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스톤 필사 메모지 초판본 에디션 : 어린왕자 ㅣ 코너스톤 필사 메모지
코너스톤 편집부 지음 / 코너스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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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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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은 묘하다. 하루가 끝나가는 게 아쉬우면서도 내일이 벌써 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그 시간에 휴대폰 대신 펜을 들었다. 책상 위에는 <어린 왕자> 초판본 표지를 닮은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코너스톤의 필사 메모지 초판본 에디션이다. 은은하게 빛나는 펄지 상자 위에 옛 표지 그림이 박으로 새겨져 있다. 불을 켜면 그림이 살짝 반짝이고, 뚜껑을 열면 도톰한 백색 모조지가 120장 들어 있다. 종이를 쓸어보니 결이 매끄러웠다. 얇은 메모지에 익숙해서인지 처음엔 여기에 아무렇게나 써도 될까 싶었다. 한 장 한 장이 문장 하나씩을 받아주려고 기다리는 자리처럼 느껴져서, 괜히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았다.


어린 왕자는 내가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최근에도 다시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같은 책이 아닌 것 같다. 어릴 때는 사막과 별, 여우 같은 이야기가 먼저 보였다. 지금은 문장 사이에 숨은 쓸쓸함이 먼저 보인다.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이 어린 시절의 자기를 멀리서 바라보는 듯한, 그 조용한 눈길 말이다. 오늘 가장 먼저 옮겨 적은 문장은 역시 이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볼 수 있어."

수없이 읽은 문장인데도 손으로 쓰니 속도가 달라졌다. 눈으로 읽을 때는 한 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펜은 글자를 하나씩 지나야 한다. '보이지'를 쓰고 '않아'를 쓰는 짧은 사이에 생각이 끼어든다. 나는 정말 마음으로 보고 살고 있나.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옷차림이나 말투, 직함 같은 것부터 읽고 어느새 마음속에서 점수를 매기고 있을 때가 많다. 그게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된다. 바쁘고 피곤하면 더 그렇다.

그래도 살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오래 남는 관계는 겉모습이 근사해서 이어지지 않았다. 아프다고 했을 때 말없이 죽을 사다 놓고 간 친구, 내가 한 말을 몇 달 뒤에 기억해 준 사람, 서툴지만 정성을 들인 작은 선물 같은 것들이 남았다. 그런 것들은 사진으로 찍어 보여줄 수도, 숫자로 매길 수도 없다. 결국 어린 왕자의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문장을 쓰다가 장미와 여우 생각도 났다. 어린 왕자는 자기 별의 장미가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믿었는데, 정원에 핀 수천 송이 장미를 보고 무너진다. 그때 여우가 일러준 것은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네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네가 그 장미에게 쏟은 시간 때문이라는 것.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찔린다. 나는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시간은 거의 쓰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연락을 미뤄둔 사람도, 언젠가 하겠다던 일도 그렇다. 관계는 마음만으로 자라지 않고 시간과 정성이 쌓여야 한다는 것을 이 작은 책은 어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알려준다.


사막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어서 사막이 아름답다고 어린 왕자는 말했다. 내 하루도 그런 것 같다. 바쁘고 건조한 일상 어딘가에 이렇게 문장 하나를 옮겨 적는 시간이 우물처럼 숨어 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하루가 마르지 않는다. 오늘 밤도 어린 왕자를 읽고, 쓰고,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조금 더 마음을 쓰며 살아보려 한다.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이 상자를 열고 같은 문장을 한 번 더 써보면 된다. 그렇게 천천히 배워가면 된다고, 오늘 밤의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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