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패치 인류세 - 인간과 생태계를 잇는, 인류학의 새로운 자연사
애나 로웬하웁트 칭 외 지음, 김희정 옮김 / 해나무 / 2026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거대한 지구 시스템을 바라보던 관점이 조용히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기후변화, 생물 다양성 감소, 오염 등 이 모든 것이 추상적인 수치와 그래프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들이 제시하는 '패치 (patch) 개념은 이 거대한 위기를 다시 보게 했다. 인류세는 지구 전체에만 작용하는 일원적 힘이 아니라,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벌어지는 구체적인 '패치'들의 연결고리라는 통찰이 나를 사로 잡았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탈(feral) 개념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탈이란 "인간 프로젝트에 참여하지만 설계자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비인간 존재의 상태"이다. 하노이의 현대식 하수도 시스템은 식민지배자들의 문명의 자랑 이어야 했다. 그러나 쥐들이 그 관을 타고 흘러나와 프랑스인들의 목욕당을 습격했다. 제국주의 인프라의 완벽함이라는 환상은 쥐의 단순한 적응력 앞에서 무너졌다. 우리가 만드는 모든 인프라들, 도로, 발전소, 농업 시스템 이 동일한 방식으로 역풍을 맞고 있지는 않을까? 부레장의 사례가 이를 충명한다. 전.세계 식물원의 자랑이었던•이 수생식물은 의도와 다르게 강과 호수를 뒤덮으며 생태계를 교란했다. 인간이 통제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실은 우리의 인프라 속에서 독립적으로 적응하고 진화하고 있었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방법론은 역설적이다. 거대한 인류세를 이해하려면 더 작은 것들을 더 자세히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데이터와 위성 이미지가 주는 유혹에 빠지면 현장의 생생한 관찰이 사라진다: 그 대신 특정 자역, 특정 시간의 패치'를 추적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프랑스 해변의 노조 사건은 이러한 패치 분석의 가치를 명확히 보여준다. 녹조 자체는 자연적 현상이다. 그러나 1960년대 5mg/|에서 오늘날 33mg/로 급증한 질산염 수치는 놈 업 인프라의 이탈 효과를 드러낸다. 강우로 인한 유출, 강에서 바다로의 흐름, 특정 기후 조건 등이 모든 요소가 한 지점에서 만날 때 인간의 죽음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패치-행성 역학(patch-to-planet dynamics)이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또 다른 중요한 점은 인류세가 본질적으로 식민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다종 침입(multispecies invasion)은 15세가 말부터 시작된 유럽의 팽창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패치적 인식론(patchy epistemics)은 깊이 있다. 자연과학자, 인문학자, 토착 지식 체계, 예술가들의 관찰을 쌓기(ping)" 형식으로 모은다. 이는 단순한 학제 간 소통이 아니다. 각 지식 체계가 자신 의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다른 표준을 인정하는 열린 분석적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방식이 나를 감동시킨 이유는 그것이 겸손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의 데이터, 토착 공동체의 세대에 걸친 경험, 예술가의 감각적 표현-이들은 서로 환원될 수 없으면서도 모두 필요하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허물기(unbuilding)'는 절망적이지 않으면서도 절실하다. 인공 환경이 전체 탄소 배출의 40%를 차지한다. 그 위에 계산되지 않는 이탈 효과들이 쌓여 있다. 라카통과, 바살의 철학처럼, 우리는 짓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인류세는 인간의 승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것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역설의 시대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저자들의 담변은 명화하다: 관찰하고, 기술하고, 연대 하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패치에서 인간-비인간의 새로운 얽힘이 일어나고 있다. 모기, 방사능, 녹조, 황소개구리,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인프라와 함께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이 복잡한 현실을 직시하고, 다양한 방 식으로 기술하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 그것이 인류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책임이자, 역설적이게도 희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