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스 극장 - 시대를 읽는 정치 철학 드라마
고명섭 지음 / 사계절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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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오랫동안 창밖을 응시했다. <카이로스 극장>, 2022년부터 2025년까지, 우리가 함께 겪어낸 격동의 시간을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에서부터 현대 민주주의의 광장까지 종횡무진하며 읽어내는 하나의 장대한 사유였다. 플라톤과 윤석열을, 맥베스와 내란 세력을, 아리스토텔레스와 검찰 권력을 같은 무대 위에 세워놓고 대화하게 만드는 이 지적 모험은, 우리 시대 민주주의가 어떤 위기를 통과했으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했다.


저자가 윤석열 정부 초기에 인용한 플라톤의 <정치가> 비유는 섬뜩할 정도로 예언적이었다. "조타수와 선원들의 무능으로 배가 침몰하듯, 통치술을 모르는 자들의 무능으로 나라가 몰락한다"는 경고는 그저 고전의 지혜가 아니라 우리가 목도한 현실 그 자체였다. 검찰 권력이라는 좁은 경험만을 가진 이가 국가라는 거대한 배의 키를 잡았을 때, 우리는 정말로 그 배가 춤을 추며 난파 직전으로 치닫는 것을 보았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국가>에 등장하는 사이비 선원들의 모습이었다. 선주인 민중의 눈을 가리고 권력을 탈취한 뒤 공동체의 재산을 탕진하는 선원들. 이들은 진정한 항해술을 가진 이를 '쓸데없이 하늘만 쳐다보는 몽상가'라며 조롱한다. 지난 3년 반 동안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이, 역사의식이, 민주주의의 원칙이 얼마나 철저히 조롱당했는가. '쓸모'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가치가 얼마나 쉽게 폄하되었는가.... 그러나 플라톤의 비유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조타수는 "별과 계절과 바람을 관찰하며" 항해한다. 즉, 즉각적인 이익이나 권력이 아니라 더 큰 질서와 원리를 이해하는 자만이 배를 안전하게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배 역시 마찬가지다. 단기적 인기나 권력 투쟁이 아니라, 정의와 공익이라는 별을 바라보며 항해할 수 있는 이들이 필요하다. 우리가 겪은 위기는 바로 그런 조타수의 부재가 빚어낸 필연적 결과였다.


책에서 가장 깊이 각인된 부분은 법과 정의에 대한 성찰이었다.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법은 욕구 없는 지성"이라는 정의와 헤르메스 신화를 교차시키며, 법을 다루는 이들의 타락이 초래하는 위험을 경고한다. 헤르메스는 해석과 통역의 신이지만 동시에 은폐와 왜곡, 속임수의 신이기도 하다. 법 해석이라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가진 이 양면성은, 그것을 다루는 이들의 도덕성에 따라 정의의 도구가 될 수도, 불의의 무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바로 후자였다. 검찰과 사법부가 "정신 없는 욕구"에 사로잡혀 법을 정적 제거의 도구로 전락시킬 때, 법치는 이름뿐이고 실상은 무법 상태가 된다. 있는 죄는 묻고 없는 죄는 만들어내며, 권력의 비호를 받는 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저항하는 자에게는 가혹한 이중 잣대. 이것이 우리가 경험한 '헤르메스 동굴'의 어둠이었다. 특히 내란이라는 명백한 헌정 파괴 행위 앞에서조차 법기술자들이 온갖 해석과 절차를 동원해 책임자들을 비호하려 할 때, 시민들이 느끼는 것은 분노를 넘어선 깊은 배신감이다. 법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민주주의의 토대 자체가 흔들린다. 아테네가 기원전 461년 에피알데스의 개혁을 통해 소수 특권층의 사법 독점을 깨고 시민 배심원 제도를 도입한 것은, 바로 이런 신뢰 붕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법이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 서로를 봐주는 담합의 도구가 될 때, 시민들은 직접 정의를 실현하는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 사회도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검찰 권력의 방종과 사법부의 편향성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특정 사건에 대한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법이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는 민주공화국의 근본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아테네의 사법 민주화가 보여주듯, 법 위에 군림하는 특권층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공화국 정신의 핵심이다. 우리가 광장에서 외친 것도 결국 이것 아니었던가.


저자는 언어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 모든 공동체는 언어 공동체 " 라는 그의 진단은 명료하다. 언어가 공동체의 토대이고 혈관이라면, 그 언어의 질이 곧 공동체의 질을 결정한다. 연민과 이성에 기반한 언어는 공동체를 높이지만, 탐욕과 기만의 언어는 공동체를 갉아먹는다.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경험한 것은 정치 언어의 극심한 타락이었다. 내란을 '자유민주주의 수호'라 포장하고, 헌정 파괴를 '구국의 결단'이라 미화하는 언어의 전도. 이런 왜곡된 언어는 현실을 잘못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언어로 생각하고 언어로 세계를 인식하는 인간에게, 언어의 왜곡은 곧 사유의 왜곡이고 현실 인식의 왜곡이다. 오웰이<1984>에서 경고한 '신어(newspeak)'의 공포가 바로 이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타락한 언어를 전파하는 미디어의 역할이다. 언론이 권력의 나팔수가 되어 거짓과 왜곡을 확산시킬 때, 시민들은 월터 리프먼이 말한 ’의사 환경(pseudo-environment)' 속에 갇힌다. 플라톤의 동굴 비유처럼, 실제 현실이 아니라 그림자만을 보며 그것을 진실이라 믿게 되는 것이다. 일부 언론과 유튜브 채널들이 만들어낸 평행 현실 속에서, 어떤 이들은 내란을 민주주의 수호로, 범죄자를 애국자로 인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언어는 회복될 수 있다. 광장에서 시민들이 외친 탄핵하라", "민주주의를 지켜라"는 구호들은 타락한 정치 언어에 맞서 본래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언어 투쟁이었다. 왜곡된 언어를 바로잡고, 사물을 제 이름으로 부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공동체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다.

막스 베버의 구분을 빌려 저자는 '권력정치'와 '윤리정치'를 대비시킨다. 권력정치는 권력의 획득과 향유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정치다. 공익이나 이념이 아니라 권력이 주는 위세를 누리는 것이 목적이다. 베버는 이런 권력정치인들이 결국 "내적으로 붕괴하는 것을 보고, 잘난 체하고 우쭐대지만 실상 속이 텅 빈 제스처의 이면에 어떤 허약함과 무력함이 숨겨져 있는지" 알게 된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의 몰락은 정확히 이런 패턴을 따랐다. 검찰 권력을 등에 업고 집권했지만, 실제로는 국가를 이끌 비전도 능력도 없었던 권력정치의 전형. 모든 비판을 억압하고 사적 이익을 챙기다가 내란이라는 극단으로 치달았고, 결국 시민의 저항 앞에 무너졌다. 맥베스가 피로 왕관을 찬탈했지만 불안에 떨다 폭군이 되고 반란을 자초한 것처럼 말이다. 반면 윤리정치는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통합한다. 옳다고 믿는 원칙을 견지하되, 그 원칙이 현실에서 낳을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는 정치. 이상을 추구하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정치.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적 소명을 가진 이들이 걸어야 할 길이다. 우리가 다시 세워야 할 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윤리정치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


<카이로스 극장>을 읽으며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은, 민주주의란 한 번 쟁취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켜내고 심화시켜야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이 보여주듯, 어떤 정치 체제도 타락과 변질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민주정조차 중우정으로 타락할 수 있고, 그 혼란 속에서 독재가 등장할 수 있다. 우리가 겪은 위기는 바로 민주주의가 형식만 남고 내용이 공허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었다. 선거라는 절차는 있었지만, 그 선거가 시민의 주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은 있었지만, 권력이 그 원칙을 무시하고 폭주했다. 법치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법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민주주의의 회복력도 목격했다. 광장으로 나온 시민들, 진실을 보도하려 애쓴 언론인들, 원칙을 지키려 한 공직자들, 헌법을 수호하려 한 국회의원들. 이들이 보여준 것은 민주주의란 결국 그것을 믿고 지키려는 시민들의 의지와 행동으로만 유지된다는 진리다.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이 위기를 통해 무엇을 배웠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모든 것의 바탕에는 시민의 각성과 연대가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끊임없이 깨어있고, 서로 연대하며,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때만 유지된다. 우리가 광장에서 보여준 그 힘, 그 연대, 그 의지를 일상의 민주주의로 이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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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땜 이론 - 손실을 기회로 바꾸는 리스크 사고의 기술
이동우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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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아침에 무엇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부터 시작해 인생의 중대한 결정들까지.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선택에는 항상 '불확실성'이라는 그림자가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등장하는 것이 인생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위험을 최소화하고 회피하는 데 집중해왔다. 손실회피 성향이라는 행동경제학의 개념처럼, 같은 크기의 이득보다 손실을 훨씬 크게 느끼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이번에 읽은 '액땜이론'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작은 위험을 의도적으로 감수함으로써 큰 위험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접근법이다. 나심 탈레브의 '안티프래질' 개념과 맥을 같이 하는 이 이론은 충격을 받을 때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시스템을 추구한다. 실패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덜어내고 그것을 성장의 기회로 전환시키는 것, 바로 이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사고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자주 액땜했다 '는 말을 한다. 시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재의 손실을 미래의 이익으로 바꾸는 인지적 마법이다. 손실회피가 현재 중심적이고 부정적 감정을 유발한다면, 액땜은 미래 중심적이고 긍정적 감정을 이끌어낸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너를 괴롭히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너의 판단이다 " 라고 했다. 같은 비를 맞아도 한 사람은 무지개를 기대하고 다른 사람은 감기를 걱정한다. 이 차이가 바로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 현실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 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는 중간 지점, 그것이 액땜이론의 핵심이다. SNS 시대에 개인의 작은 불행을 공유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개인만의 경험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집단적 경험이 된다. 집단지성이 문제 해결에 활용되듯이, 집단적 액땜 지혜가 개인의 정신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액땜과 핑계는 겉으로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핑계는 도덕적 이탈의 전형적인 사례인 반면, 액땜은 도덕적 책임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성장의 기회로 전환하는 건설적인 접근법이다. 액땜은 과거의 실패를 미래의 성공을 위한 자산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사고인 반면, 핑계는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의 책임마저 회피하려는 후향적 사고다. 핑계를 습관적으로 대는 사람들은 점차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서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하게 된다. 제프 조세프의 ‘실패의 규모화' 개념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크고 대담한 베팅을 하지 않으면 큰 성공도 없다. 실패는 혁신의 필수적 부분이다." 일이 아무 문제 없이 해결되면 그것은 당연하다고 인식되어 기억에 잘 남지 않지만, 일이 실패하면 기억에 남는다. 중요한 것은 그 실패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액땜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부정적 사건을 긍정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신경 회로를 활성화시킨다. 전전두엽의 인지적 재평가 능력, 즉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능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액땜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이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되고, 이것이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도파민이 늘어나면 학습 능력과 기억력이 향상되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욕도 높아진다. 액땜 이론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 문제 해결 상황에서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접근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액땜했다'고 생각하면 잠도 더 잘 자게 되고, 잠을 잘 자면 다음날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진정한 강함은 주먹을 꽉 쥐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 놓아줄 줄 아는 여유에 있는지도 모른다.

기업이나 조직이 실패를 겪을 때마다 학습 효과가 누적되어 다음번에는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게 된다는 실패학습곡선 개념은 열 번 시도해서 한 번만 성공해도 된다는 것, 즉 아홉 번의 실패를 투자로 보겠다는 의미다. 의사들이 건강한 사람만 연구해서는 병을 고칠 수 없듯이, 경영학도 성공 사례만 분석해서는 진정한 성공 법칙을 찾을 수 없다. 존슨앤존슨의 ”우리가 소비자를 제대로 보살피면, 주주들도 자연스럽게 보상받을 것이다. 순서를 바꾸면 안된다"는 철학이나, 타이레놀 사건 당시 "소비자의 안전에 비하면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결정은 장기적 관점의 액땜 전략이었다. 토요타의겐치겐부츠(현장에서 현물을 보라) 원칙은 진정한 성공은 실패에서 배우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탈레브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실수나 실패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일론 머스크는 "만약 여러분이 실패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혁신적이지 않다는 뜻"이라고 했다. 용기있는 리더는 위기를 정 면으로 마주하며 '이 상황을 어떻게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우리가 이 경험을 통해 어떻게 더 나은 조직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액땜과 핑계를 가르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전략적 사고의 차이다. 구체적으로는 단기적 손실회피에 집중하느냐, 아니면 장기적 가치 창출을 추구하느냐의 차이다. 새로운 시도는 실패의 위험을 높이고, 실패는 책임 추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혁신을 기피하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이유는 실패 그 자체가 의미 없는 사건이어서가 아니다. 그것을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실패가 자산이 될지, 파멸로 귀결될지는 결국 외부 환경의 타이밍과 내부 준비 상태가 맞아떨어질 때만 가능하다. 루이 파스퇴르의 "기회란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는 말처럼, 아무리 완벽한 타이밍이 와도 그것을 알아보고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린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한다. 완벽함을 추구하지 말고 진정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오늘의 실패는 내일의 성공을 위한 예약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 더 큰 꿈을 그려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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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런 UN-learn - 배운 것을 잊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성장’
김연지 지음 / 어깨위망원경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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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채우는 법만 배워왔다. 더 많은 지식, 더 높은 학력, 더 화려한 경력. 그러나 정작 삶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너무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내려놓지 못해서다. 오래된 찻잔에 새 차를 따르려면 먼저 남은 물을 버려야 한다. 당연한 이치지만, 우리는 마음속 찻잔을 비우지 않은 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부어 넣으려 한다. 그렇게 넘쳐흐르는 물은 어디에도 담기지 못하고 바닥에 흩어질 뿐이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 시절, 나는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고, 강의를 듣고, 자격증을 따고, 외국어를 배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무엇을 아는지 모르겠고, 쌓이면 쌓일수록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지식은 늘었지만 지혜는 자라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배운 것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각각의 정보는 독립적으로 쌓여 있었고,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어떤 것도 꺼낼 수 없었다. 마치 정리되지 않은 창고 같았다. 물건은 가득한데 찾고 싶은 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지워내는 일이었다. 내가 왜 이것을 배우는지, 이것이 정말 내 삶에 필요한지, 이 지식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질문하지 않은 채 무작정 쌓아 올린 것들을 정리해야 했다. 언런이란 결국 '선택적 망각'이다. 모든 것을 기억할 필요도, 모든 것을 간직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먼저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아는 일이다.


우리가 지워야 할 것은 지식만이 아니다. 더 깊숙이 자리 잡은 것은 '믿음'이다. "여자는 이래야 해", "나이들면 안정이 최고 야", "실패는 부끄러운 거야", "착하게 살면 복을 받아".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문장을 내면화한다. 부모님의 말, 선생님의 조언, 사회의 기대, 미디어의 메시지, 그것들은 때로 우리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가두기도 한다. 예전에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좋은 사람이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부탁을 거절하지 않으며, 언제나 미소 짓고, 화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싫어도 웃었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으며, 화가 나도 참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남들이 나를 대하기 편한 사람. 요구하기 쉬운 사람. 거절당할 걱정 없는 사람. 나는 나 자신을 지우고 타인의 기대라는 틀에 나를 끼워 맞춘 것이었다. 그 믿음을 지 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게 낫다"는 문장을 받아들이는 데도, "거절은 나쁜 게 아니라 경계를 지키는 일이다"라는 사실을 체화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낡은 믿음은 낡은 지도와 같다. 과거에는 유효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나를 안내하기엔 부족하다. 그 지도를 들고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면, 우리는 계속 같은 곳을 맴돌게 된다. 언런은 용기다. 익숙한 것을 의심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것을 다시 보며, 오래 믿어온 것을 내려놓는 용기다. 용기가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


언런의 핵심은 '질문'에 있다. 우리가 무엇을 지워야 하는지 알려면, 먼저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일을 왜 하는가?"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이 생각은 내 것인가, 남의 것인가?" 이 목표는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옭아매는가?" 질문 없이 사는 삶은 GPS 없이 운전하는 것과 같다. 방향을 모른 채 그저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어느새 엉뚱한 곳에 와 있다. 그제야 "내가 왜 여기 있지?"라고 묻지만, 이미 많은 시간을 허비한 뒤다. 나는 오랫동안 '성공'이라는 단어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성공이란 높은 연봉, 좋은 직함,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기준에 맞춰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멈춰서서 물었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성공인가? 그 질문 하 나가 모든 것을 바꿨다.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쫓던 성공은 사실 '남들 기준의 성공'이었다는 것을. 나는 나만의 성공을 정의하지 못한 채, 누군가 정해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질문은 기존의 틀을 흔든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선택 가능한 것이었음 을 보여준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 "다르게 할 수는 없을까?", 이건 누가 정한 규칙인가?" 같은 질문들은 우리를 수동적 존재에서 능동적 존재로 바꾼다. 좋은 질문은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방향을 바꾼다. "어떻게 더 많이 벌까?"보다 "어떻게 더 의미 있게 살까?"가 중요하고, "어떻게 남들에게 인정받을까?"보다 "어떻게 나 자신에게 솔직할까?"가 본질적이다. 언런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려는 태도에서 완성된다.


언런을 실천하는 가장 구체적인 방법은 '기록'이다.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은 흐릿하고 휘발적이다. 그러나 글로 쓰는 순간, 생각은 명확해지고 구조를 갖춘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하루를 마치며 짧게라도 기록하는 습관을 들였다. 일기라고 부르기엔 거창하고, 메모라고 하기엔 의도적이다. 그냥 오늘 무엇을 느꼈는가", "어떤 선택을 했는가",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했는 가"를 몇 줄 적는다. 처음엔 별것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달 뒤 다시 읽어보니, 패턴이 보였다. 내가 반복적으로 불안해 하는 지점, 자꾸 피하려는 문제, 습관적으로 선택하는 반응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기록은 거울이었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던 나를 비춰주는 거울인 것이다. 기록의 힘은 '객관화'에 있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감정과 뒤섞여 불분명하지만, 글로 쓰고 나면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이 감정은 사실 저 상황 때문이었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또한 기록은 '언런의 흔적'이 된다. 내가 무엇을 버렸는지, 어떤 생각을 바꿨는지, 어떤 믿음을 내려놓았는지를 기 록해두면, 나중에 다시 흔들릴 때 돌아볼 기준이 생긴다. "아, 나는 이미 이 질문에 답했었지. 그때 내린 결론은 이거였어. 기록은 성장의 증거이기도 하다. 1년 전의 기록을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그때는 이런 것도 고민이었구나", "지금은 이 정도는 쉽게 넘기는데". 기록은 내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그 변화가 나를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언런의 궁극적 목적은 '비움' 그 자체가 아니다. 비워낸 자리에 진짜 필요한 것을 채우기 위함이다. 잘못된 것을 지우고, 낡은 것을 버리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야, 비로소 새로운 배움이 들어올 공간이 생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어제의 정답이 오늘은 오답이 되고, 오늘의 상식이 내일은 구닥다리가 된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그런데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우는 순환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한번 배운 기술로 평생 먹고산다"는 말이 통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10년 전 배운 지식이 지금은 쓸모없어진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런데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오래된 것을 지워야 한다. 마치 스마트폰처럼. 용량이 가득 차면 새 앱을 갈 수 없다. 그럴 땐 안 쓰는 앱을 지워야 한다. 우리 뇌도 마찬가지다. 쓸모없는 정보, 낡은 편견, 부정적 믿음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언런은 ’리셋 버튼'이다. 시스템이 느려지고 오류가 생겼을 때, 우리는 재부팅한다. 삶도 마찬가지다. 뭔가 잘 안 풀리고, 방향을 잃었고, 에너지가 바닥났을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열심히 달리는 게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리셋'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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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친 이유는 계약이 없어서다
김명식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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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이 질문은 많은 이들이 밤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우리는 흔히 지침의 원인을 과로, 인간관계, 또는 개인의 의지 부족에서 찾곤 한다. 하지만 <당신이 지친 이유는 계약이 없어서다>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저자는 "지친 이유는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성과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이 메시지는 처음에는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무너지는 순간은 바쁠 때가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심이 들 때다. 아무리 성실하게 일해도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 가치마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계약'이라는 개념을 삶의 성과 전반으로 확장해서 설명한다는 점이다. 직장인에게 계약은 프로젝트의 완료일 수 있고, 프리랜서에게는 클라이언트의 확정, 학생에게는 목표 점수 달성일 수 있다. 심지어 일상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계약'을 맺으며 살아간다. 약속을 지키는 것, 목표를 이루는 것,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것 모두가 일종의 계약 구조 안에 있다. 저자는 이러한 성과 구조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마치 목적지 없이 달리는 차처럼, 방향 없는 노력은 오히려 우리를 소진시킨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바쁘게 움직였지만 정작 '이루어낸 것'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가장 무기력했다. 그 무기력은 피곤함이 아니라, 방향 상실에서 오는 불안이었다.

책은 심리적 측면에 집중한다. 저자는 계약이 없는 상태가 경제적 어려움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고갈과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관찰이다. 실제로 우리는 성과를 내지 못할 때 스스로를 의심하고,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점점 더 움츠러든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웃음 뒤에 숨은 진짜 대답을 읽는 법'이라는 대목이다. 고객이 “생각해 볼게요"라고 말할 때, 그것이 긍정의 신호인지 거절의 완곡한 표현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관계 전반에서 필요한 통찰이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의 표면적인 반응에만 집중하고, 그 이면의 진짜 의도를 읽지 못한다. 그 결과 헛된 기대를 품거나, 반대로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 뿐만 아니라 맥락, 표정, 에너지의 흐름까지 종합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일종의 공 감 능력이다.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설득이 가능해진다. 또한 책은 계약이 없는 기간 동안 어떻게 멘탈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조언을 제공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식의 추상적인 조언이 아니라, 하루 단위로 자신의 에너지를 점검하고, 작은 성취도 기록하며, 루틴 을 유지하는 등의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는 특히 프리랜서나 자영업자처럼 불안정한 수익 구조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용한 조언이다.

책은 전략적인 내용을 잘 전달해 주고 있다. 저자는 계약은 운이 아니라 구조라고 단언한다. 즉, 계약을 '얻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내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관점의 전환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과를 운이나 타이밍의 문제로 치부하지만, 실제로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회조차 오지 않는다. 저자는 계약을 만들어내기 위한 여러 전략을 제시하는데, 그 중에서도 '절차의 재구성'이라는 개념이 특히 눈에 띈다. 더 열심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자체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무작정 많은 고객을 만나는 것보다 질 높은 상담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고, 단순하게 상품을 설명하는 것보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접근은 비단 영업직뿐만 아니라 모든 직종에 적용될 수 있다. 직장인이라면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재구성할 수 있고, 창작자라면 콘텐츠 생산 프로세스를 재설계할 수 있다. 핵심은 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경쟁자와의 차별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친절하거나 성실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고객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전문성, 신뢰,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저자는 이를 '웃음을 넘어선 확신'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만, 진정한 설득은 상대방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책의 가장 큰 강점은 이론과 실전의 균형이다. 저자는 추상적인 원칙만을 나열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례와 적용 방법을 함께 제시한다. 예를 들어, 고객의 유형을 분류하고 각각에 대한 대응 전략을 제시하는 부분은 매우 실용적이다. '결정 미룸 형, 가족 반대형','시장 변수형', '소극적 고객형', '경쟁자 선택형' 등 다양한 유형을 제시하고, 각각의 심리와 대응법을 설명한다. 이러한 분류는 인간관계 전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 들과 크고 작은 '협상'을 한다. 상사를 설득해야 할 때도 있고, 가족을 이해시켜야 할 때도 있으며, 친구와의 관계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 때도 있다. 이 모든 상황에서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저자는 또한 계약이 없는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조언한다. 많은 사람들이 성과가 나지 않을 때 무기력에 빠지거나, 반대로 무작정 더 바쁘게 움직이려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기야말로 시스템을 점검하고, 전략을 재정비하며, 자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한다. 견디는 것이 아니라, 다음 기회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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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 영상 제작 - 직장인을 위한 미드저니
고희청.박범희 지음 / 성안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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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못 하는 일"이라고 선 긋던 영역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완벽한 디자이너가 될 순 없지만, 내 아이디어를 혼자 힘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획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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