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르포르타주, 개정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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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생각해 보면 대학때는 참 사회 문제에 대해서 열심이었던 것 같다. 특히 나는 조지 오웰의 소설을 참 좋아했었다. 그 중에서도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몇번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탄광이라는 나에게는 생소한 직업에 대한 르포... 그당시에는 충격이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다는 소식에 다시 한번 읽을 기회가 있었다... 1936년, 서른셋의 청년 조지 오웰이 영국 북부 탄광 지대로 향했을 때, 그는 자신의 중산층적 편견과 선입견을 짊어진 채 그곳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탄광 속 지옥 같은 현실 앞에서 그의 모든 관념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렇게 1킬로미터쯤 가다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진다." 오웰이 묘사한 탄광 속 풍경은 노동 환경의 열악함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비인간적 조건 속에서도 생존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생존 자체가 얼마나 영웅적인 행위인지를 보여준다. 네 발로 기어가야 하는 좁은 갱도, 숨이 막히는 열기, 그리고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천장 아래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오웰의 진정한 발견은 탄광의 물리적 조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뿌리 깊게 박힌 계급 의식이었다. 중산층으로 태어나 교육받은 그는 노동자들과 진정한 연대를 꿈꾸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자신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을 인정해야 했다.

오웰이 지적한 '냄새'의 문제는 계급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원시적이면서도 강력한 차별의 도구다. 상류층이 하층민을 향해 느끼는 혐오감의 근저에는 바로 이 냄새에 대한 거부감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영화 <기생충>에서 박사장이 기택에게서 맡는다고 말하는 '그 냄새'와 일치한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는 냄새, 반지하에서 풍기는 곰팡이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 '가난의 냄새'라고 불리는 그 모든 것들. 오웰이 1930년대에 지적한 이 문제는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오웰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는 이러한 혐오감이 개인적 취향이나 감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학습되고 강화되는 것임을 간파했다. 중산층인 자신도 이러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솔직한 고백은 그의 작 품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오웰이 던진 가장 날카로운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그는 계급 차별을 없애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중산층인 자신이 계급 차별 철페를 외치는 것은 쉽지만, 정작 자신의 관념과 취향, 심지어 몸동작까지도 계급 차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를 철저히 변화시켜야 하며, 결국엔 같은 사람인 줄 모를 정도로 달라져야 한다." .. 절망은 변화의 어려움에서, 희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동시에 오웰은 사람들이 '어지간해서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 판단도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직접적인 설득이나 계몽보다는 이야기의 힘을 택했다. <카탈로니아 찬가>,<동물농장>, <1984>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은 모두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오웰의 사회주의는 이상주의적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당시 좌파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 부족과 이론적 독선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특히 노동계급과 전혀 접촉해본 적 없는 상류층 사회주의자들이 보이는 위선과 무지에 대해서는 가차 없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 말이다!" 오웰이 제시하는 사회주의의 핵심은 복잡한 이론이나 교조적 신념이 아니라 바로 이 두 가지 가치다. 하지만 이 단순해 보이는 가치들을 실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실적인 사회주의의 길을 모색하면서 오웰이 제시하는 방법론은 의외로 실용적이다. 그는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이분법적 구분 대신 '약탈자'와 '피약탈자'라는 보다 구체적인 구분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해 관계가 같은 사람들 간의 연대를 통해 점진적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웰이 1930년대 영국에서 목격한 계급 갈등의 양상은 2025년 한국 사회에서도 놀랍도록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다. 명품, 아파트, 자동차, 교육, 문화소비를 통해 드러나는 계급 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줄 서기와 라인타기로 표현되는 권력에의 아부와 기회주의. 특히 주목할 점은 진정한 기득권층은 책임을 회피하면서, 상대적으로 하위 계층들끼리 서로를 적대시하게 만드는 구조다. 남성과 여성,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은 심화되는 반면, 정작 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진짜 기득권 층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오웰이 지적한 바로 그 문제다. 사회적 불만과 분노가 엉뚱한 대상을 향하도록 조작되고, 진정한 변화의 동력은 분산되고 소모된다. 결국 기존 질서는 더욱 공고해지고, 피착취자들은 서로 싸우며 지쳐간다.

책을 읽고 나면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한편으로는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이 얼마나 뿌리 깊고 변화하기 어려운지에 대한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오웰이 90년 전에 지적한 문제들이 지금도 거의 그대로 존재한다는 사실 앞에서 과연 인간 사회에 진보라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도 발견한다. 오웰 자신이 보여준 것처럼, 기득권층에 속하면서도 자신의 특권을 성찰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개인들의 노력이 모여 사회적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와 자유"라는 오웰의 구호는 단순해 보이지만, 바로 그 단순함에서 힘을 얻는다. 복잡한 이론이나 교조적 신념보다는 이 기본적인 가치들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실천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작은 연대와 작은 배려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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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개정증보판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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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여섯 살 아이가 자신의 미래를 작가로 단언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하지만 그 예언 뒤에 숨어있던 것은 세상을 향한 예리한 관찰력과 표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욕구였을지도 모른다. 오랜 만에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다시 읽었다. 오웰이 제시한 글쓰기의 네 가지 동기를 보면서, 나는 그가 얼마나 정직한 사람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첫 번째로 '똑똑해 보이고 싶은' 순전한 이기심을 당당히 인정하는 모습에서 말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숭고한 목적만을 이야기할 때, 그는 인간의 가장 솔직한 욕망부터 드러냈다. 이런 정직함이야 말로 그의 글이 가진 힘의 원천이 아닐까.

세인트 시프리언스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평생의 상처이자 동시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여덟 살 아이가 느꼈을 절망감을 상상해본다.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갑작스럽게 차가운 현실로 내던져진 충격. 그곳에서 그는 인간 사회의 모순과 위선을 일찍이 목격했다. '기독교인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성공하라'는 불가능한 명령. 이 모순된 요구 속에서 자란 아이는 평생 모순과 위선을 견딜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어쩌면 그의 모든 글쓰기는 이 어린 시절의 분노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고, 약자가 억압받는 것을 보면 견딜 수 없는 성격. 그것이 그를 평생 투쟁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버마에서의 경험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특히 교수형 집행 장면에서 그가 느꼈을 복잡한 감정을 생각해 본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가 물웅덩이를 피해 걷는 모습에서 생의 본능을 발견한 순간, 그는 아마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깨달았을 것이다. '람! 람! 람!' 외치는 죄수의 절규. 그리고 '제발 어서 죽여버려'라고 생각하는 자신들의 모습. 이 순간 그는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인간의 이중성을 동시에 목격했다. 안정된 직장을 포기하고 글쓰기를 택한 것은 단순한 진로 변경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을 되찾기 위한 필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런던 빈민가에서의 체험은 그에게 또 다른 눈을 열어주었다. 스파이크에서 만난 사람들, 그들을 향한 사회의 냉대와 멸시. ‘다 쓰레기니까'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 이런 경험들이 그를 진정한 인도주의자로 만들었다. 구질구질한 담배꽁초 네 개를 건네받는 장면에서, 나는 인간의 선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나누려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성이 아닐까. 오웰은 이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고, 그래서 그의 글이 이토록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서점 일을 하면서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다는 고백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책 때문에 책을 싫어하게 되다니. 하지만 이 경험도 그에게는 소중한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진정한 독서란 무엇인지, 책이 가져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요즘은 읽고 싶은데 빌려볼 수 없는 경우에만 책을 산다"는 말에서, 나는 그의 실용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면을 본다. 이론과 현실 사이에서 항상 현실을 택했던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나 는 대목이다.

스페인 내전은 그에게 정치적 각성을 가져다준 결정적 사건이었다. 파시즘에 맞서 싸우러 갔지만, 정작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좌파 내부의 분열과 권력투쟁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순수한 목적이 어떻게 더러워지는지를 직접 목격했다. 저격수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순간, 그는 아마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많은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후에 <1984> 와 <동물농장> 이라는 불멸의 작품으로 태어났다. 2차 대전 중에 쓴 글들을 보면, 그의 인간에 대한 믿음과 절망이 교차한다. 자신을 죽이려는 독일 조종사도 조국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성찰, 원자탄이라는 새로운 공포 앞에서 느끼는 불안, 과학의 발전이 인류에게 축복이 될지 저주가 될지에 대한 의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국이라는 나라, 정의와 자유라는 가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다. ”허상일지 모르나 대단히 강력한 힘을 지닌 허상"... 나는 그의 복잡하면서도 성숙한 현실 인식을 본다. 병원에서 57번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는 장면은 참으로 처절하다. '자연사'라는 이름의 비참한 죽음 앞에서 그가 느꼈을 공포와 연민.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죽을 것이라는 예감한다. 하지만 그는 죽음 앞에서도 글을 썼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려 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자세가 아닐까. 47세라는 짧은 생을 살면서도 그가 남긴 것들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조지 오웰의 삶을 돌아보면서, 나는 글쓰기란 문자만을 나열하는 행위가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은 자신의 온 존재를 걸고 세상과 대화하는 일이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가 제시한 글쓰기의 네 가지 동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각자가 글을 쓰는 이유를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무엇 때문에 쓰는가? 똑똑해 보이고 싶어서인가, 아름다움을 추구해서인가, 진실을 보존하고 싶어서인가, 아니면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인가? 오웰의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정직함의 힘이다. 자신의 약점과 모순을 인정하고,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작가가, 아니 진정한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오늘 이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싸워야 할 것들이 있다. 불의와 모순, 위선과 거짓말들이 말이다. 오웰처럼 목숨을 걸고 총을 들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펜을 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용기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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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길을 묻다 -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에게
마쓰시타 고노스케 지음, 김정환 옮김, 마쓰시타 정경숙 기획 / 지니의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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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리더십에 대한 담론은 넘쳐난다. 수많은 경영학 이론과 리더십 모델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정작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제시하는 리더십 철학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가 말하는 ‘리더의 길’은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에 기반한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고노스케의 리더십 철학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가 성공의 조건으로 뛰어난 두뇌나 근면함보다 '운과 애교'를 꼽았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성공 공식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운과 애교는 우연이나 타고난 매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능력,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배움의 기회를 만들어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그가 이야기 하는 리더의 길은 무엇일까…

고노스케가 강조하는 첫 번째 덕목은 '순수한 마음'이다. 그는 "누가 하는 말이든 일단은 순수한 마음으로 들으며, 좋다고 생각되면 곧바로 실행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 리더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 - 자신의 기존 관념에 갇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거부하는 것 - 을 피하는 핵심적인 자세다. 순수한 마음이란 선입견과 편견을 내려놓고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것이다. 리더는 종종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해 판단하려 하지만, 진정한 통찰은 오히려 백지상태의 마음에서 나온다. 고노스케는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혜를 얻을 수 있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응원하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이는 현대 경영학에서 말하는 '학습조직'의 리더십과도 맞닿아 있다. 리더가 먼저 배우는 자세를 보일 때, 조직 전체가 학습하는 문화로 변화할 수 있다. 고노스케의 순수한 마음은 단순한 개인적 덕목을 넘어 조직 전체의 역동성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의 핵심 요소인 것이다.

고노스케는 양치기의 비유를 통해 리더십의 본질을 설명한다. 양치기가 성공하려면 양의 성질과 품성을 철저히 파악해야 하듯이, 리더는 인간의 본질을 깊이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현대 리더십 이론에서 말하는 '인간 중심 리더십'과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고노스케의 인간 이해는 심리학적 접근만을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는 리더와 구성원의 관계를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의 관계가 아닌, 상호 성장의 관계로 보는 관점이다. 진정한 리더는 부하를 통제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인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위계적 명령보다는 협력과 공유가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낸다. 고노스케가 제시한 인간 중심의 리더십은 오늘날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리더십 모델인 것이다.

고노스케는 "사장이라는 자리는 걱정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는 현대의 많은 리더들이 놓치고 있는 중요한 통찰이다. 리더의 역할을 권력이나 특권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과 걱정의 자리로 인식하는 것이다. 걱정은 단순한 스트레스가 아니다. 그것은 조직과 구성원들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의 표현이다. 밤잠을 설치며 조직의 미래를 고민하고, 구성원들의 성장을 염려하는 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이러한 걱정은 결국 더 나은 의사결정과 혁신으로 이어진다. 현대 사회에서 리더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이익 창출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 환경적 고려, 구성원의 복지 등 다양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고노스케가 말하는 '걱정하는 리더'는 이러한 복합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리더십의 모델을 제시한다.

고노스케는 "무엇이든 열정이 기본"이라고 강조하면서, 동시에 "절박감이 없으면 열정이나 사명감은 절대로 잉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현대 리더십에서 자주 언급되는 '비전'과 '미션'의 진정한 원천을 보여준다. 열정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에서 나오는 변화 의지다. 현재 상황에 만족하지 않고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을 가질 때, 비로소 진정한 열정이 생긴다. 이는 안주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혁신을 추진하는 동력이 된다. 현대 기업 환경에서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리더는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갖고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고노스케가 말하는 절박감에서 나오는 열정은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리더십의 핵심 동력인 것이다.

고노스케의 리더십 철학에서 특히 주목할 점은 '만사연수(萬事鍊修)' - 모든 일에서 배운다는 자세다. 그는 "교훈은 곳곳에 있다"며 심지어 청소를 통해서도 정치의 요점을 터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리더의 학습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이다. 일반적으로 리더의 학습이라고 하면 고급 경영 과정이나 전문 서적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고노스케는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도 깊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청소부터 접객까지, 모든 업무에는 그 일의 본질과 원리가 담겨 있다. 리더가 이러한 일들을 직접 경험하고 그 의미를 성찰할 때, 진정한 리더십 역량이 개발된다. 이는 현대의 '현장 중심 리더십'과도 연결된다. 사무실에서만 근무하는 리더와 현장을 직접 경험하는 리더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고노스케의 만사연수 철학은 리더가 어떻게 현장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제시하는 리더의 길은 특정 시대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그의 철학은 기술이나 기법을 넘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리더십의 패러다임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위계적 명령 체계에서 수평적 협력 구조로, 통제 중심에서 임파워먼트 중심으로, 단기 성과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으로 리더십의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결국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다. 고노스케의 리더십 철학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선도하는 통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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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부동산, 살리는 부동산
토미(土美) 김서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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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근로소득만으로는 더 이상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했다. 월급쟁이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이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돈을 움직이는 법'의 핵심이다. 부동산 투자의 세계는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졌다. 과거처럼 무작정 집을 사면 오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치밀한 계산과 전략적 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떤 자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져 짐이 되지만, 어떤 자산은 세월이 흘러도 꾸준히 수익을 창출한다. 그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의 출발점이다. 이를 알려주는 투자 조언서인<버리는 부동산 살리는 부동산>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부동산 투자에서 가장 위험한 함정은 겉보기 좋은 수치에 현혹되는 것이다. 특히 신축 빌라나 고가 분양 물건의 경우, 전세가율이 분양가의 70%를 넘어선다면 갭투자의 위험성이 크게 증가한다. 이는 단순한 수학적 계산을 넘어서, 실제 전세 수요가 충분한지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많은 투자자들이 연간 수익률을 계산할 때 전세 대 100% 임대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현실을 무시한 위험한 발상이다. 실제로는 연간 10-20%의 공실률을 반영해야 건전한 투자 계획을 세울 수 있다. 임대료가 매월 들어온다고 가정하고 투자 결정을 내리는 순간, 예상치 못한 공실 기간에 속수무책이 될 수 있다. 2021년 10월부터 시행된 주택임대사업자의 전세 보증보험 가입 의무화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정부가 공시가격 대비 전세가율을 126% 이하로 유지하도록 기준을 정한 것도 단순한 규제가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를 바꾸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정책의 바람에 흔들리는 자산은 결국 버려야 할 자산이다. 재개발과 재건축의 성패가 정책에 좌우되는 현실에서, 개미 투자자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큰 틀을 바꿀 수는 없다. 특히 건축비 상승 이슈가 불거진 지금, 정비사업이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출을 받아 건물을 산 오늘의 건물주가 내일도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수익형 부동산과 상가, 건물들은 금리 변동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한다. 금리 리스크는 시장 외부 변수로서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따라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구조로 레버리지를 설계한 물건은 시한폭탄과 다름없다. 자신의 수입 대비 대출이 너무 많은 물건, 본인의 고민 없이 주변 지인들의 말만 듣고 투자한 경우, 중년층 이상에서 물건의 수는 많은데 고정형 현금수입이 없는 경우 등은 모두 문제가 될 포트폴리오의 전형이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부동산은 글로벌 슈퍼리치들이 주목하는 곳에 있다. 이들이 집중하는 도심 지역은 '규제를 견디고도 남을 자본'이 모이는 곳이다. 고가 부동산이 글로벌 자산가들의 놀이터가 되는 입지에서는 부동산 자체가 지위를 상징하고, 진입 자체가 선택받은 계층임을 증명하는 기호가 된다. 이런 지역에서는 공급이 정체되거나 제한되고, 오히려 규제가 '선별의 문턱' 역할을 한다. 슈퍼리치들의 장기 보유 전략과 맞물려 희소성이 더욱 강화되는 구조다. 이것이 바로 상급지로의 이동이 중요한 이유다. 부동산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리질리언스'다. 이는 충격을 받고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힘, 변화 속에서 살아남는 유연한 강함을 의미한다. 부동산 시장도 고금리, 인구 변화, 기술 혁신, 기후 위기, 감정의 흐름 등 수많은 충격을 맞는다. 이 과정에서 어떤 자산은 무너지지만, 어떤 자산은 살아남는다. 가장 회복력 있는 부동산은 단단한 것이 아니라 변화를 견디고 흡수할 수 있는 부동산이다. 위기 속에서도 쓰일 수 있는 공간, 사람들이 여전히 머물고 싶어하는 곳, 10년 후에도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자산이야말로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코리빙하우스처럼 새로운 주거 형태의 등장은 부동산 시장의 진화를 보여준다. 기존의 원룸을 소형 오피스텔이나 코리빙 공간으로, 일반 주택을 게스트하우스나 스튜디오, 스몰오피스 등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 예다. 1층 공실 상가도 카페, 팝업스토어, 갤러리 등 회전율 높은 테넌트를 유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건물의 리모델링과 시설 업그레이드를 통해 외관 디자인을 개선하고, 엘리베이터나 출입 시스템, 로비 등 공용공간을 정비함으로써 건물 전체의 인상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노후화된 자산이라도 창의적인 접근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저자의 연령별 포트폴리오 전략과 1주택자와 다주택자의 선택 등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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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자의 궁극적 목표는 수익 추구만이 아니다. 어떤 삶이 진짜 행복한 삶인지 고민하고, 그 삶을 뒷받침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다. 포트폴리오는 당신의 삶을 따라가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좋은 포트폴리오다.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변화 속에서 물처럼 유연하게 흐르며 살아남는 것.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생존 방식이다. 과도한 정보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부동산은 현재의 수익성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견딜 수 있는 자산이어야 한다. 본인과 가족의 수입 규모, 지출 패턴, 직업의 안정성, 연령대를 고려해 자산을 어떤 종목에, 어떤 형태로 배분할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부동산 투자에서 가장 먼저 갖춰야 할 전략이다. 무엇을 살 것인가 못지않게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도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산을 일하게 만드는 기술은 삶에 대한 철학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에서 나온다. 큰 방향을 맞춰서 나만의 건강한 포트폴리오로 무럭무럭 키워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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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이세훈 지음 / 시크릿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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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 3시, 형광등 하나만이 켜진 원룸에서 나는 문득 깨어난다. 침묵이 너무 무거워서 깬 것일까, 아니면 꿈속에서도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것일까. 스마트폰을 켜보니 읽지 않은 메시지는 몇 개 있지만, 정작 내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 가슴을 조인다. 외로움… 이것이 현대인의 초상이다. 우리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철저히 단절되어 있다. 손끝으로는 전 세계와 소통하지만, 마음으로는 그 누구와도 진정한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역설 속에 살고 있다. 외로움, 그것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조건이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실존적 현실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결국 우리는 각자의 의식 속에서 홀로 살아간다. 타인의 마음을 완전히 들여다볼 수 없고, 내 마음 역시 온전히 전달할 수 없다는 한계 앞에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고립된 존재임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 깨달음이 절망으로만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우리는 철학이 필요함을 직감한다. 외로움이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향한 갈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군중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으로서 철학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였다.

아침에 세수하며 거울을 보는 순간이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의 한 장면이지만, 때로는 그 거울 속 얼굴이 낯설게 느껴진다. '이 사람이 정말 나인가?' 하는 의문이 스친다. 그 순간 우리는 자신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다. 연약하지만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존재, 그래서 우주보다 위대한 존재라고. 외로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가 곁에 없어서가 아니라 더 깊은 연결과 의미를 갈망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거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화장으로 가릴 수 있는 것은 피부의 흠집 뿐이다. 눈빛에 스며든 피로, 입꼬리에 남은 쓸쓸함, 이마에 새겨진 걱정의 주름들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나와의 만남이다. 융이 말한 '그림자'를 마주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숨기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 약함과 두려움, 욕망과 상처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온전한 자기 이해가 시작된다. 외로움은 이런 진실한 자기 대면을 위한 침묵의 공간을 제공한다. 소란스러운 일상에서는 놓치기 쉬운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통한다. 메신저, 소셜미디어, 화상통화까지, 24시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왜 더 외로워지는 걸까? 부버가 제시한 '나-너' 관계와 '나-그것' 관계의 구분이 여기서 중요해 진다. 진정한 만남은 상대방을 하나의 인격체로, 고유한 존재로 대하는 데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타인을 내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내 외로움을 달래주는 도구로 대하기 쉽다. SNS에서 '좋아요'를 받기 위해 올리는 게시물들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타인이 원할 만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그 과정에서 진짜 나는 점점 더 깊숙이 숨겨지고, 가면을 쓴 채로 관계를 맺다 보니 진정한 친밀감은 오히려 멀어진다. 바우만이 말한 '액체 근대'의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모든 관계가 유동적이고 임시적이다. 깊어질수록 상처받을 위험도 커지니까, 적당한 거리에서 안전하게 머물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 안전함의 대가는 진정한 친밀감의 포기다. 진짜 관계는 위험을 감수할 때 시작된다. 내 약함을 드러낼 용기, 상대방의 아픔을 함께 감당할 각오가 있을 때 비로소 '함께함'이 가능해진다. 마르셀이 말했듯이, '존재는 함께함'인 것이다.

밤이 되면 도시는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낮의 소란스러운 활기가 가라앉고, 네온사인들 만이 고독한 빛을 발한다. 이 시간, 우리는 비로소 자신과 단둘이 남게 된다. 바슐라르는 공간이 단순한 물리적 영역이 아니라 상상력과 기억이 깃든 시적 공간이라고 했다. 똑같은 방이라도 낮과 밤은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밤의 고독 속에서 우리는 낮에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 항상 음악을 틀어놓거나 TV를 켜두는 사람들이 있다. 침묵이 무서워서,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서 끊임없이 외부의 자극을 찾는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그 침묵을 견딜 수 있을 때 시작된다. 도시 한복판의 작은 방에서도 우리는 '나만의 숲'을 만들 수 있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 그것이 바로 자발적 고독의 힘이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기대나 사회의 요구가 아닌, 진정한 내 목소리를 찾아갈 수 있다.

철학은 외로움에 대한 만병통치약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외로움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외로움이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보편적 조건임을 이해하게 해준다.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철학자들이 같은 고민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가 된다. 파스칼, 키르케고르, 니체, 사르트르, 하이데거... 이들 모두 외로움과 불안, 실존적 고뇌와 씨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깊이와 가능성을 발견했다. 철학적 사유는 우리에게 거리두기의 능력을 준다. 외로움에 완전히 압도당하지 않고 한 걸음 뒤에서 그것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왜 외로운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외로움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더 깊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또한 철학은 외로움을 통한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독한 성찰을 통해 더 깊은 자기 이해에 도달할 수 있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더 진실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외로움은 닫힌 문이 아니라 열린 창문이다. 그 창문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고, 동시에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철학은 그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다. 완벽한 답을 주지는 않지만, 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준다. 외로움을 피하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찾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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