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과 무릎들 - 성기게 엉기는 남해살이 이야기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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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속 저자는 남해에 와서 낫을 들고 풀을 베다가 "성기지만 엉기게"라는 말에 감동했다고 했다. 책을 읽으며 한참 멈춰 있었다. 사람이 사는 일도 흙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숨은 쉬되 쓸려가지 않는 것. 거리는 두되 이어져 있는 것. 남해라는 낯선 땅에서 사는 일은 아마 그 어려운 균형을 몸으로 배우는 일일 것이다. 남해살이는 낭만이 아니라 노동에서 시작한다. 글쓴이는 도시를 떠나온 지 얼마 안 되어 빈집 한 채 구하지 못해 보름 동안 헤매고, 월세가 귀해 개와 함께 5평 방에 머문다. 도어록 없는 문, 눅눅한 벽, 겨울이면 삭풍을 견디게 하는 전기장판. 시골의 평화는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도 춥지가 않다. 집을 구하려고 인맥을 총동원해 반바지 아저씨를 몰아붙이던 신발달인, 냄비를 들고 간 사람에게 된장찌개를 가득 담아주던 식당 아주머니, 다 열어두고 사는 문들이 있어서다. 집은 벽과 지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기척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보여준다. 도시에서의 내 집을 생각했다. 현관문에 도어록이 있고, 베란다 샷시가 있고, 이웃의 얼굴은 모르는 집. 안전하지만 아무도 부르지 않는 집. 우리는 그것을 '내 공간'이라 부르며 안심했지만, 그 안심은 사실 서로를 재는 눈금 위에서 얻은 것이기도 했다. 책 속의 화자도 말한다. 주소와 직업과 학력을 넣으면 삶의 등수가 나오는 모눈종이가 있었다고. 남해에서는 그 눈금이 흐려진다. 누구네 집이 더 비싼지 포털에 나오지 않고, 사람들은 N잡러로 각자의 방식대로 산다. 눈금이 사라진 자리에 비로소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것은 몽덕이와 아이들이다. 리드줄을 서로 잡겠다고 협상하는 아이들, 정작 줄을 쥐어봤자 이끄는 쪽은 개라는 사실. 해변 웅덩이에서 이유도 없이 새우를 옮기며 몰입하는 아이들 곁에서 어른은 그저 그 순간에 같이 있는다. 화자가 책방에서 얻은 깨달음도 비슷하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임을 증명하려고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이, 개의 배를 채우고 곰팡이를 닦는 일 같은 작은 사랑으로 자기 자리를 확인한다.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대신 사랑하는 쪽에 서 보는 것. 그 자리에서 비로소 숨이 쉬어진다는 이야기가 조용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물론 남해가 이상향은 아니다. 아이가 열이 끓던 밤, 응급실을 찾아 순천까지 달려야 했던 엄마의 이야기는 시골의 불편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보여준다. 출생신고서가 어디 있는지 몰라 서랍을 뒤지던 면사무소, 입학생이 없어 합쳐지는 학교들. 이곳의 느슨함은 때로 결핍과 한 몸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남해를 예찬하지 않아서 좋았다. 화자는 투덜대고, 지치고, 매출에 따라 인성이 달라지는 자신을 웃으며 고백한다. 그 솔직함이 있기에 마지막 장면의 놀이가 더 따뜻하게 읽힌다. 나이 쉰이 넘은 어른들이 "몽덕이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주문에 맞춰 네발로 기고, 한쪽 다리를 드는 장면 말이다. 의미는 알 수 없어도, 서로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따라 하는 것. 그것이 이해를 대신하는 사랑이라고 글은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 채로도 손을 맞잡고 원을 그리며 돌 수는 있다. 남해살이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관계는 빈틈없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이 드나들 만큼의 틈을 두고 엮는 일이라는 것이다. 흙 속 미생물이 알아서 균형을 맞추듯, 사람 사이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를 받치는 힘이 있다. 상추가 당귀에 기대어 자라듯, 우리도 누군가에게 기대어 자란다. 도시로 돌아가든 이곳에 남든, 나는 책을 덮으며 작은 다짐을 한다. 문을 조금 열어두기로. 낯선 이웃에게 먼저 인사하기로. 그리고 누군가 내미는 손에 어정쩡하더라도 내 손을 얹어보기로. 성기게, 그러나 엉기게.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아, 내가 사는 어느 곳에서든 작은 두둑 하나를 일구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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