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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경기도민 - 계란 흰자처럼 서울을 둘러싼 1400만의 기쁨과 슬픔
이준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 어디서 볼까?" 하고 물으면 약속 장소는 대개 서울로 정해진다. 김포, 안산, 용인에 사는 세 친구가 만나는 곳이 사당인 것은 그곳이 모두에게 가장 공평해 보이기 때문이다. 정작 안산과 용인은 같은 노선으로 이어져 있는데도 서로를 향해 가지 않는다. 가끔 있는 모임쯤이야 서울에서 해도 그만이라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소한 습관 속에는 경기도에 사는 삶의 구조가 들어 있다.
그 구조는 교통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도권 교통망은 경기도 사람을 서울로 빠르게 옮기도록 짜여 있다. GTX가 개통되면 역과 역 사이의 시간은 줄어든다. 하지만 그 대가로 마을버스 배차가 절반으로 줄어든 동네가 있다. 고양시 대장동에서는 학생과 노인이 유일한 발을 잃었다. 철도가 가리키는 방향은 서울이고, 이웃 도시로 가는 길은 점점 가늘어진다. 나는 이것이 '장소'의 접근성은 높이면서 '사람'의 접근성은 놓치는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대곡역에서 서울역까지 17분이 줄어드는 동안, 누군가는 동네 버스를 25분 더 기다리게 되었다.
그래서 경기도에서는 "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통한다. 흥미로운 점은 경기도민이 차를 사는 이유가 서울 출근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로 가는 대중교통은 오히려 잘 되어 있다. 문제는 5킬로미터 떨어진 마트에 가는 일이다. 차로 19분이면 갈 거리를 버스로는 47분이 걸리고, 걷는 것과 별 차이가 없다. 배차 간격은 30분이 넘기 일쑤고, 그나마 정류장에 서 있는 나를 지나쳐 가는 버스도 있다. 그 버스를 모는 기사들이 하루 열대여섯 시간을 운전하며 쉴 틈 없이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화를 내기도 어려워진다. 나를 두고 떠나는 버스의 뒤에는 사람이 부족한 노동 현장이 있다. 이동이 어려운 사람은 운전할 수 없게 되는 날 삶의 반경이 좁아지는 노인과 청소년들이다. 이동권이 곧 삶의 조건이라면, 자가용 구입을 사실상 강요하는 구조를 개인의 선택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경기도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 서울에 가지 못한 사람, 언젠가는 서울로 돌아가야 할 사람. 우리 사회는 경기도민을 그렇게 상상한다. '상급지'와 '하급지'라는 말이 공문서에까지 등장하는 나라에서 동네를 사랑한다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자기 위안처럼 들리기 쉽다. 그러나 용인 시민의 상당수가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답하고, 적지 않은 사람이 그 도시를 고향처럼 느낀다. 사람들은 넓은 집, 정돈된 도시, 가까운 공원 같은 이유로 자기 동네를 좋아한다. 소속감과 애착은 정주를 결정하는 진짜 변수다. 집이 자산으로만 평가되는 세상에서 이 감정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받지만, 사람은 경제적 동물이기 전에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사는 존재다.
경기도의 문제는 서울에 가깝지 않다는 데 있지 않다. 이 지역이 하나의 얼굴로 소비된다는 데 있다. 경기도에는 서울로 출근하지 않는 사람이 더 많고, 아파트 바깥에 사는 사람도, 도시 중심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도, 접경지에서 규제와 공포를 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정책과 담론은 이들의 다양한 요구 대신 "서울까지 몇 분"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도시의 가치를 매긴다. 문화 시설도 마찬가지다. 경기도민이 문화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예산과 프로그램이 부족해서 서울로 간다. 서울 밖에는 서울만큼의 갈망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야말로 편견이다.
그렇다고 해법이 '경기도가 노른자가 되는 것'일 수는 없다. 서울을 닮은 더 비싼 아파트, 더 빠른 철도, 더 큰 산업단지를 쌓아 올리면 또 다른 주변이 생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다른 지역의 전기와 물에 기대고, 개발 앞에서 자연이 '미개발지'로 불리는 한 위계의 사슬은 이어진다. 중심이 어디냐는 질문만으로는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나는 경기도에서의 삶을 생각하며, 중심을 옮기는 일보다 중심이라는 개념 자체를 되묻는 일이 먼저라고 느낀다. 버스 한 대, 동네 도서관 하나, 작은 미술관의 전시 한 편이 누구의 삶을 지탱하는지 살피는 일이 그 출발일 것이다. 이동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이고, 사는 곳은 서열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이번 주말에도 친구들과 사당에서 만나겠지만, 언젠가는 우리 동네에서 "여기서 보자"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말이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오면, 경기도는 서울의 주변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곳으로 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