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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안정 - '결혼'이 만드는 꿈과 불안, 그 너머 관계의 기하학
안희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결혼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당연한 것으로 취급된다. 태어나고,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한다. 이는 마치 자연의 순환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최근 혼인 건수의 증가라는 통계 뒤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뉴스를 보니 한동안 외면당했던 결혼 이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2025년 혼인 건수는 24만 326건으로 전년대비 8.1퍼센트 증가했다. 표면적으로는 사랑이 부활했다는 신호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청년들이 결혼을 선택하는 이유는 사랑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스펙 과 자산으로 자신을 입증하려는 남성들, 외모와 나이로 평가받는 여성들, 로테이션 소개팅에 나서는 청년들의 모습. 그리고 TV와 OTT에 쏟아지는 결혼 예능 프로그램들. 이 모든 것들이 보여주는 것은, 결혼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것 인지, 아니면 원할 수밖에 없도록 강요된 것인지 묻게 한다. 결혼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것을 선택하는가, 이 질문에 책은 여러 담론을 이야기 한다.
결혼 담론에는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동시에 존재한다. 하나는 동화의 결말이다."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 이야기는 결혼이 모든 고통의 종점이며, 거기서부터 영원한 행복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OTT 예능에서 커플이 탄생하는 순간은 마치 영화의 클라이맥스처럼 연출된다. 그것이 모든 갈등의 해결, 모든 기다림의 결말인 양... 그러나 실제로 청년들이 결혼에 대해 말하는 것은 훨씬 현실적이고, 때로는 냉철하다 : 결혼은 보험이 다. 사랑의 증명이 아니라 사랑의 부재에 대비한 제도적 장치다. 떨어질 수 있는 연애 감정을 법적 구속으로 들어잠그는 것, 결혼하지 않으면 언제든 상대가 떠날 수 있지만, 결혼하면 법적으로 그럴 수 없다는 믿음. 이것이 결혼이 제공하 는 유일한 안정"이다. 사회가 결혼만이 안정을 제공한다"고 말하기 때문에, 안정을 원하면 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다른 형태의 안정 즉, 공동생활, 법적이지 않은 헌신적 관계, 친구들과의 깊은 연결 등은 "진정한 안정'"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 결국 제도가 목적을 만들어내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도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결혼 시장은 낡은 성 역할이 가장 적극적으로 재생산되는 장소다. 남성에게 결혼은 "가장으로서의 증명"을 의미한다. 스펙, 자산, 직업 등 모든 것이 남성성을 입증하는 수단이 된다. 혼자서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결혼하지 못한 남성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될 능력이 없는 " 남자가 아닌 존재"로 낙인찍힌다. 산업화 시대에조차 한 남성이 온 가족을 부양하기는 어려웠지만, 이 신화는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있다. 한 가정을 부양할 수 있는 가장으로서 남성에 대한 요구 는 특히 결혼을 중심으로 여전히 강고하다. 한편 여성들에게 결혼은 다른 형태의 폭력이다. 나이, 외모, 그리고 "남편보다 낮지 않으면서도 압도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이라는 모순적인 요구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자율성을 양도한다. 인정하거나 제가 인정하지 않는 것과 상관없이 여성이 서른다섯 넘으면 결혼시장에서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기준이 자신에게 작용한다. 이것이 제도적 폭력의 본질이다. 인식하면서도 피할 수 없다. 더 심 각한 것은, 결혼이 여성에게 자율성의 포기를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점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모든 것을 용해시킨다.
결혼의 최종 목표는 보통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청년들이 결혼의 필수 요소로 아이를 이야기했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에서 삶의 안정은 오직 핵가족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수한 시 대적, 지역적, 경제적 발명인 핵가족을 동물적 본능의 차원으로 이해하게 하는 이유는 지금 한국에서 핵가족만이 임신- 출산육아, 그리고 이것 너머 생애 전반의 경제적, 관계적 측면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성하는 유일한 길로 여겨지 기 때문이다. 핵기족은 현대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만들어진 상대적으로 최근의 발명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생물학적 본능으로 착각한다. 역사와 정치경제를 생물학으로 위장하는 이데올로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안정을 원하면 결혼해야 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가져야 하고, 아이를 가지면 그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논리가 완성된다. 이것은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제도적 필연성이다.
결혼은 나쁜 제도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은 진정한 지지와 사랑의 관계가 된다. 마지막 독자가 아내와 함께 불안정한 삶을 견디는 것처럼, 결혼이 의미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결혼만이 유일한 선택지라는 착각이다. 현재의 한국 청년들이 결혼으로 수렴하는 것은 들이 결혼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걸을 보이게 하는 것,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