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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함께 있어도 외로울까 - 관계에 휘둘리는 당신에게
황규진 지음 / 북스고 / 2026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 안에서 가장 깊은 외로움을 경험한다. 손을 맞잡고 있지만 마음은 닿지 않고, 함께 있지만 혼자인 것 같은 그 기묘한 감각. 단순한 권태나 일시적인 갈등이 아닐 것이다. 관계의 구조 자체가 비틀어져 있을 때,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서서히 자신을 잃어간다. 나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본다. 처음에 모든 것은 완벽한 설렘으로 시작되었다. 작은 기침 소리에도 약을 사 들고 달려왔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기억했으며,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듯했다. 주변 사람들 은 " 좋은 사람 만났다 " 며 축하했고, 나 역시 '이 사람이구나 ' 싶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이상한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덕처럼 보였던 그의 효심과 착함이 어느새 당신을 질식시키는 벽이 되어 있었다. 점점 더 많이 노력했지만, 그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애쓸수록 더 외로워지는 역설 속에 갇혔다. 무엇이 문제이었을까? 내가 만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정교하게 위장된 지배의 관계였을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과시하고, 타인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알아보기 쉽다. 문제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다. 이들은 겉으로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고 이타적으로 보인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약자를 배려하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과 결핍이 있다.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느끼지 못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차가운 공감'이라 부른다. 인지적으로는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전혀 공명하지 않는 상태. 그래서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도 불편함만 느낄 뿐, 함께 아파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 힘들다"고 말할 때, 돌아오는 말은 언제나 비슷했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다던데.""내가 뭘 잘못했는데?" 이런 반응 앞에서 나는 점점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 정말 내가 예민한 걸까? ' ' 내가 이해심이 부족한 걸까?' 하지만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 불편함, 답답함, 설명 할 수 없는 서늘함. 그것들은 모두 진짜였다.내현적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지점은 '제3자의 존재'다.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본다. 많은 경우 그것은 어머니, 혹은 가족이다. 사랑을 나누면서도, 정작 중요한 결정에서는 언제나 가족의 의견을 우선한다. 나의 생일보다 어머니의 전화가 먼저고, 나의 아픔보다 어머니의 기분이 더 중요하다. '정서적 근친'이라 불리는, 건강하지 못한 유착 관 계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감정받이 역할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발달시킬 기회를 잃었다. 그는 착한 아들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지워왔고, 이제는 자아가 없는 빈 껍데기만 남았다. 그러니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기 자신조차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할 수는 없으니까. 그의 삶에서 '연인'이 아니라 '부속품'에 가깝다. 그의 세상 속에서 당신은 언제나 참고인이고, 조연이며, 엑스트라일 뿐이다. 이런 관계에서 나는 점점 더 많은 것을 내어준다. 더 이해하려 하고, 더 참으려 하고, 더 사랑하려 한다. "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변할 거야 " 라는 희망을 품고. 하지만 밑 빠진 독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독은 차지 않는다. 그는 나의 에너지를 흡수하면서도 결코 채워지지 않 는다. 오히려 내가 행복해하면 그것을 시기하고, 내가 성장하면 불안해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을 떠받쳐 줄 지지대이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이 그의 불행이 되는 기묘한 역학이 작동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이 중성이 드러난다. 그는 "내 돈은 엄마 돈"이라고 하면서도, 나의 돈은 우리 생활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서서 히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고갈되어 간다.가장 무서운 것은, 이런 관계 속에서 판단력 자체가 흐려진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브레인 포그(Brain Fog)'라고 한다. 지속적인 가스라이팅과 정서적 학대 속에서 당신의 뇌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 똑똑하고 주체적이었던 당신 이 어느새 자신의 감정조차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더 나아가 '트라우마 본딩', 즉 학대적 관계에 대한 중독이 발생한다. 그가 가끔씩 보여주는 친절과 애정이 마치 도박에서의 대박처럼 느껴진다. 뇌는 사랑이 아니라 불확실한 보상 체계에 중독된 것이다. 그래서 알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이것이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이런 관계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은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아프다"라고 솔직하게 말할 용기를 내는 것. 당신의 고통은 예민함이 아니라 정당한 반응이 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구원자 환상을 버리는 것이다. 그를 고칠 수 없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이해해도, 그는 변하지 않는다. 변화는 본인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진심으로 변하고자 할 때만 가능하다. 나의 희생이 그를 구원하지 않는다. 다만 나만 소진될 뿐이다. 단호한 경계선을 긋는 것이 필요하다. 더 이상 나의 감정을 무시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기. "네가 예민한 거야"라는 말에 "아니, 이건 정당한 요구야"라고 답하기.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명확히 인식하고 통제하기를 실천해야 한다.진정한 사랑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나를 더 작게 만들지 않고, 더 크게 만든다. 진정한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각자로 서면서 함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건강한 관계에서는 대화에 리듬이 있다. 말이 오가고, 감정이 공명하며, 서로의 존재가 서로를 풍요롭게 만든다. 외로움이 아니라 연결감을 느낀다. 애 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른다. 물론 갈등도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해결책을 찾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