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예술로 읽는 스페인
백인필 지음 / 디이니셔티브 / 2026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래전 책의 한 귀퉁이에서 마주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감정이 이제 현실이 되려 한다. 직접 프라도 미술관의 벽 앞에 서서, 그 화폭 속 왕과 같은 자리에 내 눈을 맞추는 순간을 상상한다. 저자의 말처럼 '한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는 결국 예술이었다. 이제 가을의 스페인이 나를 부르고 있다. 가을 스페인으로의 예쑬, 여행을 꿈꾸며 책을 읽었다.
가울 햇살 아래 그라나다에 발을 디디는 것이 먼저다. 석류 빛으로 물든 도시에서 알람브라 궁전을 마주하는 순간, 종교와 문명의 충돌 위에서도 예술로 피어난 대화를 볼 것이다. 벽마다 새겨진 "알라 외에 승리자는 없다"는 글씨. 약 만 개의 아랍어 명문 중 가장 많이 등장하던 이 문구는 단순한 표어가 아니다. 밀려오는 가톨릭 세력 앞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놓지 않으려 한 영혼의 외침이자, 아름다운 아라베스크 속에 숨겨진 저항의 노래다. 카 를로스 5세 궁전이 나스르 궁전 옆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생각해 본다. 왜 철거하지 않았을까. 스페인 친구의 대답이 가슴에 남을 것이다. "이슬람도 가톨릭도 모두 자신들의 역사이가에, 할 일은 파괴가 아니라 보존이라고." 그곳에서 포용과 공존의 역사를 읽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거리로 접어드는 순간, 가우디의 세계로 완전히 빨려 들어간다. 그가 평생을 바친 사그라다 파밀리아, 144년 만에 완공된 이 거대한 성당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 영혼의 기도를 돌과 빛으로 구현한 작품이 다. "내 건축주(신)는 결코 서두르지 않으십니다." 느린 공사를 재촉하는 이들에게 건넨 이 한마디는 가우디의 삶 전체를 압축한 문장이다. 시간이 흐르고, 그의 사망 100주년에 비로소 공식 완공된 이 성당의 높이에는 신을 향한 경외, 시간에 대한 장연, 그리고 인간의 절제가 담겨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에 그려진 성인들의 이름. 그 중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이자 순교자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이름 (A.KIM)을 발견할 때, 국경을 넘는 신앙의 위대함을 느낀다. 건축물 외관을 노란 금산화 타일로 가득 채운 이유도 알게 된다. 이전 부지에 만개했던 천수국의 꽃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가우디의 마음. 자연을 진정으로 사랑한 건축가의 섬세함아 그렇게 돌과 타일 속에 우 살아 숨 쉰다.
마드리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프라도 미술관의 계단을 올라간다. 벨라스케스, 고야, 소로야. 스페인 미술사를 빛과 어둠으로 수놓은 거장들의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시녀들 앞에 서면, 나는 관람자에서 왕이 된다. 벨라스케스가 관람자와 그림 속 인물의 자리를 맞바꾼 이 역작 앞에서, 시간은 고정되고 공간은 통약된다. 17세기 궁정과 21세기의 나는 같은 평면 위에서 마주한다. 고야의 양산과 사토르누스를 관통하는 인생의 변화를 보 며 생각한다. 밝고 순수했던 젊은 화가의 눈이 어떻게 광기 어린 눈으로 변했는가. 그것은 고야가 살아낸 시대의 가혹함에 대한 증언이다. 한 화가 안에서 이만큼 급격한 화풍의 변화는 미술사에서도 보기 드물다. 그러다 소로 야 미술관에 도착하면 모든 무거움이 선선한 빛으로 걷혀 나간다. "나는 항상 눈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의 그림에서는 회화적 기교를 앞세우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빛 그 자체, 사랑하는 이의 얼굴, 고향 해변의 황금빛이 그대로 담겨 있다. 절반 이상이 아내를 그린 그의 작품들 앞에서 나는 사랑과 그리움의 시간이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를 배울 것이다.
기타의 선율이 흐르는 안달루시아의 밤. 플라멩코의 걱정이 흐르는 거리에서 나는 그 춤이 담은 슬픔과 저항, 그리고 살아내기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미술사야말로 인류가 걸어온 발자취'라면, 스페인의 예술 은 수백 년 세월의 흔적 그 자체다. 가을 햇살 아래 도시 곳곳에 새겨진 거장들의 시간을 거슬러 걸으며, 나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한 점의 그림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예술을 통해 읽은 스페인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