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0년 8월, 중국 외교부 대변인 자오리젠은 미국이 위챗을 금지하면 중국도 애플 제품을 금지할 수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그런데 그 글은 미국 플랫폼에, 그것도 아이폰으로 쓴 것이었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든은 틱톡의 강제 매각 법안에 서명했지만, 그의 선거 캠프는 여전히 틱톡으로 선거운동을 했다. 중국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비난하며 재집권한 트럼프가 지지자들에게 판 '트럼프 성경'은 중국 항저우의 공장에서 인쇄되었다. 책은 이러한 모순에서 출발한다. 뉴스는 매일 미중이 반도체와 희토류, 관세와 타이완 해협을 두고 사활을 건 패권 전쟁을 벌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나라가 정말 서로를 무너뜨리려 한다면, 왜 이렇게 서로에게 깊이 얽혀 있을까.
그 속의 답은 국가 중심성이다. 국제 정치는 무정부 상태이고, 국가는 하나의 이해관계를 가진 단일한 행위자이며, 생존을 위해 힘을 겨룬다는 구조 현실주의의 전제다. 이 안경을 쓰면 미중 관계는 '패권국과 도전자의 대결'로만 보인다. 저자는 이 전제가 유용한 방법론적 가정을 넘어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고 비판한다. 국가가 단일체라는 담론의 최대 수혜자는 결국 국가 권력을 쥔 세력이기 때문이다.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통치 권력'이다. 책의 핵심 주장이다. 미중 관계는 '두 개의 내전'을 동시에 치르는 상황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자본주의 국제 질서 속에서 벌어지는 미중 간의 논제로섬적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각국의 통치 권력이 내부의 대항 세력과 벌이는 정치적 내전이다. '패권 경쟁'이라는 설명은 바로 이 두 번째 전쟁을 가린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부터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까지 저자가 끌어오는 사례들은, 통치 권력에게 외적이 내적을 제압하는 명분으로 쓰여 왔음을 보여 준다.
설득력 있게 다가온 대목은 1995~96년 타이완 해협 위기 분석이었다. 클린턴이 리덩후이에게 비자를 내준 것은 톈안먼 이후 악화된 반중 여론과 압도적인 의회 결의(상원 97대 1, 하원 396대 0) 때문이었고, 중국의 미사일 훈련은 보수파와 군, 민족주의 여론 사이에서 입지가 불안했던 장쩌민이 유약해 보일 수 없었던 사정과 맞닿아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이 같은 시기 미국에 타이완을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일촉즉발의 위기였지만, 양쪽 모두 국내 정치의 무대를 위해 위기를 연출하고 관리한 셈이다. 미국의 군사 케인스주의 분석도 같은 맥락에 있다. 성능이 형편없어도 계속 만들어지는 줌월트 구축함이나 연안전투함은 군사적으로는 실패작일지 몰라도, 일자리와 지역 경기를 떠받치는 수단으로서는 목적을 다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경제에서 진짜 필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위협이 지속되는 상태다. 전쟁경제의 수혜 세력이 두려워한 것은 역설적으로 소련과의 평화였다는 문장이 오래 남았다.
전쟁, 곧 국가 간 갈등을 설명하는 열쇠는 자본이다. 저자는 자본주의를 국가들이 스스로 순응하게 만드는 '글로벌 리바이어던'으로 본다. 카터 정권은 소련 침공에 수출 통제로 맞서면서도 석유 시추 장비만은 목록에서 뺐고, 시진핑은 자유 무역과 다자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택한 것도, 경제 성장이 곧 통치 정당성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성장이 '달러 패권 체제 내의 지위 변화'였다는 지적을 따르면, 중국이 디커플링을 반대하는 진짜 이유도 분명해진다. 디커플링은 통치 정당성의 토대를 흔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커플링은 실제보다 담론으로 더 크게 존재한다. 미중 무역액은 디커플링 담론이 유행하던 2022년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고, 수출 통제 신청의 승인 대 거부 비율은 약 10 대 1이었다. 엔비디아 칩은 선전 시장에서 우회로를 타고 거래된다. 오히려 '진짜 디커플링'은 미국 정부와 미국의 반도체 자본 사이에서 벌어질지 모른다는 저자의 농담 섞인 진단은 꽤 날카롭다. 트럼프 정권이 H20의 대중국 수출을 허가한 뒤 엔비디아 주가가 오른 사실이 그 사례다. 두 번째 전쟁, 곧 내전의 가장 선명한 얼굴은 트럼프다. 저자는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을 신자유주의가 낳은 노동 계급의 빈곤 위에서 자란 현상으로 본다. 미국 대중의 가난이 중국과 그에 결탁한 내부 세력 때문이라고 말하고, 자신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중 기만'이다. 그러나 그는 대중, 자본, 안정적 대외 관계라는 세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는 '삼중 딜레마'에 빠져 있다. 관세는 물가를 올려 지지층을 떠나게 하고, 자유 무역으로 돌아서면 지지자들이 배신감을 느낀다. 지지율이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이 모순이 이미 현실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미중 갈등은 모두 가짜라는 주장으로 읽지 않았다. 타이완 해협의 군사적 긴장이나 기술 통제는 분명 현실의 위험이다. 저자 스스로도 그것이 실재하는지에 대한 최종 판결은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다만 나는 통치 권력의 동기를 지나치게 일관된 하나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아닌지, 국내 정치와 자본이라는 변수를 강조하다 안보 요인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남았다. 국가 중심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통치 권력'이라는 또 다른 단일 행위자를 세우는 것은 아닐까. 책은 한국에게도 실용적인 교훈을 준다. 중국의 요구를 읽을 때 '중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정권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읽어야 한다는 제안, 그리고 미국의 요구를 읽을 때도 그 뒤에 있는 국내 정치와 자본의 계산을 읽어야 한다는 제안은, 두 강대국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넓은 선택지를 준다. 뉴스 속 '패권 전쟁'이라는 장면 뒤에는, 두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있다. 그 전쟁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공포를 소비하는 관객이 아니라, 상황을 판단하는 시민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