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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적 인간 - 잘 알지 못해도 괜찮은 국내 미술관 여행
문하연 지음 / 동아엠앤비 / 2026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감상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일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미술관을 찾는 진정한 이유를 밝혀준다. 우리는 그동안 미술관을 너무 어렵게 생각했다. 도스트의 설명을 완벽히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 명화 앞에서 반드시 감동해야 한다는 의무감, 미술사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부담감.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미술관의 문턱 앞에 멈추게 했다. 그러나 저자는 조용하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말한다. 미술을 잘 알지 못해도 괜찮다.
부소갤러리의 에피소드는 특별하다. 저자와 80대의 아버지가 아마추어 화가의 그림 앞에 서 있다.. 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버지가 그림을 보며 말한다. "이 그림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감동이란 학문적 이해에서 오 는 게 아니라, 자신의 추억과 맞닿아 있을 때 생긴다는 사실. 아버지는 그 그림 속에서 자신의 가난했던 과거를 본 것이다. 까만 선으로만 표현된 단순한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가 녹아든 거울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컷 이 예술의 진정한 힘이다. 저자는 이 에피소드 이후로 전국의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한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 원주 뮤지엄 산을 아버지와 함께 방문한 후 아버지가 소천하신다. 책은 결국 아버지 와 함께 미술관을 다녀오는 여정을 기록한 일종의 '예술을 통한 화해의 기록'이 되었다.
책은 미술 작품 자체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박수근이 노상에서 물건을 살 때 여러 상인들에게 나눠서 샀던 일화, 아중섭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화, 경재 청선과 이병연의 우정 같은 이야기들아 미술 감 상을 더 깊고 따뜻하게 만든다. 우리는 역사 속 인물들을 관념적으로만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들도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의 작품은 멀리 떨어진 거장의 작업이 아니라 옆 사람의 절절한 고백처럼 느껴진다. 경재 정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이병연이 그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면, 그의 그림은 단순한 경치 그림이 아니라 오래된 우정에 대한 헌사가 된다.
책은 마음이 지친 우리들을 위한 위로의 기록이다. 부소갤러리, 박수근미술관, 구하우스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등 전국의 미술관을 다니며 저자는 각 장소에서 만난 그림, 사람, 그리고 자신의 내밀한 감정들을 나눈다. 미술 관은 더 이상 높은 벽이 아니다. 고급 문화를 소비하는 엘리트 공간도, 난해한 이론으로 무장해야 하는 장소도 아니다. 저자의 책을 읽고 미술관을 찾는 우리는 그저 자신의 일상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면 된다. 그림이 어떤 기법으로 그려졌고, 어느 화파에 속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앞에서 우리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어떤 추억이 떠올랐는지, 마음의 어느 부분이 건드려졌는지가 중요하다.
책을 읽고 이 가을 미술관 투어를 계획해본다. 반드시 거장의 대작 앞에 서기 위함이 아니라, 내 마음이 고단할 때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기 위해서. 누군가의 작품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 혹시 '올바른 감상'이 아닐까 봐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미술관에서 나는 거창한 교양인이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 순간을 온전히 즐거는 사람이 되면 된다. 저자가 건네는 말처럼, 우리의 부대낌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실패는 단순한 실패 가 아니라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목표까지 가지 못했다면 목표를 수정하면 된다. 이 가을 미술관의 조용한 갤러리에서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다시 만나고, 조금씩 위로받을 것이다. 감상은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미술적 안간이 되어, 그림 앞에서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