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과잉 사회 - 성비 불균형이 불러온 폭력과 분노의 사회
마라 비슨달 지음, 박우정 옮김 / 현암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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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라 비슨의 <남성 과잉 사회>를 읽었다. 현대 우리사회에서도 문제로 이야기 되고 있는 남녀 성비의 불균형...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읽어 보았다. 1억 6천만. 이 숫자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미국 전체 여성 인구와 맞먹는 수의 여성들이 아시아에서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라졌다는 표현이 주는 묘한 어감. 마치 어디선가 실종되었거나 증발한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태어나지 못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태어날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 초음파 화면 속 작은 생명체를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순간 기대감이 실망으로, 실망이 결심으로 바뀌는 과정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결심이 모여 만들어낸 거대한 공백을 생각하면, 개인의 선택이 집단의 재앙이 되는 아이러니 앞에서 숨이 막힌다. 책의 구성이 참 재미있다. 각자의 시간에서 본 관점에 대한 분석이 흥미로웠다.

의사의 진료실에서.. "축하합니다, 건강한 아기예요." 의사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화면을 응시하는 부모의 표정에서 그는 무언가를 읽어낸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결과에 대한 당황, 그리고 이어지는 긴 침묵. 나는 한 산부인과 의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의학 기술의 발전이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예방하는 도구가 되어야 했는데, 어느 순간 선택의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 덴마크의 두 의사가 혈우병 검사 결과를 알려주며 시작된 성별 감별이 전 세계적 현상이 된 지금, 우리는 과연 의학의 진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잃고 있는가. 매일 진료실에서 만나는 부모들의 눈빛. 때로는 간절함으로, 때로는 절망으로 가득 찬 그 시선들이 의사로서의 소명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든다. 기술은 중립적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욕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본 성비 불균형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다. 하지만 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에서 모든 계산이 비틀린다. 결혼 시장에서 여성의 '희소성'이 높아지면 그들의 '가치'도 올라간다. 경제 원리로만 보면 여성들에게 유리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희소해진 여성들은 상품화되고,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의 대상이 된다. 베트남의 가난한 농촌 여성이 한국의 농촌 총각과 만나는 과정을 수요와 공급의 그래프로 그려보면서, 나는 경제학의 냉정함과 인간적 온정 사이의 간극을 느낀다. 천 개가 넘는 국제결혼 중개업체, 농촌 지역 결혼의 40%를 차지하는 국제결혼 비율. 이 숫자들 뒤에는 각자의 절실함으로 가득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경제 발전이 가져온 역설. 더 잘살게 되었지만 전통적 가치관은 여전히 남아있고, 의료 기술의 발달로 선택권은 커졌지만 그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한다.

남성 과잉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관찰하며, 나는 호르몬이 사회 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한다. 잉여 남성들로 가득한 사회가 더 폭력적이고 불안정해진다는 연구 결과들은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이미 현실에서 확인되고 있는 현상이다.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높은 범죄율, 인도의 여성 안전 문제, 그리고 한국 사회의 변화하는 양상들. 개별적으로 보면 별개의 사회 문제처럼 보이지만, 성비 불균형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된다.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개인의 선택이 집합적으로 만들어내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주목한다. 각 가정에서 내린 합리적 판단들이 모여서 사회 전체에는 비합리적 결과를 낳는 '합성의 오류'.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페미니스트로서 이 문제를 바라볼 때, 깊은 분노를 느낀다. 하지만 그 분노는 성차별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여성의 존재 자체가 선택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다. 태어나지 못한 1억 6천만 명의 여성들.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변화,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꿈과 가능성. 모든 것이 초음파 화면의 한 순간 판단으로 사라져버렸다. 이것은 개별 여성에 대한 폭력을 넘어서,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집단적 폭력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선택을 내리는 주체 중 상당수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어머니가, 할머니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아들을 낳으라고 압박한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구조. 이것이 바로 가부장제의 내재화가 만들어낸 가장 잔혹한 현실이다.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이 현상을 관찰하면, 전통과 근대성의 충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천 년간 이어져온 남아 선호 사상이 21세기 의료 기술과 만나면서 일어난 변화는 그 어떤 사회 혁명보다도 급진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현상이 문화적 경계를 넘나들며 나타난다는 것이다. 힌두교 문화권인 인도에서부터 유교 문화권인 동아시아, 그리고 이슬람 문화권인 아제르바이잔까지. 종교와 문화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이것이 단순히 전통적 가치관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오히려 경제 발전과 의료 기술의 보급이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진보와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다시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미래학자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성비 불균형은 앞으로 수십 년간 인류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미 태어난, 그리고 태어나지 못한 세대의 영향은 인구 피라미드의 변화를 통해 사회 전반에 파급될 것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이 문제가 자기 강화적 순환 구조를 갖는다는 점이다. 여성이 희소해질수록 그들의 '가치'는 높아지고, 이는 다시 남아에 대한 선호를 강화시킨다. 동시에 경제적 불평등과 결합하면서 여성의 상품화는 더욱 심화된다. 한국의 경우, 일시적인 성비 정상화가 저출산 현상과 맞물려 나타났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근본적 해결이 아닌 다른 요인에 의한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 저자가 분석하고 있는 모든 관점들을 통해 바라본 남성 과잉 사회의 모습은 복합적이고 모순적이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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