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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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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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여성은 자신이 가사의 모든 것을 떠안고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남편이 게으르거나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원래 꼼꼼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Daminger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식되지 않고, 인식되지 않기 때문에 바뀌지 않는 노동, 바로 인지 노동(cognitive labor)을 이야기 한다. Daminger는 인지 노동이 무엇인지, 왜 여성에게 불균형하게 집중되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 는지를 이야기 한다.


흔히 가사 불평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노동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누가 설거지를 했는가, 누가 청소를 했는가, 누가 아이를 목욕시켰는가. 그러나 Daminger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정신적 프로세스'", 즉 가정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하기 위한 생각과 판단의 노동에 주목한다. 그가 정의하는 인지 노동은 네 단계로 구성된다: 필요를 예측하기, 선택지를 파악하기, 결정을 내리기, 그리고 결과를 모니터링하기다. 예를 들어 아이의 편식이 심해진다고 느끼는 것은 '예측'이다.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지, 어떤 방법이 있는지 조사하는 것은 '선택지 파악'이다. 실제로 치료사를 찾아가 기로 결정하는 것이 '결정'이며, 이후 아이의 식습관이 나아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살피는 것이 '모니터링'이다. 이 과정은 하루에도 수십 번, 가정의 모든 영역에서 반복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대부분 여성의 머릿속에서 조용히, 쉬지 않고 돌아간다. 무엇보다 이 노동이 잔인한 이유는 시간 기록지에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장에서 이메일을 처리하면서 동시에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아이의 다음 주 소풍 준비물을 기억하고, 노부모의 병원 예약 날짜를 떠올리는 여성의 뇌는 끊임없이 '백그라운드 처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유급 노동 시간에도, 가사 노동 시간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보 이지 않으니 인정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니 나누어지지 않는다.


Daminger의 연구에서 충격적인 발견 중 하나는, 대부분의 커플이 인지 노동의 불평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젠더 문제라는 사실은 부정한다는 점이다. "이건 젠더 문제가 아니에요. 저라는 사람의 문제예요." Daminger는 이것을 '개인 본질주의(personal essentialism)'라고 부른다. 여성은 자신이 '원래 꼼꼼하고 계획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믿고, 남성은 자신이 '원래 즉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못 한다고 믿는다. 젠더 불평등은 이렇게 개인의 성격 차이로 번역되어, 문제 자체가 증발해 버린다. 그러나 Daminger는 날카롭게 반문한다. 직장에서는 복잡한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세밀한 계획을 세우는 그 남성이, 왜 집에서는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가? 능력의 문제가 아니다. 투자의 문제다. 누가 그 능력을 키울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다. 구조적 요인도 이 불평등을 고착시킨다. 경제학자 Claudia Goldino 명명한 탐욕스러운 일(greedy work), 즉 언제든 연락 가능하고 헌신을 요구하는 직장 문화는, 맞벌이 커플에게 한 명의 커리어를 우선시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대개 그것은 남성의 커리어가 된다. 더 심각한 것은, Daminger의 연구에서 여 성이 더 높은 소득을 올리거나 더 긴 시간 일하는 경우에도 여전히 인지 노동의 더 많은 부분을 짊어졌다는 사실이다. 남 성의 고된 직장 생활은 가정에서의 부재를 정당화하는 이유가 되지만, 여성의 고된 직장 생활은 오히려 그녀가 "원래 유능하다"는 증거로 해석되어 더 많은 가사 노동으로 이어진다. 이 이중 기준은 명백한 불공정이지만, 워낙 일상에 깊이 배어 있어 많은 이들이 눈치채지 못한다. 또한 책임의 비대칭성 문제가 있다. 사회는 아이가 학교에 제때 준비물을 챙겨 가지 못했을 때,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신경을 쓰게 되어 있다. 어머니는 사회적 감 시 속에서 자동적으로 더 많은 인지 노동을 떠맡는 구조 안에 놓여 있다.


Daminger의 연구에서 흥미로운 대조군은 동성 커플과 트랜스젠더 파트너를 포함한 퀴어 커플들이다. 이들 역시 완전한 평등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성애자 커플에 비해 격차가 훨씬 작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태도의 차이였다. 퀴어 커플들은 인지 노동의 배분을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협상하고 조정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이 성애자 커플이 "나는 원래 이걸 잘해서, 그는 원래 저걸 잘해서 "라는 논리로 분업을 당연시하는 반면, 퀴어 커플들은 누가 무엇을 할지에 대해 더 자주 이야기하고, 불균형이 생겼을 때 더 적극적으로 재조정하려 했다. 이는 젠더 역할이라는 기본 스크립트가 없을 때, 커플들이 얼마나 다르게 행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달리 말하면, 인지 노동의 불평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며, 따라서 바꿀 수 있다. Daminger는 인지 노동의 문제가 개인이나 커플의 차원에서만 해결 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학교는 특별한 의상이나 수제 간식 준비 같은 요구가 부모에게, 특히 일하는 부모에게 어떤 인지 적 부담을 지우는지 성찰해야 한다. 기업은 직원들이 진정으로 퇴근할 수 있도록 '탐욕스러운 일'의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정부는 조각보처럼 이어 붙여야 하는 돌봄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공공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다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 소녀에게만 장난감 정소기를 선물하지 않아야 하고, 소년도 어릴 때부터 타인의 필요를 살피고 돌봄의 책임을 나누도록 배워야 한다. 인지 노동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연습과 투자를 통해 개발되는 능력이다. 그 연습의 기회가 한쪽 성별에게만 주어져 왔기에 오늘의 불균형이 생긴 것이다.


Daminger의 연구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우리는 이미 '평등'을 이상으로 삼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가정의 가장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오래된 불평등이 조용히, 그리고 견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더 교묘한 이유는, 그 불평등이 성격 차이나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도록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젠더 문제가 아니에요. 저라는 사람의 문제예요."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우리는 멈추고 물어야 한다. 정말 그런가? 어쩌면 수백만 여성이 공유하는 더 큰 이야기의 일부는 아닌가? Daminger가 말했듯, 사회학자의 임무는 개인의 경험이 더 큰 구조 속에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보게 돕는 것이다. 그 시선을 갖는 것, 그것이 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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