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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인사이트 산책 - 5인의 창작자가 다시 읽는 낯설고 매혹적인 도쿄의 일상
김학재 외 지음 / 책밥 / 2026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 일찍 깬 날이면 나는 창밖을 통해 서울의 하늘을 본다. 회색 하늘 위로 높은 빌딩들이 촘촘히 솟아있고, 도로 위에는 항상 누군가가 분주하게 이동 중이다. 효율과 속도가 도시의 맥박을 이루는 곳. 그곳이 서울이다. 최근 내가 품게 된 질문은 이 빠른 속도 속에서 나는 정말 무엇을 바라보고 있나?". 책을 읽으며 소비하는 여행이 끝나자, 비로소 살아가는 도시가 보였다." 가 계속 상기된다. 한국보다 느리게 돌아가는 도시, 도쿄에서 11년간 뿌리내린 다섯 명의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속도로,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나요?"
나는 가을이 되면 도쿄로 가고 싶다. 핫플레이스를 찍고 돌아오는 여행이 아니라, 누군가처럼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도쿄에 도착한 첫 날, 나는 아마도 시나가와 역에 설 것이다. 건축가처럼 '역'이라는 문턱에서 도시와 기 억의 관계를 읽어보고 싶다. 서울의 명동역이나 강남역이 대체로 상업성의 축이라면, 도쿄의 역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가을의 오후 빛이 역 구석에 들어앉아, 나는 천천히 걸어 내려올 것이다. 사람들의 발걸음 리듬을 따라가기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도시가 시간을 어떻게 흐르게 하는지 감지해보고 싶다. 옛 만세이바시의 흔적처럼, 도시에 남겨진 매혹적인 층(레이어)들을 발견하려면 서둘러서는 안 될 것 같다.
도쿄의 가을은 일본의 식문화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즌이라고 했다. 요리사의 에세이에서 읽었던 '오모테나시'-온전히 상대를 환대하는 철학-이 음식 속에 담겨 있다면, 가을 도쿄의 작은 식당에서 나는 그것을 맛보고 싶다. 서울에서는 바쁜 점심시간에 대충 허겁지겁 먹는 식사가 일상이지만, 도쿄에서는 어떨까. 혹시 밥 한 공기를 먹으면서도 계절이 담긴 야채를 마주하고, 요리사가 담은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을까. 나는 반경 1.5km의 도쿄에서, 요리사처럼 휴일을 가져보고 싶다. 그곳에서라면 일상이 창작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롯폰기 모리 미술관에 대한 기억이 나에게 가장 길게 남았다. 예술가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싶어서 방문한 유치원 등하원길에, 자연스럽게 만난 미술관들, 예술이 특별한 일상이 아니라, 일상 그 자체인 도시. 서울에서 미술관 은 '가야 하는 곳'이다. 휴일에 시간을 내서 일부러 가는, 어딘가 특별한 경험. 하지만 도쿄에서는 미술관이 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가을 햇살에 물든 작품을 우연히 마주치고, 그것을 감상하는 방식도 배우게 되는 경험일 것이다. 그런 삶을 생각해본다. 특별함을 강조하기보다는, 일상이 차분해지는 느낌. 진보초의 서점들에서, 나는 출판 디자이너처럼 '종이책의 물성'을 다시 만나고 싶다. 한국도 빠르게 전자책 시대로 접어들고 있지만, 도쿄는 여전히 종이책을 사랑하는 도시라고 했다. 만화책의 뒷이야기부터 시작한 그 디자이너의 오답노트를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는 감촉, 종이의 냄새, 인쇄 기술의 섬세함. 이 모든 것이 도쿄의 서점에 살아있다면, 그곳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배움의 공간이 될 것이다.
가을 도쿄의 산책에서 돌아온 나는, 아마도 서울을 다르게 보게 될 것 같다. 빠른 속도가 나쁜 것만은 아니겠지만, 서울의 회색 하늘 아래에서도 '나만의 속도'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울 것 같다. 역에서 잠깐 멈추어 도 시의 리듬을 느끼고, 평범한 식사 하나에 계절의 의미를 담고, 거리에서 무작위로 만난 것에 주목하고, 특별하지 않은 날상의 미술을 감상하고, 손으로 만진 책 한 권에서 영감을 얻는 것아다 . 그것이 바로 도쿄 인사이트 산책 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 것이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이 창작이 되려면, 먼저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 한다는 것. 가을이 오면 나는 도쿄로 가 문을 두드릴 것이다. 살아가는 도시라는 초대장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