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3 : 섬서·사천 편 ㅣ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3
김성곤 지음 / 김영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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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과함께 중국 섬서 사천을 여행해 보는 느낌이었다. 여행은 함양 공항에서 시작된다. 비행기에서 내려 위수(渭水)를 곁에 두고 달리다 보면 왕유의 송별시가 저절로 떠오른다. 위성(渭城)의 아침 비가 먼지를 적시고 객사의 버들이 새로 푸르다는 시, "그대여 술 한 잔 더 드시게, 양관을 나서면 아는 벗이 없으리니"로 끝나는 그 시다. 당나라 사람들은 서역으로 떠나는 벗을 이곳까지 배웅했고, 이 시는 훗날 〈위성곡〉이라는 노래가 되어 이별 자리마다 불렸다. 지금 공항에서 누군가는 손을 흔들고 누군가는 길을 나선다. 천 년 전의 전별연이 오늘의 출국장에서 되풀이되는 셈이다. 시가 한 장소에 이토록 오래 머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여행의 첫 장면에서 배운다. 위수 북쪽 구종산 자락에는 당 태종의 소릉이 있다. 산을 그대로 무덤으로 삼은 이 능의 입구에는 전장에서 주인과 생사를 같이한 여섯 마리 말이 돌에 새겨져 있다. 그중 화살을 맞은 말 곁에서 기수가 상처를 돌보는 장면 앞에서는 발걸음이 멈춘다. 황제의 위엄을 자랑하는 대신 자신을 위해 몸을 바친 존재를 기억하려 한 무덤이라니, 어딘가 인간적이다. 이 길에서 만나게 되는 이름은 위징이다. 한때 태종의 정적이던 그는 가장 직설적인 신하가 되어 황제의 느슨해지는 마음을 열 가지로 짚어 올렸다. 태종은 그를 "사람으로 된 거울"이라 불렀고, 그가 죽자 거울 하나를 잃었다며 슬퍼했다. 한편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이 균형을 지킨 사람은 장손 황후다. 위징을 죽이겠다고 분노하는 남편 앞에 예복을 입고 나타나 "임금이 밝으니 신하가 직언하는 것이니 감축드립니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지혜로운 간언의 정수 같다. 직언하는 사람도 귀하지만, 그 직언이 살아남도록 지켜주는 사람은 더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백거이는 태종을 기리며 그가 빨리 공을 이룬 까닭이 "자기 속마음을 남의 가슴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노래했다. 이 구절을 곱씹으며 산을 내려온다. 정관의 치세는 칼의 힘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내어주는 정치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물론 그런 태종도 위징이 없던 시절에 고구려 원정에서 안시성을 넘지 못했다. 좋은 거울이 사라지면 명군도 흔들린다는 사실이 이 무덤의 가장 쓰고 값진 가르침이다. 서안 남쪽의 곡강지에서 나는 두보의 시 두 편을 겹쳐 읽는다. 하나는 천보 11년 삼짇날의 〈여인행〉이다. 비단옷에 금 공작을 수놓은 미인들, 황제의 주방에서 쉴 새 없이 오는 진수성찬, 그리고 "가까이 가지 마시게, 승상이 진노하신다"는 마지막 구절까지, 양귀비 자매와 양국충의 권세가 봄볕 아래 번쩍인다. 그러나 이 화려함을 쓰는 두보의 눈은 차갑다. 그는 그 잔치의 말석에서 벼슬 한자리를 구하러 다니던 가난한 시인이었다. 다른 하나는 안사의 난 이듬해 봄, 반군에게 붙잡힌 장안에서 몰래 곡강을 찾아 쓴 〈애강두〉다. "소릉(少陵)의 늙은이가 울음을 삼키며" 걷는 강가에는 궁전의 문이 모두 닫혀 있고, 버들과 부들만 무정하게 푸르다. 그해 봄 곡강은 같은 곳인데도 전혀 다른 곳이다. 화사한 행렬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외파에서 목숨을 잃은 귀비의 혼이 떠돈다. 두보는 양씨 일가를 비판했던 사람이지만, 그 비극 앞에서는 연민을 감추지 못한다. 한 사람이 같은 장소에서 번영과 몰락을 모두 목격하고 두 편의 시로 남겼다는 것, 곡강은 그래서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단면이 된다. 진시황릉 앞에서는 시가 아니라 한 편의 글이 떠오른다. 이사의 〈간축객서〉다. 외국 출신 인재를 모두 내쫓으라는 명령이 내려지자 이사는 목공, 효공, 혜왕, 소왕이 모두 외래 인재 덕에 진을 키웠음을 하나하나 짚었다. 그리고 진왕의 곁에 있는 보물이 하나도 진나라 것이 아님을 들어 "물건에는 출처를 묻지 않으면서 사람만 출신을 따지느냐"고 물었다. 결정타는 "태산은 흙 한 줌도 사양하지 않았기에 커졌고,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았기에 깊어졌다"는 비유다. 이 한 문장이 진왕의 마음을 돌렸고 천하 통일의 길을 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훗날 책을 불사르자고 건의한 사람 역시 이사였다. 포용을 말하던 입이 폐쇄를 설계했고, 제국은 그 폐쇄 때문에 무너졌다. 능 앞의 비석 곁에서 나는 개방과 폐쇄가 한 인물 안에서 얼마나 쉽게 자리를 바꾸는지를 생각했다. 권력자뿐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다. 내가 옳다고 믿는 순간이 곧 문이 닫히는 순간일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 장소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시를 읽으러 갔다. 소릉에서는 거울의 의미를 배웠고, 곡강에서는 같은 봄이 얼마나 다르게 기억되는지를 보았으며, 진시황릉에서는 개방과 폐쇄가 한 사람 안에서 오가는 모습을 보았고, 무후사에서는 사람이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이 풍경과 시뿐임을 느꼈다. 한시는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길 위에서 다시 살아나는 목소리였다. 언젠가 실제로 위수 곁을 달리게 된다면 나는 아마 왕유의 한 구절부터 입에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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