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시멜로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엘런 싱어 지음, 이민희 옮김 / 딥앤와이드(Deep&WIde) / 2026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나는 《마시멜로 이야기》를 손에 들고 꽤 진지한 얼굴을 했던 것 같다. 당시 그 얇은 책은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꽤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표지의 통통한 마시멜로 그림은 마치 '이것만 참으면 성공한다'는 약속처럼 보였다. 읽고 나서 잠시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눈앞의 욕구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이 더 나은 미래를 얻는다는 이야기. 그것은 단순하고, 명쾌하고, 무엇보다 내가 노력만 하면 될 것 같은 기분을 주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뇌과학의 언어로 '왜 어떤 사람은 기다릴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한가'를 설명해 주었던 책이었다.
인간의 뇌에는 즉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뜨거운' 충동 체계와, 미래를 내다보며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차가운' 인지 체계가 있다. 마시멜로 하나를 먹지 않고 기다려야 두 개를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성공적으로 기다리는 아이들은 차가운 체계를 활성화하는 전략을 쓴다. 눈앞의 마시멜로를 '실재하지 않는 그림'처럼 여기거나, 아예 다른 생각으로 주의를 돌린다. 이것을 확장하면 인생의 성공 공식이 된다. 지금의 편안함을 참고, 미래의 보상을 위해 현재를 유보하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데 잠깐, 무언가 이상하다. '성공'은 누가 정의하는가? 높은 시험 점수, 안정적인 직업, 사회적 인정. 이것들은 누구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목록인가?
대학 시절, 나는 꽤 오랫동안 이 자기통제의 논리를 열심히 실천했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쉬고 싶을 때 참았다. 그것이 미래를 위한 합리적인 투자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가 비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욕구를 '차갑게' 재구성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게 됐다. 참는 것이 너무 자동화되어서, 처음엔 의지였던 것이 나중엔 반사가 되어버렸다. 자제력이 자동화될수록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 같다. 이제 중년이 되어 버린 시기에 이 이야기를 다시한번 생각해 보았다. 첢은 시절의 우리 인생에서 마실멜로를 먹지 않는 것이 최선일까? 마시멜로를 먹지 않는 능력이 결국 마시멜로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거식증 환자는 마시멜로 실험의 가장 완벽한 '성공자'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자기통제의 승리라 부를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학때 배웠던 심리학 이론에서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만족 지연 능력이 낮다는 사실을 배웠던 것 같다. 두 번째 마시멜로가 정말 올지 확신할 수 없는 환경에서 지금 눈앞의 것을 먹는 것은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다.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환경의 변화인지, 아니면 그 환경을 참고 버티는 내면의 힘인지. 물론 자기조절 능력이 아이들의 삶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르치는 일이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비켜가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충동적인' 행동을 억누르고 '원시적인' 욕구를 통제하라는 메시지가 어떤 계층의 아이들에게 주로 향하는지를 살펴보면, 그 메시지는 순수한 도움이 아니라 순응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 같다.
책은 마시멜로처럼 달콤하다. '뇌는 바뀔 수 있고, 당신도 바뀔 수 있고, 노력하면 된다'는 메시지는 현대인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종류의 이야기다. 나 역시 대학 때 그 이야기를 맛있게 먹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내가 그토록 그 이야기에 끌렸던 것은 어쩌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참으면 된다'는 공식은 불안을 달래주는 주문이었다. 시월이 지난 지금, 그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과도한 자제력도 문제다. 너무 통제된 삶은 너무 통제되지 않은 삶만큼이나 공허할 수 있다.
나는 이제 마시멜로를 보면 예전처럼 참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먹고 싶은지 아닌지를 먼저 묻게 됐다. 욕구를 프레임 밖으로 밀어내기 전에, 그 욕구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려 한다. 물론 그렇다고 눈앞의 모든 충동을 따르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제력이라는 이름 아래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마시멜로를 그림으로 만들어버리기 전에, 그것이 진짜 마시멜로임을 먼저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고 나서 남긴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실질적인 메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