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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이세훈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 3시, 형광등 하나만이 켜진 원룸에서 나는 문득 깨어난다. 침묵이 너무 무거워서 깬 것일까, 아니면 꿈속에서도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것일까. 스마트폰을 켜보니 읽지 않은 메시지는 몇 개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조인다. 외로움… 이것이 현대인의 초상이다.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손끝으로는 전 세계와 소통하지만, 마음으로는 그 누구와도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역설 속에 살고 있다. 외로움,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이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실존적 현실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결국 우리는 각자의 의식 속에서 홀로 살아간다.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들여다볼 수 없고, 내 마음 역시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 앞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고립된 존재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깨달음이 절망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우리는 철학이 필요함을 직감한다. 외로움이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향한 갈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으로서 철학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였다.
아침에 세수하며 거울을 보는 순간이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한 장면이지만, 때로는 그 거울 속 얼굴이 낯설게 느껴진다. '이 사람이 정말 나인가?' 하는 의문이 스친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연약하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존재, 그래서 우주보다 위대한 존재라고. 외로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가 곁에 없어서가 아니라 더 깊은 연결과 의미를 갈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화장으로 가릴 수 있는 것은 피부의 흠집 뿐이다. 눈빛에 스며든 피로, 입꼬리에 남은 쓸쓸함, 이마에 새겨진 걱정의 주름들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나와의 만남이다. 융이 말한 '그림자'를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 약함과 두려움, 욕망과 상처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 이해가 시작된다. 외로움은 이런 진실한 자기 대면을 위한 침묵의 공간을 제공한다. 소란스러운 일상에서는 놓치기 쉬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통한다. 메신저, 소셜미디어, 화상통화까지, 24시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왜 더 외로워지는 걸까? 부버가 제시한 '나-너' 관계와 '나-그것' 관계의 구분이 여기서 중요해 진다. 진정한 만남은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고유한 존재로 대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을 내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내 외로움을 달래주는 도구로 대하기 쉽다. SNS에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 올리는 게시물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타인이 원할 만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그 과정에서 진짜 나는 점점 더 깊숙이 숨겨지고, 가면을 쓴 채로 관계를 맺다 보니 진정한 친밀감은 오히려 멀어진다. 바우만이 말한 '액체 근대'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모든 관계가 유동적이고 임시적이다. 깊어질수록 상처받을 위험도 커지니까, 적당한 거리에서 안전하게 머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안전함의 대가는 진정한 친밀감의 포기다. 진짜 관계는 위험을 감수할 때 시작된다. 내 약함을 드러낼 용기, 상대방의 아픔을 함께 감당할 각오가 있을 때 비로소 '함께함'이 가능해진다. 마르셀이 말했듯이, '존재는 함께함'인 것이다.
밤이 되면 도시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의 소란스러운 활기가 가라앉고, 네온사인들 만이 고독한 빛을 발한다. 이 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단둘이 남게 된다. 바슐라르는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영역이 아니라 상상력과 기억이 깃든 시적 공간이라고 했다. 똑같은 방이라도 낮과 밤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밤의 고독 속에서 우리는 낮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항상 음악을 틀어놓거나 TV를 켜두는 사람들이 있다. 침묵이 무서워서,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서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을 찾는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그 침묵을 견딜 수 있을 때 시작된다. 도시 한복판의 작은 방에서도 우리는 '나만의 숲'을 만들 수 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그것이 바로 자발적 고독의 힘이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기대나 사회의 요구가 아닌, 진정한 내 목소리를 찾아갈 수 있다.
철학은 외로움에 대한 만병통치약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외로움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외로움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임을 이해하게 해준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된다. 파스칼, 키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 하이데거... 이들 모두 외로움과 불안, 실존적 고뇌와 씨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와 가능성을 발견했다. 철학적 사유는 우리에게 거리두기의 능력을 준다. 외로움에 완전히 압도당하지 않고 한 걸음 뒤에서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왜 외로운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외로움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더 깊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철학은 외로움을 통한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독한 성찰을 통해 더 깊은 자기 이해에 도달할 수 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더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외로움은 닫힌 문이 아니라 열린 창문이다. 그 창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동시에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철학은 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다. 완벽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준다. 외로움을 피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찾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