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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밖 감정
성해나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약속을 잡을 때 우리는 으레 묻는다. "어디서 볼까?" 그러면 대화는 비슷한 길로 흘러간다. 서울 사람은 서울의 어느 역을 말하고, 서울 밖에 사는 사람은 잠시 말을 고르다 "그럼 거기서 보자" 하고 만다. <서울 밖 감정>에서 김화진 작가가 서울 사람들의 약속 장소가 당연히 서울인 것은 곰곰 생각하면 여전히 이상하다고 쓴 대목을 읽고 나는 한참 웃다가 조금 씁쓸해졌다. 나도 그 이상한 일을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한 채 오래 지나쳐 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울을 향한 마음을 아주 일찍 배운다. 열일곱 살 무렵이면 대학 이름 앞에 '인서울'이라는 말이 먼저 붙는다. 어디서 무엇을 공부하느냐보다 서울 안이냐 밖이냐가 먼저 갈리고, 그 선 하나로 노력의 값이 매겨진다. 서울에 산다는 것은 오랫동안 성공의 다른 말이었고, 서울을 떠나는 일은 한 걸음 물러서는 일로 읽혔다. 그 중력은 사람의 시야까지 바꾼다. 서울과 안양 사이에서만 자라 다른 도시로 갈 생각은 해본 적 없다는 김화진 작가의 고백을 읽으며 나는 내 지도를 떠올렸다. 내 머릿속 지도에는 서울이 한가운데 크게 그려져 있었고, 그 바깥은 '서울에서 몇 분 거리'라는 설명으로만 존재했다. 나는 서울을 기준으로 세상을 읽는 일이 너무 익숙해서 그것이 하나의 선택이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성해나 작가는 고향의 버스를 손을 세차게 흔들지 않으면 멈춰 세울 수 없는 버스라고 적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불편한 교통 이야기로만 읽혔다. 다시 읽으니 그것은 존재 증명에 가까웠다. 손을 흔들지 않으면 아무도 서지 않고, 서지 않으면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지나간다. 인구가 적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 예산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 굳어지는 동안 누군가는 치료를 포기하고 누군가는 배움을 접고 누군가는 체념하듯 떠난다는 문장은 오래 남았다. 그런데 이 장면에는 반대편의 진실도 있다. 서울에서는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안달복달하고, 환승역에서 긴 줄을 서고, 택시가 잡히지 않아 초조해하던 사람이 이곳에서는 손을 흔든다. 어디에 있든 사람은 기다리고 애쓴다. 달라지는 것은 그 수고가 얼마나 눈에 띄느냐다. 서울의 피로는 풍경이 되어 묻히지 않는데, 서울 밖의 피로는 조용히 잊힌다.
서울 밖은 어떤 곳일까. 나는 그 질문에 '서울이 아닌 곳'이라는 정의 말고 다른 대답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서울 밖의 장점을 '서울보다 한적하다', '서울보다 싸다'처럼 서울과의 비교로만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서울이라는 좌표 위에 서 있다. 한적하다는 말도 서울이 분주하다는 전제에서 나온다. 그래서 서울 밖을 서울 없이 설명해 보려 한다. 그곳에는 계절마다 다른 냄새를 풍기는 동네 길이 있고, 이름을 알고 인사하는 가게 주인이 있고, 해가 지면 어두워지는 골목과 별이 보이는 밤이 있다. 새벽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치는 얼굴들은 서로를 모르면서도 같은 시간을 산다. 이것들은 서울을 거치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되는 삶이다.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것도 거창한 담론보다 겨울 결로 탓에 노트북 자판에 떨어지던 물방울, 옆방 소음이 그대로 들리던 자취방 같은 구체적인 장면들이었다. 삶은 늘 구체적인 곳에서 일어나고, 구체적인 곳에는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책을 덮고 나는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어디서 볼까?" 이제는 이 질문이 조금 다르게 들린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이동의 수고를 어느 한쪽이 당연하게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당연함이 우리의 마음까지 한쪽으로 기울여 놓은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다음에 약속을 잡을 때는 서울이 아닌 곳을 먼저 말해 보고 싶다. 서울 밖 어느 동네의 작은 식당이나 막차가 일찍 끊기는 역 앞이라도 좋다. 그곳에서 서울은 어떤 모양으로 우리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지 이야기해 보고 싶다. 서울을 미워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울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도 말할 수 있는 삶이 우리에게 이미 많다는 것을, 손을 흔들어야 서는 버스의 풍경까지 포함해서 기억하자는 것이다. 서울 밖은 서울의 바깥이 아니라, 누군가의 한가운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