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용운 시 필사 나는 쓴다 - 시니어를 위한 하루 10분 마음정리 예쁜글씨 교정! ㅣ 나는 쓴다
한용운 지음 / 비타민북 / 2026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젊었을 때는 이 질문을 애써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고, 해야 할 일들은 늘 넘쳐났으며,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볼 여유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손끝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고, 글씨를 쓰다 보면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도 하고, 예전에는 단숨에 써 내려가던 문장도 이제는 한 글자 한 글자 신경 써서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나이 듦을 몸으로 실감하던 즈음, <나는 쓴다>라는 필사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은 한용운 선생의 시를 직접 따라 쓰도록 구성된 필사책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글씨 교정을 위해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서 흐트러진 글씨체를 다시 바로잡고 싶었고, 무엇보다 손을 움직이는 일이 인지력과 기억력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님의 침묵>부터 <알 수 없어요>, <나룻배와 행인>, <사랑하는 까닭>과 같은 시들을 한 줄씩 따라 쓰기 시작하면서, 이 시간이 단순한 글씨 연습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용운 선생은 시인이기 이전에 나라를 빼앗긴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낸 분이었다. 그의 시에는 사랑과 이별의 정서만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간절함과 잃어버린 것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삶의 고통을 견디는 힘이 함께 담겨 있다. 젊었을 때 이 시들을 읽었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로만 다가왔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어 다시 이 시들을 한 글자씩 손으로 옮겨 적다 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별을 노래하면서도 결국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는 마음, 상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 이러한 역설이 이제는 단순한 문학적 기교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삶의 진실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잃어가는 것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몸은 예전 같지 않고, 가까웠던 사람들과의 이별도 하나둘 늘어가고,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한용운 선생의 시를 필사하며 깨달은 것은, 잃음이 곧 끝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룻배와 행인>에서 나룻배가 행인을 실어 나르며 비바람을 다 맞아도 다시 행인을 기다리듯이, 삶도 그렇게 견디고 또 기다리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 기다림의 의미를, 이제는 손으로 한 글자씩 써 내려가며 온몸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하루 10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이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순간이 되었다. 펜을 들고 종이 위에 시 한 구절을 옮기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저 눈앞의 문장에 집중하고, 한 획 한 획 정성을 들이는 일만 남는다. 이렇게 집중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예전보다 마음이 훨씬 차분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젊었을 때는 무엇이든 빨리 해내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지만, 이제는 오히려 속도를 늦추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한용운 선생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자유와 희망을 끝내 놓지 않았던 분이다. 그의 시를 필사하며 나 역시 인생의 후반부를 살아가는 지금, 잃어버린 것들에 마음 아파하기보다 아직 남아 있는 것들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천천히, 그러나 정성스럽게 채워가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오늘 써 내려간 한 줄의 시가, 내일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는다. 나에게 그런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해 준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