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시작하면 잠들 수 없는 클래식 - 24명의 대표 작곡가와 함께 떠나는 유쾌한 클래식 여행
음플릭스 지음 / 빅피시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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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 세 시, 잠이 오지 않아 무심코 켠 음악 앱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흘러나왔다. 귀가 들리지 않는 노작곡가가 관객석을 등진 채 서 있던 1824년의 그 밤이, 200년의 시간을 건너 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누군가 그의 소매를 잡아당겨 돌려세우기 전까지 그는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만든 소리가 극장을 얼마나 뜨겁게 달구고 있는지를. 들을 수 없는 세계에 서 들려주기 위해 써 내려간 음표들. 그 역설 앞에서 나는 이어폰을 벗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 만든 음악을 온전히 듣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경건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건 한 인간의 삶을 엿보는 일이고, 그가 살았던 시대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일이며, 때로는 그가 견뎌낸 고통과 환희를 함께 경험하는 일이다. 하이든의 머리가 145년 동안 유랑했다는 기괴한 일화는 그저 웃고 넘길 이야기가 아니다. 천재의 뇌를 해부하고 싶어 했던 19세기 골상 학의 광기, 예술가를 신격화하면서도 동시에 그를 표본으로 소유하려 했던 당대의 모순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생상스가 자신의 가장 유명한 곡 '동물의 사육제'를 생전에 공개하지 말라고 유언처럼 남긴 이야기를 읽으며 웃음이 났다. 진지한 대작곡가로 기억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이 농담으로 쓴 경쾌한 음악이 자신의 명성을 갉아먹을까 두려워했다. 하지만 역사는 잔인할 만큼 정직해서, 사람들은 그의 장엄한 교향곡보다 백조의 우아한 선율을 더 사랑했다. 예술가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작품이 세상에 나간 뒤의 운명일 것이다. 바그너처럼 반역자이자 도망자, 심지어 빚쟁이였던 인물이 음악사의 거장으로 기억된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우리는 종종 위대한 예술은 고결한 인격에서 나온다고 착각하지만, 역사는 그 환상을 가차 없이 깨뜨린다. 모차르트는 편지에 똥 이야기를 즐겨 썼고, 비발디는 미사를 소홀히 하며 바이올린에 빠져 살았으며,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도 누군가를 숨겨둔 채 사랑했다. 그들의 삶은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탄생한 음악은 시간을 초월한 완벽함을 지녔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굶주림에 지친 연주자들이 쓰러지면서도 악기를 놓지 않았던 그 초연의 현장, 정부는 그것을 체제의 승리로 포장했지만, 작곡가 본인은 그 곡이 나치뿐 아니라 모든 독재와 억압을 향한 진혼곡이었다고 고백했다. 음악은 때로 말할 수 없는 것을 대신 말해주고, 침묵으로만 전달될 수 있는 진실을 소리로 번역한다. 스탈린의 공포정치 아래서 쇼스타코비치가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저항은 음표 사이에 숨겨놓은 암호 같은 것이었 을지도 모른다.


중세의 귀도 다레초가'도레미'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음악의 민주화를 의미한다. 그 이전까지 음악은 소수의 전유물이었다. 기보법이 없던 시대, 음악은 오직 기억과 구전으로만 전승됐고, 그것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도레미파솔라시도'라는 체계가 만들어지면서 음악은 비로소 기록될 수 있었고, 기록된 것은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르네상스가 인간을 노래하기 시작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음악이 신의 것에서 인간의 것으로 내려온 순간이었다. 우리는 시각예술의 거장들은 기억하면서도 청각예술의 선구자들은 쉽게 잊는다. 하지만 그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눈으로 본 것만이 아니라 귀로 들었던 것도 함께 복원해야 한다. 다빈치가 붓을 들 때 배 경에 흐르던 음악,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그릴 때 들렸을 미사곡, 팔레스트리나가 교황청의 음악 금지령을 무릅쓰고 지켜낸 교회음악의 전통. 그것들은 단지 장식이 아니라 시대정신 그 자체였다.


바로크 시대가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음악이 '감정을 흔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 이전의 음악이 신을 찬양하고 질서를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바로크는 인간의 내면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헨델이 죽음의 문턱에서 완성한 ‘메시아'는 그 자체로 부활의 은유였고, 바흐가 남긴 방대한 작품들은 고기 포장지로 쓰일 뻔한 운명을 겨우 피해 우리에게 전해졌다. 지금은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지만, 그가 죽은 직후 그의 음악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됐다. 위대함은 때로 한참 뒤에야 발견된다. 고전주의 시대로 접어들며 음악은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하이든의 교향곡들 은 정교한 건축물처럼 치밀했고, 모차르트는 천재적 감각으로 형식과 자유를 완벽히 결합시켰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음악만큼 조화롭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편지에 천박한 농담을 쓰며 웃었고, 하이든의 머리는 도둑맞아 유럽을 떠돌았다. 예술가의 작품과 삶 사이의 괴리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완벽한 균형을 작품 안에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의 삶이 그만큼 불균형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슈베르트가 짧은 생애 동안 600곡이 넘는 가곡을 썼다는 건 하나의 강박에 가깝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쇼팽이 폴란드의 영혼을 피아노로 속삭였고, 리스트가 클래식 역사상 최초의 ‘아이돌'이 되어 유럽을 휘저었으며, 슈만이 사랑을 위해 스승을 고소하는 극단적 선택을 했던 시대. 낭만주의는 말 그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았던 예술가들의 시대였다. 브람스가 스승의 아내를 40년간 짝사랑했다는 이야기는 애틋함을 넘어 숭고하게까지 느껴진다.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그 감정이 그의 음악에 어떤 깊이를 더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생상스는 모차르트에 버금가는 신동으로 불렸지만 평생 진지함의 가면을 쓰고 살았고, 결국 가장 사랑받는 곡은 그가 숨기고 싶어 했던 '농담'이 되었다. 예술가가 의도한 것과 세상이 받아들이는 것 사이의 간극은 때로 아이러 니하다.


새벽 다섯 시, 스트라빈스키의 불협화음이 방안을 채운다. 아름답지 않지만 강렬하다. 편안하지 않지만 깨어 있게 만든다. 클래식은 때로 자장가처럼 우리를 재우지만, 때로는 알람처럼 우리를 깨운다. 중세에서 현대까지 이어진 이 긴 여정은 결국 인간이 소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신을 찬양하던 목소리가 인간을 노래하게 되고, 감정을 흔들고, 민족을 품고, 결국 모든 규칙을 해체하며 다시 시작하는 과정이다. 클래식을 듣는다는 것은 결국 인간을 듣는 일이다. 완벽하지 않았던, 때로 추악하기까지 했던, 하지만 그 모든 불완전함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창조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그래서 클래식은 박물관에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는 현재다. 베토벤이 듣지 못했던 박수 소리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울려 퍼지는 것처럼, 생상스가 숨기려 했던 농담이 지금도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것처럼, 쇼스타코비치가 침묵으로 전한 진실이 지금도 누군가의 가슴을 울리는 것처럼. 클래식이라는 시간여행에는 종착역이 없다. 다만 각자의 속도로 걸으며, 때로 멈춰서서 귀 기울이는 순간들이 있을 뿐이다. 저자는 클래식이라는 목적지를 향해가는 나에게 옆에서 재미있는 스토리와 함께 이야기해 준다. 클래식 매니아로 가는 길을 상세히 안내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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