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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인문학 수업 - 역사, 문화, 경제, 인구, 산업이 교차하는 도시 이야기
도시연구소 지음 / 믹스커피 / 2026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도시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도시의 성장을 눈에 보이는 것들로 판단해 왔다. 높은 아파트 단지, 새로 뚫린 도로, 반짝이는 복합쇼핑몰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도시의 운명을 가르는 것이 건물의 새것과 낡음이 아니라 인구와 일자리의 흐름이라고 말한다. 양질의 일자리가 사람을 부르고, 모여든 인구가 상권과 인프라를 키우며, 잘 갖춰진 인프라가 다시 새로운 일자리와 자본을 끌어당긴다. '도시의 선순환 구조'라고 부르는 이 톱니바퀴는 한 번 돌기 시작하면 도시를 성장시키고, 어느 한 곳에서 끊어지면 도시를 서서히 늙게 한다. 이 원리를 알고 나니 우리나라 도시들의 부침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보였다. 도시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생명이고, 그 생명의 맥박은 사람과 돈이 어디로 흐르는가에 달려 있다는 저자의 관점에 나는 깊이 공감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사례는 화성과 수원이다. 화성시의 지역내총생산은 2023년 기준 약 95조 원으로, 서울 강남구를 제치고 전국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흔히 경제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강남을 지방의 기초자치단체가 넘어섰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배경에는 대규모 산업 일자리가 있다. 수원 역시 삼성전자라는 거대한 일자리를 품으면서 인구 약 120만 명, 광역시인 울산보다 큰 도시로 성장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여전히 기초자치단체이지만 실질적인 체급은 이미 광역시를 넘어선 것이다. 반대로 일자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부천을 통해 '일자리 없는 베드타운'의 한계를 짚는다. 사람은 살지만 그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일터가 도시 안에 없다면, 그 도시는 서울의 그림자에 머물게 된다. 전주의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옥의 곡선과 깊은 음식 맛, 고즈넉한 품격을 지닌 전주는 분명 매력적인 도시다. 하지만 낭만과 감성만으로는 도시를 온전히 성장시킬 수 없다는 저자의 지적처럼, 관광업만으로는 반도체 같은 산업이 만들어내는 일자리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다. 아름다움과 성장은 별개의 문제라는 냉정한 현실을 이 책은 보여 준다.
인구수보다 중요한 것이 '젊음의 밀도'라 한다. 도시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힘은 15세에서 64세 사이의 생산가능인구, 그중에서도 20대 후반에서 40대의 젊은 층이라고 한다. 이들이 유입되지 않는 도시는 멈춰 선 낡은 시계와 같다. 인구가 늘고 있다는 숫자에 안심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세대가 얼마나 들어오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저출생과 지방 소멸이 화두가 된 지금, 우리 사회가 도시를 바라볼 때 꼭 필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관점으로 내가 오래 살아온 부천을 다시 보게 되었다. 부천은 일자리가 부족한 베드타운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비관하기엔 이르다고 말한다. 서울의 양천구, 강서구, 구로구와 맞닿아 있다는 물리적 거리는 다른 어떤 신도시도 흉내 낼 수 없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출퇴근길의 1분 1초는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매일 그 길을 오가는 생활인으로서 체감해 온 사실이 도시 분석의 언어로 정리된 셈이다. 도시의 미래는 이처럼 약점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만이 가진 강점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도 함께 배웠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도시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누구를 위한 성장인가'라는 질문도 함께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자리와 자본이 몰리는 도시는 집값과 생활비가 오르고, 그 반대편의 도시는 활력을 잃고 조용히 늙어 간다. 수도권과 지방, 성장하는 도시와 쇠퇴하는 도시 사이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책에 담긴 창원, 구미, 거제 같은 제조업 도시들이 쇠퇴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모습은 그래서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광주가 AI 중심 도시라는 비전과 광주형 일자리로 성장의 엔진을 다시 돌리려 애쓰고, 부산이 낡은 제조업이 떠난 자리를 바다와 관광, 문화로 채워 가는 모습에서 나는 도시의 회복력을 보았다. 부산은 이대로 주저앉을 만큼 연약한 도시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처럼, 도시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스스로를 바꿀 때 살아남는다.
우리가 어디에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다. 저자가 5년간 전국 100여 곳을 직접 걸으며 새벽 시장의 활기와 불 꺼진 공단의 적막을 몸으로 느꼈기에, 그 분석에는 통계가 담지 못하는 온도가 있다. 나 역시 이 책을 덮고 난 뒤 익숙한 동네의 골목과 출퇴근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 가게는 왜 문을 닫았는지, 저 공장 터에는 왜 새 건물이 들어서는지를 스스로 묻게 된 것이다. 도시는 한번 정해진 운명을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다. 일자리가 생기고, 사람이 모이고, 자본이 흐르는 선순환을 어떻게 만들고 이어 가느냐에 따라 도시의 운명은 달라진다. 그 선순환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그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우리가 있다. 도시를 읽는 눈을 갖게 된다는 것은 결국 내가 발 딛고 사는 삶의 터전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책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그 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