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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풍요의 시대 - AI와 인류의 미래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김태훈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68년 스튜어트 브랜드가 외쳤던 " We are as gods and we might as well get good at it "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 더 이상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로봇공학의 급 속한 발전은 인류를 신화 속 신의 영역으로 진입시켰다. 우리는 더 이상 자연의 제약 앞에서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정보를 창조하고, 생명을 설계하며, 물질의 희소성을 풍요로 변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신의 힘을 얻은 순간, 우리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기술의 가속도는 인간의 지혜를 능가했고, 풍요는 새로운 형태의 불행을 낳았으며, AI의 등장은 우리 자신의 존재 의미까지 위협하고 있다. 책은 초풍요의 시대에서 AI의 부상이 인류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들을 이야기하고,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초풍요의 시대는 단순히 물질의 풍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보의 폭발, 선택지의 무한증식, 그리고 가능성의 무한 확장을 의미한다. 로봇 배송 드론Zipline은 아프리카의 혈액을 분 단위로 배송하여 산모 사망률을 51% 감소시켰다. 온라인 교육 Khan Academy는 2025년 1억 5천만 명 이상이 50개 언어로 학습할 수 있게 했다. iPs 세포 기술과 3D 바이오프린터는 장기 부족의 시대를 끝낼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구현해내는 것은 스케일의 민주화다. 과거 특권층만 누릴 수 있던 것이 이제 보통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깨끗한 물, 의료, 교육, 이동성 등, 이 모든 것이 개인의 손 안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풍요로움이 진정한 해방일까? John B. calhoun의 마우스 실험은 충격적이다. 모든 물질적 필요가 충족된 환경에서 마우스 사회는 붕괴했다. 출생률은 떨어지고, 개체 간의 유대는 사라졌으며, 집단은 무의미한 반복행동으로 빠져들었다. 우리는 이 마우스 실험을 재현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무한한 정보를 제공 하지만, 동시에 우울증 발병률을 3배 증가시켰다. 소셜 미디어는 전 지구적 연결을 약속했지만, 결과는 심화된 고독감과 실존적 불안이다. 온라인 쇼핑은 욕망의 즉각적 충족을 제공하지만, 삶의 의미는 오히려 감소했다. 저자들이 말하는 "부정성 편향"은 실재한다. 우리 뇌는 진화적으로 위협에 민감하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풍요 속의 공허함이다. 우리는 생 존을 위해 투쟁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이 순간, 더욱 강력한 주인공이 무대에 나타났다. 인공지능.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지 능력을 복제하고, 확장하며, 심지어 초월하기 시작했다. ChatGPT는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1억 사용자에 도달했고, 멀티모달 AI는 이미지, 음성, 텍스트를 자유자재로 생성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것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문제지만 더 근본적인 위협은 우리의 정체성 그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오랫동안 자신을 "생각하는 존재(homo sapiens)"로 정의했다. 하지만 AI가 우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창의성의 소유자라고 믿었지만, AI가 창의적인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한다면? 우리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철학적 문제를 넘어 실촌적 위기가 되었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초풍요의 시대가 모든 인류에게 동등하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AI 기술의 혜택은 극도로 집중되어 있다. 세계 자산의 76%를 지배하는 상층부 10%는 AI 시대의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다. 반면 하층 부 50%는 세계 자산의 2%를 소유하고 있으며, Al로 인한 실업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책에서 제시된 " Rising Floor Effect "는 통계적으로 사실일 수 있지만, 상층부의 상승 속도가 하층부의 상승 속도를 훨씬 능가한다. 격차는 절대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초풍요는 선택받음 자들의 풍요일 뿐, 보편적 풍요가 아니다.
<We Are as Gods> 책의 제목이다. 미래의 지성체는 신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그 힘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해 있다. 기술적 위험으로 바이오테러, AI 의 오류, 기후 재앙, 인류학적 위험으로 의미 상실, 사회 붕괴, 실존적 공허이다. 마인드셋의 변화만으로는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우리는 집단적, 제도적, 철학적 혁신이 필요하다.
초풍요의 시대, AI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초풍요의 시대는 우리에게 신의 힘을 주었다. 하지만 신의 힘을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신처럼 행동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현 세대가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진정한 유산이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는 기술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미래를 목격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진정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