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책은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세종이 만든 것은 스물여덟 자였는데, 왜 우리가 쓰는 것은 스물네 자일까. 사라진 것은 아래아(ㆍ), 반치음(ㅿ), 여린히읗(ㆆ), 옛이응(ㆁ)이다. 우리말에서 쓰이지 않게 된 소리에 맞춰 글자도 함께 정리되었고, 그 과정에서 저자의 표현대로 '훈민정음의 절반만 쓰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았다. 언어는 살아 있는 것이어서 쓰이지 않는 소리가 사라지고 글자가 정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실용을 위해 글자를 줄인 선택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저자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분명히 곱씹을 만하다. 우리말에서는 쓰지 않게 되었을지라도, 그 글자들이 담고 있던 소리를 적는 원리까지 잊어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오늘날 한글로 외국어를 적을 때 b와 v, f와 p, l과 r 같은 소리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을 생각하면, 사라진 글자와 창제 원리를 다시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제안은 충분히 귀 기울일 가치가 있다. 옛 글자를 복원하자는 주장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잃어버린 것의 의미를 묻는 일 자체가 값지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