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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어머니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6년 1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 시절 김홍신 작가의 이름은 <인간시장>과 함께 내게 왔다. 세상의 부조리를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휘두르던 그 소설은, 어렵게 느껴지던 시대를 읽는 한 방법이었다. 그 뒤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등단 50년을 맞은 작가가 쓴 신작 <유다의 어머니>를 다시 손에 들었다. 학창 시절의 책장을 넘기던 나와, 지금 책을 덮는 내가 같은 사람이면서도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이 소설은 1979년 12월의 군사 정변과 19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한다. 한 어머니가 사랑으로 키운 첫째 아들을 총으로 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만년필로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눌러 썼다고 한다. 그 시절 필화를 겪은 그에게는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선포가 오래된 트라우마를 다시 깨운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 밤의 불길이 이 소설을 쓰게 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오래 멈춰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1979년의 계엄과 2024년의 계엄은 상황도 방식도 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두 사건이 때로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겹쳐 말해지는 것을 본다. 그때 역사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이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작가는 "문학은 상처를 향기로 바꾸는 장중한 서사"라고 말한다. 참 아름다운 표현이다. 문학이 상처 입은 이들의 아픔을 보듬고 그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다면, 그보다 희망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과거의 아픔을 다시 꺼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겨우 아문 자리를 다시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치유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한다. 책에서 내게 주인공처럼 느껴진 사람은 박해선이다. 자신이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교사의 길까지 접고 사랑으로 키운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자, 그녀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다. 은전 서른 닢에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작가가 던진 이 질문은 읽는 내내 가슴을 눌렀다. 성경을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자식의 죄 앞에서 어머니가 겪는 고통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책장을 덮고 남은 감정은 위로보다 무력감이었다. 박해선은 끝내 자신도 누군가 지른 불에 목숨을 잃는다. 약자들은 이용당하고 희생되는데, 살아남는 쪽은 결국 힘을 가진 이들이다. 약자의 아픔을 보듬고 희망을 말하려 했다는 작가의 뜻과 달리, 내게는 현실이 소설 속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쓸쓸함이 먼저 왔다. 어쩌면 그 무력감이야말로 우리가 아직 그 시절을 제대로 건너오지 못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유다가 죄를 지었다고 하지만, 예수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흔히 용서를 상대를 위한 너그러움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살아오며 내가 깨달은 것은, 용서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점이다. 미움을 쥐고 있는 사람의 손이 가장 먼저 상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삶에서 하는 말이다. 역사 앞에서의 용서는 다른 무게를 갖는다.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이 가려지기 전의 용서는 공허하다. 다만 진실을 규명하는 일과 증오에 갇히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고 믿는다. 학창 시절 인간시장을 읽으며 나는 분노하는 법을 배웠다. 수십 년이 지나 유다의 어머니를 읽으며 이제는 그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고 어디에 쓸 것인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