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상식파괴로 경영하라
사카이 다이스케 지음, 정지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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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일본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돈키호테를 들렀을 것이다. 천장까지 빼곡하게 쌓인 상품들, 형광색 손글씨 광고문으로 뒤덮인 벽면,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통로. 첫인상은 '어지럽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디선가 예상치 못한 물건이 튀어나올 것 같고, 다음 코너를 돌면 또 무엇이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이 혼란스러워 보이는 공간이 실은 치밀하게 설계된 '구매 경험'이라는 사실을, <돈키호테, 상식파괴로 경영하라>는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은 현대 경영학의 정석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하나의 실험 보고서에 가깝다. 표준화, 효율화, 매뉴얼화로 대표되는 체인점 경영의 상식을 돈키호테는 정반대로 뒤집어놓는다. 각 매장은 제각각 다르고, 점원들은 스스로 가격을 정하며, 실패한 상품을 대대적으로 광고한다. 이런 '비상식'이 어떻게 지속적인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을까?


돈키호테 성공의 핵심은 '권한위임'이라는 단순하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원칙에 있다. 창업자 야스다 다카오가 정립한 '원류'라는 경영 철학서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사람은 자신이 주역이 되어 자신의 의지로 결정할 수 있는 일에 진지하고 열심히 한다." 이것은 경영 이론이 아니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성장할수록 통제를 강화한다. 본부에서 만든 매뉴얼을 전 지점에 똑같이 적용하고, 의사결정 권한은 위로 올라간다. 효율적이고 안전해 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현장의 창의성과 열정은 소멸한다. 반면 돈키호테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아르바이트생도 상품 매입과 가격 책정에 참여하고, 점장은 지역 특성에 맞춰 매장을 자유롭게 구성한다. 본부의 인공지능이 권장 가격을 제시해도, 최종 결정은 현장 직원의 '감'과 '경험'에 맡긴다. 이런 접근의 결과는 놀랍다. Z세대를 타깃으로 한 '키라키라돈키' 점장은 20대 초반 아르바이트 출신이다. 그는 자신과 동년배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입구 진열을 자주 바꾸고 의견상자를 통해 즉각 피드백을 받는다. 만약 본부에서 하달한 매뉴얼대로 운영했다면, 이런 섬세한 대응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돈키호테의 '실패마켓'은 이 회사의 독특한 문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매입에 완전히 실패한 상품들을 모아 대대적으로 세일하는 이 이벤트는, 아무리 팔아도 적자다. 그런데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전이 없으면 실패도 없다. 실패했다는 것은 리스크를 감수했다는 증거"라는 메시지를 조직 전체에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일반 기업에서 실패는 숨기고 싶은 치부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실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오히려 도전의 증거로 축하한다. 이런 문화가 자리잡으면서 직원들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신선한 딸기가 싱가포르에서 폭발적 인기를 끈 것도, 누군가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를 질책하는 문화였다면, 검증되지 않은 시도는 애초에 제안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밀리언 스타 제도'라는 인사 시스템도 같은 맥락이다. 젊은 직원에게 3~6개 점포를 맡기는 이 과감한 발탁은, 실수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앤서맨'이라는 지원 조직을 만들어 현장의 고민을 경청하고 빠르게 개선한다. 권한을 주되 방치하지 않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다.

'마지보이스'는 고객 의견 수렴을 넘어 고객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혁신적 시도다. 고객 평가가 낮은 상품은 개선을 거듭해야 하고, 개선하지 못하면 판매 중단된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상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지만, 돈키호테는 그 권한을 고객에게 넘긴다. "상품의 명운은 고객이 쥐고 있다"는 선언은 수사가 아니라 실제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더 놀라운 것은 '마지가격'이다. 고객 평가가 높은 상품을 대폭 할인하는 이 제도는 일견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잘 팔리는 상품이라면 굳이 가격을 낮출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돈키호테의 논리는 다르다. 고객이 좋다고 말하는 상품을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게 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를 쌓는다. 단기 수익보다 장기 관계를 택한 것이다. '마지매입'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돈키호테 자체 브랜드 상품에 불만이 있으면 환불해주는 이 서비스는, 고객의 시험 구매를 촉진한다. 자신감의 표현이면서 동시에 끊임없는 개선을 약속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렇게 고객과의 쌍방향 소통이 상품 개발의 핵심이 되면서, 돈키호테의 오리지널 상품들은 시장에서 독특한 위치를 확보해간다.


돈키호테의 또 다른 특징은 일을 '게임'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D철(디스플레이 철인)' 이벤트는 압축 진열 능력을 겨루는 경연대회인데, 연차나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해 영웅이 될 수 있다. 모든 점포의 매출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공개되어 순위가 매겨지지만, 직원들은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역전을 노리며 경쟁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명확한 룰과 공정한 기회 때문이다. 승패 기준이 투명하고, 시간 제한이 있으며, 대폭의 자유재량권이 주어진다. 마치 잘 디자인된 게임처럼, 직원들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에서 몰입한다. "돈키호테에서 일하는 묘미는 축제의 느낌"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다. 'Z스타일 실험실'도 흥미롭다. 전국의 젊은 직원들이 느슨하게 모여 잡담하듯 회의하는데, 여기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제 상품으로 연결된다. 공식적인 기획 회의보다 이런 비공식적 대화에서 더 참신한 발상이 나온다는 것을 돈키호테는 알고 있다. 그래서 구조를 만들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돈키호테 매장은 겉보기엔 극도로 아날로그적이다. 손글씨 광고문, 삐뚤빼뚤한 진열, 예측 불가능한 동선.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치밀한 디지털 전략이 숨어 있다. 자회사 페하미디어는 실제 구매 고객 데이터를 분석해 20대 여성에게만 맞춤 광고를 보여준다. 타깃팅 정밀도가 일반 광고와는 차원이 다르다. '가격밀 시스템'이라는 AI는 방대한 판매 데이터를 학습해 권장 가격을 제시한다. 하지만 최종 결정권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 AI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자신의 판단으로 다른 가격을 매길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선택이 다시 AI 학습 데이터가 되어 정확도가 높아진다.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력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런 균형감각은 돈키호테의 강점이다. 효율만 추구하면 재미가 사라지고, 감성만 따르면 경쟁력을 잃는다. 돈키호테는 데이터로 방향을 잡되, 실행은 사람의 손끝 감각에 맡긴다. 그래서 매장마다 다르면서도 일관된 '돈키호테다움'이 유지된다.

돈키호테의 성공은 여러 역설로 가득하다. 통제하지 않는데 통제되고, 혼란스러운데 질서가 있으며, 비효율적인데 효율적이다. 가장 큰 역설은 '확장성'과 '독자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체인 사업은 표준화를 통해 확장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각 매장의 독창성을 유지하면서도 전국, 나아가 해외로 뻗어나간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복제하는 것이 '형태'가 아니라 '철학'이기 때문이다. 야스다 다카오의 '원류'는 구체적 매뉴얼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프레임이다. "주어를 전환하라", "고객 최우선주의", "현장에 권한을" 같은 원칙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싱가포르의 돈돈돈키에서 군고구마와 딸기로 돌파구를 찾은 것도, 북미의 도쿄 센트럴이 일본 식품으로 차별화한 것도, 같은 철학의 다른 표현이다. 종합슈퍼마켓 유니의 인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유니를 통합하지 않고, 대신 권한위임 철학을 이식했다. 파트타임 주부 직원들이 가격을 제안하는 '가격총선', 빈 공간에 동네 전자제품점을 넣는 직영 도전, 각 매장별 맞춤형 상품 구성. 유니는 돈키호테가 되지 않으면서도 돈키호테의 DNA를 흡수했다. 결과는? 적자에 허덕이던 종합슈퍼마켓이 수익 체질로 전환되었다.


코로나 이후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많은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았다. 편의성과 가격에서 온라인을 이길 수 없다는 패배주의가 팽배하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던진다. 오프라인 매장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편의 + 저렴함 + 즐거움'이라는 공식에서 마지막 요소가 핵심이다. 온라인은 편의와 가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물리적 공간만이 줄 수 있다. 돈키호테의 미로 같은 동선, 예상 밖의 상품 발견, 축제 같은 분위기는 디지털로 복제할 수 없다. 시부야의 복합시설 '도겐자카도리'가 그 자체로 관광지가 된 것도 같은 이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즐거움'이 장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점원들이 진심으로 재미있게 일하기 때문에, 그 에너지가 공간에 스며든다. 억지로 만든 즐거움은 금방 티가 나지만, 자발적 열정은 전염된다. 돈키호테 직원들이 "복귀율"이 높고, 아르바이트에서 간부로 성장하는 비율이 높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 자체가 보상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야스다 다카오의 은퇴는 상징적이다. 그는 회사가 가장 잘 나갈 때 물러났다. 이유는 단순했다. "핵심 업무가 늘어나 복잡해지면서 권한위임을 실행에 옮길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회사가 성장할수록 창업자의 개입은 줄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원류'라는 책으로 자신의 경영 철학을 체계화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된다.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는 단기적으론 효율적이지만 지속 불가능하다. 대신 철학을 공유하고, 각자가 그 철학을 자기 방식으로 실천하게 하면, 리더가 없어도 조직은 굴러간다. 야스다 이후의 돈키호테가 여전히 성장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것은 현대 리더십 이론과도 맞닿아 있다. 명령과 통제의 리더십에서 방향 제시와 권한 부여의 리더십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더는 막상 손을 놓는 것을 두려워한다. 야스다의 용기는 여기에 있다. 밀리언 스타 제도로 젊은 인재에게 과감히 기회를 주고, 앤서맨으로 안전망을 마련하되, 근본적으론 현장을 믿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돈키호테를 모방한 업체들이 나타났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겉모습은 비슷해도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빼곡한 진열과 손글씨 광고를 흉내 낼 순 있지만, 권한위임 문화와 실패 허용 정신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한국 기업 문화는 여전히 수직적이고 통제 중심적이다. 본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것이 미덕이고, 실패는 곧 책임 추궁으로 이어진다. 이런 환경에서 현장 직원이 창의성을 발휘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돈키호테의 사례는 구조와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전략도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것은 돈키호테도 대기업화되면서 위기를 겪었다는 점이다. 의사소통이 느려지고, 부정이 발생하고, 매출 증가율이 둔화되었다. 바로 그 순간 야스다는 밀리언 스타 제도라는 파격적 개혁을 단행했다. 문제를 감추거나 미루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한 것이다. 이런 위기 대응 능력도 한국 기업이 배워야 할 점이다.


돈키호테의 성공은 '신뢰'로 요약된다. 창업자는 직원을 믿었고, 직원은 고객을 믿었으며, 고객은 다시 돈키호테를 믿게 되었다. 이 선순환이 30년 넘게 지속되면서,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는 일본 경제 침체기에도 우상향 성장을 이뤘다. 신뢰는 말로는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 권한을 넘기면 실수가 생길 수 있고, 실패를 용인하면 단기 성과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그 리스크를 감수했고, 그 대가로 지속 가능한 성장 엔진을 얻었다. 직원 한 명 한 명이 CEO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조직, 이것이 궁극의 경쟁력이다. "사람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라는 것"이라는 돈키호테의 모토는 교육학이 아니라 생태학에 가깝다. 좋은 토양을 만들고, 햇빛을 쬐게 하고, 물을 주되, 어떻게 자랄지는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그래야 각자의 개성이 살고, 그 다양성이 조직 전체의 적응력이 된다. 오프라인 매장의 미래가 어둡다고들 한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보면 희망이 보인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리적 공간에서의 경험을 갈구한다. 단, 그것이 의미 있고, 즐겁고,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어야 한다. 기계적으로 정렬된 매장이 아니라, 인간의 손길과 생각이 느껴지는 공간이어야 한다. 돈키호테는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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