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 씽킹 - 내 안에 잠든 부의 씨앗을 발견하라
최치영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자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거나, 좋은 환경에서 자랐거나, 운이 좋았던 사람들. 하지만 정 말 그럴까? 리치 씽킹은 이러한 통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부는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행운인가, 아니 면 내면에 잠재된 무언가가 발현되는 것인가? 이 책이 제시하는 핵심 메시지는 명확하다. 모든 사람은 이미 부자다. 다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마치 씨앗 안에 거대한 나무가 이미 들어 있듯이, 우리 내면에는 풍요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긍정적 사고나 목표 설정의 중요성 을 강조한다. 물론 이것들도 중요하다. 하지만 리치 씽킹이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실행 가능한 시스템'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막연하 게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각 단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안내한다.


저자가 수많은 부자들을 연구하며 발견한 것은 흥미롭다. 그들에게는 특정한 품성 '이 있었다는 것. 이 품성은 태도의 뿌리가 되고, 태도는 행동을 만들며, 행동은 결국 자산의 흐름을 바꾼다. 이는 부의 창조가 기술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존재론적인 문제임을 시사한 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가 결국 내가 얼마나 부유해질 수 있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리치 씽킹의 핵심은 RICH 시스템이 라는 4단계 프로세스에 있다. 이는 단순한 이론적 틀이 아니라, 실제로 내면의 잠재력을 현금 흐름으로 전환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이다.

첫 번째 단계는 인식(Recognize)이다. 자신을 깊이 탐색하여 내 안의 부의 근원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 을 잘하는지,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혹은 알더라도 그것이 돈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인식 단계는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탐구를 요구한다.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경험을 해왔는가? 나는 무엇에 열정을 느끼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부의 첫 번째 실마리가 된다. 두 번째는 발상(Ideate) 단계다. 인식을 통해 발견한 나의 강점과 특성들을 목 창적인 아이디어로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융합'이다. 내가 가진 서로 다른 경험과 지식, 관심사들을 연결하여 새로 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 예를 들어 요리를 좋아하는 마케터라면, 단순히 마케팅 컨설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요식업 특화 마케팅 전문가 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자신만의 독특한 조합을 찾는 것이 발상 단계의 핵심이다. 세 번째는 설계(Canvas) 단계다. 아이디어를 실제 수익으로 만드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는 과정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웰스 디자인 캔버스라는 도구를 제안한다. 이는 복잡한 사업 계 획을 한 장의 종이에 정리할 수 있게 해주는 프레임워크다. 가치 제안, 핵심 고객, 수의 모델, 핵심 활동, 필요 자원, 전달 채널, 비용 구조 등을 명확히 정리함으로써,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현실 가능한 모델로 전환한다. 마지막은 습관(Habit) 단계다. 아무리 좋은 계획도 실 행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설계도에 따라 꾸준히 실행하고, 이를 지속 가능한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 최종 단계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완벽함보다는 지속성이다. 작게라도 시작하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복리의 마법은 투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 니라, 습관에도 적용된다.


리치 씽킹이 제시하는 부의 원리 중 가장 실용적인 부분은 바로 '고객의 고통'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돈은 가치의 교환이다. 그리고 가치 는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할 때 발생한다. 따라서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찾아내고, 그것을 해결하 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은 '고통'이 반드시 심각한 문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편함, 번거로움, 비효율, 시간 낭비 등 일상적인 작은 고통들도 해결할 가치가 있는 문제다. 실제로 많은 성공한 비즈니스들이 이러한 작은 고통을 해결하면서 시작되었다. 택 배 추적 서비스, 음식 배달 앱, 온라인 쇼핑몰 등은 모두 '조금 더 편리하게'라는 욕구에서 출발했다. 웰스 디자인 캔버스의 첫 단계인 '가 치' 단계에서는 바로 이 고통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요구한다. 나의 타겟 고객은 누구인가? 그들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 가? 나는 어떻게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있다면, 이미 수의 모델의 절반은 완성된 것이다. 해결책은 주로 두 가지 형태로 제공된다. 비용을 줄여주거나, 시간을 절약해주는 것. 때로는 둘 다 제공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강의 플랫 폼은 학원에 다니는 것보다 비용을 절감하면서 동시에 이동 시간도 아낄 수 있게 해준다. 구독 서비스는 매번 구매 결정을 내리는 시간 과 수고를 덜어준다. 인식 단계에서 발견한 강점과 발상 단계에서 도출한 독창적 아이디어가 여기서 결합된다. 다른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가치. 그것이 지속 가능한 부의 원천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좋은 아이디어는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 지 않거나, 시작은 했지만 지속하지 못한다. 리치 씽킹은 이 실행의 간극을 메우는 것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다. 설계 단계에서 강조하 는 것은 '단순화'다. 계획이 복잡할수록 실행 가능성은 떨어진다. 웰스 디자인 캔버스를 한 장으로 정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잡한 사업 계획서보다 한눈에 들어오는 한 정의 그림이 훨씬 강력하다. 이는 행동의 장벽을 낮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면, 시작하기가 쉬워진다. 습관 단계에서는 '작은 시작'을 강조한다.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완벽하게 준비하려다가 결국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 신 작게라도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 온라인 강의를 만들고 싶다면, 완벽한 커리큘럼을 짜기 전에 일단 10분짜리 영상 하나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블로그를 통해 수익을 내고 싶다면, 수백 개의 글을 계획하기 전에 일단 첫 글을 쓰는 것이다. 지속성은 동기부여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시스템이 필요하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다. 운동을 습관화하고 싶다면 운 동복을 미리 꺼내두거나, 헬스장을 집 근처로 정하는 것처럼, 원하는 행동을 하기 쉽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부를 창출하는 활 동도 마찬가지다. 매일 같은 시간에 하기, 특정 공간에서 하기, 다른 습관과 연결하기 등의 방법으로 시스템화할 수 있다. 실행 과정에서 반드시 어려움이 찾아온다. 예상치 못한 문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 동기 부여의 저하 등. 이때 RICH 시스템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 가라고 말한다. 인식 단계로 돌아가 나의 근본적인 이유를 상기하고, 발상 단계로 돌아가 새로운 대안을 탐색하며, 설계를 수정하고, 습 관을 재조정한다. 이는 일회성 프로세스가 아니라 순환적인 시스템이다.

리치 씽킹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관계다. 부는 진공 상태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 가치의 교환, 협력과 연결 속에서 부가 흐른다. 저자는 마음가짐, 지식과 기술과 함께 관계를 성공의 세 가지 기둥으로 제시한다. 관계 자본은 인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명함을 모았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깊고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다. 진정한 관 계 자본은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것에서 나온다. 내가 먼저 가치를 제공하고, 상대방도 가치를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 이러한 관계들이 쌓일 때 예상치 못한 기회들이 생겨난다. 웰스 디자인 캔버스의 마지막 단계인 '확산'은 바로 이 관계 자본과 연결된다.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이를 고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가장 강력한 방법은 고객을 팬으로 만드는 것이다.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 서 감동시키고,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관계 자본을 활용한 확산 전략이다. 관계의 재정렬도 필요하다.


현재 나를 둘러싼 관계들이 나의 부의 여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점검해야 한다. 부정적이고 제한적인 믿음을 강화하는 관계는 거리 를 두고, 성장과 도전을 격려하는 관계는 가까이 해야 한다. 이는 냉정한 계산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멘토와 동료들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원하는 길을 걸어간 사람에게서 배우는 것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장을 가 속화한다. 같은 여정을 함께 걷는 동료들은 외로움을 덜어주고 동기를 부여한다. 리치 씽킹의 여정은 혼자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 함 께 성장하는 공동체 속에서 더 빛을 발한다.

리치 씽킹은 부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부는 운이나 환경의 산물이 아니라, 내면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발상하며 설계하고 습관화하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책이 제공하는 RICH 시스템은 실행 가능한 매뉴얼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리 고 시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속이다. 내 안에 잠든 부의 씨앗은 하루아침에 거목으로 자라지 않는다. 매일 물을 주고 햇빛을 쬐게 하며 정성껏 돌봐야 한다. RICH 시스템은 그 돌봄의 방법을 알려주는 정원사의 안내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리치 씽킹이 우리에게 건네는 첫 번째 초대장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무에 바로 쓰는 일잘러의 챗GPT 프롬프트 74가지 - 업무와 일상을 바꾸는 챗GPT 활용법
이석현 지음 / 제이펍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은 챗GPT를 업무 코치로 활용하고, 커리어 로드맵을 설계하며, 번아웃을 진단하고, 자기 강점을 탐색하는 방법들. 이것은 더 이상 "일 잘하는 법‘이 아니라 ‘잘 사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무에 바로 쓰는 일잘러의 챗GPT 프롬프트 74가지 - 업무와 일상을 바꾸는 챗GPT 활용법
이석현 지음 / 제이펍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묘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던지면 답이 돌아오는 시대.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질문이라 는 역설이 펼쳐지는 시대. <실무에 바로 쓰는 일러의챗GPT 프롬프트 74가지>를 읽으며 내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은, 이 책이 업무 효율화 매뉴얼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책은 일러를 위한 챗GPT의 사용 방법론에 관한 책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74가지 프롬프트 는 표면적으로는 이메일 작성법, 회의록 정리법, 데이터 분석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프롬프트는 " 당신 은 무엇을 원하는가? " 당신의 업무에서 진짜 핵심은 무엇인가?" "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가? " 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진다.


챗GPT는 거울이다. 우리가 던진 질문의 품질만큼만 답을 돌려준다. 그렇기에 프롬프트를 설계한다는 것은 곧 자기 사유의 구조를 설계 하는 일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빠른 답'을 요구받는다. 업무는 속도전이 되었고, 생각할 시간은 사치가 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Al라는 도구는 우리에게 다시 생각할 여유를 돌려준다. 챗GPT가 초안을 작성하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이게 정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인가?"를 묻게 된다. 기계가 대신 쓰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의미'를 고민할 공간을 얻는다. 이 책은 바로 그 공간을 어떻 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안내서라 할 것 같다.

책이 강조하는 핵심 구조는 명확하다. 목표-제약-컨텍스트-포맷. 이 네 가지 틀만 제대로 잡아도 챗GPT의 결과물은 극적으로 달라진 다. 곧 업무를 대하는 태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 소통을 구조화하는 방식 그 자체다. 예를 들어, '이메일 초안 작성' 프롬프트의 경우, 단순하게 " 이메일 써줘 " 라고 하는 대신, 역할을 정의하고, 목표를 명시하며, 톤과 길이를 제한하고, 출력 형식을 지정한다. 이 과정은 마치 나 자신에게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 이메일을 쓰는가? 상대방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은가?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 를 되묻는 일과 같다. 프롬프트는 명령어가 아니라 자기 점검의 체크리스트가 된다. '데이터 정제 및 피벗 요약' 프롬프트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터를 던져주고 분석해줘"라고 하는 대신, 어떤 이상치를 찾고, 어떤 기준으로 피벗하며, 어떤 형태의 인사이트를 원하는지를 구체 화한다. 결국 이것은 "나는 이 데이터에서 무엇을 알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정교화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흔히 데이터 자체가 답을 준 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데이터는 질문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챗GPT는 그 관점을 명료하게 만드는 도 구다. 저자가 말하는 '재현 가능한 성과'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온다. 운에 기대지 않고, 매번 비슷한 품질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그것은 AI의 능력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사고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구조화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결국 일을 잘한다는 것은, 머 릿속의 혼란을 질서로 바꾸는 능력이다. 그리고 프롬프트는 그 질서를 언어로 옮기는 훈련이다.


팀 협업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회의 전 안건 정리, 회의 중 실시간 요약, 회의 후 액션 아이템 추출, 이 모든 과정에 챗GPT를 활용 하는 방법이 제시된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AI가 '기록자'가 아니라 '중재자'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회의록을 정리할 때 챗 GPT에게 "결정된 것과 보류된 것, 그리고 담당자와 데드라인을 표로 만들어줘"라고 요청하면, 그것은 회의 참석자들이 "우리는 정말 결정을 내렸는가? 아니면 그냥 이야기만 나눈 것인가?"를 직면하게 만드는 거울이다. 많은 회의가 결론 없이 끝나는 이유는, 우리가 '결 정'과 '논의'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AI는 그 경계를 명확히 그어준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 진단' 프롬프트는 더 나아가 인 간관계의 영역까지 파고든다. 동료와의 대화 패턴을 분석하고, 갈등 지점을 찾아내며, 더 나은 소통 방식을 제안한다. 이것은 기술의 영 역이 아니라 감정과 관계의 영역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AI는 여기서도 유용하다. 왜냐하면 AI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제3자의 시선으 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패턴을 짚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채GPT는 인간의 감정을 대체할 수 없지만, 인간이 감정에 집중할 여유를 만든다"고 말한다. 정확한 표현이다. 회의록 정리, 일정 관리, 보고서 초안 작성, 이런 기계적 작업을 AI에게 맡기면, 우리는 비로소 '이 프로젝트가 정말 의미 있는가?' '팀원들이 지금 어떤 감정 상태인가?' 같은 본질적 질문에 시간을 쓸 수 있다. AI 시대의 일러는, 기술 을 잘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성을 더 깊이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데이터 분석 파트는 이 책에서 가장 철학적인 부분이었다. 저자는 데이터를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이야기'로 본다. 그리고 챗GPT는 그 이야기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통역사다. 매출 데이터를 분석할 때 우리는 보통 "이번 달 매출이 올랐다/내렸다"는 사실 팩트 체 크에 그친다. 그러나 챗GPT에게 " 어느 제품군에서, 어느 지역에서, 어떤 고객층에서 변화가 있었는지 피벗 테이블로 보여주고, 그 이 유를 3가지 가설로 제시해줘 " 라고 요청하면, 데이터는 갑자기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숫자는 맥락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더 흥미로운 것은 '설문조사 인사이트 추출' 프롬프트다. 수백 개의 주관식 응답을 사람이 일일이 읽고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 러나 챗GPT는 패턴을 찾아내고, 핵심 키워드를 추출하며, 응답자들의 감정 톤까지 분석한다. 그 결과, 우리는 "고객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데이터와의 대화'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하다. 데이터는 침묵 하고 있지만, 우리가 올바른 질문을 던지면 답을 한다. 챗GPT는 그 질문을 구체화하고, 답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한 다. 결국 데이터 분석 능력이란, 숫자를 다루는 능력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사유의 능력이다.


책은 챗GPT를 업무 코치로 활용하고, 커리어 로드맵을 설계하며, 번아웃을 진단하고, 자기 강점을 탐색하는 방법들. 이것은 더 이상 "일 잘하는 법'이 아니라 '잘 사는 법'에 관한 이야기다. '주간 회고 프롬프트'를 보면, What-So What-Now What 구조로 한 주를 돌 아본다. 무엇을 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다음 주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구조가 반복되면, 우리는 서서히 자기 패턴을 발견하 게 된다. 어떤 일에서 에너지를 얻고, 어떤 일에서 소진되는지. 어떤 목표는 진짜이고, 어떤 목표는 타인의 기대인지. 챗GPT는 여기서 거울이자 코치다. 우리가 던진 질문에 답하되, 또 다른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 목표는 왜 중요한가요?" 당신의 강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은 사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들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여유가 없다. AI는 그 여유를 만들어준다. 저자는 "AI 시대의 일러는 도구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 라, 도구를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정확하다. 챗GPT는 생산성 도구만이 아니라, 자기 성찰의 매개체다. 우리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에 따라, 우리는 일을 빨리 끝내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일의 의미를 깊이 탐구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계속 한 가지 질문을 떠올렸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AI가 인간의 일자리 를 빼앗을 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이 책은 정반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은 오히려 더 인간다워질 수 있다. 왜냐 하면 AI가 대신해주는 것은 '기계적인 것'이고, 인간에게 남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정리는 AI가 하지만, 그 데이터 로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인간이 판단한다. 보고서 초안은 AI가 쓰지만, 그 보고서에 어떤 가치를 담을지는 인간이 선택한다. 회의록은 AI가 정리하지만, 팀원들의 감정을 읽고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다. 결국 프롬프트를 잘 만든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 하는지 명확히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자기 인식의 문제다. AI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코딩도, 데이터 분석도 아니다. 그것 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이 일은 왜 중요한가?"를 끊임없이 묻는 능력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범한 오므라이스에 숨은 경영전략 - 만 원짜리 상품, 어떻게 100만 원에 팔릴까
가키우치 다카후미 지음, 이경미 옮김 / 지니의서재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제 점심시간, 회사 근처 식당에서 오므라이스를 먹었다. 8,000원. 계란으로 감싼 밥에 케첩이 뿌려진, 지극히 평범한 한 끼였다. 맛있었지만 특별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 오므라이스에 '스타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혹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이라는 추억이 덧붙여진다면? 같은 재료, 같은 조리법이지만 가격은, 그리고 내가 느끼는 만족감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가키우치 다카후미의 <평범한 오므라이스에 숨은 경영전략>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정말 '것' 그 자체를 사는 걸까, 아니면 그것에 얹힌 '무엇'을 사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 지난 몇 년간의 실패였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나는 늘 '실력'에만 집착했다. 더 나은 포트폴리오, 더 완벽한 결과물.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슷한 실력을 가진 동료가 나보다 훨씬 많은 의뢰를 받았다. 처음엔 운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인맥이 좋아서, 우연히 좋은 클라이언트를 만나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았다. 그 사람은 '작업물'을 넘기는 게 아니라 '경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중간 과정을 공유하고, 클라이언트의 고민을 먼저 물어보고, 완성 후에도 간단한 사용 가이드를 덧붙였다. 기술적으로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그 사람의 서비스에는 '당신을 생각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배어 있었다. 바로 그것이 부가 가치였다.

저자는 '가치'를 간단한 공식으로 정리한다. 기본 가치에 부가 가치를 더하고, 불필요한 낭비를 빼는 것이다. 듣기엔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더하기'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기능, 더 화려한 포장, 더 긴 설명. 그런데 정작 고객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닐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책에 나온 파슬리 이야기가 그렇다. 튀김 요리 옆에 놓인 파슬리는 어떤 사람에게는 '정성'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치워야 할 것'이다. 같은 요소가 어떤 맥락에서는 가치가 되고, 다른 맥락에서는 낭비가 된다. 그래서 중요한 건 '무엇을 더할까'가 아니라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더할까'다. 며칠 전 동네 카페에서 겪은 일이 이를 정확히 보여준다. 평소처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바리스타가 건네며 한마디 했다. "오늘 원두가 새로 들어와서 평소보다 산미가 조금 강할 거예요. 혹시 불편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단 10초의 대화였지만, 그 커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됐다. 그냥 마셨다면 '어? 오늘 맛이 좀 다른데?'라고 생각했을 산미가, 이제는 '아, 새 원두구나. 이것도 괜찮네'로 바뀌었다. 맥락을 설명하는 한 문장이 불만을 기대로, 의문을 이해로 전환시킨 것이다. 이게 바로 저자가 말하는 '스몰 토크의 힘'이다. 거창한 마케팅이나 브랜딩이 아니어도, 진심 어린 한마디가 관계를 바꾸고 가치를 만든다.

그런데 이 책이 마케팅 기법서가 아닌 이유는, '평범함'을 긍정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보통 차별화를 위해 '특별해지려' 애쓴다. 남들과 다른 걸 해야 하고, 독특해야 하고, 눈에 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묻는다. 정말 그래야만 할까? 책에 나온 한 일화가 인상적이다. 뛰어난 성과를 내는 직원들에게 특별한 스펙이 있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평범합니다"였다. 그들은 덧붙였다. "고객도 대부분 평범하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제가 그들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이 말은 내게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동안 '평범함'을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재능도, 화려한 경력도 없는 나를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평범함은 결핍이 아니라 '공통의 언어'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평범하다면, 그 평범함이야말로 가장 넓은 공감대 아닌가 싶다. 이 관점의 전환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저자의 조언과도 맞닿아 있다. 예산이 부족하고, 인력이 모자라고, 시간이 없다는 불평 속에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가진 것, 이미 존재하는 자원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면? 책에 나온 한 동물원 사례가 그랬다. 희귀한 동물을 들여올 예산이 없었던 그 동물원은 발상을 바꿨다. '없는 것(다양한 동물)'이 아니라 '있는 것(동물의 생태)'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사자가 몇 마리 있느냐가 아니라, 사자가 어떻게 사냥하고 쉬고 놀며 사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만들었다. 결과는? 방문객들은 희귀함이 아니라 '진짜 동물의 삶'에 매료됐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내 책상 위를 돌아봤다. 낡은 노트북, 몇 권의 책, 반쯤 마신 물 한 잔. 별것 없어 보이지만, 이 안에도 이야기는 있다. 이 노트북으로 첫 프로젝트를 완성했고, 이 책들은 힘들 때마다 꺼내 읽었고, 이 물컵은 10년 전 첫 직장 동료가 준 선물이다.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평범한 사물은 '나의 서사'가 된다. 그리고 그 서사가 바로 내 일과 삶의 부가 가치다.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결국 부가 가치란 '태도'의 문제라는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내가 만드는 것을, 내가 만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 오므라이스는 오므라이스다. 하지만 그걸 만드는 사람이 "오늘 손님이 기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케첩으로 메시지를 쓴다면, 그 순간 오므라이스는 식사를 넘어 '마음'이 된다. 거창한 기술이나 자본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진심, 관심, 세심함. 그런 것들이면 충분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클라이언트에게 작업물을 넘길 때, 한 줄 메모를 덧붙이기로 했다. "이 부분은 이런 의도로 만들었어요", "혹시 수정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그냥 파일만 보낼 때와 비교하면 30초도 안 걸리는 일이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꼼꼼하시네요", "다음에도 부탁드릴게요"라는 답이 왔다. 변한 건 작업물의 퀄리티가 아니라, 내가 더한 '한 문장'이었다. 그 한 문장이 신뢰를 만들고, 다음 기회를 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돈키호테, 상식파괴로 경영하라
사카이 다이스케 지음, 정지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본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돈키호테를 들렀을 것이다.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인 상품들, 형광색 손글씨 광고문으로 뒤덮인 벽면,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통로. 첫인상은 '어지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디선가 예상치 못한 물건이 튀어나올 것 같고, 다음 코너를 돌면 또 무엇이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공간이 실은 치밀하게 설계된 '구매 경험'이라는 사실을, <돈키호테, 상식파괴로 경영하라>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은 현대 경영학의 정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하나의 실험 보고서에 가깝다. 표준화, 효율화, 매뉴얼화로 대표되는 체인점 경영의 상식을 돈키호테는 정반대로 뒤집어놓는다. 각 매장은 제각각 다르고, 점원들은 스스로 가격을 정하며, 실패한 상품을 대대적으로 광고한다. 이런 '비상식'이 어떻게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돈키호테 성공의 핵심은 '권한위임'이라는 단순하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원칙에 있다. 창업자 야스다 다카오가 정립한 '원류'라는 경영 철학서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사람은 자신이 주역이 되어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에 진지하고 열심히 한다." 이것은 경영 이론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성장할수록 통제를 강화한다. 본부에서 만든 매뉴얼을 전 지점에 똑같이 적용하고, 의사결정 권한은 위로 올라간다. 효율적이고 안전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현장의 창의성과 열정은 소멸한다. 반면 돈키호테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아르바이트생도 상품 매입과 가격 책정에 참여하고, 점장은 지역 특성에 맞춰 매장을 자유롭게 구성한다. 본부의 인공지능이 권장 가격을 제시해도, 최종 결정은 현장 직원의 '감'과 '경험'에 맡긴다. 이런 접근의 결과는 놀랍다. Z세대를 타깃으로 한 '키라키라돈키' 점장은 20대 초반 아르바이트 출신이다. 그는 자신과 동년배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입구 진열을 자주 바꾸고 의견상자를 통해 즉각 피드백을 받는다. 만약 본부에서 하달한 매뉴얼대로 운영했다면, 이런 섬세한 대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돈키호테의 '실패마켓'은 이 회사의 독특한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매입에 완전히 실패한 상품들을 모아 대대적으로 세일하는 이 이벤트는, 아무리 팔아도 적자다. 그런데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전이 없으면 실패도 없다. 실패했다는 것은 리스크를 감수했다는 증거"라는 메시지를 조직 전체에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일반 기업에서 실패는 숨기고 싶은 치부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실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오히려 도전의 증거로 축하한다. 이런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직원들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신선한 딸기가 싱가포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끈 것도, 누군가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를 질책하는 문화였다면, 검증되지 않은 시도는 애초에 제안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밀리언 스타 제도'라는 인사 시스템도 같은 맥락이다. 젊은 직원에게 3~6개 점포를 맡기는 이 과감한 발탁은, 실수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앤서맨'이라는 지원 조직을 만들어 현장의 고민을 경청하고 빠르게 개선한다. 권한을 주되 방치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마지보이스'는 고객 의견 수렴을 넘어 고객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혁신적 시도다. 고객 평가가 낮은 상품은 개선을 거듭해야 하고, 개선하지 못하면 판매 중단된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상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지만, 돈키호테는 그 권한을 고객에게 넘긴다. "상품의 명운은 고객이 쥐고 있다"는 선언은 수사가 아니라 실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더 놀라운 것은 '마지가격'이다. 고객 평가가 높은 상품을 대폭 할인하는 이 제도는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잘 팔리는 상품이라면 굳이 가격을 낮출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돈키호테의 논리는 다르다. 고객이 좋다고 말하는 상품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는다. 단기 수익보다 장기 관계를 택한 것이다. '마지매입'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돈키호테 자체 브랜드 상품에 불만이 있으면 환불해주는 이 서비스는, 고객의 시험 구매를 촉진한다. 자신감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끊임없는 개선을 약속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렇게 고객과의 쌍방향 소통이 상품 개발의 핵심이 되면서, 돈키호테의 오리지널 상품들은 시장에서 독특한 위치를 확보해간다.


돈키호테의 또 다른 특징은 일을 '게임'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D철(디스플레이 철인)' 이벤트는 압축 진열 능력을 겨루는 경연대회인데, 연차나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해 영웅이 될 수 있다. 모든 점포의 매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공개되어 순위가 매겨지지만, 직원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역전을 노리며 경쟁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명확한 룰과 공정한 기회 때문이다. 승패 기준이 투명하고, 시간 제한이 있으며, 대폭의 자유재량권이 주어진다. 마치 잘 디자인된 게임처럼, 직원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몰입한다. "돈키호테에서 일하는 묘미는 축제의 느낌"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Z스타일 실험실'도 흥미롭다. 전국의 젊은 직원들이 느슨하게 모여 잡담하듯 회의하는데,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제 상품으로 연결된다. 공식적인 기획 회의보다 이런 비공식적 대화에서 더 참신한 발상이 나온다는 것을 돈키호테는 알고 있다. 그래서 구조를 만들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돈키호테 매장은 겉보기엔 극도로 아날로그적이다. 손글씨 광고문, 삐뚤빼뚤한 진열, 예측 불가능한 동선.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치밀한 디지털 전략이 숨어 있다. 자회사 페하미디어는 실제 구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20대 여성에게만 맞춤 광고를 보여준다. 타깃팅 정밀도가 일반 광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가격밀 시스템'이라는 AI는 방대한 판매 데이터를 학습해 권장 가격을 제시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 AI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자신의 판단으로 다른 가격을 매길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선택이 다시 AI 학습 데이터가 되어 정확도가 높아진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력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균형감각은 돈키호테의 강점이다. 효율만 추구하면 재미가 사라지고, 감성만 따르면 경쟁력을 잃는다. 돈키호테는 데이터로 방향을 잡되, 실행은 사람의 손끝 감각에 맡긴다. 그래서 매장마다 다르면서도 일관된 '돈키호테다움'이 유지된다.

돈키호테의 성공은 여러 역설로 가득하다. 통제하지 않는데 통제되고, 혼란스러운데 질서가 있으며, 비효율적인데 효율적이다. 가장 큰 역설은 '확장성'과 '독자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체인 사업은 표준화를 통해 확장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각 매장의 독창성을 유지하면서도 전국, 나아가 해외로 뻗어나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복제하는 것이 '형태'가 아니라 '철학'이기 때문이다. 야스다 다카오의 '원류'는 구체적 매뉴얼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프레임이다. "주어를 전환하라", "고객 최우선주의", "현장에 권한을" 같은 원칙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싱가포르의 돈돈돈키에서 군고구마와 딸기로 돌파구를 찾은 것도, 북미의 도쿄 센트럴이 일본 식품으로 차별화한 것도, 같은 철학의 다른 표현이다. 종합슈퍼마켓 유니의 인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유니를 통합하지 않고, 대신 권한위임 철학을 이식했다. 파트타임 주부 직원들이 가격을 제안하는 '가격총선', 빈 공간에 동네 전자제품점을 넣는 직영 도전, 각 매장별 맞춤형 상품 구성. 유니는 돈키호테가 되지 않으면서도 돈키호테의 DNA를 흡수했다. 결과는? 적자에 허덕이던 종합슈퍼마켓이 수익 체질로 전환되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많은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았다. 편의성과 가격에서 온라인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팽배하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의 + 저렴함 + 즐거움'이라는 공식에서 마지막 요소가 핵심이다. 온라인은 편의와 가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물리적 공간만이 줄 수 있다. 돈키호테의 미로 같은 동선, 예상 밖의 상품 발견, 축제 같은 분위기는 디지털로 복제할 수 없다. 시부야의 복합시설 '도겐자카도리'가 그 자체로 관광지가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 장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점원들이 진심으로 재미있게 일하기 때문에, 그 에너지가 공간에 스며든다. 억지로 만든 즐거움은 금방 티가 나지만, 자발적 열정은 전염된다. 돈키호테 직원들이 "복귀율"이 높고, 아르바이트에서 간부로 성장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 자체가 보상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야스다 다카오의 은퇴는 상징적이다. 그는 회사가 가장 잘 나갈 때 물러났다. 이유는 단순했다. "핵심 업무가 늘어나 복잡해지면서 권한위임을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회사가 성장할수록 창업자의 개입은 줄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원류'라는 책으로 자신의 경영 철학을 체계화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는 단기적으론 효율적이지만 지속 불가능하다. 대신 철학을 공유하고, 각자가 그 철학을 자기 방식으로 실천하게 하면, 리더가 없어도 조직은 굴러간다. 야스다 이후의 돈키호테가 여전히 성장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것은 현대 리더십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명령과 통제의 리더십에서 방향 제시와 권한 부여의 리더십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더는 막상 손을 놓는 것을 두려워한다. 야스다의 용기는 여기에 있다. 밀리언 스타 제도로 젊은 인재에게 과감히 기회를 주고, 앤서맨으로 안전망을 마련하되, 근본적으론 현장을 믿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돈키호테를 모방한 업체들이 나타났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겉모습은 비슷해도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빼곡한 진열과 손글씨 광고를 흉내 낼 순 있지만, 권한위임 문화와 실패 허용 정신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한국 기업 문화는 여전히 수직적이고 통제 중심적이다. 본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미덕이고, 실패는 곧 책임 추궁으로 이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현장 직원이 창의성을 발휘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돈키호테의 사례는 구조와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전략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돈키호테도 대기업화되면서 위기를 겪었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이 느려지고, 부정이 발생하고, 매출 증가율이 둔화되었다. 바로 그 순간 야스다는 밀리언 스타 제도라는 파격적 개혁을 단행했다. 문제를 감추거나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한 것이다. 이런 위기 대응 능력도 한국 기업이 배워야 할 점이다.


돈키호테의 성공은 '신뢰'로 요약된다. 창업자는 직원을 믿었고, 직원은 고객을 믿었으며, 고객은 다시 돈키호테를 믿게 되었다. 이 선순환이 30년 넘게 지속되면서,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일본 경제 침체기에도 우상향 성장을 이뤘다. 신뢰는 말로는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권한을 넘기면 실수가 생길 수 있고, 실패를 용인하면 단기 성과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그 리스크를 감수했고, 그 대가로 지속 가능한 성장 엔진을 얻었다. 직원 한 명 한 명이 CEO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조직, 이것이 궁극의 경쟁력이다. "사람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것"이라는 돈키호테의 모토는 교육학이 아니라 생태학에 가깝다. 좋은 토양을 만들고, 햇빛을 쬐게 하고, 물을 주되, 어떻게 자랄지는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그래야 각자의 개성이 살고, 그 다양성이 조직 전체의 적응력이 된다.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가 어둡다고들 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보면 희망이 보인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리적 공간에서의 경험을 갈구한다. 단, 그것이 의미 있고, 즐겁고,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 기계적으로 정렬된 매장이 아니라, 인간의 손길과 생각이 느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 돈키호테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