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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순수한 미술은 없다
이지윤 지음 / 쌤앤파커스 / 2026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글을 읽으며 한 가지 불편한 진실 앞에 마주쳤다. 미술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는 몰랐다는 깨달음이다. 마치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정교한 기계장치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그 어색함 말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미술 생태계가 '누가 결정하는가'의 문제를 일관되게 추적한다는 점이다. 14세기 다티니의 시대에는 교회와 귀족이 직접 붓을 들었고, 19세기 국가가 박물관과 학교를 통해 문화 주권을 확보했으며, 21세기 현재는 경매사, 큐레이터, 컬렉터, 그리고 이제 알고리즘까지 그 몫을 나누어 가진다. 흥미로운 것은 권력의 형태가 변했지만 본질은 같다는 점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와 마르스>가 피렌체 귀족의 결혼 선물로서 침실의 스팔리에라에 그려졌던 것처럼, 모든 미술은 누군가의 욕망과 필요에 응답하도록 만들어진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미술은 그 시대의 산불"이라는 의미다. 루이비통의 모노그램 캔버스가 현대 예술가의 손에 의해 '재해석'되는 것도 결국은 자본이 예술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 아닐까. 무라카미, 다카시의 멀티컬러 모노그램이 매출을 16% 증대시켰다는 통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아트'가 아니라 '마케팅'의 성공 사례라는 뜻이 아닐까...
저자가 자세히 설명하는 경매사의 금융화 현상도 매우 흥미롭다. 과거 경매사가 단순히 중개자'였다면, 현재는 투자은행에 가까운 금융 기관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Artfi Master Trust 같은 상품은 미술품을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아닌 유동화 가능한 자산으로 명백히 재정의한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프라이빗 세일즈의 확대다. 공개 경매의 투명성을 거부하고 비밀리에 거래되는 작품들이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차지한다는 사실. 아는 미술시장이 겉으로는 투명해 보이지만 실제 로는 더욱 불투명해자고 있다는 역설을 드러낸다. 왕족과 슈퍼리지만 접근 가능한 거래 채널이 존재한다는 것은, 정보의 민주화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계급 구분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오 주석 초상화 운반 전설'은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누군가가 가방에 넣어 직접 가져온 워홀의 작품이 4,750만 달러에 팔리고 그 현금으로 빌딩을 샀다는 이야기. 이는 미술이 이제 "미술"이 아니라 화폐"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 은행 지하에 차곡차곡 쌓인 인상파 작품들이 사실 은 금괴와 다름없다.
BMW 아트카 프로젝트와 루이비통의 아티스트 컬래버레이션은 기업이 어떻게 예술을 착취하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흥미롭게도 새로운 형태의 미술 생산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복잡하다. 1975년 알렉산더 칼더에서 시작된 BMW 아트카는 단 순한 광고가 아니었다. 레이스카의 차체를 캔버스로 제공함으로써, 예술가들은 화이트 큐브를 벗어난 새로운 매체를 얻었다. 2023년 Al 캔버스에 이르가까지의 진화는 미술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21세기의 화두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루이비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896년 만들어진 모노그램이 2001년 스테판 스프라우스의, 네온 그라피티로 재해석되고, 무라카미의 팝아트적 물방울로 변신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상업화가 아니라 역사적 유산의 민주화였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명품 가 방을 들고 다니면서 현대미술을 소비한다는 것.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판단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그것은 미술 접근성의 혁명임은 분명하다.
MZ세대 컬렉터의 등장은 더욱 흥미롭고 구조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소더비의 온라인 경매 데이터를 보면, 30% 이상의 신규 고객과 40세 이하의 젊은 낙찰자가 거래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는 단순한 세대 교체가 아니라 미술 거래의 민주화를 의 미한다. 온라인이라는 폴랫폼을 통해 정보의 격차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갤러리에 출입하거나 경매사에 등록된 엘리트 컬렉터만 최신 정보를 알 수 있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하나로 세게 미술시장의 모든 가격과 작품을 비교할 수 있 다. 이는 미술이 정보 비대칭이라는 시스템 위에서 살아왔던 기득권을 직격한다. 또한 밀레니얼 세대와 MZ세대는 새로운 기술과 플랫폼에 적응력이 높다. NFT, 메타버스, 온라인 경매, 인스타그램 갤러리-이들은 이러한 새로운 매체를 거부하 지 않고 오히려 능숙하게 활용한다. 이는 미술 거래의 폭을 무한정 확대할 수 았다는 뜻이다.
미술이 순수하지 않다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인정해야 할 현실이다. 모든 미술은 그 시대의 권력 구조와 자본의 논리 속에 내포되어 있다. 14세기 귀족의 침실 장식에서 21세기 투자 자산까지, 미술은 항상 무언가의 도구였다. 하지만 여 기서 중요한 것은 그 도구성을 인식하면서도, 어떻게 그 틈새에서 진정한 만남과 감동을 만들어낼 것인가하는 질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손이 사람이든 알고리즘이든 최종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은 냉소가 아니라 현명한 비판이다. 미술 생태계의 불순함을 자각하면서도, 동시에 온라인 민주화와 허리층의 등장이 열어놓은 새로운 가능성의 시대를 누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21세기 미술 애호가가 가져야 할 태도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