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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어린아이가 울고 있다면 - 오래된 상처를 알아차리고 다정하게 회복하기
멜라니 피그니터 지음, 김희상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 소개글을 읽다가 한 문장을 생각해 보았다. "네 어린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 시절에 겪은 것과 거기서 내린 결론은 아직 네 안에 살아 있다." 나는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은 자연스럽게 지나간 일이 된다고 생각해 왔다. 키가 자라고 나이를 먹고 직업과 책임이 생기면 그때의 나는 사진 속에나 남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 문장은 그 믿음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짚이는 장면이 많다. 별것 아닌 말 한마디에 이유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 있다. 누군가 내 의견에 반대하면 논리와 상관없이 존재를 부정당한 듯 위축된다. 칭찬을 들으면 고마워하기보다 "아직 부족한데" 하며 손사래부터 친다. 나는 이런 반응을 성격이라고 불러 왔다. 소심해서, 예민해서, 원래 이런 사람이라서. 하지만 글을 읽고 나니 그것이 성격이 아니라 오래전에 내가 내린 결론일 수도 있다고 느껴졌다. 어린 내가 어떤 장면 앞에서 "나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하는구나" 하고 내린 결론이 아직도 나를 조용히 조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 증상들이 너무 다양해서 그것만으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내 이상한 반응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을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맨발로 풀밭을 걷다 쐐기풀을 밟으면 피부가 붓고 붉어지고 따갑다. 그때 우리는 원인을 정확히 안다. 마음의 상처는 그렇지 않다. 가려움은 오늘 나타나는데 쐐기풀은 이십 년 전에 밟았다. 그래서 우리는 원인을 찾지 못한 채 가려운 곳만 긁으며 산다. 사람을 탓하고, 일을 탓하고, 결국 나 자신을 탓한다. 치유가 고통에서 시작된다. 괴로움이 없는 사람은 변화할 이유가 없다. 불편한 말이지만 맞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편안할 때는 한 번도 나를 들여다본 적이 없다. 자기계발서를 집어 든 날, 일기장을 펼친 날, 밤늦게 검색창에 내 상태를 설명하는 단어를 쳐 본 날은 모두 어딘가가 아팠던 날이었다. 고통은 피해야 할 고장 신호라고만 여겼는데, 사실은 "여기를 좀 보라"고 두드리는 노크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 아픔을 건너뛰지 말고 충분히 느끼라고 한다. 느껴야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개된 다른 연습들도 하나하나 곱씹게 되었다. 어린 시절 사진을 꺼내 그 아이와 대화해 보라는 것, 아이만의 안전한 장소를 떠올려 보라는 것, 아이에게 "내가 너를 지켜 줄게"라고 약속하라는 것,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아이에게서 답장을 받아 보라는 것. 처음에는 조금 오글거린다고 생각했다. 서른이 넘은 어른이 사진을 보며 말을 건다니.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연습들의 공통점은 단순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지금의 내가 대신 건네는 것이다. 누군가 "괜찮아, 이제 안전해"라고 말해 주기를 바랐던 아이에게, 그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 나 하나뿐이다. 부모가 해 주었어야 한다거나 누군가 알아봐 주었어야 한다고 원망하는 일은 정당하지만, 그 원망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 울고 있다. 결국 달래 줄 수 있는 어른은 지금의 나다.
물론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도 안다. 현실의 치유는 훨씬 더디고 지루하고 때로는 뒷걸음질도 친다. 어떤 상처는 책이 아니라 전문가와의 상담 같은 더 단단한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정답이 아니라 시작점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연습의 개수가 아니라, 내 안에 아직 돌봐야 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인정하는 순간부터 나는 나를 다그치는 사람에서 나를 돌보는 사람으로 조금씩 자리를 옮길 수 있다.
오늘 밤에는 서랍 깊숙이 넣어 둔 앨범을 꺼내 볼 생각이다. 일고여덟 살쯤의 내가 어색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찾아서 한참 들여다볼 것이다.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앉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 오랫동안 혼자 기다렸을 아이 옆에 어른이 된 내가 처음으로 가만히 앉아 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첫걸음은 뗀 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