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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보이는 것을 껴안을 용기 - 감정을 곁에 두는 법
나혼마 지음 / 다연 / 2026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동안 나는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누군가 안부를 물으면 반사적으로 "응, 괜찮아"라고 대답했고, 실제로 그 말을 믿으려고 애썼다. 잠이 오지 않는 밤에도, 이유 모를 무기력함이 온몸을 짓누르던 오후에도, 나는 그 감정들을 한쪽 구석으로 밀어두고 뚜껑을 닫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불안 자체가 두려운 건지, 아니면 불안하다는 사실이 들킬까봐 두려운 건지. 생각해보니 두 번째였다. 나는 불안보다도, 불안해 보이는 나를 더 무서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나로 하여금 감정을 억지로 지우게 만들었다. 감정이란 건 지워지지 않는다. 억누를 수는 있어도, 사라지지는 않는다. 뚜껑을 닫아도 냄비는 결국 끓어오르고, 그 뜨거움은 더 엉뚱한 방향으로 터져 나온다. 나는 그렇게 오랫동안 내 마음속 냄비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해왔던 것이다.우리가 일상에서 짊어지고 사는 것들 중 대부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배신당한 기억,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의 떨림, 아무 이유 없이 밀려드는 슬픔,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될 때의 자괴감. 이것들은 사진으로 남길 수도 없고, 손으로 가리킬 수도 없다. 그래서 더 외롭다. 누군가에게 "요즘 힘들어"라고 말했을 때, "뭐가 힘든데?"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정확히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은 고통처럼 취급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자꾸 자신의 감정에 번호표를 붙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달아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산다. 하지만 감정은 원래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마음이 아픈 데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슬픔에도 증거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 무게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버틸 수 있게 된다.처음 '보이지 않는 것을 껴안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껴안는다는 건 손이 있어야 하고, 형태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보이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껴안는다는 말인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알 것 같아졌다. 껴안는다는 것은 손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였다. 불안을 느낄 때 그것을 없애려 발버둥 치는 대신, "아,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하고 인정하는 것. 상처가 떠오를 때 서둘러 덮어버리는 대신, "그때 많이 아팠겠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는 것. 그것이 껴안음이었다. 껴안는다는 것은 그 감정과 친구가 된다는 의미도 아니고, 영원히 함께 살겠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것.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훨씬 가볍게 만질 수 있게 된다.나는 오랫동안 용기란 무언가를 무릅쓰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서운 것 앞에서 두려움을 누르고 달려드는 것, 그것이 용기라고. 그런데 살면서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은, 진짜 용기 중 상당수는 훨씬 조용하고 내밀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불안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도 용기다.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다. 오늘 하루 그냥 쉬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도, 때로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기다리는 것도 용기다. 이런 용기들은 무대 위에서 빛나지 않는다. 아무도 박수를 보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조용한 용기들이 쌓여서,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진다. 마음속에 두 마리 늑대가 싸우고 있다면,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어떤 감정에 더 많은 공간을 허락하느냐도 결국 선택의 문제다. 불안에게 공간을 주되, 그것이 나를 삼키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우고 있는 감정 리터러시의 첫 걸음이다.지금도 나는 여전히 불안을 느끼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이 찾아오기도 한다. 예전처럼 곧장 뚜껑을 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항상 잘 다루는 것도 아니다. 어떤 날은 불청객처럼 들이닥친 걱정들을 밤새도록 붙들고 앉아 있기도 하고, 오래된 상처를 또다시 후벼 파며 자책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런 나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안한 나도 나고, 상처 입은 나도 나다. 완벽하게 정돈된 감정을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무게를 지고 걷고 있다. 그 무게를 함께 지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지금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진짜인지 누군가는 알고 있다는 것.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껴안으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충분히 용감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결국 행복이란, 모든 보이지 않는 것들을 해결하는 데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것들과 함께 살아갈 줄 아는 능력, 즉 껴안는 용기 속에 있는 것 아닐까. 그 용기는 누가 주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이미 당신 안에 있다. 다만, 아직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