품화는 더욱 심화된다. 한국의 경우, 일시적인 성비 정상화가 저출산 현상과 맞물려 나타났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근본적 해결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한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저자가 분석하고 있는 모든 관점들을 통해 바라본 남성 과잉 사회의 모습은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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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다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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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5년 대선을 앞둔 지금, 진보와 보수의 극심한 대립을 지켜보면서 조선 후기 정조와 다산 정약용의 대화가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다. 역사는 과거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현재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찰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주했던 조선의 현실과 우리가 직면한 대한민국의 모습 사이에는 묘한 기시감이 흐른다. 붕당의 대립, 기득권의 독점, 인재의 매몰, 백성의 고통. 시대를 초월한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과 얼마나 닮아있는가. 진정한 쟁점은 권력과 이익의 분배인데, 우리는 여전히 이념과 지역감정, 세대갈등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가. 정조가 가장 사랑했던 신하인 다산에게 묻고 답하는 글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신창호님의 <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다>였다.

현재 진행 중인 대선 국면을 보면서 가장 답답한 것은 여전히 '인물론'에 매몰된 우리의 정치 문화다. 언론과 국민 모두 후보자 개인의 카리스마, 과거 이력, 스캔들에만 집중할 뿐,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다. 바로 '시스템'이다. 정조가 위대한 군주였던 이유는 그 개인의 탁월함보다는 다산과 같은 유능한 참모진을 곁에 두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국정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역사적 사례를 검토하며, 백성의 실정을 파악한 후에야 정책을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힘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조선시대 전제군주제보다도 더 원시적인 지도자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정조조차도 다산에게 "나라의 폐단도 깁고 보수할 수 있는가?"라고 묻으며 겸손한 자세로 해법을 구했거늘, 우리 정치인들은 모든 답을 안다는 듯 큰소리를 친다. 현재의 대선 국면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가다. 하지만 우리 선거에서는 이런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조와 다산의 대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인재 등용에 관한 것이다. 정조는 지역 인재를 발굴하고 신분제의 벽을 허물려 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런데 200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지역주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 선거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 있다. 특정 지역 출신 후보가 당선되면 그 지역에 예산이 몰리고 인프라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 혹은 우려. 이는 정조가 비판했던 "벼슬이나 녹봉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조는 "독과점의 폐단"을 해소하고자 했다. 특정 집단이나 지역이 권력과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영남과 호남,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인재가 제대로 등용될 수 있을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지역주의적 사고가 정책 검증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책보다는 그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느 정당 소속인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퇴보다.

정조와 다산이 논의한 주제들을 보면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인재 등용, 경제 정책, 국방, 지역 균형 발전, 교육 등. 200년이 넘었지만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경제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접근법은 주목할 만하다. 정조는 "백성들이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국정의 기반으로 삼았다. 추상적인 이념이나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실질적인 민생 개선에 집중했다. 소금 생산처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해법을 찾았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경제 문제들을 보라. 청년 실업, 부동산 가격, 양극화, 저출산... 이 모든 문제들의 핵심은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일"과 직결된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의 해법은 어떤가. 거창한 구호와 장기적 비전만 난무할 뿐, 당장 실행 가능한 구체적 대안은 부족하다. 국방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조는 "병사란 100년 동안 써먹지 않을지언정, 하루라도 방비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북핵 문제, 중국의 부상,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의 안보 상황은 정조 시대보다도 더 복잡하다. 하지만 우리의 안보 논의는 여전히 이념적 대립에 매몰되어 있다.

정조와 다산의 관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들의 소통 방식이다. 비록 군주와 신하라는 위계질서가 있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했다. 정조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다산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다산은 아첨하지 않고 솔직한 조언을 했다. 현재 우리 정치 현실은 어떤가. 대통령과 참모진 사이의 소통은 원활한가. 여당과 야당 사이의 대화는 가능한가. 정치권과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모든 답이 부정적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보다 훨씬 발달된 정치 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소통의 질은 오히려 퇴보한 것 같다. SNS와 언론이 발달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대화는 사라졌다. 대신 일방적인 선전과 상호 비방만 남았다. 정조와 다산이 "돌려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제군주제의 한계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돌려서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우리도 이번 대선을 통해 단순히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정치 문화 전체를 성찰하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했듯이, 우리도 계속해서 묻고 답해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좋은 지도자란 어떤 사람인가?" "국민과 정치권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200년 전 정조와 다산이 꾸었던 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 꿈을 이어받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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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위로가 당신의 위로가 되길 - 치유예술작가협회 12인의 이야기
금선미 외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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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위로가 필요할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위로를 건네고 있을까? 위로란 무엇일까? 이 질문들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른다. 위로(慰勞)는 사전적으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로를 어려워하고, 받은 위로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낀다. 우리는 위로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위로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일까? 책은 치유예술작가협회의 임원 12명이 ‘위로’를 주제로 쓴 에세이를 모은 것이다. 각자의 스타일로 자신의 에피소드에 마음과 위로를 담은 힐링 에세이 책으로, 위로의 다양한 측면과 진정한 위로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화두를 던진다.

이전에는 위로란 누군가가 나에게 다정한 말을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위로의 본질이 '인정'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삶을, 나의 선택을, 그리고 내가 노력해 온 순간들을 누군가 인정해줄 때, 우리는 비로소 위로 받는다.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따뜻함에서 오는 깊은 위로다. 방법이 서툴지라도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진정성 있게 마음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상대방에게 전해진다. 내 마음을 잘 전하지 못할까 어색해하고 초조해하며 애태우지 않아도 된다. 딱히 무얼 하지 않아도, 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구나, 저렇구나'를 그냥 온전히 함께 느껴주고 덤덤하게 마음을 담아주고 받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공감의 과정에서 진정한 위로가 시작된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이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면, '굿 앤 배드(Good & Bad)'로 나누며 사귈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자신의 입장과 필요가 달라지면 끊어내고 모른 척하는 것이라면 굳이 그 관계를 위해 자신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 관계를 위해 너무 상대방 입장에서만 헤아리며 관계하지 말라는 말이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상대방도 편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어떤 관계는 잠깐 스쳐 지나가지만, 어떤 관계는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평생을 함께한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았던 우리의 관계 온도가 시간이 지나면 식기도 하지만, 쉽게 잊을 수 없는 이별을 잊지 않으려고 우리는 서로를 기억한다. 이러한 관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위로를 주고받으며 성장한다.

책을 읽다보니, 이제는 눈물을 극복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다. 눈물은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수단이자, 나의 내면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어준다. 나 자신을 더욱 사랑하고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이, 글쓰기 역시 자기 위로의 중요한 방법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나의 내면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나의 감정을 이해하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나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위로의 과정은 결국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힘으로 발전한다.

​저자는 치유상담 공부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만 아픈 과거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위로를 나누었고, 비로소 진정한 치유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동시에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버지의 부재는 아픔이었지만, 그 아픔을 통해 더욱 강해졌다. 이제 아버지의 이름을 꼬리표가 아닌, 자랑스러운 나의 역사로 새겨 나가려 한다. 우리의 상처는 때로 우리를 성장시키는 거름이 된다. 그리고 그 상처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타인을 위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된다. 상처를 통해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 다시 위로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힘든 일도 있고 극복해야 할 일들도 있고 즐거운 일, 슬픈 일들을 겪고 살지만 다 사람들 속에서 관계 맺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만의, 아니면 나만의 소중한 그 무언가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소중한 것은 모든 것을 제쳐두고라도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한 만남, 그 시간이 아닐까 한다. 북킷리스트 클럽은 위로와 사랑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함께 할 벗이다. 2030년, 2035년은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 바라건대 더욱더 진한 사골국같이 영양가가 넘치고 담백하고 뽀얗게 우러나온 이쁜 독서 모임이 되어 있길 기도한다. 이런 작은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

삶을 살다 보면 말 한마디, 눈빛 하나, 무심한 태도에 마음이 다칠 때가 있다. '괜찮아'라는 말조차 부담이 되는 날들, 그런 날에 조용히 내 곁에 머물러 주는 문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위로는 때로는 화려한 언어나 대단한 행동이 아닌,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진정한 위로는 인정과 공감에서 시작하여, 관계 속에서 균형을 찾고,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깊어진다. 그리고 상처를 통해 성장하며, 일상 속 작은 공동체에서 실천되고, 창조적 관점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며, 결국 삶 자체의 가치를 인식하는 데까지 이른다. 거창한 조언도, 극복하라는 말도 없이, 조용히 나를 바라봐주는 듯한 글들이 마음을 두드린다. 자기 연민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괜찮다고 말해주는 글들을 읽으며, 우리는 조금씩 녹아내린다. 때론 아무 말 없이 공감해주는 존재가, 가장 큰 위로가 될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하루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한 존재이며, 동시에 서로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고 싶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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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 - 김재원 힐링 에세이
김재원 지음 / 달먹는토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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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 한켠에 스며드는 특별한 온기가 있다. 그 온기는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위안으로 우리 삶에 스며든다. 김재원 아나운서의 '엄마의 얼굴'은 말 그대로 엄마에 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상실과 애도, 그리움과 치유에 관한 사색적 여정이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세 살, 아직 세상을 다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낸 저자는 제대로 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했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하는 법도 모른 채, 시간은 흘러갔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성인이 되어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엄마의 부재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13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함께했지만, 그 시간은 4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자의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었다. 엄마와의 관계는 물리적 시간의 길이로 측정할 수 없는 영원한 연결고리인 것이다.

상실의 아픔은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우리 내면에 미해결된 감정으로 남는다. 저자는 장모님의 별세를 지켜보며 비로소 자신의 미완성된 애도를 발견한다. 아내가 엄마를 보내며 보여준 슬픔을 통해, 자신이 열세 살에 경험했으나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던 그 감정의 깊이를 깨닫게 된 것이다.그리움은 오래된 애도입니다. 저자는 상실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제대로 된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슬픔은 시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리움이라는 형태로 우리 안에 잔존한다. 그것은 아물지 않은 상처이자, 끝맺지 못한 대화이며, 전하지 못한 사랑의 말들이다.

저자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는 언어가 소통의 도구를 넘어 삶을 형성하는 씨앗임을 강조한다. 겨자씨처럼 작은 말 한 마디가 자라서 누군가의 삶에 그늘을 제공하는 큰 나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단순한 공기의 진동이 아니다. 그것은 씨앗이 되어 자라나 열매를 맺고, 그 열매는 또 다른 씨앗이 되어 세대를 이어간다. 언어는 인격에서 비롯되고, 인격은 사람의 근본에서 오기에 말은 곧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또한 우리에게상실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형태로 변화한다. 처음에는 날카로운 고통으로 찾아오지만, 점차 둥글게 마모되어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 삶을 은은하게 비추는 빛이 된다. 히말라야의 밤하늘에서 본 별똥별처럼, 상실의 기억은 우리 삶의 궤적을 그리며 흐른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방향을 제시하는 북두칠성과 같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자의 삶을 비춰준 그 별빛은 엄마와의 짧았지만 깊었던 연결의 증거다.

미래에 연연하지 않고 과거에 얽매이지도 않는 현재성. 이것이 저자가 추구하는 삶의 자세다. 양궁 선수가 환호나 야유에 상관없이 오직 과녁만을 바라보듯, 우리도 외부의 소음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활'을 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실과 아픔을 겪으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는 저자의 생생한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전달해 준다. "엄마, 정말 정말미안해하지 마세요. 엄마 없이 마흔다섯 해가 넘어도 엄마와 함께한 13년 덕분에 아직도 이만큼 행복합니다." 이 고백은 저자 자신을 향한 자기 치유의 언어이기도 하다. 엄마의 부재 속에서도 그 사랑으로 단단하게 성장해 온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이다. 꿈에서 라도 만나고 싶은 그리움은 상실의 아픔이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그리움을 인정하고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은 애도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저자에게 엄마는 떠났지만, 엄마가 남긴 사랑과 기억은 영원히 저자의 일부로 남아 살아간다. 산문을 읽었지만 시의 향기가 난다는 정승호 시인의 말처럼,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들로 가득하다. 그 울림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미완의 애도를 깨우고, 상실 너머의 사랑을 발견하게 한다. 엄마의 얼굴은 결국 우리 모두의 얼굴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들의 기억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그 발견을 통해 다시 사랑을 배우며 성장한다.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가장 소중한 메시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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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기쁨 - 온몸으로 불안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해방에 대하여
벨라 매키 지음, 김고명 옮김 / 갤리온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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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달리기 열풍이 물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실내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야외로 나와 달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달리기는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고, 실내외에서 모두 즐길 수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마라톤은 달리기의 대표적인 종목으로, 개인의 도전 정신과 끈기를 시험하는 대회이다. 마라톤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록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인내심, 집중력, 자기 관리 능력 등 소중한 가치를 배우게 된다. 흔히들 우리는 인생은 마라톤과 같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마라톤은 42.195km라는 긴 거리를 달려야 하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꾸준히 달려나가는 인내력이 필요하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전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인내심은 우리 인생과 같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일 것 같다. 그만큼 달리기나 마라톤은 단순한 운동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를 전해준다. 달리기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신의 경험을 통해 삶에 있어서 달리기의 의미와 달리기를 통해 변화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 하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벨라 매키의<달리기의 기쁨>이었다. 달리기를 통해 배울 수 있는 변화를 생생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 삶에서 달리기가 차지하는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매키가 불안장애와 이혼의 고통 속에서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재발견한 여정은, 나의 달리기 경험과 묘하게 겹쳐졌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날, 나도 매키처럼 자신감 없이 첫 발을 내디뎠다. 몸은 무거웠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겨우 5분 달리고 나서 이미 기력이 다한 것 같았다. 하지만 매키의 글처럼, 나 역시 "딱 1분만 더!" 달려보자는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것이 내 슬로건이 되었다. 도시 공원의 아침 공기는 차갑게 폐를 적셨고, 처음에는 다른 러너들의 모습을 보며 위축되기도 했다. 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치 호흡하듯 달리고 있었다. 반면 나는 형편없는 자세와 불규칙한 호흡으로 비틀거리며 달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매키가 말했듯 달리기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달리기를 통해 내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일상에서는 수없이 많은 시선과 기대, 판단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달리는 순간만큼은 오직 나와 내 호흡, 그리고 발걸음 소리만이 존재했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인간관계의 긴장, 미래에 대한 불안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을 때, 달리기는 내게 일종의 명상이 되었다. 아스팔트 위를 달리며 리듬감 있게 발을 내딛을 때마다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씩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렸을 때, 역설적으로 마음은 더 가볍고 평온해졌다.

매키의 글처럼, 나의 달리기 여정에도 좌절과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맞으며 달리던 날, 발목을 삐끗했을 때, 한겨울 영하의 추위에 코끝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을 때. 그런 날들에는'왜 이런 고통을 자처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을 지나고 나면, 더 강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5km를 완주했던 성취감, 6개월 만에 체중이 감량되고 몸이 변화하는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 내 정신이 점점 더 명료해지는 느낌. 이런 성취감은 달리기가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숨이 가빠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 같던 순간에도 한 걸음 더 내딛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것은 육체적 성취를 넘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신적 승리였다. 매키가 말한 "최소 5분은 더 뛰었다"는 경험은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매키의 글 중에서 가장 공감되는 부분은 "달리기에 정석은 없다"는 구절이었다. 처음에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올바른' 달리기 자세와 호흡법을 배우려 했지만, 결국 나만의 방식을 찾았다. 어떤 날은 명상하듯 천천히, 또 어떤 날은 모든 스트레스를 내던지듯 빠르게 달렸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달렸다. 때로는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달렸다. 매키처럼 나도 집 근처 광장만 빙빙 도는시기가 있었고, 점차 더 넓은 세상으로 발을 넓혀갔다.

매키가 이야기한 불안장애와 달리기의 관계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나 역시 크고 작은 불안과 걱정들이 있었다. 그런데 달리기는 그 불안을 완화하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빠지고, 온몸에 땀이 흐르는 달리기의 육체적 경험은 역설적으로 불안이 가져오는 신체적 반응과 비슷하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며 이런 감각들을 의도적으로 경험하면서, 나는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달리기를 통해 내 몸의 반응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일상 속 불안에도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매키는"내 인생이 갑자기 내게서 달아나는 말처럼 느껴졌다"고 썼다. 나 역시 인생의 통제권을 잃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러나 달리기는 그 통제권을 다시 찾는 과정이었다. 달리는 동안 내 몸의 움직임, 호흡, 심장 박동에 집중하면서 점차 나 자신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달리면서 내가 얼마나 강인한지, 얼마나 약한지,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때로는 달리면서 울기도 했고, 때로는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나만의 달리기, 나만의 속도이제 달리기는 내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달리기 위해 운동화를 신는 순간의 설렘, 달리고 난 후 온몸이 깨어나는 상쾌함, 그리고 하루를 더 명료하고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 이것들은 달리기가 내게 선사한 선물들이다. 때로는 입을 헤 벌리고 터덜터덜달리기도 하고, 가끔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짓기도 한다. 하지만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달리는 이유는 나를 위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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