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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영어 필사 - 세네카, 흔들림 없는 삶의 태도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노윤기 옮김 / 베이직북스 / 2026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밤하늘은 별보다 빛나는 것들이 많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빛, SNS 피드를 넘기는 손가락의 속도, 끝없이 업데이트되는 뉴스 기사들, LLM 생성형 인공지능이 세상을 재편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 다 나는 자꾸만 불안해진다. 기계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첨 많아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따라다니던 어느 날, 나는 다시 필사책을 펼쳤다. 책장 어딘가에 빛바랜 2000년 전 로마 철학자의 목소리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져본다.
필사는 이상한 마법이다. 화면을 스크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룬 경험이다. 손가락이 펜을 쥐고, 팔이 종이 위를 천천히 움직이고, 눈과 손과 뇌가 동시에 작동한다. 영어 문장을 필사할 때 나는 단순히 단어를 옮겨 적는 게 아 니다. 각각의 문자가 내 손가락 끝으로 흘러 내려오고, 그 과정 속에서 의미가 천천히 스며든다. 책의 한 구절이 잊혀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평가하는 것입니다." 문장을 필사할 때, 기계가 만든 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2000년 전의 세네카가 나의 손가락 끝을 발려서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는 불안해하지 말라고, 타인의 시선이나 외부 상황이 아니라 내 내면에 집중하라고 속삭였다. 세상이 빠르고 냉정해질수록, 나는 더욱 느리고 따뜻한 것들을 필요로 한다. ChatGPT와 같은 생성형 AI가 매 순간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아 질문에 세네카는 아미 답을 주고 있었다.
그가 살던 시대에도 정보는 넘쳤다. 권력의 게임이 있었고, 경쟁이 있었고, 불안정한 삶이 있었다. 네로 황제의 광기 속에서 그는 묻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 대신 그는 물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나일 수 있을 까?" 필사를 하면서 서서히 생각해 본다. 기계는 규칙을 따르지만, 인간은 의미를 창조한다. 기계는 빠르지만, 인간은 깊다. 기계는 정보를 쏟아내지만, 인간은 지혜를 마음에 새긴다. 세네카의 글을 손으로 쓰며 나는 기계가 할 수 없는 가장 인간적인 일을 하고 있었다.
현대인의 뇌는 늘 켜져 있다. 푸시 알림, 메션저 메시지, 업무 메일. 쉼 없는 자극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밤 10분, 세네카의 글귀 앞에 앉는다. 필사책을 펼쳐놓고, 펜을 들고, QR 코드로 원어 민의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손을 움직인다. 그 10분의 고요함 속에서 내 마음은 마침내 휴식을 얻는다. 이것은 명상이자 기도이고, 자기 성찰이자 자기계발이다.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쓰기가 심장까지 도달할 때, 나는 느낀다. 이것이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
세네카는 말했다. "인간은 잘 죽는 법을 알지 못하는 한 잘 살 수 없다." 요즘 시대의 우리는 웰빙(well-being)만 생각한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이. 하지만 세네카는 다르게 가르친다. 웰다잉(well-dying)을 준비 하라고. 죽음을 명상하고, 삶의 본질을 묻고, 내면의 기준을 세우라는 것이다. AI 시대에 불안해하던 나는 이제 깨닫는다. 기계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기계는 나를 될 수 없다. 기계는 텍스트를 생성하지만, 나는 의미를 체험한 다. 기계는 답을 주지만, 나는 질문을 던지며 내 자신을 알아간다. 매일 밤, 세네카의 글귀 위에 내 글씨를 포개며, 나는 천천히 내 삶을 되찾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그것만으로도 넉넉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